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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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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이유
조사기관에 따라 차(差)는 있어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대체로 30%대 중후반이다. 이런 추세가 1년여 지속됐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 흐름은 '전고후저'의 경향을 띠었다. 전반기의 기대가 후반기에 실망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다. 윤 대통령은 '전고후저' 상궤를 벗어난다. 초반부터 바닥권이다. 왜일까.# 여론을 뭉갠다윤석열 정부는 출범 때부터 자주 여론을 거슬렀다. 국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용산 이전,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였다. 강제징용 배상안도 반대 여론이 59%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역시 84%가 반대했지만 일본 정부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김건희 여사 특검엔 국민 60%가 찬성했고,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국정조사도 63%가 찬성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특검과 국정조사를 강력히 거부한다. 반추해보니 윤 정부가 국민여론을 받든 사례는 KBS 시청료 분리징수가 고작이다. 지난해 대통령 인수위 사무실의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는 백드롭이 무색해졌다.# 과거회귀형 인사윤 정부 요직엔 유독 이명박 정부 출신이 많다. 검찰 출신과 더불어 2대 카르텔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김대기 비서실장, 김은혜 홍보수석,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태효 안보실 1차장 등이 대통령실에 포진해 있다. 내각에도 즐비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이종섭 국방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MB 청와대 참모 또는 장관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시즌 2"는 점잖은 표현이고 "MB 카르텔의 득세"란 직설이 의표를 찌른다.화룡점정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다. 이 후보자는 흠결이 많다. 이명박 정부 당시 언론계 사찰과 공영방송 장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 자녀 학폭 및 은폐 의혹,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다. 여론도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이 전 수석을 콜업했다. 방송 장악의 '스킬'을 높이 산 걸까.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현업단체들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 탄압 기술자의 지명을 철회하라"며 반발했다.#자의적(恣意的) 정책 뒤집기감사원이 지난달 20일 문재인 정부의 금강·영산강 보(洑) 해체 및 수문 개방 결정이 불합리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놨다. 경제성 분석의 타당성과 신뢰성 결여, 4대강 평가단 기획·전문위원회의 불공정한 구성을 이유로 들었다. 감사원의 전능과 파워 때문일까. 환경부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4대강 16개 보를 모두 존치하겠다"고 밝혔다.문제가 있다면 전문가 평가단을 구성해 보 해체와 존속의 편익을 다시 따져보는 게 순리다. 정당한 절차 없이 하루아침에 기존 정책을 뒤집는다? 국정 운영의 정석(定石)이 아니다. 2010년 이래 감사원의 4대강 감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결과가 달랐다. '그때 그때 다른' 정권 맞춤형 감사를 누가 신뢰하겠나. 보 설치 후 유속이 느려졌고, 부영양화로 수질이 나빠진 건 엄연한 서사 아닌가. '녹조 라테'란 말이 괜히 나왔을까.여론을 외면하며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없고, 과거회귀형 인사론 미래지향적 국정 철학을 펼칠 수 없다. 또 국가정책 전환에는 정당한 절차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극한기후, 극한정치
