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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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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지역균형발전, 관건은 실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트레이드마크는 소득주도성장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실패로 끝났다. 왜 낙제점을 받았을까. '균형'의 실패였다. 총수요를 견인할 소득주도성장과 공급부문의 효율성을 높일 혁신성장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까닭이다. 근로자 임금을 높여 소비를 진작하겠다는 의욕만 팽배했다. 단편적 포석은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으로 이어졌다.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개혁 등 공급부문 혁신은 뒷전이었다. 이러고서야 기업 투자-고용 증대-임금 상승의 선순환 고리가 작동될 리 없다.경제정책에도 '균형'이 필요하거늘 하물며 수도권과 지방이야 말할 나위가 있으랴. 한데 눈에 번쩍 띄는 제안이 나왔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와 20대 기업 중 몇 개의 본사나 공장을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운을 뗀 것이다. 그것도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임이 틀림없다. 관건은 실천이다. 댓글을 살펴봤다. "누구 마음대로?" "서울에 없으면 서울대가 아닌데" "서울에 남는 대학들만 살판났네" "지방에 있는 대학과 기업들부터 살려라". 부정적 비아냥이 대세였다. 실세 장관의 파격적 제안은 고맙지만 관련 부처나 대학과의 협의 없이 불쑥 던졌다는 게 문제다. '만 5세 취학'의 균형발전 버전 느낌이 물씬하다.'SKY 대학'과 대기업 본사의 지방이전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파편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부처 간 유기적 공조체제가 중요하단 의미다. 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단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 정부의 균형발전을 주도할 지방시대위원회는 행정권이 없다. 실질적 권한이 없으니 정책을 실행할 동력이 없을 수밖에. 그래도 6개 부처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허울만 번지르르한 셈이다.지방시대위원회가 행정권을 갖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면 'SKY 대학' 이전 같은 파격 주장을 언론에 쉽게 까진 못한다. 사전에 정치(精緻)한 논의가 있었을 테니까. 지자체와 시민단체는 부총리급 균형발전부 신설을 주장한다. 균형발전부 대안이 지방시대위에 집행권한을 주는 거다. 형해화된 지방시대위원회로는 균형발전의 획기적 시전이 불가능하다.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왜 답보 상태에 머물렀을까.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가 대통령 자문기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작 국토의 11.8%를 점유한 수도권 위세는 여러 대목에서 노정된다. 국회 지역구 253석 중 121석이 수도권 의원이다. 비례대표를 합치면 당연히 절반을 훌쩍 넘는다. 대기업 본사나 금융기관 예금의 수도권 비중 얘기는 하도 반복해 이제 진부하다. 시대 조류를 대변하는 게 문화산업이다. 출판·영화·음악·게임 등 문화콘텐츠 매출의 89%를 수도권이 과점한다. 수도권 일극체제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서울 인구는 245만명에 불과했다. 그땐 웅도 경북이 최다 인구였다. 그런데 지금 어찌 됐나. 1960년대 6명이던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지난해 0.81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마치 대구경북의 위상 추락을 웅변하는 듯하다. '3대 도시 대구'의 추억도 가물가물하다. 이게 다 수도권 일극주의의 폐해다. 윤 정부가 내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참 맛깔나는 구호다. 이 슬로건이 부끄럽지 않게끔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펼쳐 주기 바란다. 제안만 남발하지 말고 반드시 실천해 달라는 주문이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결국은 경제
칭호가 아리송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말이다. 난 정말 인플레를 억제하는 내용을 담은 줄 알았다. 한데 4천370억달러의 재정 지출이 골자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대응에만 3천690억달러를 투입한다. 법인세 증세 따위의 세입을 늘리는 방안이 포함됐지만 세출에 무게가 실린다. 재정을 풀어 인플레를 감축한다? 해괴한 솔루션이다. 말인즉슨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고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니 인플레 감축법이 맞다는 논리다. 인플레 감축법이든 디플레 촉진법이든 칭호에 어폐가 있으면 어떠랴. 문제는 이 법이 현대차의 뒤통수를 쳤다는 거다. 정의선 회장을 만나 세 번이나 거푸 "땡큐"를 외치며 현대차의 대미 투자에 감사를 표했던 바이든 아니었나. 그런데 지난 8월 발효된 인플레 감축법은 미국서 제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제한했다. 트럼프 뺨치는 바이든의 '아메리카 퍼스트'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이 실리를 위해 신의를 팽개친 꼴이다. '경제=표'라는 인식이 작동했으리라. 세계적 재테크 열풍을 몰고 왔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지난달 "부동산·주식·금·비트코인 등 모든 자산시장이 무너지고 있다"며 "생각을 바꿔 부자가 되라"고 말했다. 두 가지 함의가 있다. 하나는 재테크 고수가 내다본 경제 기상도는 '잔뜩 흐림'을 넘어 '퍼펙트 스톰'에 가깝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산 가격이 바닥칠 때 저가 매수의 기회를 잡으라는 조언이다. 기요사키의 진단대로 국내 경제지표도 암울한 통계가 쏟아진다. 8월 무역수지는 94억7천만달러 적자로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래 최대 폭을 기록했다. '경제 효자'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보다 7.8% 줄었다. 대중국 무역수지는 넉 달째 적자를 이어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이다. 모든 수치가 생뚱맞고 이례적이다.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반도체-대중 무역흑자' 루틴이 깨졌다. 진짜 위기다. 강달러 후폭풍도 거세다. 달러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유일신(神)'으로 격상되는 분위기에 원화 가치는 추풍낙엽이다. 환율은 달러당 1천400원도 뚫을 기세다. '환율 상승=수출 증가'라는 케케묵은 공식은 이제 장롱 속에 처박아야 할 듯싶다. 고환율이 더는 수출의 구세주가 아니다. 외려 수입원자재 가격 앙등, 물가 상승 압박 등 폐해만 촉발한다. 미국이 긴축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뾰족한 방책도 없다. 거시경제 전문가이자 36년간 주식시장에서 내공을 쌓은 김한진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까지 불황이 이어질 수 있으며 그 고통은 예상보다 강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 상황, 어느 모로 보나 복합위기다. 문제는 정부가 위기에 대응할 능력과 의지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다. 윤석열 정부 4개월을 반추해보면 왠지 미덥지 않다. 경제위기 극복엔 야당의 협조가 필수다. 한데 여소야대 구도를 잊은 듯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자극하는 언설을 퍼붓는다. 정기국회 개회 첫날 제1 야당 대표를 소환한 검찰도 눈치 없기는 마찬가지다. 착각하지 마라. 경천동지할 의혹이 불거지지 않는다면 사정정국으로 대통령 지지율 오를 일은 없을 테니. 뻔하디 뻔한 대장동 레파토리는 이제 식상하다. 계속 깔짝대기만 해서야 '강력한 한 방'이 나오겠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민 기대는 이념이 아닌 민생"이라고 강조했다.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윤 정부의 실제 행보는 이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탈북민 강제북송,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린다. 더욱이 2명의 탈북민은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다. 인권 문제로만 재단(裁斷)할 사안이 아니다. 과거 캐기에 몰두할수록 민생과 경제의 기회비용을 상실한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하면 먼저 '부동산 폭등시킨 정권'으로 인식한다. 윤석열 정부도 종국엔 경제로 평가받을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의 패업 달성을 주도한 관중은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고 했다. 윤 정부는 출범 초기에 전방위로 경제 경고등이 울리는 상황이다. 엉뚱한 데 헛심을 쓸 계제가 아니다. 오로지 경제에 올인 해야 한다. 빌 클린턴의 짧고도 강렬한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경구가 다시 비수처럼 꽂힌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코모두스와 막시무스
