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창간 76주년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x
박규완 기자
전체기사
[박규완 칼럼] 呪術(주술)에 빠진 대선
수나라가 건립되기 전 위진남북조시대는 분열과 혼돈의 난장(亂場)이었다. 45개 왕조 235명의 군주가 명멸했다. 한족은 물론 선비족, 강족, 흉노족 등 이민족까지 저마다 왕조를 세워 할거했다. 수왕조는 2대 단명으로 끝났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대륙 통일시대가 열렸다. 마이클 하트의 저서 '세계사를 바꾼 사람들:랭킹 100'에서 수문제는 마오쩌둥보다 앞선 82위에 올랐다. 하트는 오랫동안 분열된 중국 문명권을 통일한 업적을 높이 샀다고 술회했다. 수문제 양견의 아버지 양충은 북주의 개국공신이었다. 양견은 부친의 후광으로 일찌감치 표기장군 지위에 올랐고, 딸이 북주 황후가 되면서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황제 선제는 양견의 명망과 위세에 황실이 위협받을 것을 염려해 점술가에게 장인의 관상을 보게 했다. "장군감이지 군주 관상은 아니다"란 말을 듣고 선제는 안도한다. 하지만 양견은 선제 병사 후 어린 정제가 즉위하자 황위를 찬탈한다.왕이 될 운이나 관상이 따로 있을까. 윤석열 대선 후보의 '손바닥 王자' 파동은 단순한 해프닝일까. 윤 캠프 말대로 지지자들이 적어준 응원 메시지에 불과한 걸까. 그렇다 치더라도 오락가락 해명, 허접한 해명은 괜한 의혹과 미심쩍음을 유발한다. 처음엔 "'王'자를 지우려 했지만 알코올이 들어간 세정제로도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진 5차 토론회 외에 3·4차 토론회에서도 '王'자 손바닥이 확인되면서 말을 바꿨다. 동네 할머니들이 매번 적어준 거라고. 한데 여섯 차례의 국민의힘 2차 경선 토론은 방송사가 다 다르고 토론시작 시간도 들쭉날쭉이다. 할머니들이 어떻게 그 시간을 정확히 알고 기다렸을까. 더욱이 4차 토론회는 밤 11시에 열렸다. 밤늦은 시각에 할머니들이 나와 '王'자를 써준다? 상식으론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매직펜으로 쓴 글자는 손 소독제로 다 지워진다.국민의힘 대선 주자, 민주당이 가만있을 리 없다. "무속을 대선으로 끌어들인 저질정치, 쯔쯔쯔"(홍준표 후보). "부적을 붙이든 굿을 하든 자유지만 국민을 속이려 해선 안 돼"(유승민 캠프). "차라리 '王'자 복근을 만들어라"(정청래 의원). 5일 열린 6차 토론에서도 역술인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주술 논쟁이 이어졌다. 주술(呪術)의 사전적 의미는 '불행이나 재해를 막으려고 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리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론 주술이란 말이 훨씬 광범위하게 쓰인다. 이를테면 '운칠기삼' 맹신이나 진영논리 집착증, 지나친 확증편향도 일종의 주술이다. 주술 파문은 윤석열 후보의 '王'자 토론회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장동 게이트'든 '고발 사주'든 진상이 속 시원히 까발려지긴 어렵다. 특검 역시 만능이 아니다. BBK 부실 특검의 기억도 있지 않나. 설사 수사를 통해 '대장동 게이트'와 '고발 사주' 흑역사가 밝혀진다 해도 이재명·윤석열 '덕후'들이 쉽게 지지를 철회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 진영을 향해 주술을 걸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래저래 대선이 주술에 빠진다는 얘기다. 결국 대선 승패의 관건은 중도층·무당층 향배다. 인공지능(AI)·메타버스 시대에 주술과 무속이 어른거리는 선거는 격에 맞지 않다. 매우 퇴행적이다. 주술과 미신을 한 방에 날릴 철언(哲言)이 있긴 하다. "최고의 운(運)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운이다." 세계인의 가슴에 남아 있는 영원한 노병 맥아더의 아포리즘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공약 표절의 境界(경계)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추상화의 전설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명언이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도 자주 인용한 경구다. 앞부분에 "나쁜 예술가는 표절하고"라는 문구를 추가해 읽어도 무리가 없겠다. 피카소는 아마도 생략법을 쓰지 않았나 싶다. 아포리즘은 간명해야 맛깔나니까.'훔친다'는 말이 키포인트다. 심대(深大)한 함의가 있다. 명장이나 고수를 모방하되 그들의 혼과 기술까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소설가 복거일이 비슷한 말을 했다. "작가는 어차피 남의 얘기를 빌려올 수밖에 없다. 다만 화학적 결합을 통해 자기 얘기로 소화해야 한다." 돈이나 물건을 훔치면 범법행위이지만 정신영역에선 훔치는 게 능력이다. 지혜와 지식은 많이 훔칠수록 득이다. 야구도 잘 훔치면 안타 없이 2루·3루 심지어 홈까지 들어오지 않나. 차세대 전투기에 장착된 첨단 기능이 왜 스텔스(stealth)일까.국민의힘 대선 후보 간의 공약 표절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후보의 '군복무자 주택청약 5점 가점' 공약에 대해 유승민 후보가 자신 공약의 '복붙'(복사+붙여넣기)이라며 발끈했고, 시비 와중에 '윤도리코'란 조어까지 등장했다. 윤 후보 측이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분석해 나온 공약이라고 해명하자 유 후보가 분석 자료를 요구했고 윤 캠프에선 공약 설계에 참여한 인터뷰 대상자 명단만 공개했다. 유 후보는 "동문서답"이라며 공방을 이어갔다. 맥락이 흡사한 공약은 부지기수다. 기본소득은 이재명 후보의 대표공약이다. 이 후보의 정책적 메시지와 경제철학이 녹아 있다. 하지만 이재명이 기본소득 공약에 IP(지적 재산권)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안심소득은 기본소득의 변형이다. 밀턴 프리드먼의 음의 소득세에서 창안한 아이디어다.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기 전 정세균 민주당 후보가 내걸었던 '청년 미래 씨앗통장'도 선별적 기본소득이랄 수 있다.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소득 하위 70% 고령자에 대해 월 20만원 노령연금 공약을 제시하자 박근혜 후보는 65세 이상 고령자 모두에게 월 20만원 기초연금 지급을 약속했다. 진보보다 더 진보적 공약이란 평가가 나왔고, 중도층 표심(票心)을 견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당선 후 재정 핑계를 대며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어쨌거나 기본소득이든 기초연금 공약이든 표절 논란은 없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지 못하느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시조다. 한데 중장(中章)이 이백의 시 '술을 권하며' 앞부분과 흡사하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저 물 천상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돌아오지 않음을.' 그러나 이걸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시(唐詩)에 매료됐던 황진이가 달과 술의 시인 이백의 작품을 보며 시작(詩作)을 했을 터이고, 이백의 사조(思潮)가 자연스레 황진이의 시심(詩心)에 녹아들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그대로 갖다 붙이면 표절이지만 '기술'을 입히면 모방이 된다. 윤석열 캠프는 변형의 기술이 없었나 보다. 예컨대 '군필자 1천만원 기본통장+주택청약 3점 가점'으로 살짝 변형했더라면 '복붙' 시비에 휘말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한나라 문인 양웅은 '논어'를 오마주 삼아 법언(法言)을 짓고 '주역'을 본떠 태현(太玄)을 편찬했다. 제대로 훔쳤기에 역작을 남겼다. 훔칠 능력이 없다면 모방의 '기술'이라도 덧대야 한다.박규완 칼럼 논설위원박규완 칼럼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이젠 TV토론의 시간