지난해 8월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시간당 141.5㎜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가공할 '극한호우'였다.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최대 강수량이다. 기상청이 올해 '극한호우'를 공식 용어로 채택할 만큼 폭우의 빈도도 잦아졌다. 기후변화 전문가 예상욱 한양대 교수의 말마따나 "이제 극한호우가 뉴노멀"인 모양이다. 극한폭염도 지구촌을 달군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데스밸리는 역대급인 53℃를 경신했고, 유럽 시칠리아는 48.8℃를 기록했다. 극한기후는 거대한 부메랑처럼 인간을 덮친다. 화석연료를 남용한 대가다. 극한기후의 재앙은 재난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물가를 자극한다.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2℃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이 9%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뉴노멀이 극한기후뿐이랴. 정치 쪽도 뉴노멀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극한정치다. 조선시대 붕당정치, 사색당쟁보다 더한 극단의 정치다. 여야 모두 이념 극지(極地)의 지지자들을 애호한다. 하지만 팬덤 몰빵정치는 위험하다. 극우·극좌의 확증편향이 상식과 이성과 법리를 뭉개기 때문이다. 여야 간 대화가 없고 협상이 없고 밀당도 없다. 협치와 협업이 사라졌다. 극한대립만 있을 뿐이다. 취임 1년이 넘도록 야당 지도부를 만나지 않는 대통령의 냉골도 어지간하다. 교집합지대가 없으니 정책의 공통분모 도출이 어렵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년간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7%에 불과하다. 역대 최악 '식물국회'다. 극한정치의 후과(後果)다. 국회가 국정 조율의 장(場)? 정쟁의 공간, 의원들이 팻말 들고 시위하는 장소로 눈에 더 익숙해졌다. '민주당 입법-대통령 거부권' 도돌이표 역시 극한정치의 일단이다.극한정치를 완화할 방책이나 변수는 없을까. 있긴 하다. 제3지대의 파괴력이다. 하지만 3지대가 꿈틀대긴 해도 아직은 지각변동을 일으킬 확장성과 구심력이 없다. 금태섭·양향자급(級) 신당으론 거대 양당 구도를 깨뜨리지 못한다. 중량감 있는 리더의 등장 여부가 관건이다. 무소속 후보의 의회 진출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다. 일본의 중의원·참의원이나 지방의회는 무소속 의원이 꽤 있다. 우리는 전멸 상태다. 그나마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탈당한(사실은 위장탈당) 의원이 거의 전부다. 정당 깃발만 보는 '묻지마 투표' 성향이 양당정치를 부추겼다. 인물과 능력을 우선하는 유권자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도 극한정치를 완충할 장치다. 당연히 양대 정당의 프리미엄과 지배력이 약화된다. 다당제의 초석을 놓고 막무가내식 후보 단일화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마크롱처럼 정당 기반 없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물론 결선투표제는 개헌이 필요하다.골디락스(goldilocks)는 과열되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상황을 뜻한다. 골디락스란 말엔 대립이 아닌 유화(宥和), 극단이 아닌 중립, 포용과 합리, 실용, 효율, 융합 등 다양한 함의가 녹아 있다. 극한정치를 물리고 '골디락스 정치'를 지향해야 할 때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대로 "정(正)·반(反) 대결을 지양하고 합(合)으로 모아져야" 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이 시대 정치판에도 유효하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누가 衆愚(중우)인가
고등 교육기관의 시원(始原)은 BC 387년 플라톤이 설립한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다. 아카데미아는 수학·천문학·철학 등의 교육을 통해 정치 지도자를 양성했다. 플라톤의 '철인통치' 이념을 실행했다. 엘리트주의에 경도된 까닭일까. 플라톤은 다수결 원칙의 민주주의엔 부정적 시각이 강했다. '폭민정치'라 비꼬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민주주의를 '다수 빈민의 정치'로 규정하며 스승을 옹호했다. 소피스트의 미혹과 말장난 또는 군중심리에 부화뇌동해 다수의 민중이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우(衆愚)정치'란 말이 탄생한 배경이다. 국민이 중우로 보이는 걸까. 송상근 해양수산부 차관이 지난달 "천일염 품귀 및 가격상승은 4~5월 기상여건으로 생산량이 줄어 생긴 문제가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호도를 넘어 혹세무민이다. 대형마트의 텅 빈 매대를 본 소비자라면 천일염 사재기의 실상을 다 안다. 천일염 품절이 후쿠시마 오염수 때문이란 사실을 모르랴.리투아니아에서의 김건희 여사 명품 쇼핑을 두고 대통령실이 블랙 코미디를 연출했다. 대통령실은 "호객 행위로 김 여사가 명품점에 들어갔지만 물건을 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명품점이 호객 행위? 오픈런은 봤어도 명품점의 호객은 금시초문이다. 명품점 5곳을 들르고 경호원들이 가게 입구를 틀어막았다는 현지 언론 보도는 거짓이란 말인가. 