삼국지는 진수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가 있다. 진(晉)나라의 진수(233~297)가 편찬한 '삼국지'는 정사(正史)로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등 총 65권이다. 간결한 문체와 담백한 서술이 압권이다. 다만 위나라만 제기(帝紀)를 세워 편향성 비판을 받는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봤다는 의미다. 촉나라·오나라는 열전(列傳)으로 기록했다. 나관중은 14세기 원말·명초의 소설가 겸 극작가다. '삼국지 연의'는 진수의 정사에 나관중의 상상력이 보태진 '소설 삼국지'다. 연의(演義)는 '사실에 부연하여 재미있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뜻이다.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이 살을 붙이고 윤색하고 가공했으니 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제갈공명을 지나치게 과장했고 조조는 실체보다 깎아내렸다.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히는 초선은 나관중이 만든 가공인물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장제원 의원을 겨냥하며 인용한 삼성가노(三姓家奴)란 말도 '삼국지 연의'에만 나온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장군 출신 검투사의 굴곡진 삶과 복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 유명한 '명상록'을 남긴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로마제국 16대 황제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코모두스 시대가 배경이다. '글래디에이터'는 2001년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막시무스 장군역의 러셀 크로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렸다. 영화 전편에 한스 짐머의 음악이 도도히 흐른다. 리사 제라드가 부른 엔딩곡 'Now we are free'는 OST의 백미다. 우리 사극이나 '삼국지 연의'가 역사를 왜곡하듯 영화 '글래디에이터'도 로마사를 많이 비틀었다. 막시무스 장군은 가공의 인물이며, 5현제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영화와는 달리 아들 코모두스에게 양위한다. 원로원에서 덕망 있는 인물을 황제로 옹립해온 '5현제 시대'의 불문율을 거슬렀다. 후일 폭군 코모두스는 암살당한다. 아우렐리우스의 세습 양위는 명백한 실패였고 로마 멸망의 시작점이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소환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코모두스, 본인을 막시무스에 비유하면서다. 용렬한 황제와 정의로운 검투사를 대척점에 놓은 자체가 불경(不敬)이다. 멘트도 자극적이었다. "자신감 없는 황제, 경기 시작 전 막시무스 옆구리 칼로 푹". 대통령실과 여당에선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법원이 이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민의힘의 이준석 축출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렸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징계 종료일인 내년 1월 8일 이후 복귀할 수 있을까. 이는 '윤심(尹心)'이 가장 배척하는 시나리오다. 현실화할 개연성이 높지 않다. 국민의힘이 당헌을 개정해 새 비대위를 꾸리려는 것도 이준석 귀환을 막기 위한 포석이다. 윤리위원회의 추가 징계도 복병이다. 아마도 이준석이 윤 대통령의 '체리 따봉' 메시지를 받는 반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외려 경찰의 성 상납 수사 뇌관이 터지고 '빼박' 증거가 나오면 이 대표는 정치 종언(終焉)을 고해야 한다. "타고난 싸움꾼"(조응천 민주당 의원)이란 평가대로 이준석의 전투력은 옹골차고 알싸하다. 단기필마로 거대 정당을 들쑤셨다. 언어 구사력이 강력한 무기다. 그럴싸한 직유와 은유에다 고사성어를 맞춤형으로 끌어 썼다. '언데드 최고위원' '윤핵관 호소인' 따위의 신조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31일엔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며 영화 '한산'의 명대사를 차용했다. 이준석vs대통령·윤핵관 대립 구도는 행간 읽기가 중요하다. 공천권을 뺀다면 사생결단의 공방을 벌일 이유가 없다. 누가 2024년 총선 공천을 주도할지 그래서 궁금하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공천권을 장악하고 '윤석열 당'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코모두스와 막시무스 둘 다 죽는 게 엔딩 장면이다. 집권여당을 둘러싼 세력들의 역학 구도는 어떻게 귀결될까. 공멸? 공생? 한 쪽의 일방적 승리? 아직은 포연만 자욱할 뿐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급심경단 대통령실
장면 1=윤석열 대통령에게 패싱 당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일본에 가서야 앙금을 드러냈다.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일본 정상들과의 교류를 강조하더니 한국을 언급할 땐 "우리 군인 2만8천500명을 보러 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면담 불발에 따른 불만을 에둘러 내비친 것이다. 펠로시는 한국에 어떤 의미일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 미군 감축 으름장을 놨을 때 미 의회는 국방수권법에 2만8천500명 아래로 줄일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펠로시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건 명백한 실책이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뭐 했나. 동맹이 아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정상이 접견했는데. 게다가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은 20년 만이다. 더 황당한 건 대통령실의 조잡한 변명과 용렬한 책임회피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대통령이 국회의장의 카운터파트를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카운터파트? 카운터파트끼리만 만나는 협량 외교가 우리의 지향점이라면 심각한 자폐 증상이다. 차라리 "펠로시 대만 방문은 백악관 기조와는 괴리가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눙쳤다면 어땠을까. 펠로시 공항 영접을 나가지 않은 논란에도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대통령실은 "공항 영접 등 의전은 국회가 담당하는 것이 외교상 의전상 관례"라며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다. 외교부장과 외무성 부대신이 공항에서 영접한 대만과 일본은 외교·의전 관례를 무시했단 말인가. 국회의장 초청으로 온 것도 아닌데 왜 정부가 빠지려 하나. 또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장이 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고 밝혔다. 유치찬란한 자화자찬 레토릭이다. 진심과 외교사령(外交辭令·자기의 감정을 감추고 상대편이 듣기 좋도록 하는 사교적인 말)도 구분 못하나. 장면 2=대통령은 국가 재난의 총책임자다. 그러기에 재난 대응방식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고 대통령 평가의 결정적 변수가 되기도 한다. 서울에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8일 저녁, 윤 대통령은 퇴근길에 이미 일부 지역의 침수 현장을 봤을 터다. 그렇다면 용산으로 차 머리를 돌렸어야 했다. 정작 국민 염장을 지른 쪽은 대통령실이다. 