TV토론의 효시는 1960년 대선에서 맞붙은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토론이다. 신언서판이 다 되는 케네디는 수려한 비주얼과 조리 있는 언변으로 닉슨을 압도했다. 케네디의 연출은 정교했다. 스타일리시한 머리 모양, 검은 양복, 태닝한 얼굴로 젊음을 어필했다. 1960년은 미국 중산층 가정에 TV가 빠르게 보급되던 시기. 당연히 대선 TV토론은 전 미국인의 핫이슈였다. 부동산 4채를 보유해 SH공사 사장 후보에서 낙마한 김현아 전 의원이 "시대적 특혜였다"고 했는데, 케네디야말로 '시대적 특혜'를 한껏 누린 인물이다. TV토론 후 케네디의 지명도와 인기는 폭발적으로 치솟았다.우리나라에서 대선 TV토론이 본격 도입된 건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일합 승부를 벌일 때였다. 그전엔 주로 군중 세몰이에 캠프의 화력을 집중했다. 유세장에 동원된 군중 수가 선거 판세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곤 했다. 하지만 '광장 정치'는 고비용 저효율 선거였다. 군중 동원을 위한 금품 살포가 다반사였고, 후보의 정책을 검증할 기회도 마땅찮았다. TV토론은 선거의 혁신을 이뤄냈다. 안방에서 정견을 듣고 후보들의 자질과 국가비전을 비교·평가할 수 있어서다. TV토론 몇 번이면 후보의 능력과 정책 기조, 경제식견이 고스란히 노정된다. 무식도 들통 나기 십상이다. 심지어 후보의 어휘력과 인성까지 드러난다. 'meta-message' 전달이 가능한 까닭이다. TV토론의 순기능이다.이제 국민의힘 TV토론의 시간이 왔다. 2차 경선에서만 여섯 번의 토론회가 열린다. 3강은 이미 확정된 거나 진배없다. 남은 한 자리를 두고 5룡이 각축을 벌이는 형국이다. TV토론 강자가 4강 컷오프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흥행'에선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유리하다. 톱2의 박빙 승부인 데다 고발 사주 의혹, 박근혜 탄핵 책임 등 후보의 흑역사를 소환할 쟁점이 많다. 윤석열이란 거물 신인의 등장도 시청자를 흡인하는 자력(磁力)이다. 빅2는 지난 16일 열린 국민의힘 경선 1차 토론회에서 격돌했다. 홍준표 후보는 공세적, 윤석열 후보는 수비적 자세였다. 홍 후보는 조국 가족을 과잉 수사했다며 윤 후보를 공격하다 스텝이 꼬였다. 토론회에서 발화된 논점이 급기야 장외로까지 번졌다. "'무야홍'이 아닌 '조국수홍'" "1가구 1범죄 논리". 당내외에서 반발이 쏟아지자 홍 후보는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제 생각을 바꾸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토론만큼은 유승민 후보가 독보적이었다. '토론의 교수'란 별칭답게 논리 전개와 토론기술이 돋보였다. 매너도 깔끔했다. 상대가 답변할 때마다 말을 끊는 후보와 대조됐다. 2~8위 후보의 순위도 매겼지만 차마 공개하진 못한다. 그랬다간 자칫 돌멩이 맞을지 모른다. 8인 토론은 아무래도 집중도가 떨어진다. 후보의 실력과 지식의 뎁스(depth)를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다. TV토론의 진수는 2인 맞짱 토론이다. 2인의 제약 없는 공방이 진짜 토론배틀이다. 민주·공화 양강 구도의 미국 대선 본선에선 2인 맞짱 토론이 여러 차례 펼쳐진다. 승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인 만큼 열기가 후끈하다. 2016년 대선 토론에선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격앙한 나머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막말을 날렸다. "이 나쁜 여자야."2022 대선이 간발(間髮)의 승부라는 건 상수(常數)에 가깝다. 여론조사에 투영된 민의도 그러하다. 토론의 승자가 청와대에 입성할 확률이 어느 때보다 높다. TV토론이 쫄깃쫄깃한 관전 포인트라는 의미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코스프레 정치
코스프레는 게임이나 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방해 그들과 같은 의상과 분장으로 행동을 흉내 내는 퍼포먼스를 말한다. costume(복장)과 play(놀이)의 합성어다. 코스프레는 영국의 죽은 영웅을 추모하는 예식에서 유래했지만 미국과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놀이로 변천됐다. 우리나라에선 유독 정치적 함의로 덧칠된 코스프레가 많았다. 재벌 총수 검찰 출석 때의 '휠체어 코스프레'는 한 땐 낯설지 않은 풍광이었다.대개 코스프레엔 이해 당사자나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난 8일 기자회견도 코스프레로 비친다. 회견을 시청하는 내내 불쾌하고 거북했다. 분노와 호통, 삿대질은 도대체 누구를 향한 건가. 국민이 보고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텐데. 야당 후보마저 비판에 가세했다. "군림하던 검찰총장 때의 버릇" "호통개그로 성공한 사람은 박명수뿐"(홍준표). "분노 조절을 못 한다"(유승민)고발 사주 의혹이 현 정권의 조작·정치공작이라면 윤 후보엔 오히려 호재 아닌가. 그렇게 흥분할 이유가 없다. 차분한 어조로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 달라며 강단을 보여줬어야 했다. "메이저 언론" 운운한 대목에선 윤 후보의 비뚤어진 언론관과 서열주의가 은근히 드러났다. 덩치 크다고 공정한가. 소위 메이저 언론이라는 곳이 지금 얼마나 정파적인지 모르고 하는 소린가. 메이저 언론 발언은 친윤 정진석 의원의 '돌고래·고등어·멸치론'과 맥락이 닿아있다. "돌고래도 아닌 '멸치 매체'가 괴문서 따위로 감히 '메이저 후보'를 얽어매려 하다니." 이게 윤 후보의 본심이 아니길 바란다.윤석열의 회견이 '피해자 코스프레' '호통 코스프레'였다면 김웅 의원의 기자회견은 '면죄부 코스프레' '횡설수설 코스프레'였다. "기억나지 않고 확인할 방법도 없다" "(보도된)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정황상 제가 손모씨로부터 자료를 받아 당에 전달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든 책임과 법망을 비켜 가려는 의도만 역력했다. 워낙 애매모호, 오락가락해 '초점 흐리기의 귀재' '말 바꾸기의 달인'이란 비아냥이 나왔다. 이미 최강욱 의원에 대한 고발장 초안이 정점식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장과 당무감사실을 거쳐 조상규 변호사에게 간 사실이 밝혀졌다. 자료 발신자 정보와 손준성 검사 휴대폰 번호가 일치한다는 것도 확인됐다. 윤 후보 주장대로 "작성자도 출처도 없는 괴문서"로 치부하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하지만 고발장 작성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손 검사, 전달자, 제보자 등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고발 사주든 정치공작이든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홍준표 후보 말마따나 "팩트를 밝히면 될 일"이다. 지난달 윤희숙 전 의원의 물타기 회견도 코스프레에 속한다. "날 발가벗겨 조사받겠다"며 격앙했지만 본인과 부친의 연결고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직계가족인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본령이다. 윤 전 의원 부친은 '거주지가 아닌 곳에 농지 매입-영농계획서 제출-농지 임대계약'이란 농지 투기 공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윤 전 의원은 화를 낼 게 아니라 부친의 투기 의혹에 대해 사과하는 게 도리였다. 다만 의원직을 던지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 건 평가할 만하다.기자회견장은 허접한 해명을 늘어놓거나 응어리진 감정을 배설하는 자리가 아니다. 어설픈 언어유희나 정치 퍼포먼스론 국민의 마음을 포획할 수 없다. 