쇼핑한 게 들통나자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리투아니아는 주력산업이 섬유·패션이다. 김 여사의 옷가게 방문은 하나의 외교"라고 윤색했다. 국민 정서를 농락하는 궤변이다.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는 또 어떤가. 7년간 추진해온 주민 숙원사업을 국토부 장관이 마음대로 뭉개버린다? 대한민국이 이런 무대뽀 국가였나. 군부독재 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야만이다. 원희룡 장관은 판을 엎을 게 아니라 노선 변경의 정당한 이유를 설명했어야 했다.예타를 통과한 원안이 뒤집혔고 변경된 노선 종점 부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면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누가, 왜, 어떤 절차'로 변경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민주당의 거짓선동이라면 이 또한 밝혀질 것이다. 국정조사든 검찰이나 특검 수사든 감사원 감사든 가릴 계제가 아니다. 특히 감사원의 분발을 기대한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근태 같은 쪼잔한 사안에도 메스를 댄 감사원 아니었나.막말 DNA도 만만찮다. 검사 출신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은 "70% 이상의 국민이 문재인이 간첩이란 걸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에겐 '그 70%'가 중우로 보였을 터다. 후쿠시마 오염수나 사드 괴담보다 더한 막가파 곡설(曲說)이다.정부·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실업급여를 달콤한 '시럽 급여'로 희화화했다. '시럽 급여'라고? 우리 실업급여는 독일·프랑스·일본에 비하면 지급 기간도 짧고 지급액도 적다. '달콤한' 수사를 붙일 만큼 오달지지 않다.현대시민은 고등교육으로 무장하고 SNS로 정보를 공유하는 '포노 사피언스(Phono Sapiens)'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깨시민'들이다. 이들이 중우(衆愚)일까. 아니면 기상천외한 언행으로 국민 염장 지르는 대통령 친위대원과 위정자들이 중우일까.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행간 읽기'
'행간을 읽는다'는 말이 있다. 글이나 말에 감춰진 속내를 헤아려 낸다는 뜻이다. 심오한 은유(隱喩)에 대한 해석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가 "난 문화생활 누리며 윤택하게 살고 싶어"라고 말하면 배우자의 경제력을 중시하겠다는 암시다.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같은 기본적인 재무제표만으로 기업의 성장성과 현금 흐름을 유추하는 내공도 일종의 '행간 읽기'다.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스포트라이트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향한다. 그의 말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보자. 그로시 사무총장은 "IAEA는 오염수 방류를 권장하는 것도 승인하는 것도 아니다. 해양 방류는 일본 정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해양 방류가 최상의 방법은 아니다'는 함의가 숨어있는 듯하다. 'IAEA는 해양 방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실제 IAEA는 최종보고서 첫 페이지에 '보고서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떤 결과에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로시의 내밀한 의중을 연결할 만한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일본은 처음부터 IAEA 실무팀의 권한을 제한했고 다른 처리 방안을 평가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IAEA는 "국제안전기준 부합"이란 결론을 내려 사실상 일본 정부에 오염수 방류 면허증을 발급했다. 하지만 안전성 확신엔 몇 가지 필요조건이 따른다. 첫째, IAEA의 중립성과 검증의 완벽성이다. IAEA 분담금으로 따져본 힘의 기울기는 어떨까. 분담금 1·2·3위는 미국·중국·일본이다. 1·3위 연합이 2위보다 우세한 구도다.IAEA는 원자력의 안전과 평화적 사용을 촉진하고 감시·감독하는 기관이다. 해양 환경과 핵 오염물의 영향 평가는 주업이 아니다. 그린피스나 국제해사기구(IMO)가 IAEA와 함께 공동 검증했더라면 국제적 신뢰는 훨씬 높아지지 않았을까. 일본이 IAEA에만 검증을 요청한 저의가 궁금하다. 완벽성도 아쉽다. IAEA는 2차·3차 샘플을 분석하지 않은 채 최종보고서를 내놨고, 오염수 처리 결과만 평가했을 뿐 ALPS(다핵종제거설비) 성능을 검증하지 않았다. 둘째,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투명성이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높은 투명성을 갖고 국내외에 오염수 안전성을 정중히 설명하겠다"고 했다. 과학적 근거? 높은 투명성? 그렇다면 시료 채취는 왜 거부하나. 인접국과의 공동조사는 왜 받아들이지 않나. 이율배반이자 자가당착 아닌가.