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능선에서 바라본 한울원자력 모습. 원형래기자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의 중심지인 경북 울진군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문제를 놓고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섰다. 수십 년간 국가 전력 생산에 기여해 온 울진은 다수의 원전이 집적된 지역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장기 관리와 군민 안전, 지역발전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관리시설의 안전성과 주민 수용성, 국가 차원의 지원 방안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현재 울진에 관리시설 유치가 결정된 것은 아니며, 군민 의견을 수렴해 유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공론화의 출발 단계다.
◆고준위 방폐물 공론화 첫발
황이주 울진군수는 지난 9월 17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방문해 김현권 위원장과 약 1시간 동안 면담하고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와 주민 수용성, 지역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번 면담은 황 군수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공약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유치 여부에 대한 군민 공론화를 구체화하기 위한 행보다.
황 군수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을 반드시 유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정보를 군민에게 공개하고 찬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것"이라며 "최종 판단은 군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군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제시한 황 군수는 찬반단체를 모두 만나고 군의회, 민간환경감시기구, 원자력안전 전문가들의 의견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론화 추진과 실제 주민 동의는 별개다. 유치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객관적인 정보 공개와 충분한 토론, 공정한 여론 수렴이 선행돼야 한다. 앞으로 울진군이 찬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고 군민의 뜻을 정책에 반영할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황이주 울진군수는 지난 17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방문해 김현권 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과 관련한 울진군의 지역여건과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울진군 제공
◆고준위 특별법 시행…달라진 환경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는 원전지역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국가적 과제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방사능과 열을 지니고 있어 장기간 안전한 관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2025년 9월 26일 시행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관리시설 부지선정과 유치지역 지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특별법에 따른 부지선정은 지방자치단체의 신청과 기본·심층 부지적합성 조사, 주민투표 등 단계적인 절차를 거친다. 정부는 중간저장시설의 2050년, 최종 처분시설의 2060년 운영 개시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과 별도의 중간저장시설, 최종 처분시설은 구분된다. 울진군이 공론화를 추진하더라도 실제 유치 여부는 주민의사 확인과 과학적 안전성 검증 등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부지의 지질학적 안정성과 지하수 영향, 방사성물질의 장기 격리 가능성은 엄격하게 검증돼야 한다. 원전이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리시설 입지의 안전성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 무산 교훈
울진에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유치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울진군의회 공식 회의록에 따르면 2005년 8월 29일 제140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유치신청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당시 재석의원 10명 가운데 찬성 5명, 반대 5명으로 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울진군의 방폐장 유치 추진도 무산됐다. 21년이 지난 현재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공론화가 다시 지역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당시의 경험이 재조명되고 있다.
황 군수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일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지역의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방식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 중·저준위 방폐장과 현재의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은 폐기물의 특성과 관리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주민 수용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는 의견과 장기적인 안전관리 부담, 환경적 위험을 우려하는 의견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 과거의 논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방적인 사업 추진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주민 참여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이주 군수가 지난 9월 17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방문해 김현권 위원장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울진군 제공
◆원전 운영 부담,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울진군은 수십 년 동안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며 국가 전력 공급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원전 소재 지역은 안전관리와 환경감시, 비상대응 체계 유지 등 다양한 부담도 안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문제 역시 특정 지역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원자력발전의 혜택은 전국이 공유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은 원전지역에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리시설 입지 논의에서는 지역 간 형평성과 국가의 장기적인 책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해야 할 것은 단순한 재정지원 규모만이 아니다. 시설의 장기적인 안전관리와 사고 대응체계, 환경감시와 정보 공개, 운영 종료 이후의 관리 방안까지 마련해야 한다.
특히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과 지속적인 환경감시, 주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 군수도 "아무리 많은 재정적인 지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안전성은 간과할 수 없다"며 안전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제시했다. 국가의 책임 있는 지원과 과학적인 안전성 검증, 군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은 미래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과학적인 안전성 검증과 투명한 정보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 경제적 지원보다 군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도 지켜져야 한다. 결국 울진의 미래를 결정할 주체는 군민이다. 정부의 책임 있는 지원과 공정한 공론화를 바탕으로 군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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