예(例)의 헛발질 퍼레이드가 또 이어졌다. "비 오면 대통령은 퇴근도 못하나" "대통령 있는 곳이 상황실이다"(강승규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시절엔 국가 재난이 예상되면 대통령은 지하벙커에 있는 국가위기관리센터로 이동했다. 위기관리센터엔 재난 상황이 실시간 집계되고 관련 기관과의 화상회의 시스템이 구축돼있다. 용산 대통령 청사도 마찬가지다. 국가위기관리센터 같은 곳이 상황실이다. 대통령 있는 곳이 상황실? 편의주의적 인식이 놀랍다. 세월호 사건 때 김기춘 비서실장의 해괴한 변명 '관저집무실'을 연상케 한다. 윤 대통령이 신림동 일가족 참변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카드 뉴스로 만든 것 역시 대통령실의 수준을 웅변한다. 대통령이 참사가 일어난 반지하 주택을 쪼그리고 들여다보는 모습을 홍보용 사진으로 내놓다니. 아예 디스하기로 작정했다면 몰라도.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실이 X맨"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장면 3=기시다 총리가 지난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에 직접 가지 않는 선에서 고민한 듯하다"고 말했다. 마치 일본 총리실 대변인 발언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괜한 오지랖보다 묵언이 훨씬 현명한 방책인 걸 아직 모르나. 대통령실의 무능을 백일하에 드러낸 장면들이다. 더 이상의 주석(註釋)이 또 필요하랴. 장자에 나오는 급심경단(汲深綆短)은 깊은 우물물을 긷기에는 두레박줄이 짧다는 의미로, 능력이 모자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 대통령실이 딱 급심경단의 형국이다. 이재오 국민의힘 고문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20점, 대통령실은 0점으로 퇴출감"이라고 일갈했다. 능력만 보고 뽑았다는 대통령실이 이토록 참담한 평가를 받다니. '끈'(인적 네트워크·배경)에 치중한 인력 채용의 후과(後果) 아닐까. 소셜 미디어엔 '대통령실에 들어가려면 윤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 연줄이 있거나 하다못해 극우 유튜버라도 알아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돈 지 오래다. 허우적거리는 대통령실, 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똥볼만 차는 무능력자를 솎아내고 오직 '끼'(재주·능력)만 보고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인적 쇄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쇄신 없이 여론 반전이 가능할까.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국민과 다투는 정치, 국민을 따라가는 정치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는 총 130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기록이다. 사서(史書)의 성경으로 불릴 만큼 압도적 평가를 받는다. 중국 상고시대 오제(五帝)부터 한무제까지의 2천년 통사(通史)가 켜켜이 축적돼있다. 문장은 유려하고 생동감 넘치며 행간마다 사마천의 통찰력과 탁견이 번득인다. 52명의 화식가(부자)를 다룬 129편 화식열전(貨殖列傳)을 중국인들은 상경(商經)이라고 한다. 상업의 경전이란 뜻이다. 화식열전에 의미 있는 대목이 나온다. '제일 잘하는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따라가는 정치, 그다음이 국민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투는 정치다.' '사기'를 봤던 걸까. 윤석열 정부 인수위 사무실엔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라는 백드롭이 선명했다. 당시 윤석열 당선인이 직접 쓴 글씨체를 그대로 옮겼다. '국민의 마음을 따라가는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가 공고해 보였다. 그런데 웬걸. 대통령 취임 후 석 달여의 행보는 외려 '국민과 다투는 정치'에 가까웠다.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다투는 정치의 본보기를 시전했다. 박 전 장관은 애당초 교육부 수장 자격이 없었다. 만취운전 하나만으로도 진작 아웃됐어야 했다. 법원의 선고유예를 받은 내막도 석연찮다. 만취운전의 선고유예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는데 어떤 신공(神功)을 동원했는지 궁금하다. 거기다 논문표절, 아들의 고액 컨설팅까지. 온갖 하자(瑕疵)에 포획된 인물이다.만 5세 입학은 2007년 국책연구소 설문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이 반대했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1~3일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선 반대 응답이 98%였다. 전 국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시교육정책을 갓 취임한 장관이 로드맵까지 밝히다니.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5세 취학이 경제활동인구와 노동기간을 늘린다고? 그러려면 차라리 OECD 최고 수준인 대학 진학률부터 낮춰라.박 전 장관은 취학 연령을 1개월씩 앞당겨 12년간 추진하겠다는 방안도 거론했다. 탁상공론의 화룡점정이다. '봉숭아 학당'을 만들겠다는 건가. 우리는 무자격·무능 장관의 허접한 실체를 똑똑히 목도했다. 박 장관의 사퇴로 5세 취학은 사실상 백지화됐지만 박순애 파동은 곳곳에 생채기를 남겼다. 교육부 업무 보고 때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던 윤석열 대통령도 스타일만 구겼다.행안부 경찰국 신설도 국민여론에 반한다. 한국갤럽조사에서 '경찰국 신설이 경찰조직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과도한 조치'라는 응답이 51%, '경찰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한 국민은 33%였다. 경찰서장 회의에 대해서도 '정당한 의사표명' 응답이 59%인데 비해 '부적절한 집단행동'은 26%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행안부는 시행령 입법 예고기간을 40일에서 4일로 단축하면서까지 경찰국 설치를 밀어붙였다.조선시대엔 조정이 잘못된 정책을 펴면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간청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는 '사기(史記)'의 간언대로 국민의 마음을 따라가는 모양새는 아닌 듯하다. 국민여론에 맞서려는 추임새가 자주 감지된다. '디지털 만인소'라도 올려야 하나.윤 대통령은 휴가에서 복귀하면서 "초심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백드롭을 다시 읊은 것이다. 한데 국민을 받드는 건 '말'로 하는 게 아니다. 경찰국 신설 철회, '윤핵관' 이선 후퇴, 인적 쇄신 같은 '행동'이 따라야 한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민심 誤讀과 변죽 울리기
대통령 취임 80일 만에 지지율 28%이라니. 불가사의하다. 뭐 편중 인사니 사적 채용이니 자질 부족이니 누구나 다 아는 이런 것들만으로 지지율이 급전직하했다? 쉬 납득되지 않는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법하다. # 사적 채용 해명이 엽관제?"대통령실 인력 채용은 엽관제다".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이 불거졌을 때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내놓은 해명이다. 엽관제는 정권을 잡은 개인이나 정당이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관직을 분배하는 정치적 관행이다. 논공행상의 또 다른 말이다. 19세기 정당정치가 발달했던 영국과 미국에서 성행했다. 인사 임용 기준을 실적으로 평가하는 실적주의가 엽관제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능력 위주의 실적주의에 반하는 만큼 엽관제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엽관(獵官)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관직을 사냥한다는 뜻이다. 영어로 엽관제는 'spoils system'이다. 약탈품·전리품을 나누듯 관직을 분배한다는 의미다. 선거에서 이겼더라도 엽관제를 최소화하는 게 대승적 인사다. 사적 채용을 반박하면서 쓸 단어는 전혀 아니다. 엽관제는 능력주의 인사에 대한 부정이다. 사적 채용 논란이 된 인물에 대해 대통령실 스스로 "능력을 보고 발탁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엽관제라니? 국민이나 언론은 사적 채용 자체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정무직·별정직을 공개채용을 하라는 게 아니다. '지인 찬스'를 쓰지 말라는 거다. 40년 지기의 아들, 외가 육촌, 1천만원 후원금 따위의 사적 연분을 끊으라는 얘기다. # 대통령-권성동 문자가 사적 대화?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간의 문자 메시지 파문이 확산되자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사적 대화가 노출돼 유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문자가 사적대화라니. 