정치인의 의도적 코스프레, 정치를 희화화할 뿐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미움받을 용기도 없는 정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아들러는 긍정적 사고의 마법을 일깨우는 '개인 심리학'을 창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들러는 말한다. 인간은 변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다만 용기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깐다. 자유로워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아들러에 감명받은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아들러 심리학이 강조하는 '관계'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 게 스테디셀러 '미움받을 용기'다. 기실 미움받을 용기는 개인보다 정부에 더 필요한 덕목이다. 아무리 좋은 법·제도라도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어서다. 집 없는 서민을 무저갱으로 밀어 넣은 부동산 정책부터 짚어보자. 부동산은 오름세를 타면 일정 기간 가속되는 속성이 있다. 차익을 노리는 투기 가수요에 더해 미래불안 심리에 의한 실수요까지 급증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상이 된 '영끌'은 주거 불안심리를 웅변하는 징표다.이명박 정부는 종부세를 무력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2014년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상향 조정, 재건축초과이익 환수 3년 유예 등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것들이 시차를 두고 시장에 반영되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부동산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두 가지 카드가 필요했다. 보유세 인상을 통한 투기수요 억제와 과감한 공급대책. 하지만 문 정부는 어벙하게 그냥 보고만 있었다. 보유세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우려해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나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나. 결과적으로 투기수요 족쇄 채우기와 공급 확대 다 타이밍을 놓치며 부동산 지옥을 열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트레이드마크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한 것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성장은 수요확대 정책이다. 소득을 늘려 유효수요를 창출해 설비투자 확대,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공급대책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탄력을 받지 못했다.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등 공급 부문도 함께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했다. 전체 임금근로자 4%에 불과한 민노총의 미움을 살까 두려웠나.줄탁동시(啄同時)란 말이 있다. 부화할 때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동시에 껍질을 쫀다는 뜻이다. 문 정부는 알의 부화 원리를 몰랐을까.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 실패는 줄탁동시를 등한시한 필연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외교·안보 현안에도 유효하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는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합리적 좌표 설정이 필요하다. 시계판에서 중국이 9시, 미국이 3시라고 가정하면 우리는 1시 또는 1시30분의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일본의 위치는 2시다. 홍콩과 신장 위구르 인권문제를 당당하게 거론하고 쿼드 플러스에 가입해야 한다. 북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현상도 문 정부의 특이한 루틴이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해 안달하면서 북한 비핵화는 왜 일언반구 언급을 않나.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두렵나.문재인 정부엔 부족한 게 많다. 시장경제 인식이 결여됐고 국민통합 의지와 대야(對野) 포용력이 없다. 정책 현실성이 떨어지고 정책 실패에 대한 복기(復棋)와 반성도 없다. 공직자의 신상필벌은 딴 나라 얘기다. 여기에 미움받을 용기까지 없다면 최악 아닌가.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金門島와 진먼다오
주윤발-저우룬파, 등소평-덩샤오핑, 천안문-톈안먼, 금문도-진먼다오. 어느 쪽이 한국인이 발음하기 쉽고 쓰기 편할까. 당연히 전자다.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덩샤오핑, 톈안먼이라 해야 한다. 중국어 표기법 때문이다. 1986년 고시된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은 현지 발음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했다. 그래서 습근평(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시진핑, 호금도(胡錦濤) 전 주석은 후진타오, 사천성은 쓰촨성으로 쓴다.중국 인명·지명을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 한글이 표음(表音)문자인데 비해 원래 상형문자였던 한자는 표의(表意)문자다. 중국 은나라 때 우리 민족 원류인 동이족이 창제한 것으로 알려진다. 표의문자가 그렇듯 한자는 글자의 함축성이 뛰어나고 음운의 심미 또한 발군이다. 사물을 그려낸 자형이 변하지 않는 독립적 글자이며, 이 독립체들이 연결되면 새로운 뜻을 산출한다. 세계 어느 언어보다 다른 글자와 결합해 의미를 생성하는 힘이 강하다. 중국 고전이나 경전에 사자성어가 넘쳐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한자는 표의문자이기에 글자만으로 함의를 표출한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요즘 말로 리즈 시절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기를 의미하는데 네 글자 속에 그 뜻이 오롯이 녹아 있다. 사천성에는 양쯔강을 비롯한 네 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어 사천(四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쓰촨성이라고 하면 사천성에 내재된 의미와 뿌리를 가늠하기 어렵다. 6천300㎞의 양쯔강은 세계 세 번째로 긴 강이다. 그래서 장강(長江)이라고도 한다. 한데 창장으로 표기하면 그 뜻을 누가 알겠나.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열하(熱河)는 베이징 동북쪽의 지명이다. 러허라고 쓰면 열하일기의 유래를 헤아릴 수 없다.자금성(紫禁城)도 쯔진청이라고 하면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노붕우(老朋友)를 중국식으로 라오펑유라고 표현하면 오랜 벗이란 뜻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금문도 역시 진먼다오로 쓰면 섬이란 걸 전혀 알 수 없다. 인명을 원음으로 표기하면 성씨마저 헷갈린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의 성은 임(任)씨다.더 황당한 건 신해혁명(1911년)을 기점으로 혁명 이후의 인물만 현지 발음대로 표기한다는 거다. 공자를 쿵쯔라 하지 않지만 모택동은 마우쩌둥이라 한다. 당 태종은 계속 이세민이고 여불위, 도연명, 소동파도 한자음 그대로 쓴다. 현지 원음주의를 신봉하는 국립국어원의 아집이 낳은 코미디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지명·인명을 표기할 때 우리 발음대로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들 편한 대로 쓴다. 