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진부한 클리셰는 이제 그만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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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4 06:53  |  수정 2024-04-04 06:55  |  발행일 2024-04-04 제22면
트렌드 뒤처진 곳 정치 분야
표심 구애작전 변죽만 울려
예상 넘는 파격이 민심 포획
'정치적' 은유에 부합하는
유권자 '선택의 기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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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1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이 매년 출간하는 소비 트렌드 전망서 '트렌드 코리아'는 이미 스테디셀러다. 지난해 10월 나온 16번째 책 '트렌드 코리아 2024'의 첫 번째 트렌드는 '분초사회'. 시간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세태를 투영했다. 빠른 재생 속도로 영상을 보는 것도 분초사회의 단면일 것이다. 두 번째 트렌드 '육각형 인간'은 완벽한 인간을 말한다. 꽤 논쟁적이다. 예컨대 '육각형 아이돌'이라면 노래·춤·외모는 물론 학벌·집안·성격까지 좋다는 식이다. 세 번째 트렌드는 '호모 프롬프트'. AI 시대에도 인간의 역할과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시각이 깔려 있다.

트렌드에 뒤처진 곳이 정치 분야다. 표심 구애작전도 변죽만 울린다. 진부한 클리셰를 반복한다.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감세 포퓰리즘 따위다. 여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확대 등 일련의 감세 공약을 줄기차게 제시했다. 하지만 민심은 요지부동. 좀처럼 판세 반전의 동력을 마련하지 못한다. 베네수엘라식 선심 정책이 더는 먹히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이슈를 던져야 여론이 요동친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용 같은 파격 제안이 민심 포획의 한 방법이다.

트렌드 불감증이 민주당이라고 다르랴. 중국에도 대만에도 "셰셰" 하라고? 이재명 대표는 중국의 갑질 행태와 우리 국민의 반중정서를 정녕 모르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칠십 평생 이렇게 무능한 정부는 처음 본다"며 윤석열 정부를 겨냥했다는데 문재인 재임 5년 동안 나랏빚이 400조원 늘었고 부동산이 폭등하지 않았나. "정치를 개같이" "나베는 밟아야" 아류의 거친 언설 역시 정치를 저급하게 할 뿐이다. 미셸 오바마 여사의 경구가 문득 떠오른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저열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2 처칠은 "민주주의는 다른 제도에 비해 덜 나쁠 뿐이지 아주 나쁜 제도"라고 비판했고, 루소는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질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차선의 대안임에 틀림없다. 대의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다. 선거(選擧)는 글자 그대로 고르는 일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란 명언을 남겼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뜻이다. 민주주의 또한 선택으로 점철(點綴)된다. 이번엔 총선이다. 4년을 좌우할 선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에 따르면 후보 선택의 고려 사항으로 인물·능력, 정책·공약, 소속정당이 각각 29% 안팎으로 엇비슷했다. 하지만 대구경북과 호남은 '정당을 우선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정당 우선? 진부한 클리셰다. 정당 깃발만 보면 편법대출로 부동산 시장을 교란한 양문석 후보, 김준혁 같은 막말 후보를 걸러내지 못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비만 고양이' 정치인의 관성을 끊어낼 수 없다. 정치권의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 행태도 바루지 못한다.

'선택의 기술'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그 '정치적'에 내재된 함의 중 하나는 '지혜로운 선택'일 게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은유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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