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

  • 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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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0 14:56  |  발행일 2026-10-21
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오랜만에 막상 쓰려고 하면 보이지 않으면서 크기와 질감이 제각각인 것. 그리고 운 좋게 본다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은 것. 엽서. 잎 엽(葉)에 쓸 서(書)라는 한자가 결합한 단어를 들여다보면 쪼그려 앉은 채 붓을 들고 나뭇잎 위에 글씨를 적어 내려가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1900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엽서가 발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엽서는 숨는 기술을 연마한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엽서는 서랍에 넣어둔 종이 뭉치를 정리하다가 발견하기도 하고, 읽다 만 두툼한 책을 펼쳤는데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면 엽서는 내가 찾는 게 아니라 엽서가 나를 찾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찾아야 할 서류가 있어서 곳곳을 뒤적이다 나에게 도착했던 엽서들을 모아둔 상자를 발견했다. 양이 꽤 됐다. 심지어 읽어보지 않은 엽서도 몇 통 있었다. 서류 찾는 일은 뒤로 미루고 엽서를 읽어내려갔다.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보내지 못했던 엽서가 더러 보였다.


내게 엽서를 보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엽서를 보냈던 걸까?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엽서를 주고받는 일은 필연적으로 지연을 만든다. 문자나 통화 한 통이면 즉각적으로 연락이 되는데도 굳이 엽서를 보낸 것이다. 더군다나 엽서를 보내는 순간 수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엽서를 보내는 사람은 망설일 줄 아는 사람일 테다. 엽서를 받을 사람이 좋아할 엽서를 고르는 일에 마음을 쓰는 사람일 테다. 쓰던 엽서를 찢어버리거나 불태워버릴 수도 있는데 끝내 엽서를 보내기로 한 사람일 테다.


엽서가 필연적으로 만드는 지연은 당장 해결을 바라는 일과도 요원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엽서를 보낸다고 바로 답장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답장이 오기 전까지 답장의 내용을 마음껏 짐작은 할 수 있다. 그 짐작 속에서 엽서를 받는 사람은 무수히 많아지고, 깊어질 수도 있겠다. 이건 엽서를 보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특권을 올해가 가기 전에 누려봐도 좋겠다. 엽서를 보낼 사람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나에게 엽서를 보내는 방법도 있으니까. 이왕이면 일 년 뒤에 발송을 약속하는 우체통에 자신에게 쓰는 엽서를 넣어보자. 그리고 서서히 엽서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리자. 자신에게 쓸 답장을 일 년 동안 다듬어본다면 무수히 많아지고, 깊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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