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지난주 해양방류 설비 합격증을 도쿄전력에 교부함으로써 방류 준비를 마쳤다. 방류 강행의 '행간의 의미'는 뭘까. 한국 국민의 반대(국민 84%) 따윈 아랑곳 않겠다는 독선과 오만이 읽힌다. 오염수 방류는 향후 30년 넘게 이어진다. 도쿄전력이 오염수 처리 기준을 지속적으로 준수하는 게 관건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가 후쿠시마에 상주해서라도 항구적 감시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일본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100년이 다 되도록 사과하지 않았고, 한국의 G8 편입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다. 해양 방류는 수증기 방출 등 오염수의 다른 처리 방법보다 비용이 저렴하다. 우리만 일본에 선의를 베풀 이유가 없다.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 요구는 인접국으로서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브라운수소로 탄소중립을 말하랴
# 1960년대의 과외=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선생이 넌지시 운을 뗐다. 과외비를 받지 않을 테니 과외 팀에 합류하라고. 당시 우리 반 학생 3명이 담임에게 과외를 받고 있었다. 담임선생의 의도는? 1등인 나를 포함시켜 과외 팀을 품새 나게 만들려는 포석 아니었을까.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단박에 "하지 말라"고 하셨다.# 대치동 정경=1980년대 누나가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에 살았다. 그때의 대치동은 여느 동네처럼 한적하고 평범한 아파트촌이었다. 그런데 웬걸. 지난해 우연히 들른 대치동은 사위(四圍)가 다 학원인 사교육 별천지였다. 대치동에만 1천609개(2023년 5월 기준·통계청)의 학원이 있다니. 거기서 극단적 선행학습의 현장을 목도했다. 초등 고학년생 몇 명이 영자신문을 보며 영어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사교육 망국병=가계의 사교육비가 식비와 주거비를 합친 것보다 많다니 '등골 브레이커'가 따로 없다. 사교육비 부담률 OECD 국가 중 1위, 2022년 사교육비 총액 26조원, 초·중·고생의 사교육 참여율 78%. '그레셤의 법칙'처럼 사교육이 공교육을 구축(驅逐)한 모양새다. 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하지만 방법, 시기, 과정, 대책이 모두 부실하고 옹색했다.# 입시 전문가의 탄생=대통령 발언이 즉흥적이란 비판이 나오자 충직한 신하들이 전문가 만들기 신공을 시전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입시비리 수사를 했고 조국 일가 대입 수사를 지휘했으니 입시 전문가"(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나도 전문가이지만 대통령에게 많이 배운다"(이주호 교육부 장관). '봉숭아 학당'에서나 나올법한 코미디와 아부 근성의 절묘한 조합이다. 기실 대통령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민본과 경세제민의 덕목에다 웅숭깊은 리더십을 갖추면 그만이다. 윤 대통령은 청약통장을 모르고도 대통령이 되지 않았나. # 타이밍 난조=입시정책은 급조하면 안 된다. 숙고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능 4년 예고제'를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는 10년 넘게 찬반토론을 거치고서야 시행됐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방향을 급선회하는 건 정책적 전횡이다. 세월호도 급변침하다 침몰하지 않았나. # 헛다리 짚기=내용도 허접하다. 검찰이 야당 인사 압수수색하듯 전광석화로 만들어진 대책이니 튼실할 리 만무하다. 교육개혁의 밑그림과 청사진이 없고, 올 상반기로 예상됐던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도 미뤄졌다. 수능 킬러문항 배제와 일타강사 때려잡기가 전부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조사4국까지 나서서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쇼잉(showing) 정치 냄새가 물씬 난다.# 'SKY 캐슬' 깨야=자녀 입시를 겪은 학부모라면 정부 대책이 헛다리 짚기라는 걸 다 안다. 단가가 훨씬 센 학종, 학생부 교과, 논술시장은 어떡할 작정인가. 대통령 한마디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비등하는 형국이다. 사교육 카르텔을 깨겠다고? 학벌주의와 'SKY 캐슬'의 벽을 그대로 두고 가능하겠나. AI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고 사교육 수요를 줄일 총체적 교육개혁이 절실하다.브라운수소는 석탄이나 갈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해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니 친환경에 역행한다. 