북한도 시진핑을 습근평, 리커창 총리를 리극강이라 한다. 왜 우리만 호들갑을 떠나. 언어 사대주의라는 시각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사용하기 거북하다. '첨밀밀'을 부른 대만 국민가수 등려군을 굳이 덩리쥔이라고 해야 하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현지 원음주의를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원음대로 표기하면 글자 수가 늘어난다. 위안스카이(원세개), 량차오웨이(양조위)가 대표적이다. 경제적이거나 실용적이지도 않다는 얘기다. 한자를 중국 현지 발음대로 하는 건 표의문자를 표음문자처럼 쓰자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그러잖아도 중국에 대한 저자세 논란이 팽배하다. 언어 사용만이라도 줏대 좀 세우자.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미국 대선. 현직 대통령 조지 H.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다. 정치적 중량감이나 지명도를 따져 봐도 클린턴이 족탈불급. 변방의 아칸소 주지사 출신이 감히 워싱턴 주류 정치에 기웃거린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하지만 클린턴은 슬로건 하나로 불리한 판세를 뒤집었다. 강렬한 구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클린턴은 경제제일주의와 실사구시 정책으로 유권자를 포획했다.경제의 어원은 동양과 서양이 확연히 다르다. 이코노미(economy)는 그리스어로 집을 의미하는 오이코스(oikos)와 관리를 뜻하는 노미아(nomia)를 합친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유래됐다. 동양에서 경제의 어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경세제민의 준말이 경제다. 경세제민은 장자(莊子) 내편(內篇)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말로, 글자 그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동양에선 경제가 곧 정치라는 얘기다.경세제민의 무게를 알았을까. 대선 주자들이 슬슬 경제공약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 시리즈'로 경제정책을 선점했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은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만큼 현실성이 관건이다. 하지만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기본 시리즈는 이재명에겐 꽃놀이패다. 취약계층엔 솔깃한 공약인데다 논쟁에 휘말릴수록 언론의 조명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3중 폭격'이란 신박한 어법을 동원했다. 기존 제조업 지원 전략인 정밀 폭격, 미래차·로봇 등 미래산업의 시장 선점을 위한 선제 폭격, 여기에 서비스업의 전방위 폭격을 더한 세 가지 성장전략이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5일 열린 국민의힘 '국민 약속 비전발표회'에서 규제완화와 기술혁신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또 "세금을 내리고 규제는 풀고 공급은 늘려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안정 의지를 피력했다. 시장의 생리를 외면한 정부 개입, 재정 포퓰리즘의 중단도 약속했다.홍준표 의원은 주 52시간 근무를 권유제로 전환하고 최저임금을 중단해 중산층을 복원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공공기관을 통폐합하는 등 '작은 정부' 지향 의지도 분명히 했다. 주택 소유를 2채까지만 허용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복안은 진영논리를 넘어선다.자칭 '경제 대통령' 유승민은 100만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고 인공지능·빅데이터·IT와 사회적 복지 분야에 '100만+100만' 일자리 창출 공약을 제시했다. 4차산업 혁명과 복지 확대라는 시대 과제를 정확히 짚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민주주의를 빙하기로 퇴행시킨 박정희의 정치적 과(過)는 경제 진흥이란 공(功)에 의해 상당 부분 희석된다. 그리고 '박정희 향수'를 소환한다. 경제의 마법이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원성(怨聲)도 부동산 폭등 등 경제 실정에 대한 불만 아닌가.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은 민복이 정치의 본령임을 일깨우는 화두다.중국 요순시대에 탄생한 사자성어 고복격양(鼓腹擊壤)은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는 뜻으로 풍요로운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연월(煙月) 역시 '연기에 어린 달빛'이란 의미로 태평한 세상을 은유한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듯 뭐니 해도 국민들 배 두드리게 해주는 후보가 으뜸이다. 어느 후보가 '연월 대한민국'을 열어 줄까.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문재인 정부의 '反시장 DNA'
1989년을 기점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연이어 붕괴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규정하며 '역사의 종언(終焉)'을 선언했다. 그랬던 후쿠야마가 승승장구하는 중국을 보곤 '역사의 종언'을 철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쿠야마의 선언은 틀리지 않았다. 덩샤오핑의 개방·개혁 이후 중국은 더는 공산(共産) 경제체제가 아니다. 국가자본주의다. 정치체제만 공산당 일당의 독재국가일 뿐이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비루한 사회주의 국가로 남았을 개연성이 크다. 미국의 번영, 중국의 반전(反轉)이 자본주의의 효용성을 증명한다. 인간의 사유(私有) 욕구를 은근히 자극해 능률을 제고하는 게 자본주의의 특장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이 시장경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의해 정교히 작동되는 시장기능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시장의 도도한 물결을 정부가 틀어막지 말라는 은유 같다. 다만 신자유주의처럼 극단으로 흐르는 자본주의엔 정부의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패는 반(反)시장 정책의 실패다. 최저임금 인상은 시장의 수용성을 넘어섰고, 임대차 3법은 수요공급의 물꼬를 차단했다. 지난해 임대차 3법 강행 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107주 연속 상승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전셋값 상승률은 12.23%. 직전 1년의 10배다. 전세난 고통은 오롯이 무주택자들의 몫. 그런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법 시행 후 임대차 갱신율이 높아졌다며 자화자찬이다. 정책 분식(粉飾)도 정도껏 해야지.임대주택 천국이었던 독일과 스웨덴의 월세 상한제는 왜 실패했을까. 적정 이윤이 보장되지 않자 민간주택 건축이 급감하면서 주택난민이 양산됐다. 역사적으로도 가격통제 정책이 성공한 전례가 없다. 프랑스 혁명 급진파 로베스피에르의 참혹한 결말도 빵값·우윳값 통제 실패가 단초가 되지 않았나. 송나라 왕안석이 주도한 개혁정책 희녕변법은 또 어땠나. 경제현장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과 시장기능을 외면함으로써 민생이 더 피폐해지지 않았나. 시장통제의 슬픈 패러독스다.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통제도 반시장적이다. 