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휴일 주일 공일 평일

  • 정만진 소설가
  • |
  • 입력 2026-10-08 09:21  |  발행일 2026-10-09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1446년 10월9일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 1957년 10월9일 한글학회가 전 6권의 '우리말 큰사전'을 30년 만에 완간했다. 2026년 10월9일 한국인 상당수는 한글날이라는 사실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공휴일을 즐긴다.


이범선은 소설 '피해자'에서 일요일을 여러 형태로 재치 있게 분류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주일, 피로를 풀기 위해 쉬는 사람에게는 휴일, 아무 의미도 부여하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공일이 된다는 풀이였다. 어휘 일요일은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 실존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같은 대한민국 구성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10월9일이 한글날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휴일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영업장이나 소규모 일터에서 어제처럼 또는 내일처럼 노동에 종사하는 평일일 뿐이다.


10월9일을 국민 모두의 한글날이 되도록 만드는 일은 정치가들의 소임이다. 그리고 그들을 추동하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다. 안타까운 바는,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그러한 본질에 무심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훈민정음'은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국보이다. 그냥 국보가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이다.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에 힘쓴 사람이나 단체에 상을 주면서 '세종대왕 문맹 퇴치 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세계 모든 문자들을 대상으로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에 입각해 순위를 매겼다. 한글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다. 지구촌 권위자들이 심사를 했으니 수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 자신은 한글의 우수성을 자각하지 못한 채 문화적 사대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케어한다" 등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 모양이 될 줄 아셨더라도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하셨을까 싶을 지경이다.


노자는 유가의 충효 강조 자체가 세상에 충효가 없다는 방증이라 했다. 1년 365일 어린이를 존중하면 어린이날이 필요 없고, 모두가 한글을 사랑하는 한반도라면 한글날을 따로 둘 까닭이 없다. 그런 이상향을 기다린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