정부의 임시변통식 사교육 대책은 브라운수소로 탄소중립과 수소경제를 말하는 격이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둥근 네모' 미국경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6월 FOMC(공개시장위원회)에 눈길이 간 건 유난한 언어의 수사(修辭) 때문이었다. 15개월 만의 금리동결을 두곤 '마침표 아닌 쉼표'로 표현했다.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연준의 속내가 읽힌다. '매파적 동결'의 맥락도 같다. 금리인상 시기의 동결은 '비둘기 행태'에 더 가깝지만 '매파적'이란 어휘를 썼다.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실제 요즘 미국경제가 형용모순의 성격을 띤다. '둥근 네모'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팔색조? 그만큼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활황과 경기침체의 빛깔이 공존한다.경제지표가 그렇다. 고용시장 과열이 잦아들었지만 소비는 강세다. 고용의 선행지표 격인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늘었으나 지난달 소매판매도 늘었다. 도무지 종잡기 어렵다. 물가도 안정권에 진입한 게 아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4%. 연준의 목표치 2%보단 한참 높다. 에너지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5.3%였다. 통상 인플레이션 시기엔 소비가 줄어드는 데도 소매판매가 증가했다. 미국은 GDP(국내총생산)에서의 내수 기여도가 월등하다. 연내 미국의 경기침체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35%에서 25%로 낮췄다. 그럼에도 연준이 기준금리 동결을 택한 이유는 뭘까. 퍼스트리퍼블릭은행과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여진이 숙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위기 불씨가 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법하다. 금융기관의 신용경색은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고 통화 회전율을 떨어뜨린다. 금리인상 효과와 흡사하다.미국정부의 부채한도 상향도 금리동결에 일조를 했다고 판단된다. 국채 발행은 민간 유동성을 흡수한다. 금리인상 효과를 유발하는 셈이다. 미국정부는 연말까지 1조달러가량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1조달러? 우리 돈 1천305조원(28일 환율 기준)이다. 내년도 우리 정부 예산이 670조원이라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6월 FOMC를 전후해 주식은 상승했고 채권은 약세였다. 채권시장의 우려와 주식시장의 낙관론이 중첩되는 장면이다. '둥근 네모' 같은 미국경제를 웅변한다. 기준금리 동결 효과가 주식시장에 선반영됐다는 시각이 많다.월가 등 시장에서 기대하는 시나리오는 '골디락스'다. 골디락스는 인플레이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에 육박하는 성장이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경제국면을 말한다. 물가 안정 속에 경제가 성장하는 최상의 그림이다. 하지만 5%가 넘는 고금리만으로도 경제주체들엔 압박요인이다. S&P500지수 PER(주가수익비율) 20배는 작금의 고금리 상황에선 정당화될 수 있는 밸류에이션이 아니다. 물가안정과 적정한 금리의 조합이 이루어져야 골디락스가 올 텐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어쨌거나 15개월간 긴박하게 전개됐던 긴축 터널의 막바지에 이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연내 금리를 인하할 공산은 희박하다. 오히려 추가 인상 쪽에 추(錘)가 기운다. 파월 연준 의장도 지난 21일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FOMC는 경제전망 요약에서 올해 말 최종 기준금리 중간값을 5.6%, 내년 말 최종 금리를 4.6%로 예상했다. 금리인하는 내년에야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연준이 또 한 번 매를 날릴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거대양당의 민심외면 증후군
# 잘못된 만남김건모의 히트곡 '잘못된 만남'이 아니다. 이재명-싱하이밍 회동 얘기다. 국민 67%가 두 사람의 회동을 "잘못된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발언이 무례하고 부적절했다.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한국은 후회한다". 겁박 같기도 하고 훈계 같기도 하다. 싱하이밍 대사는 중국 외교부 국장급. 중량감 있는 대사도 아니다. 한국의 제1야당 대표와 국장급 대사가 등치되는 장면에 유쾌할 국민은 없다.싱하이밍의 모두(冒頭) 발언을 유튜브로 생중계한 것도 민주당의 패착이다. "멍석을 깔아줬다"는 표현이 한 치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 국민에 팽배해 있는 반중 정서를 정녕 모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싱하이밍의 발언을 제지하지 않고 경청했다. '잘못된 처신'이다. 