미디어산업 역시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동한다. 소비자 기호에 부응해 공급자(언론사)의 콘텐츠는 진화를 거듭한다.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의 난립 현상도 수요에 따른 변화다. 언론개혁 또한 미디어 생태계를 옭아매는 방향이면 곤란하다. 더욱이 언론은 권력 감시, 여론의 계도라는 공익기능까지 담당한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라고 분칠하지만 속을 들춰보면 그악스러운 내용이 수두룩하다. 언론의 감시·탐사 기능이 위축되고 권력이 악용할 소지가 농후하다.물론 허위·조작 기사는 배척돼야 한다. 하지만 언론에 과다한 책임을 지우며 찍어 누르는 식의 법 개정은 답이 아니다. 언론의 자율·자정 기능을 제고하는 방법이 옳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당연히 원점 재검토돼야 한다. 고위 공직자·대기업 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할 수 없게 하고, 언론사의 고의·과실 입증 책임, 기자 개인에 대한 구상권 청구, 열람차단 청구 표시 조항 등은 삭제해야 마땅하다. 시장만능주의도 문제지만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봉쇄하는 법·제도 만능주의는 더 위험하다. 어설픈 정책을 펼칠 거면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 시장 기능에 의해 그냥 굴러가니까.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정치는 아무나 하나
친윤 정진석발(發) 돌고래론의 파장이 만만찮다. 지난 6일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멸치·고등어·돌고래는 생장 조건이 다르다. 체급이 다른 후보들을 한데 모아서 식상한 그림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딱 세 종류의 물고기를 언급한 저의는 뭘까. 아마도 돌고래는 윤석열, 고등어는 최재형·홍준표·유승민, 나머지 지지율 1~2%대의 후보를 멸치에 비유하지 않았나 싶다.고등어·멸치군(群) 후보들이 발끈했다. 홍준표 의원은 "줄세우기에만 열중하는 어쭙잖은 돌고래와 그 돌고래를 따라 레밍처럼 절벽을 향해 달리는 군상을 본다"고 받아쳤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윤석열의 공정이 동물의 왕국 공정이었느냐"며 날을 세웠다. 이러다간 보수 진영에 '신 동물의 왕국'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안티 네티즌들은 이·박 전 대통령을 '쥐박이' '닭그네'로 비하했다.'돌고래'는 대업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가족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본인 리스크가 크다. 일단 실언이 너무 잦다. 주 120시간 근무, 부정식품 선택권, 건강한 페미니즘….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선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지 않았으니 기본적으로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고 수소폭발로 방사능이 광범위하게 누출된 사실을 몰랐다면 무지한 거고, 알았다면 친일주의의 발로로 치부될 만하다.사유(思惟)와 정치철학, 경제 식견도 빈약하고 편향적이다. 윤석열은 밀턴 프리드먼을 신봉한다. 검사 시절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의 자유'를 끼고 다녔다. 프리드먼이 누구인가. 신자유주의를 주창한 시카고학파의 거두다.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다. 프리드먼의 자유는 상식과 공정의 경계를 넘어선다. 프리드먼은 고리대금업을 옹호하고 심지어 의사면허제도의 철폐를 주장했다. 윤석열은 국민의힘 입당 후 "당 밖의 중도를 끌어 오겠다"고 했다. 한데 프리드먼에게 경도된 후보에게 중도층이 끌려가겠나.윤석열은 또 집을 생필품이라고 말하면서 고가의 주택 외엔 보유세를 때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중가 이하의 주택에 보유세를 부과하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투기수요가 늘어나고 자산불균형이 심화될 게 뻔하다. 세수 결함으로 지자체 재정이 악화되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또 한 명의 정치 초보 최재형은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은 건국의 기초를 놓은 이승만"이라고 했다. 이승만이 헌법 가치를 지켰다고? 사사오입 개헌으로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3·15 부정선거와 독재·장기 집권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침탈했으며, 반민특위를 해체함으로써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적 소명을 배임한 인물이 이승만이다. 건국의 기초를 놓았다고? 1948년을 건국한 해로 잡는다면 임시정부의 법통과 대한민국 5천 년 역사는 어떻게 설명하나.대업을 이루려면 시대정신과 혁신철학이 있어야 한다. 윤석열·최재형은 문재인정부가 이념에 경도됐다고 공격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균형 있는 민족·민주 담론을 제시하지 못한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철인(哲人)정치'를 이상으로 내세웠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폴리스의 공동이익을 위한 통치"라고 정의했다.정치, 아무나 할 순 있지만 누구나 잘할 순 없다. 사랑은 아무나 하지만 정치는 조금 다르다. 정치야말로 숙성의 시간과 내공이 필요한 과목이 아닌가 싶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현대판 예송논쟁들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2019년 세계 음원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클래식 음악가다. 그가 OST에 참여한 '노매드랜드'와 '더 파더'가 올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인구에 회자됐다.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네오-클래식'으로 명명되지만 뉴 에이지 계보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작곡가 조지 윈스턴이 뉴 에이지 뮤직의 원조다. 실제 '노매드랜드'의 삽입곡 'Low mist'와 'Golden butterflies'는 조지 윈스턴의 곡들과 놀랍도록 닮았다. 조지 윈스턴의 대표 앨범은 '디셈버'. 한데 '디셈버' 타이틀이 달린 앨범엔 정작 '디셈버'란 곡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무명의 하루키를 '일타 작가'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한국에선 '상실의 시대'란 표제를 달았지만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노르웨이의 숲'엔 노르웨이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최민식·전도연 주연의 1999년 영화 '해피 엔드'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앨범 '디셈버'에 왜 '디셈버'가 없어? 소설 '노르웨이의 숲'엔 왜 노르웨이가 나오지 않아? 해피 엔딩이 아닌 스토리에 왜 '해피 엔드'란 제목을 갖다 붙였어? 이런 시비를 건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하지만 우리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선 황당한 시비, 한심한 논쟁이 허다하다. 안산 쇼트커트 논란처럼.# 재난지원금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 결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코로나19 국민재난지원금은 고소득자를 뺀 88%에 25만원씩 지급하는 걸로 종결됐다. 