더욱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대표 바뀌니 달라졌다'는 내용 아닌가. "공인의 사적 영역은 권한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대한민국 의전 서열 1위인 대통령과 7위인 여당 대표 직무대행에게 사적 영역은 거의 없다"(조응천 민주당 의원) # 이상한 등치민간인의 나토 정상회의 동행과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도 BTS(방탄소년단)와 동행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의 공직 수행과정에서 꼭 공직자만 수행하라는 법은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BTS는 사실상 공인이다. 게다가 BTS는 유엔의 초청까지 받았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김건희 여사를 수행한 민간인은 윤 대통령에게 2천만원의 후원금을 낸 한방병원 이사장의 딸이자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아내다. 대통령실은 "영어가 능통하다"며 두둔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지명 때도 영어가 유창하다더니. 대통령실이 나서 '잉글리시 디바이드'를 조장하는 꼴이다. 영어가 능통하든 어떻든 글로벌 뮤지션 BTS와 같은 반열에 올릴 급(級)은 아니다. 무리한 등치(等値)다. # 국민정서와 괴리된 격려 발언"해프닝인데 고생했다". 문자 메시지 파동 후 윤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를 만나 한 말이다. '내부 총질' 문자가 단순 촌극도 아니거니와 고의든 실수든 문자를 노출한 권 대행을 감싸다니. 국민정서를 한참 배반한다. 윤 대통령은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줄 때도 "야당과 언론 때문에 고생 많았다"며 격려 멘트를 날렸다. 그것도 만취운전, 논문표절 문제투성이 장관에게. 결론은 대통령실의 위기대응 능력이 수준 이하인데다 적확한 어법조차 구사하지 못한다는 거다.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다. 이러고서야 승묘한 해법이 나올 리 없다. 민심의 행간을 읽지 못해서일까. 윤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유독 언변의 디테일에 약하다. 민의를 실시간 계량화하는 '여론 나침반'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궤변의 정치학
2016년 최순실 비선 논란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 측에선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라고 강변했다. '비공식 자문단' 정도로 해석되는 키친 캐비닛은 미국 앤드루 잭슨 대통령(1829~1837년 재임) 때 등장한 용어다. 잭슨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과 국무장관 간의 갈등으로 내각이 무능해지자 지인들의 자문과 도움을 받았다. 언론이 이를 '키친 캐비닛'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잭슨의 키친 캐비닛은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당대 공인들이었다. 최순실처럼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비선도 아니었다. 최순실이 키친 캐비닛? 황당한 궤변이다.2016년 6월 정부는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김해공항을 확장 카드로 선택했다. 하지만 대선 공약 파기란 비난이 쏟아지자 김해공항 확장이 김해신공항으로 둔갑했다. 처음 정부 발표 땐 '신공항 백지화, 김해공항 확장'이랬는데 두 시간 만에 '김해공항 신공항급 확장'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김해신공항'으로 못 박았다.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당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관제탑을 새로 건설하니 신공항이 맞다"고 부연했다. 역대급 궤변이다.국어사전에 궤변은 '상대편의 사고(思考)를 혼란시키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양 꾸며 대는 논법'이라고 적시돼 있다. 궤변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에서 유래한다. 소피스트(sophist)는 '지혜로운 자'를 뜻하는 그리스어가 어원이다. 소피스트의 함의(含意)대로 고대 그리스에서 궤변은 묵직한 담론을 설파하는 논법 또는 설득술로 각인됐다. 하지만 현세의 궤변은 사전에서 풀이한 것처럼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배현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 문재인 정부의 부채 폭탄 고지서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노정됐듯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편향 인사와 사적 채용, 일방적 국정 운영, 경험 부족과 자질, 경제·민생 소홀 등이 원인이다. 권성동 대표 대행의 거친 언행, '이준석 팽(烹)'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한데 지지율 하락마저 문 정부 탓으로 돌리다니. 남 탓의 종결자이자 지록위마급 궤변이다.윤석열 정부의 찌질한 관행은 걸핏하면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거나 문 정부를 탓하는 것이다. 예컨대 검찰 편중 인사를 지적하면 "문 정부에선 민변 출신이 도배하지 않았느냐"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가 무능했던 건 맞다. 평점을 주자면 D학점을 넘기 어렵다. 하지만 문 정부가 유능했다면 과연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 가능했을까. 오로지 높은 정권교체지수로 당선된 윤 대통령 아닌가. 게다가 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에선 윤 정부가 문 정부보다 '더 못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문 정부보다 못하다면 F학점?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국이 신설되면 경찰이 청와대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고 행안부 장관을 통해 지휘·감독을 받게 되면서 오히려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견제와 관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경찰서장들까지 나서 "역사적 퇴행"이라며 반발할까. 논점을 흐리는 야릇한 궤변이다. 이상민 장관은 또 경찰서장 회의를 12·12 쿠데타에 비유했다. 경찰 중립을 촉구하는 모임이 군사반란? 막가파식 궤변이다. '친위 장관'다운 클리셰다. 언론 비판이나 상대 진영 공격에 대한 방어기제론으로 궤변만 한 게 없다. 하지만 궤변으로 포장한들 불공정이나 무리한 정책 입안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그런데도 정치판은 궤변에 포박된 양 유체이탈의 언설이 난무한다. 국민을 기망하는 군색한 변명보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의 의미를 새겨야 하지 않을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윤석열 정부의 복고주의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원훈을 교체했다. 신영복 글씨체가 정보기관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국정원이 밝혔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간 복역한 신영복의 전력이 원훈 교체의 결정적 이유로 판단된다. 문제는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때의 원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했다는 것이다. 61년 전의 원훈으로 돌아간다? 복고(復古)도 이런 복고가 없다. 무엇보다 문구가 쌈박하거나 개운하지 않다. 음침하고 구태의연하며 촌티까지 난다. 음지에서 일한다? 국정원 직원들이 '어둠의 자식들'인가, 아니면 암수를 동원해 비밀공작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창설 초기 중앙정보부는 정치공작을 기획·실행하고 정치자금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테면 군사정권 창출 공작소였다. 김대중 납치, 장준하 추락사, 김형욱 파리 피살 사건 등 온갖 의혹의 흑역사 또한 중정의 일그러진 흔적이다.한데 그 시절의 원훈을 끄집어낸다? 구각(舊殼)을 다시 걸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쭉쭉빵빵 고성능 차들이 널렸는데 1970년대의 '포니'를 타겠다는 꼴이다. 괜찮은 원훈을 만들 실력이 없다면 차라리 공모라도 하라. 