친명 정성호 의원의 말대로 "그 자리서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마땅했다. 이 와중에 민주당 의원들의 방중(訪中)은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이럴수록 대화가 필요하다고? 대화도 줏대를 세우고 때를 가려야 하지 않겠나. # 오염수, 전 정부 물타기 국민의힘의 전 정부 물타기도 가관이다. 성일종 의원은 "지난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ALPS(다핵종제거설비)를 검증해 성능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문 정부에서 검증했던 것을 부정하면서 어민을 사지에 몰아넣는 건 나쁜 괴담정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 의원들이 야당 시절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국민의힘은 불과 2년 전 야당일 때 주호영 원내대표, 원희룡 제주도지사, 성일종·이만희 등 수많은 의원이 오염수 방류에 적극 반대했다. 정말 낯 뜨겁지 않은가"(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 공동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84%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했다. ALPS 처리 후에도 원전 오염수의 스트론튬 농도가 기준치의 최대 2만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나. 문제는 국민 불안 해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오염수 안전에 대해 "과학엔 100%란 말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천일염 사재기는 불안 심리의 명징한 단면이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소비자들의 수산물 기피로 어민 피해가 현실화할 개연성이 농후하다.최상의 시나리오는 오염수를 해양에 투기하지 않는 거다. 하지만 일본은 막무가내로 방류할 태세다. 인접국 한국에 시료 채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주변국의 동의 없는 오염수 방류는 폭거다. 정부여당은 일본에 쓴소리 한마디 못 한다. 무위(無爲) 또는 방관이다. 이 역시 요상한 시추에이션 아닌가. 의뭉스러운 민심외면이다.# 질책과 감시 절실애덤 스미스는 1759년 출간한 '도덕감정론'에서 "이기적인 인간이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건 '공명정대한 관찰자'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럽의 살인범죄가 중세에 비해 35분의 1로 줄어든 소치도 '관찰자' 덕분이다. CCTV, 유전자 검사, 첨단과학수사 등으로 범인 검거율을 획기적으로 높였기 때문이다. 국민정서를 배반하며 헛발질만 해대는 거대양당에도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절실하다. 국민과 언론이 끊임없이 질책하고 감시하며 때론 선거로 심판해야 한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소통해야 吉하다
전쟁론의 고전, 리더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 CEO의 전략서, 기업경영의 보감(寶鑑)…. '손자병법' 수식어들이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병법서'라고 말했다. 전장을 누볐던 나폴레옹과 마오쩌둥은 '손자병법'을 늘 머리맡에 놓아두었다나. 6천자에 불과한 병서의 나비효과가 놀랍다. "천 번 읽으면 신의 경지에 오른다"는 극찬이 괜히 나왔을까.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제후 간의 전쟁을 직접 겪은 손자가 다양한 실례와 역사적 기록, 본인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엮은 전쟁 방법론이자 전략 실용서다. 문체는 간결하며 내용은 현실적이다. 현대사회에도 유효한 영감과 통찰이 곳곳에 번득인다. '손자병법'의 저류(底流)에 흐르는 화두는 소통이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상책(上策) 중의 상책으로 꼽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적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현군(賢君) 정조의 능행에 숨어있는 함의도 소통이다. 능행을 통해 민초의 고단한 삶을 살피고 어가가 쉬는 곳에서 백성들의 하소연을 경청했다. 능행정치였다. 정조 재위 24년간 무려 160회의 능행이 있었으니 그 빈도에서 정조의 애민사상을 가늠해 볼 만하다. 능행 횟수는 순조 재위 34년간 87회, 헌조 때는 15년간 37회로 줄었다. 또 정조는 자주 경연(經筵)을 열어 신하들과 소통했다. JTBC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잘못한 분야 두 번째로 '소통'을 꼽았다. 부지불식간에 '불통 대통령'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다는 증좌다. 하긴 그간의 행적이 웅변한다. 연초 신년회견이 없었고 취임 1주년도 기자회견 없이 넘어갔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당위성으로 내세웠던 도어스테핑(약식회견)마저 중단했다. 