세금 많이 내는 게 죄냐, 선정 기준이 고무줄 잣대다, 왜 맞벌이와 1인 가구는 불리하냐는 논란이 이어졌다. 선별 지원을 주장해온 언론까지 국민을 12%와 88%로 갈라치기 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면 어쩌라고?한심한 건 별것도 아닌 사안을 두고 여야, 당정이 두 달 넘게 논쟁을 벌였다는 거다. 재원이 부족하면 차라리 22만원씩 전국민에게 주는 게 깔끔하고 공정하다. 지급 대상자를 가려내는 선별 비용만 45억원이다. 상위 12%에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으려고 국가예산과 인력까지 들여야 하나. '선별 지원'에 목을 매는 정부가 아동수당은 왜 100% 지급하나. 부자들도 아이 열심히 낳으라는 메시지인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충직한 곳간지기인 양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에 끝까지 딴지를 걸었다. 그렇게나 알뜰히 나라 살림을 살 요량이라면 재정준칙 시행부터 앞당기는 게 정도(正道) 아닌가. # 변죽 울리기의 전형 여가부 존폐 논란여성가족부 존폐 논쟁도 본령을 비켜간다. 여가부는 중앙부처 중 최저예산·최소인력의 초미니 조직이다. 없애봐야 구조조정 효과도 없다. 부질없는 시비를 벌일 게 아니라 실질적 성평등 제고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저임금 종사자 비중은 26%로 남성(11%)의 두 배가 넘고,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1위다. 대한민국 헌법 34조 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은 여가부 폐지 주장에 앞서 헌법적 책무를 다했는지부터 곱씹어봐야 한다. 조선시대의 가장 한가하고 한심한 논쟁이 대비의 복상(服喪) 기간을 두고 벌어진 예송논쟁이다. 그런데 어쩌나.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디지털 시대에도 현대판 예송논쟁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홍심을 찌르지 못할지언정 변죽 울리는 논쟁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진 말자.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윤석열의 딜레마
후보 지지율이 역동적이어서일까. 대선 지형이 요동친다. 한 주가 무섭게 그래프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태풍의 눈'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야권 1위란 무게감도 있지만 지지율의 가변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지지율 추이가 대선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풍향계라는 의미다. 정치인 변신 후 윤 전 총장의 기상도는 '흐림'. 기복은 있지만 대체로 하향곡선이다. '보수 본색'을 드러내자 중도층이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잇단 설화(舌禍)도 하락세를 부추겼을 것으로 판단된다.윤석열의 언어는 거칠고 단선적이다. 지난 20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선 지난해 2월의 '대구 봉쇄'를 거론하며 "철없는 미친 소리"라고 격앙했다. "다른 도시 같았으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라고도 했다. 정치 기술도 부족하다. 주 52시간제의 탄력적 근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라 하더라도 '주 120시간'은 아예 입에 담지 말았어야 했다. 노회한 정치인이라면 '주 120시간'이란 말이 먹잇감이 된다는 걸 예견했을 거다."나눠줄 거면 세금을 걷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대목에선 경제적 소양의 한계가 드러난다. 조세의 순기능과 소득재분배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더 많이 걷어 더 많이 나눠주는 게 북유럽 모델 아닌가.대선 출마 선언 후 윤 전 총장이 뱉었던 말을 톺아보면 '빼박' 보수다. 그것도 농밀한 보수다. 한데 그의 행보는 결이 사뭇 다르다. 보란 듯이 광주를 찾아 구애하고 진보 인사들을 만난다. 마음과 손발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중도층을 겨냥한 광폭 행보라면 정치철학과 정체성이 함께 따라줘야 한다.윤석열이 국민의힘 입당을 망설인 건 중도 확장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인 윤석열이 노정한 정체성은 국민의힘과 데칼코마니다. 입당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본인과 가족 의혹 공세에 대한 조직적 두호(斗護)를 위해서도 정당의 방호벽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미적거린다. 왜일까. 입당하는 순간 당내 대선 주자들의 거센 견제에 직면한다. 입심 좋은 검찰 선배 홍준표는 윤석열에겐 더없이 껄끄러운 존재다. 홍 의원은 이미 여러 차례 윤석열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공격은 자기부정 아니냐"며 힐난하기도 했다. 포화는 늘 지지율 1위에게 집중되는 법. 경쟁 후보들의 돌림 폭격을 각오해야 한다. 가족 의혹이 당내 경선 주자에 의해 까발려질 위험도 있다. 게다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이란 아킬레스건이 입당과 함께 다시 도질 게 뻔하다. 박근혜가 사면될 경우 소용돌이는 더 거세진다. 이런 정황을 미리 짚은 걸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윤석열이 3지대에 머물다가 11월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후 입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어차피 윤석열의 선택지는 조기 입당과 11월 단일화 두 개밖에 없다. 어쨌거나 윤 전 총장은 조만간 입당 시기는 밝힐 것이다.윤석열은 '매력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 대선 출마 후 보여준 건 문재인 정부 때리기가 거의 전부다. 여태껏 정책·공약·비전·어젠다는 오리무중이다. 언변은 거침이 없으나 정제되지 않았다. 오버가 심하고 때론 과격하다. 절제가 필요하다. 윤 전 총장이 새겨야 할 경구가 있다. '직이불사(直而不肆) 광이불요(光而不燿)'. 곧으나 너무 뻗지는 않고 빛나되 눈부시게 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온다. 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참 좀스러운 일본
일본은 이중적이다. '야누스의 얼굴'의 화신이다. 일본인은 평화의 상징인 국화를 좋아한다. 일왕가의 문장도 국화다. 한편으론 사무라이의 표상 칼을 숭상한다. 군국주의 전범 국가 일본과 평화헌법 제정 후의 일본이 칼과 국화처럼 겹쳐진다. 일본은 예의 바른 나라다. "스미마셍" "아리가또"를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부라쿠민 같은 천민에겐 잔혹하리만치 차별적이다. 자이니치에도 그랬다. 일본은 전통을 존중한다. 옛것을 쉬 버리지 않는다. 전범의 혼을 모아놓은 신사 참배까지 신성시한다. 전통씨름 스모, 전통연극 가부키의 인기도 여전하다. 한편으론 신문물 수용엔 개방적이고 유연했다. 살짝 변형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도 능숙하다. 진공관은 트랜지스터가 됐고 한자(漢字)는 가나문자로 탄생했으며 서양음식 커틀릿은 돈가스로 바뀌었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역저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이중성, 문화와 가치관을 적확하게 해부했다.일본은 문명국가이되 야만 DNA가 살아 있다. 2년 전엔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며 1천100개의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파괴한 폭거였다. 