직전 원훈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은 평범하지만 그나마 '겸손'이 깔려 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국정원 1급 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 내며 점령군 행세를 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윤석열 정부의 과거 회귀는 이뿐 아니다. 경찰제도개선자문위의 권고대로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부활하면 31년 전으로 돌아간다. 경찰 지휘규칙을 제정하면 행안부 장관이 직접 경찰을 지휘하고 인사·징계·감찰에 관여할 수 있다. 경찰 고위직에 대한 인사 제청권과 징계 요구권을 갖는다. 강력한 그립을 쥐겠다는 포석이다. 당연히 정부·여당에선 민주적 통제로 미화한다. 하지만 중립성·독립성을 침해하는 직접적 통제, 조직에 의한 행정적 통제를 우리는 민주적 통제라고 하진 않는다. 경찰국 부활과 경찰 지휘규칙 제정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암묵적 경찰 통제보다 훨씬 노골적인 통제다.법무부도 복고 행정을 시전했다. 취임 후 40여 일 동안 검찰 인사를 세 번이나 단행한 한동훈 장관이 주역이다. '총장 임명→검찰 인사'의 선후 공식을 파괴한 검찰총장 패싱 꼼수였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찰청법 34조는 완벽하게 뭉개졌다. 취임 다음 날 단행한 검사장급 인사는 검찰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았다. '전횡'과 '구태'의 전형이다. 윤석열 정부가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장관의 편법 인사에 대해 "책임 장관으로서 인사 권한을 대폭 부여했기 때문에 아마 우리 법무부 장관이 아주 제대로 잘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책임 장관이 맞다. 한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우는 사뭇 달랐다. 이 장관이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 방침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윤 대통령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며 뒤집었다. 담당 장관이 말한 게 공식적인 게 아니라면? 이러고도 책임 장관? 책임 장관도 끗발 나름인가.예술이나 패션, 유행의 복고는 아련한 과거의 향수에 젖게 한다. 하지만 국정의 복고는 개악으로 흐를 개연성이 크다. 권력기관의 복고주의는 더 위험하다. 피터 드러커는 "계획이란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여 지금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 5년 계획엔 '미래'가 녹아 있을까. 국정은 '복고'보다 '전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당태종 세 개의 거울 - 윤석열 버전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루어낸 당태종은 '세 개의 거울'을 통치의 푯대로 삼았다. 동경(銅鏡)으로 얼굴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사경(史鏡)으로 역사의 교훈을 반추했으며, 인경(人鏡)으로 현자(賢者)의 간언(諫言)을 들었다. -동경(銅鏡) 당태종이 싱크로율이 떨어지는 구리거울로 얼굴을 봤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본인의 데칼코마니가 찍히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을 것이다. 그러면서 '식시무(識時務)'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식시무는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바친 제왕학 '성학집요' 위정(爲政)편에 나온다. 율곡은 통치를 행함에 있어서 시급한 일, 그 당시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일, 시간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適時)·적소(適所)·적재(適材)·적무(適務)로 해결해 나가야 왕조 창업 후에도 수성(守成)이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5일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보면 마음을 제대로 다잡았는지 의문이다. 부실인사 지적에 대해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반문했다. 언성을 높이고 손가락을 흔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언론은 그 장면을 '도어스티밍(steaming)'이라고 표현했다. 윤 대통령은 또 만취 운전, 논문 표절 등으로 퇴진 압박을 받았던 박순애 교육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언론과 야당의 공격을 받느라 고생 많았다"고 했다. 임명 철회가 마땅했던 인물을 고무하다니. 그럼 언론과 야당의 비판이 터무니없었다는 말인가. -사경(史鏡)당태종은 '춘추'를 비롯해 '사기', '한서', 진수의 '삼국지' 등 사서(史書)를 즐겨 읽었다. 행간에 녹아있는 황실의 성쇠 인과와 국정의 섭리를 터득하며 통치철학을 교습했다. 이른바 역사의 거울이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도 "지혜로운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하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에야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하며 공급정책이 아쉬웠다고 술회했다. 국민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뒤늦게 실상을 터득한 것이다. 진작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실패에서 배웠다면 어땠을까. 윤 대통령은 인사 문제 따위를 곧잘 문재인 정부와 비교한다. 지난 4일엔 "도덕성 면에서 이전 정부에서 밀어붙인 인사와 비교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상대평가다. 국정은 절대평가 하는 게 맞다. 왜 하필 무능했던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나. 바둑도 고수와 대국해야 실력이 는다. 검찰 출신·지인 중용 콘셉트의 윤 정부 인사가 문 정부보다 낫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야가 오십보 백보의 잘못을 저지르고 서로를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하는 상황이 참담하다"(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열등 정부와의 비교우위를 주장할 게 아니라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인경(人鏡)당태종 주변엔 방현령, 위징 등 인경으로 삼을 만한 충신들이 많았다. 그 중 간의대부 위징이 대표적 인경이었다. 대놓고 쓴 소리를 하다 보니 태종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잦았다. "저 놈의 영감탱이를 언젠가 죽여 버리고 말거야" 당태종의 넋두리를 장손황후가 달래곤 했다. 위징이 없었다면 '정관의 치'로 웅변되는 태평성대도 없었으리라. 윤 대통령에겐 인경이 있기나 한가. 윤핵관? 아무래도 인경 역할은 못할 듯싶다. 윤핵검(검찰 출신 최측근)? 부합하는 인물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이들이 도무지 윤 대통령에게 고언을 할 것 같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 데드크로스에 대해 "지지율은 별 의미 없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민심 지표인 지지율을 평가절하하면서 국민만 보고 간다? 자가당착이자 형용모순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돌직구를 날렸다. "지지율이 왜 급전직하로 떨어지는지조차 모른다"며 "옹고집, 만용"이라고 비판했다. 이준구 교수라면 윤 대통령의 인경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박규완 칼럼] "국민을 추앙해"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경제고통지수는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가늠하기 위한 지표다.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산해 산출한다. 5월 우리나라 경제고통지수는 8.4. 21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달 실업률은 3.0%로 작년보다 낮았다. 오롯이 물가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경제고통지수를 높인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디스인플레이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회는 민생을 외면한 채 목하 파업 중이다. # 정치도 복합위기작금의 경제상황을 다들 복합위기로 진단한다. 한데 여의도 쪽을 보니 정치도 복합위기다. 