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메가박스 만경관점에서 상영 중인 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조현희기자
지난 25일 찾은 대구 메가박스 만경관점. 상영관 앞에는 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린이들이 즐겨 볼 법한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극장을 찾은 관객은 어른이 대부분이었다. 2030 성인 관객들이 상영을 기다리며 캐릭터 인형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이 작품은 보수 100배라는 달콤한 제안을 받고 미지의 섬으로 향한 치이카와 일행이 그곳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연재한 만화 '치이카와'를 원작으로 한다. 지난 25일 개봉 한 달도 안 돼 누적 관객수 225만명을 기록했다. CGV에 따르면 영화 관람객 중 20대가 42%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0%로 뒤를 이었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성인 관객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얼핏 어린이를 겨냥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어른들의 공감을 살만한 현실적인 이야기와 감정선을 담아내 더욱 흥행 중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의 감성과 취향을 간직하며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키덜트 문화'의 일환으로 분석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관람 인증사진. 독자 제공
◆팍팍한 현실 속 위로…성인 관객 사로잡은 세계관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의 원작 '치이카와'에는 치이카와와 하치와레, 우사기 등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마냥 평화롭지 않다. 생계를 위해 풀을 뽑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괴물 토벌에 나선다. 힘든 일을 마친 캐릭터들은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노래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일자리가 한정돼 있어 일을 구하기 위한 경쟁도 벌어진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격시험에도 합격해야 한다. 하치와레가 시험에 붙는 동안 치이카와는 여러 차례 떨어지고 다시 도전한다. 노력한다고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인 설정이다. 주거 환경도 제각각이다. 치이카와는 추첨에 당첨돼 얻은 집에서 살지만, 하치와레는 동굴에서 낡은 이불을 덮고 생활한다.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캐릭터들의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마냥 평화롭지 않은 세계관이다. CJ ENM 제공
캐릭터들은 불안하고 팍팍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거창한 성공이나 극적인 반전보다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고 함께 웃는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모습이 현실을 살아가는 성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영화를 관람한 조은수(27)씨는 "처음에는 캐릭터들이 귀여워서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니 현실적인 이야기라 공감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들의 모습에 매력을 느껴 영화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 최진영(31)씨도 "어릴 때 보던 다른 애니메이션들처럼 행복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캐릭터들이 일을 구하고 시험을 치르는 모습이 나와 의외였다"며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친구들과 소소하게 즐거움을 찾는 모습이 현실을 사는 어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역시 콘텐츠 리뷰 플랫폼 왓챠피디아에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세계를 깨물었을 때 시큼쌉쌀하게 흘러내리는 비애"라고 한 줄 평을 남겼다.
영화의 흥행이 캐릭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면서 극장 관람은 물론 굿즈 구매와 팝업스토어 방문까지 아우르는 소비 열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영화 개봉 후 CGV가 출시한 치이카와 팝콘통은 개당 2만9천원의 가격에도 추가 판매 물량까지 동났다. 극장마다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는 각종 사은품들도 금세 소진됐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흥행하자 캐릭터 상품에 대한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치이카와 굿즈숍 치이카와랜드에서 성인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경하는 모습. 조현희기자
◆토이스토리5도 장기 흥행…'키덜트 문화' 열풍
치이카와의 흥행은 '키덜트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키덜트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성인을 뜻하는 '어덜트(adult)'를 합친 말이다. 어린 시절의 감성과 취향을 간직하며 이를 소비하는 문화를 뜻한다. 이 일환으로 어린이를 주요 관객으로 삼은 영화라도 성인이 함께 즐기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치이카와의 경우 2017년부터 연재됐는데, 이 시기 만화를 접한 청소년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작품을 즐기면서 팬층이 자연스럽게 확장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원작 만화로 캐릭터를 먼저 소비해온 팬들의 관심이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캐릭터는 고유한 성격과 일관성을 유지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놓이면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원작의 이야기와는 차별화되는 스토리가 나오고 기존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런 극장판의 매력이 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지형 문화평론가도 "처음 이 캐릭터를 봤을 때가 중고등학생 때라면 이제 20대가 됐을 것이니 성인들이 이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했다.
영화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 화려한 영상미, 음원, 애틋한 서사 등이 더해져 성인 관객들도 사로잡았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다른 어린이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도 성인 관객의 호응이 이어졌다. 8월 개봉한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 역시 어린이 및 가족 관객은 물론 성인 관객까지 사로잡았다. 하츄핑이라는 캐릭터의 높은 인지도에 화려한 영상미, 음원, 애틋한 서사 등이 더해져 빠르게 입소문 탔다. 지난 6월 스크린에 오른 '토이스토리5'도 장기 흥행을 이어갔다. '호프' '모아나' 등 신작 공세 속에서도 박스오피스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히 관객을 모았다. 디지털 시대라는 현실적인 변화를 녹여내 어린이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성인 관객에게는 추억과 공감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월 스크린에 오른 '토이스토리5'도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디즈니 픽사 제공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여기고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끊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관념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며 "성인이 된 후에도 캐릭터를 좋아하고 관련 상품을 구매하는 등 이른바 '키덜트' 문화가 확산하면서 시장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 제작자들도 귀여운 캐릭터를 앞세우면서 성인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런 콘텐츠가 흥행하면서 관련 산업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조현희
현실적 낭만주의자. 용기와 진실을 추구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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