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대구 매호동 유적에서 찾은 옛 온기

  •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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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1 14:48  |  발행일 2026-10-22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다. 얼마 전까지 에어컨 리모컨을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보일러 온도 조절기 앞에서 망설인다. 그러다 어느 밤, 못 참고 버튼을 누른다. 잠시 뒤 방바닥에서 슬며시 올라오는 온기. 해마다 겪어도 새삼스러운 안도감이다. 우리에게 겨울은 달력의 날짜보다 발바닥에 닿는 따뜻함으로 먼저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익숙해서 잊고 살지만, 이 온기에는 오랜 역사가 담겨 있다. 학계에서는 온돌의 뿌리를 기원전의 옥저까지 올려 잡는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발해 문화층 아래에서 옥저 문화층이 드러났고, 두 시대의 구들이 함께 확인됐다. 같은 땅에서 시대를 달리한 사람들이 구들에 몸을 누이고 겨울을 났던 것이다. 땅속에 겹겹이 남은 온기의 흔적이 그 긴 세월을 말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온돌이 퍼져간 과정이다. 1123년 고려를 찾은 송나라 사신 서긍은 서민들이 땅을 파서 구들을 만들고 그 위에 누웠다고 기록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그 열기를 방바닥 밑으로 흘려보내던 생활의 지혜는 오랜 세월을 거쳐 궁궐 침소까지 데웠다. 조선 후기에는 온돌이 여러 계층에 널리 보급됐다. 서민의 지혜가 왕의 잠자리를 데운 셈이다. 이 흐름을 생각하면 온돌은 그저 난방 방식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쌓아 올린 한반도 사람들의 생활사라 할 만하다. 온돌문화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그 안에 담긴 기술과 생활문화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 겨울의 흔적은 대구에도 남아 있다. 수성구 매호동 1008번지 유적의 삼국시대 집자리에서는 네모난 평면의 벽을 따라 'ㄱ'자 또는 'ㄷ'자 모양으로 놓은 고래 시설이 확인됐다. 고래는 구들장 아래로 불기운과 연기가 지나는 통로다. 오늘날 보일러는 따뜻한 물을 순환시키지만, 바닥을 데워 몸을 녹인다는 생각은 옛 구들과 이어진다.


평범한 주거의 흔적에서 나온 시설이라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이름 남기지 못한 이들의 저녁이 그 앞에 고스란히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불을 지피고 온기가 돌기를 기다리는 동안 식구들은 고단함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남은 것은 온돌의 자취뿐이지만 그 안에는 추위를 견디며 함께하던 옛 일상이 담겨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몸 누일 자리의 온도다. 그 마음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대구 땅 밑에서 발견된 고래의 흔적은 천 년 넘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우리가 여전히 같은 이유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말해준다. 오늘 밤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그 자리에 먼저 있었던 이들의 겨울도 한 번쯤 떠올려 볼 일이다. 버튼 하나로 데워지는 방바닥과 장작불로 데우던 고래 사이, 대구는 그렇게 긴 온기의 시간으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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