진식 정치에디터(부국장)
#대회 D-15. 체중 63㎏. 지금부터 밥을 절반으로 줄인다. 훈련은 평소대로다. 오전·오후·야간 하루 3차례 강훈련이다. 3일간 이어간다.
#D-12. 체중 61㎏. 아침을 굶고 밥을 하루 세끼에서 두끼로 줄인다. 훈련량은 변함이 없다. 또 3일 동안 이어간다.
#D-9. 체중 59㎏. 이제부턴 하루 먹는 물을 절반으로 줄인다. 몸에서 수분을 점차적으로 빼내기 위해서다.
#D-6. 체중 57㎏. 이젠 하루 점심 한끼밖에 먹지 않는다. 저녁때가 배가 제일 고프다. 너무 허기가 진 나머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D-3. 체중 55.5㎏. 플라이급 한계체중(-54㎏)을 맞추는 데 1.5㎏ 남았다. 마의 구간이다.
#D-2. 체중 54.8㎏. 음식을 일절 금한다. 아침·점심·저녁을 모두 굶는다. 하루 종일 물만 500㎖ 정도 마실 뿐이다.
#D-1. 체중 54.5㎏. 전날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겨우 300g만 빠졌을 뿐이다. 이날은 물도 마실 수 없다. 목이 너무 마르다. 배고픔은 잊은 지 오래다. 오늘 밤 잠자기 전까지 200~300g 정도만 오버시켜 놔야 한다. 하지만 시원한 우유 한잔을 너무 마시고 싶다. 용량을 보니 180㎖. 이걸 마시면 줄넘기 1만개 이상을 해야 하는데…. 결국 마셨다. 체중계에 올라서니 54.68㎏. 정확히 180g이 더 불었다. 줄넘기 1만5천개를 뛰었더니 250g이 줄었다. 54.43㎏. 200g을 더 빼야 한다. 이제 남은 건 사우나다. 도복 입고 땀복 입고 겨울 패딩까지 걸쳤다. 빵모자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목욕탕 사우나실에 들어간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할 겨를조차 없다. 사우나에선 그대로 바닥에 퍼져 웅크린 채 숨만 쉴 뿐이다. 30분쯤 흘렀을까, 숨이 턱턱 막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죽을힘을 다해 10분을 더 견딘 후 사우나실을 기어서 빠져나왔다. 체중계에 오르니 54.2㎏.
#D-0.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보고 체중계에 올랐다. 딱 54㎏. 선수들 사이에선 이를 '저스트(just)'로 부른다. '이젠 됐다'는 마음으로 경기장 계체실로 향했다. 계체실 앞 복도에선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하는 선수, 종이컵에 계속 침을 뱉는 선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두 계체에 앞서 단 1g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심지어 1차 계체에서 아주 미세한 차이로 실격한 선수가 복도에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빡빡 미는 모습도 봤다.
내가 고교시절 태권도 선수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체중조절과정을 적은 실화다. 스포츠에서 체급별로 우위를 가리는 투기종목 선수들은 이렇듯 체중조절에 온 사력을 다한다. 계체부터 통과해야 경기를 뛸 수 있어서다. 계체에서 실격하면 그동안 배고픔을 참고 견디며 땀 흘려온 '인고'(忍苦)의 시간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그만큼 체중조절과 계체 통과는 체급별 경기에서 목숨 줄과 다름없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나로선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발생한 여자 유도 정수진 선수의 초유의 계체 실격 소식은 실로 충격적이다. 21일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대한유도회로부터 받아 공개한 경위서를 보면, 트레이너가 계체 대상 명단의 첫 번째 장에 기재된 남자선수만 확인한 탓에 이런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더구나 대한유도회는 이 사태의 경위를 알고도 침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체육계의 고질적인 '보신주의'가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간절하게 바라는 게 '국가대표'다. 이들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에도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한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도 지도자들이 선수의 평생의 꿈을 짓밟아 놓고 은폐하려 했다면,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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