국회는 후반기 원(院) 구성도 못하고 4주째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 치킨게임을 벌이는 저들에겐 국민고통지수 따윈 안중에 없다. 여야 알력과 대립 원인은 복합적이다. 법사위원장 자리와 '검수완박' 관련 소송, 사개특위 구성 등이 맞물려 있어서다. 파업과 태업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인식 결여도 심각하다. 20대 국회 때도 석 달 넘게 의정활동을 멈추지 않았나. 파업을 해도 세비가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기 때문인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뒤집기,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등 이재명 의원과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윤석열 정부의 칼날도 국회 파행에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는 더 아쉽다. 정치는 '밀당(밀고 당기기)'과 거래다. 빅딜이 불가하면 스몰딜이라도 하면서 접점을 넓혀가야 하는데 지금은 아예 노딜 국면이 지속된다. 반전(反轉) 없는 대척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이 수십 건 예정돼 있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여야 원내 사령탑의 언설도 막장을 치닫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원 구성 협상조건으로 이재명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를 요구했다"고 주장했고,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어느 한 쪽은 거짓말일 터. 마타도어 아니면 오리발이다. # 개그 같은 '심(心) 정치' "하도 윤심·박심을 팔아 내심 걱정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이 지방선거 후에 한 말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김은혜 전 의원에게 패한 후 "권력의 뒤끝 대단하다. 공정도 상식도 아닌 경선"이라며 윤심 개입을 기정사실화 했다. 윤심(윤석열), 문심(문재인), 명심(이재명), 박심(박근혜)은 여전히 정치권을 배회한다. 때론 선거와 정책 이슈의 방향타가 되기도 한다. '심(心) 정치'는 보스 정치, 계파 정치의 산물이다. 보스 의중(意中)이 후보 공천이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게 '심 정치'의 본질이자 폐해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6·1 지방선거에서 '윤심 마케팅'을 펼친 이유이기도 하다. 왜 '심 정치'에 미혹될까. 당심과 민심에 미치는 보스의 영향력, 보스에 권력이 집중되는 구심력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시선은 보스를 향할 뿐, 국민은 장기판의 졸(卒)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 정치인 국민의 상전인가그리스의 정치 포퓰리즘이 빚어낸 경제 파탄, 한순간의 춘풍처럼 왔다가 사라진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가 잉태하고 있는 퇴행적 현상을 농축해 보여준다. 장기 공전하는 여의도 역시 정치 퇴행의 현장인가보다. 본업을 팽개치는 국회의원들의 심리는 어떤 상태일까. '아~ 몰랑' 아니면 '케세라 세라'? 존 로크는 "정치인은 시민의 권한을 위임 받은 대리인일 뿐"이라고 했다. 한데 대리인이 황제급 특혜를 누리면서 파업과 정쟁을 일삼는다? 이게 대의민주주의 실체라면 우리는 그 제도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계급이익에 휘둘린 민주주의는 사악하고 무능한 정치체제로 타락할 수 있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경고가 홍심을 찌른다. 괜찮은 드라마나 영화는 명대사를 남긴다. "고백 할까요? 사과 할까요?"(태양의 후예).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베테랑).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부당거래). "나 돌아갈래"(박하사탕). "완벽하게 행복해"(별에서 온 그대).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명대사는 "나를 추앙해"였다.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거다. "국민을 추앙해"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복합위기 넘을 비책 있을까
'대표적 통화주의자' '시장경제 신봉자' '신자유주의 전도사' '시카고학파 거두'.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수식하는 글귀다. 윤석열 대통령이 학창시절 끼고 다녔다는 책 '선택할 자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어록 "공짜 점심은 없다" "샤워실의 바보"는 여전히 인구에 회자된다. 의표를 찌르는 경구가 또 있다. "인플레이션은 입법 없는 과세다." 인플레를 세금에 비유한 프리드먼의 직관이 섬광처럼 번득인다.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보다 8.6% 상승했다. 41년 만에 최대 폭이다. 옐런 미 재무장관은 "우리가 거대한 인플레이션 압박에 직면해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의 5월 CPI는 5.4% 올랐다.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4.7%로 대폭 올렸다. 인플레 쓰나미를 예고한 거나 진배없다. 드센 인플레이션 파고에 세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 파이터'로 나섰다. 전통적 방식이긴 하나 물가억제 효험이 확실히 입증된 금리 인상은 중앙은행의 필살 무기다. 금리 인상 폭이 '스텝'으로 표현되면서 각국의 '스텝놀이'도 현란하다. 미국은 지난 14일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고, 한국은행은 사상 첫 빅 스텝(0.5%포인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은 다음 달에도 자이언트 스텝이나 점보 스텝(두 번 이상 0.5%포인트 인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가장 보편적인 0.25%포인트 인상은 베이비 스텝이라나.인플레이션이 다가 아니다. 저성장까지 겹치면서 처방이 더 난삽해졌다. 오일쇼크가 촉발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가상승-금융긴축·소비위축-투자부진-경기침체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게 급선무다.3저(低)+3고(高) 상황은 복합위기를 웅변한다. 저성장·주가약세·수출둔화 3저에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가 교차한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코스피는 2,400이 속절없이 무너졌고, 6월 들어선(1~20일) 수출마저 지난해보다 3.4% 감소했다. 이례적 현상이다. 환율은 어느새 1천290원대로 치솟았다. 주담대 금리는 연 7%를 넘어설 조짐이며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7%대까지 상승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평균 이상의 인플레이션과 평균 이하의 저성장이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복합 경제위기에 진입했다는 고해성사다. 복합위기를 날릴 비책? 이게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최선의 해법이 규제개혁이다. 비책 아닌 비책인 셈이다. 자본 투입이나 재정지출 없이 성장잠재력을 고무(鼓舞)할 수 있어서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선 더더욱 매력적인 방책이다. 서동원 전 규제개혁위원장이 "규제개혁도 투자"라고 한 함의(含意)에 부합한다.윤석열 정부도 규제개혁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혁신전략회의를 발족하고 총리실엔 규제혁신심판원을 설치해 민간과 현장의 규제 갈증을 풀어준다는 방침이다. '원인 투아웃(one in-two out) 룰' 도입도 눈에 띈다. 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그림자 규제'도 확실히 걷어내야 한다. 다만 수도권 규제와 안전관련 규제 완화엔 선을 긋는 게 옳다. 규제개혁 성패의 관건은 실행력이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의 '손톱밑 가시 제거'도 실패하지 않았나. 복합 경제위기에 대응할 윤 정부만의 노하우는 있을까. 새 정부의 실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다. 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대구공항과 김포공항 이전의 평행이론
