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농지조사에 깔린 수상한 이념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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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1-01 17:03  |  발행일 2026-11-02
농지조사 성토하는 지인들
25% 이행강제금에 화들짝
‘경자유전’ 꺼낸 이 대통령
부동산 이어 농지 소유 불신
소유의 죄악시는 죽은 이념
박재일 논설실장

박재일 논설실장

여름쯤부터 지인들을 만나면 들리는 하소연이 있었다. 농사일과 농지에 관한 것이다. 대기업에 다녔던 한 친구는 "오래전 노후 대비용으로 샀는데 어떻게 되나. 불안해 죽겠다"고 했다. 중도 퇴직후 상속받은 밭에서 복숭아 자두 농사에 진심이던 한 선배는 완전 성토성 발언을 쏟아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온통 조사하고 다닌다. 이행강제금까지 있다. 안 하면 매년 25%를 뺏어간다"고 했다. '설마' 하니 "기자가 그것도 모르나"며 취재를 다그친다. 실제 그런 규정(농지법 63조)이 있어 놀랐다.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꺼냈다. "농지 관리가 엉망이다. 투기 대상이 돼 버렸다"며 전수조사와 강제매각 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1천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들여 전국 농지의 전수조사에 이어 심층 현장조사까지 진행했다. 농촌 반발이 거세지자 이 대통령은 최근 농어민과의 대화에서 "수도권 조사를 지시한 것이고, 전수조사는 송미령 농림부 장관의 건의였다"고 슬쩍 물러섰다.


조선시대 모든 땅은 근본 임금의 것이다. 소작(小作)이 대세였다. 봉건체제로 해방직후까지 이어졌다.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은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다. 이승만 정권하에서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비극의 인물이지만, 그가 주도한 남한의 농지개혁은 빛나는 업적이다. 경자유전을 목표로 '유상매입, 유상분배' 방식이었다. 이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근대국가의 길로 들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자유전은 현 헌법에도 살아있다.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역대 농지는 사실 많이 올랐다. 한때 대도시 택지보다 더 많이 상승했다. 개발이익을 노린 투기세력의 먹잇감이었다. LH 직원들이 쪼개기로 농지를 샀다 들통난 사례를 상기해 보라. 근년 들어 상황은 역전됐다. 농촌에는 지금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외국인 노동자가 득실득실하다. 농지를 매수할 이들도 줄었다.


자연스레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다. 서울 강남의 땅이나 아파트는 규제해도 세금만 내면 소유할 수 있는데, 농지는 그렇지 못하다면 자본주의 시장 논리, 즉 수요 공급 측면에서 불리한 구도다. 대한민국의 농지(전·답)는 1만8천㎢로 전 국토의 18%인 반면 대지는 3.4% 3천457㎢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 땅 1평은 2억원을 넘어섰다.


이재명 정권의 농지 강제매각 으름장은 기시감이 있다. 서울 부동산을 잡겠다고 내놓은 정책에서도 엿보인다. 투기지역 아파트 구입시 2년 실거주 규정이다. 경작하지 않을 토지처럼 당장 살지 않을 집은 소유하지 말라는 경고다. 임대나 월세를 소작과 같은 연장선에서 본다.


칼 막스에 영향을 미친 철학자 프루동은 '소유란 무엇인가'란 저서에서 '소유는 도둑질이다'라고 썼다. 사유재산 부정이다. 역사적 실험에서 실패했다. 죽은 이념이다. 소유는 인간 본성에 가깝다. 이재명 정권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벗어난 투기와 국민적 부동산 몰입을 엄단하겠다는 건 틀린 게 아니나, 이게 소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출발한다면 다른 문제다. 위험하다.


난 개인적으로 4만달러 소득의 대한민국에서 아파트 2채나 농지소유가 죄(罪)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의아한 대목은 소유를 죄악시하며 평등을 외치는 정치세력에서 내보낸 공직자나 장관들이 정작 자신들의 재산을 까보면 다수의 아파트와 상가에, 농지까지 보유한 이상한 이율배반이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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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30년 현장 경험을 자양분 삼아 사설과 칼럼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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