과거사·외교 문제에 경제를 끌어들인 자충수였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은 죄와 악의 의식이 결여됐다"고 진단했다. 일본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오토코와 손타쿠다. 오토코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말한다. 국제의회연맹에 따르면 일본 중의원의 여성의원 비중은 9.9%에 불과하다. 오토코 사회의 그늘이다. 우리나라의 여성 국회의원 비중은 19%, 이탈리아는 30%를 훌쩍 넘는다. 손타쿠는 윗사람의 심기를 알아서 헤아린다는 의미다. '알아서 긴다'고 하면 좀 더 적나라한 표현이 되겠다. 한국의 MZ세대가 똑 부러지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비해 일본은 여전히 손타쿠 문화가 조직을 지배한다. 뿌리 깊은 이중성과 오토코·손타쿠 때문일까. 일본의 찌질하고 좀스러운 행태가 갈수록 도드라진다. 도쿄올림픽조직위 홈페이지 지도에 독도를 넣어 올림픽을 정치화하고도 우리의 삭제 요구를 거부했다. 그랬던 일본이 한국 선수단 거주동에 내건 '신에겐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있사옵니다'란 현수막엔 시비를 걸어왔다. 참 얄짤없다.주한 일본공사는 무례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소마 총괄공사는 JTBC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는 한일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 혼자만 신경전을 벌인다"며 "문 대통령이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지가지 한다더니 이젠 주재국 대통령에 언어폭격까지. 넓적한 상판대기 소마 공사의 전두엽 구조는 어떤지 궁금하다.강창일 주일대사 부임 땐 4개월 동안 신임장을 제정하지 않으며 진상을 부렸고, G7의 G11 또는 D10 확대에 앞장서 반대한 나라가 일본이다. 위안부·강제징용 판결엔 한국 정부가 먼저 해법을 내놓으라고 생떼를 쓴다. 간토대학살 하나만으로도 석고대죄해야 할 저들이 선린을 외면하며 억지 부리는 꼴이라니. 팔굉일우(八紘一宇) 제국주의의 미몽에 빠져 있나, 살상과 수탈로 점철된 식민 지배의 야만에 젖어 있나. 세기가 바뀌어도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야누스의 얼굴은 그대로다. 일본의 야릇한 이중성이 마스터베이션이란 은어(隱語)와 묘하게 포개진다. 고위 외교관의 저급한 도발, 좀스러운 일본의 메타포 아닐까.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이건희 미술관 실종 사건'-지방은 없다
영화 제목=이건희 미술관 실종 사건, 제작사 오너=문재인, 감독=황희, 각본=황희, 투자자=삼성. 지방민 시각에서 문체부의 이건희 미술관 입지 결정을 영화 제작에 빗대 봤다. 결론적으로 이건희 미술관 서울 낙점은 총책 황희 문체부 장관의 시나리오와 거의 오차가 없었다. 용산이 선택지로 추가된 것 말고는.문재인 대통령이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건 지난 4월 말이다. 이후 황희 장관은 국민 접근성을 내세워 이건희 미술관의 수도권 건립을 시사했다. 문체부가 서울 송현동 부지의 사용 가능성을 서울시에 타진한 것도 그즈음이다. 황 장관은 지자체의 유치 과열 경쟁은 엄청난 국고 낭비로 이어진다는 궤변까지 늘어놨다. 국고 낭비? 대구시가 미술관 건립비를 포함해 2천500억원을 시비로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뿌리치고 국가예산으로 서울에 미술관을 짓겠다는 게 오히려 국고 낭비 아닌가. 이건희 미술관 입지 결정은 과정도 결론도 다 불공정했다. 유신 독재시대로 회귀라도 한 걸까. 유치를 원하는 지자체엔 응모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문체부의 독단과 일방적 통보, 그게 다였다. 문체부는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란 걸 꾸렸다. 한데 위원회 구성과 논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고, 위원은 1명 빼곤 모두 수도권 인사였다. 형해화(形骸化)된 위원회로 체면치레만 하려는 암수(暗數)였다.입지 서울 결정 이유도 가관이다. 소장품의 연구·관리 효율성과 인접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과의 시너지 효과를 감안했다는 것이다. 연구·관리의 효율성? 시너지 효과? 그럼 인구 35만명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집적효과가 없어서 어떡하나. 집적효과는 경제 주체나 연관 산업을 한곳에 모음으로써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다. 비용은 절감되고 생산효율은 높아진다.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를 토양 삼아 탄생한 실리콘 밸리의 성공도 집적효과의 개가였다. 하지만 집적효과는 제조업과 벤처기업에 유효하다. 문화시설의 집적효과는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논리다. 문화향유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길 뿐이다. 정작 집적효과가 중요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포항 아닌 청주에 주더니만 이건희 미술관은 집적효과를 따지겠다고?황희 장관은 박재호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과의 통화에서 "이건희 유족의 뜻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유족의 뜻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아무려면 유족이 딱 부러지게 서울로 한정해 선을 그었을까. 사실이라면 대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건희 미술관은 '국립'이다. 유족의 뜻이 어떻든 공모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결정돼야 마땅하다. 황희 장관이 이건희 미술관 입지 발표 이틀 전 대구에 온 것도 불가사의하다. '어르고 엿 먹이기' 퍼포먼스였나.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연방제 수준? 연방제 국가 스위스는 10대 기업 중 8개사의 본사 소재지가 지방이다. 우린 100대 기업의 88%가 본사를 수도권에 두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 하나 지방에 보내지 못하면서 연방제 타령이라니.하기야 대한민국에 지방이 있기는 한가. 지방엔 재정자주권이 없다. 자치입법권이 없다. 지방엔 'SKY대학'이 없다. 관문공항이 없다. GTX도 없다. 지방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없다. 이건희 미술관도 없다. '빌바오 효과'도 사라졌다. 고로 지방은 없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문 정부의 징비록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사(史)다. 전란의 원인과 전황은 물론 전화(戰禍)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생활상, 조선과 일본·명나라 사이에 긴박하게 펼쳐졌던 외교전, 주요 인물의 평가까지 포괄했다. 제목 징비(懲毖)는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에서 따왔다.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징비록은 참회록이자 후대를 향한 지침이다. 이 칼럼 또한 문재인 정부의 실패 사례를 복기해 차기 정부에선 똑같은 우(愚)를 반복하지 말자는 의도를 담았다. #공공부문을 비대화했다문 정부 출범 후 공무원 수는 10만명 늘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1만2천명, 박근혜 정부에선 4만명 증가했다. 공공기관 임직원 수도 급증했다. '국민 밉상 공기업' LH는 2014년 6천480명에서 올해 9천500여명으로 늘었다. 공공부문 비대화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을 야기한다. 