평행이론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대통령-대중적 인기-암살이 겹쳐지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의 비극적 데칼코마니에서 평행이론은 더 명징해진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경구에도 평행이론의 함의가 도도히 흐른다. 정권의 명운은 어떨까. 인권을 억압하고 헌정질서를 짓밟은 독재자였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말살한 전범 국가였든 야만 정권은 예외 없이 역사 속에 스러졌다. 평행이론이 유효하다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범 푸틴 역시 패망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반대와 독일의 견제를 뿌리치고 프랑스를 기어이 핵보유국 반열에 올린 샤를 드골 대통령은 "핵무기만이 영원한 차이를 만든다"는 어록을 남겼다. 드골의 핵 개발 명제는 '미국이 파리를 지키려고 뉴욕을 포기할까'였다.(1957년) 드골의 명제에 평행이론을 적용한다면 2022년 한반도 버전은 이렇지 않을까. '미국이 서울을 지키려고 뉴욕과 워싱턴을 포기할까.'지난 6·1 지방선거에서 '김포공항 이전'이 막판 쟁점으로 불쑥 떠올랐다. 이재명 민주당 인천 계양구을 국회의원 후보는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으로 통합하고 인천 계양, 서울 강서, 경기 김포 등 수도권 서부를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대 측은 "제주도 가려고 인천까지 가야 하나"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김포공항 이전 공약은 지난 대선 때도 검토했다가 민주당이 철회한 사안이다. 당연히 중앙정부와 지자체, 국회 논의 과정이 있을 리 없다. 민주당 당내 조율조차 없었으니 이재명 개인의 표심 구애 전략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포공항 이전 이슈가 예사롭지만은 않다. 수도권판 통합공항 이전이어서다. 시민여론을 뭉갰다는 것부터 닮은꼴이다. 대구시민 70%는 대구공항은 존치하고 군공항(K2)만 이전하는 데 동의했다. 권영진 시장은 민의를 외면하고 대구경북통합공항 이전을 밀어붙였다. 서울도 김포공항 존속 여론이 우세하다. 도심공항이란 점, 이전할 경우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판박이다. 대구경북통합공항이 건설되면 대구시민 역시 제주로 가기 위해 의성까지 가야 한다. SOC 사업에도 평행이론이 유효할까. 김포공항 이전의 귀착점이 그래서 궁금하다. 대구공항 이전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존치 견해를 굽히지 않는다. 딜레마로 지적된 민항 확장도 해법이 있다고 말한다. 주변 들판을 활용하면 현재 2천700m의 활주로를 3천500m로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활주로를 확장하면 대형기와 중·장거리 노선 취항이 가능해진다. 공항의 절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군공항을 이전할 경우 남은 부지를 민항 터미널이나 계류장으로 쓸 수 있고, 또 일부 부지는 매각해 군공항 이전 예산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도심공항은 도시의 훌륭한 인프라 자산이다. 대구공항에서 유럽·미국으로 직항할 수 있다면 대구시민에겐 축복이다. 터키 아타튀르크공항은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15㎞밖에 되지 않아 관광객 유치에 효자 노릇을 한다. 독일 뒤셀도르프 도심공항은 유럽기업 유치의 촉매가 됐다. 문제는 소통이다. 한의학엔 통즉불통(通卽不痛), 통즉불통(痛卽不通)이란 말이 있다. 기혈이 잘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의미다. 김포공항 이전이든 대구경북통합공항 이전이든 시민과 소통한 결과라면 누가 이의를 달까. 일방통행 행정은 늘 잡음과 갈등을 야기한다. 하지만 대구경북통합공항 이전은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통즉불통(痛卽不通)의 후과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민주당에 없는 것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40.4%-자유한국당 지지율 27.9%'. 2019년 7월8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다. 황교안 대표체제 한국당의 '도로친박당' 우려가 커지던 시점이었다. 당시 황 대표가 '친박'의 옹립으로 영수(領袖) 자리를 꿰찬 데 이어 박맹우 사무총장을 비롯해 이헌승 대표비서실장,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 민경욱 대변인 등 친박계가 주요 당직에 포진해있었다. 중도 복원을 통한 외연 확장은 언감생심. 당내 여성행사에선 엉덩이 춤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어설픈 노이즈 마케팅에 정책 대안정당 이미지는 더 멀어졌다. 집권당인 민주당에선 "우리가 야당복은 있다"며 조소했다.그런데 웬걸. 3년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그때의 여당-야당과 지금의 여당-야당 정당 지지율이 판박이다. 비대위 내홍은 민주당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따지고 보니 민주당엔 없는 것들이 꽤 많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명색이 비대위인데 '비상'도 없었고 '대책'도 없었다. 밍밍한 비대위에서 비상시국을 돌파할 동력이나 구각을 깨뜨릴 혁신이 나올 리 없다.'개혁' 상징성은 비대위원장의 아이콘이다. 한데 대선 패배 책임이 있는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다? 쇄신을 하지 않겠다는 오기로 읽히기 십상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혁신의 징표인 양 26세 박지현을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얼렁뚱땅 내세웠지만 구색 맞추기 포장술로 비친다.민주당엔 반성이 없다.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주고도 "졌잘싸"? 환장할 노릇이다. 처절한 반성이 없으니 개혁의 씨가 뿌려질 까닭이 없다. 민주당에선 인적 쇄신이나 정책혁신이 침잠한 지 오래다. 박지현의 일리 있는 '586 용퇴론'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0.73%포인트 차 박빙 패배가 오히려 독이 된 형국이다.그리고 실력이 없다. 임대차 3법 같은 실없는 짓거리에 에너지를 낭비한 것도 무능의 소산이다. 뻘짓을 할 거면 차라리 무위(無爲)가 낫다. 혜안과 분석력도 없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대선의 패인을 정확히 짚지 못한다. 서울·부산시장 보선 참패 후엔 부동산 보유세 인하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전형적인 엇박자 정책이다. 외려 부동산가격 안정화 조치가 다수의 민심에 부합한다. 무능한 공수처 탄생의 주역도 민주당 아닌가. '검수완박'법에 대한 무리한 드라이브를 이해할 국민은 얼마나 될까.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국면에서 추경 증액을 고집한 저의는 뭔가. 민주당엔 신뢰가 없다. 서울·부산시장 보선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굳이 당헌당규를 고쳐가면서까지 후보를 냈어야 했나.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한 약속도 목하 뭉개는 중이다. 이러고서도 공당이라 할 수 있나.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경장(更張)이다. 글자 그대로 '고쳐서 확장한다'는 의미의 경장은 '묵은 제도를 개혁하여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거문고의 줄을 팽팽하게 조현하는 것도 경장이라 한다. 인적 쇄신과 정체성 혁신을 통해 민생정당, 실용정당,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당연히 싱크탱크 기능은 강화돼야 한다.팬덤정치의 유혹도 떨쳐내야 한다. 팬덤의 주문(呪文)에 갇히면 대중정당의 길은 요원해진다. 외연 확장은 '선거 필승' 공식이다. 협량정당으론 어떤 선거도 이길 수 없다. 6·1 지방선거 후 민주당의 원심력(遠心力)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어쩌면 이제 국민의힘에서 "우리가 야당복은 있다"며 표정관리 할지 모른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둥근 네모' 만들기 협치