민간의 활력이 위축되고 재정 부담이 커지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일자리 역시 재정을 투입해 만든 한시적 공공 일자리만 늘었을 뿐 양질의 민간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경제가 파탄 난 그리스의 비극도 '큰 정부'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재임 11년 동안 공무원 수를 두 배 늘렸다. 공공부문의 크기는 국가 경제총량에 비례해야 적정하다. 유신 독재 박정희도 공공부문을 문 정부처럼 키우진 않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계획경제를 구현하면서도 민간기업을 앞세웠다. 삼성·현대 등 글로벌 토종기업이 그렇게 탄생했다.#용인(用人)에 실패했다전문가를 발탁하지 않았고 신상필벌이 없었다. 인사의 중요한 잣대는 오직 '코드'였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정책을 정부와 조율하고 설계하는 막중한 자리다. 한데 장하성·김수현·김상조 등 역대 실장은 전부 참여연대 출신이다. '프로페셔널'과는 거리가 멀었다. 테크노크라트의 입지는 좁아졌다. 문 정부의 물색없는 정책들, 공연한 게 아니었다. 비전문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그리도 감싸더니 부동산 시장이 어찌 됐나. 최저임금 실패의 장본인 장하성을 주중대사로 중용한 건 또 무슨 오기인가. 무능과 비리가 드러나도 '내 편'엔 한없이 관대했다. '검증 실패' 김외숙 인사수석을 계속 두둔할 참인가. 청와대에 걸린 편액 '춘풍추상(春風秋霜)'은 장식용이었나. 읍참마속은 '삼국지연의' 속의 서사에 불과했나.#정책 숙의과정이 없었다금융소비자보호법, 임대차 3법,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모두 '날림 공사'다. 공론화 과정과 숙의를 생략했다. 사실상 민주당의 '정책 독재'였다. 졸작 임대차 3법은 야당의 반대 속에 여당 단독으로 3일 만에 처리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축조심의(逐條審議)를 했더라면 통과가 유보되거나 내용이 상당 부분 수정됐을 것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시행 단계에서 혼란이 불거졌고, 가덕도 특별법은 법령의 상충, 대구경북의 반발 등 변수가 많다. 공화(共和)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화합해 일을 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공화국 아닌가. 민주당은 '거여의 완력'을 멈추어야 한다.이외에도 #공정·정의의 가치 훼손 #반시장 정책 기조 #대북·대중 저자세 등 열거할 사안이 부지기수다. 다만 지면의 제약은 어쩔 수 없다. 징비는 징계할 징(懲), 삼갈 비(毖)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스스로 질책하고 독선과 아집을 삼가야 할 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정치 고수는 '닥공'을 경원한다
바둑 최고수는 9단이다. 10단은 없다. 9단이면 '반상(盤床)의 신(神)'이다. 9단에 '입신(入神)' 칭호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 9단이 있다. 정치 최고수라는 의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 9단이다. 언론과 정치계는 김대중 외에 누구에게도 '정치 9단'의 품계를 주지 않았다.김대중의 언변은 화려하다. 논리적이며 조리 있고 설득력까지 갖추었다. 1971년 대선 때 서울 장충단공원에서의 명연설은 김대중 정치력의 백미다. 하지만 김대중은 '닥공(닥치고 공격)'을 경원한다. 상대를 비판할 때도 도발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절제된 공격이다. 공화적 가치를 공고히 다진 의회민주주의자다웠다. 대통령이 된 후엔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은원(恩怨)만 따졌다면 박정희 기념관 건립 약속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기실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라면 굳이 네거티브는 필요 없다. 상대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에 맛을 들일수록 '닥공' 성향이 강해진다.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만 해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백신 파트너십,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 같은 굵직한 성과를 이뤄냈다. 한미 결속으로 대중(對中) 편향외교를 탈피하는 전기도 마련했다. 하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을 폄훼하면서까지 문 대통령의 방문 성과를 디스했다. 아주 신랄하게. '닥공' 또는 '억까(억지로 까기)'다.소셜 미디어엔 "44조원 주고 고작 백신 55만회분 받고"란 비아냥이 나돌았다. 아니 미국 투자가 그냥 공짜로 주는 건가. 44조원 투자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결국 국부(國富)로 돌아오지 않나. 당시 "무능한 정부야, 비겁한 정치야"란 멘트를 날린 권영진 대구시장도 과했다. 광역단체장이 쓰기엔 도발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 출사표는 지지율 1위의 무게만큼이나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정치적 내공을 보여주진 못했다. 곳곳에서 정치 초보의 밑천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 비판에 치중한 나머지 윤석열만의 정책과 비전,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실패는 이미 국민이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를 중언부언하는 건 식상하다. 게다가 용어 선택에 결함이 많았다. "무도한 정권" "국민 약탈" 같은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 어휘가 난무했다. 스마트·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언어 구사가 아니다. 차라리 '닥공'에 가까웠다.'시대정신'을 비켜 간 것도 아쉽다. 지금 시대정신은 변화와 혁신이다. '혁신 대한민국'이란 슬로건을 제시하면서 가치 혁신, 제도 혁신, 기술 혁신, 정치 혁신이란 담론을 던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상식과 공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었다. 공정을 실현할 구체(具體)는 보이지 않았다. 한일관계를 묻는 일본 NHK 기자의 질문에 "이념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가 망가졌다"고 말한 것도 부적절했다.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은 일본이 더 크지 않나.나이가 어려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훨씬 고수다. 정치의 맥을 짚을 줄 알고 시대의 화두를 읽을 줄 안다. '닥공' '억까' 스타일도 아니다. 중도층과 호남 쪽에 구애를 마다치 않는다. 외연 확장을 염두에 둔 포석일 게다. 아마도 정치 7단쯤 되지 않을까 싶다.윤석열은 정치 이력이 없다. '정치 근력(筋力)'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경선 및 본선의 혹독한 자질 검증을 버텨낼 수 있다. 마이크 앞에서 말하며 계속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습관도 고쳐야 한다. 지지율 1위의 대선 출사표는 기대보다 우려를 낳았다.논설위원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병원 떠났던 대구 수련병원 전공의 700여 명, 복귀 시점 마지날에도 '요지부동'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탄력받는 정부의 의료 개혁…남은 숙제는 전공의 복귀와 의사 설득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원숭이띠 5월 20일 ( 음 4월 13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