'둥근 네모'를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실존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린 더러 '둥근 네모'란 말을 쓴다. 일종의 수사법(修辭法)이다. 의미상 양립할 수 없는 낱말을 함께 사용하는 어법, 즉 형용모순이다. 이를테면 '소리 없는 아우성' 따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슬픈 웃음' '미운 사랑' 같은 형용모순의 언어가 자주 등장한다. 인기 걸그룹 '블랙핑크'는 형용모순의 뉘앙스를 살짝 풍긴 상큼한 작명이다.요즘 정치권의 화두는 협치다. 한데 묘하게도 협치와 '둥근 네모'는 맥락이 관통한다. 여야의 각각 다른 주장 '원형'과 '네모'를 수렴해가는 게 협치여서다. 하지만 협치는 대화와 밀당을 통해 간극을 좁혀가는 지난(至難)한 과정이 필요하다. 협상이 성공하면 대개는 '둥근 네모'의 결과물을 순산한다. 윤석열 정부 협치의 첫 시험대는 한덕수 총리 인준안 가결과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로 결론 났다. '정호영+한동훈 낙마'를 포석했던 민주당의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둥근 네모'로 귀결된 셈이다.협치는 협주를 빼닮았다. 협주다운 협주가 등장한 건 바로크 시대다. 그전까지는 독주이거나 음색·음량이 비슷한 악기끼리의 협연이 고작이었다. 협주와 피아노의 등장은 중세 음악 생태계를 훨씬 다채롭고 풍요하게 만들었다. 협주는 음색과 음량이 전혀 다른 악기들이 협력하고 경쟁하는 구도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자기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호흡을 맞춰야 하니 너무 튈 수도 없다. 협주곡이 까다롭고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협주는 독주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영역의 소리를 빚어낸다. 협주의 묘미다.내친김에 협업 얘기까지 펼쳐 보자. 2015년 첫 방영된 '헌터(Hunter)'는 영국 BBC가 제작한 명품 야생 다큐멘터리다. 전 세계 포식동물들의 사냥 장면과 야생의 먹이사슬을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포착했다. 필자는 북극여우의 북극토끼 사냥법이 기억에 남는다. 북극여우와 북극토끼는 달리는 속도가 같다. 북극토끼는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있어 북극여우 한 마리가 북극토끼를 따라붙으면 절대 잡지 못한다. 하지만 북극여우 서너 마리가 협업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한 마리가 쫓고 양쪽에서 협공하면 북극토끼가 방향을 바꿔도 소용이 없다.하지만 아쉽게도 여의도 정치 현실은 협주와 협업의 솔루션을 장착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공히 배려·양보·협조의 기본 덕목을 갖추지 않아서다. 여소야대의 윤 정부는 협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협치"를 되뇐 이유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영국의 처칠과 애틀리의 협치를 예로 든 건 뜬금없고 생뚱맞았다. 처칠-애틀리 경우는 여대야소였고 연정을 했으며 전시였다. 지금의 우리 정치 구도와는 판이하다.흔히 협치로 윤색하지만 기실 협치는 거래다. 거래는 기브 앤드 테이크다. 때론 기술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거래는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왕 줄 거면 선제적이고 파격적이어야 한다. 이미 지나간 얘기이지만 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지명권을 야당에 넘겼으면 어땠을까 싶다. 협치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물론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 인사 전횡을 하지 않는다는 함의까지. 윤 정부 5년의 성공시대를 열 키워드는 '협치'다. 정책 및 인사에서 여야 합작의 '둥근 네모'를 양산해야 한다. 하지만 성상(性狀) 묘사의 언어 기법일 뿐 실제 '둥근 네모'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협치가 어려운 거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시장경제, 그 달콤한 마법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습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 중 필자가 눈 여겨 본 대목이다. 35번 언급한 '자유'와 함께 윤 대통령이 방점을 찍은 게 '시장경제'여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명징하게 설명한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이익을 챙기려한 덕분이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으로 귀결되며 사회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부(富)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성정이다. 물자의 유통 및 수요·공급 조절이 인간의 이익 추구와 시장의 자연지험으로 이루어지니 통치자는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동양판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미 2천년 전에 시장의 자율기능을 꿰뚫어 본 사마천의 혜안이 놀랍다. 미국의 보수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 아인 랜드는 "이기주의는 선, 이타주의는 악"이라고 말했다. 시장경제를 추앙하는 도발적 경구다.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활력을 추동하는 건 맞지만 지나친 이분법은 외려 섬뜩하다. 반론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통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일갈했다. 토머스 모어가 쓴 소설 '유토피아'는 공산(共産)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교육과 종교의 완벽한 자유가 갖추어진 공동체를 이상국(理想國)으로 묘사했다. 비시장적 가치와 공동선(善)을 강조해온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시장은 정의로운가'란 화두를 남겼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통째로 부정하긴 어렵다. 윤 대통령 말마따나 시장경제는 번영과 풍요를 창발했다. 세계 일인당 소득이 급격히 늘어난 때는 18세기 말이다.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확산이 변곡점이 됐다. 국가 간 교역은 국제분업을 촉진했고 분업은 생산성과 기술 숙련도를 고양했다. 자유무역은 소득 증가와 삶의 풍요를 가져왔다. 글로벌 시장경제의 마법이었다.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용성을 설파한 것도 그 즈음이다. 애덤 스미스의 절대생산비설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생산비설이 국제분업의 이론적 토대가 되면서 자유무역주의 사조는 더 빠르게 파급됐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는 비효율로 좌절했다. 1990년 들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규정했다. '역사의 종언(終焉)'이란 말의 탄생 배경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경제, 통제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승리였다. 중국의 경제대국 반전 모멘텀도 시장경제체제 도입 아니었나. 윤 대통령 취임사 속의 '경제적 자유' 상찬(賞讚)은 다시 시장경제의 궤도를 깔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옳은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주 시장 흐름의 물꼬를 틀어막곤 했다. 최저임금 급격 인상, 주52시간제 획일적 시행, 임대차 3법이 그랬다. 시장기능을 살리고 웬만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긱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자 확산 등 노동형태도 복잡다단해졌다. 획일적으로 근무시간의 선을 긋는 건 대량생산 시대에나 통하던 복고방식이다. 시간이 아닌 성과와 실적이 평가의 잣대가 돼야 한다. 연마된 개인의 역량·지식·스킬이 그래서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엔 왜 출퇴근 시간이 없을까. 연구개발이나 지식산업 분야엔 52시간제가 멍에일 뿐이다. 다만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정글자본주의, 극단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경제는 자유"를 외쳤지만 "정부 개입은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한 밀턴 프리드먼조차 '음의 소득세'를 주창하지 않았나. '음의 소득세'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일종의 기본소득이다. 다보스 포럼 창립자이자 자유시장주의 신봉자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시장경제체제에서 '사회통합'이 빠져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개탄했다. 자산·소득 양극화와 경쟁에서 도태된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자본권력을 향한 원망이 서려 있다. 한데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선 '통합'이 빠졌다. 왠지 마뜩잖다. 시장경제 기조를 지키되 자본권력의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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