지난 3월 방일 후에 가진 윤 대통령의 23분, 5천700자의 프레젠테이션은 일방적 호소와 주장으로 일관했다. 반향과 감동이 있을 리 없다. 가전제품도 비스포크(Bespoke)가 대세 아닌가. 소비자가 말한 대로, 즉 소비자 주문형이 먹히는 시대다.손자가 강조한 적과의 소통은? 굳이 구분하자면 민주당과 북한이 정부여당의 적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 넘도록 여당 대표와 지도부를 만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가 피의자라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쨌거나 현직 제1야당 대표다. "형사피의자라도 만나야 한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진중권 광운대 교수가 "B급 영수회담"으로 표현했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재명 대표를 만나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윤활유를 쳤다.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때 "거야에 가로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데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때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하는 게 일상이었다. 윤 대통령이 정책 현안을 설명하기 위해 야당 의원에게 전화했다는 소식은 없다. 거부권을 반복해 여야의 정책 간극을 더 벌렸을 뿐이다. 북한과도 단절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킨 젤렌스키의 무기는 소통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국민에 녹아들고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지원을 끌어냈다. 한의학엔 통즉불통(通卽不痛)이란 말이 있다. 기혈이 잘 통하면 안 아프다는 뜻이다. 소통해야 국정 운영의 혈(穴)도 뚫린다. 소통해야 길(吉)하고 성(盛)하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정치 블랙홀
#1.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3월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운전기사 딸린 11~15인승 승합차 대여'라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예외조항에 착안한 '타다' 차량호출 서비스는 그렇게 무산됐다. "사실상 콜택시"라며 반발한 20만 택시기사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일까.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과 야당 미래통합당 모두 당론으로 '타다 금지법'에 찬성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달 1일 여객운수법 위반으로 고발된 '타다' 경영진과 법인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타다'의 승소는 국회의 패소"라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뒤늦게 반성문을 쓰면 뭐하나. '타다' 영업을 재개할 수도 없는데. '타다' 모회사 쏘카의 이재웅 전 대표는 대법원 무죄 확정 후 "정치가 혁신을 주저앉혔다"고 토로했다. 왜 정치가 혁신을 가로막나.#2. 정부가 지난달 전기료를 ㎾h당 8원 인상했다. 이마저 서민들에겐 부담이겠으나 천문학적 한전 적자를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1분기 한전의 ㎾h당 전력 구입단가는 174원, 판매단가는 146.6원이다.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2021년부터 올 1분기까지 한전의 누적적자는 45조원이다. 그럼에도 왜 소폭 인상에 그쳤을까. 정치권의 과도한 간섭 때문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3월 말 여론 수렴 필요성과 한전 자구 노력을 내세우며 전기료 인상을 보류했고, 5월에도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인상 최소화를 주도했다. 욕하면서 따라 한다더니 전 정부에 버금가는 포퓰리즘이다.한전의 자구책도 난감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송·변전망 건설을 늦춰 2026년까지 1조3천억원을 절감하겠다지만, 전력망 투자축소는 전력 품질 및 안전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전기공급 능력이 떨어지거나 대정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 6천500여 중소 협력사의 생존이 달린 전력 생태계는 또 어떡하나.자꾸 회피할 계제가 아니다. 총선 의식하지 말고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전기료 인상 외에 한전 경영을 정상화할 묘책은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고언을 곱씹어볼 만하다. "전기료를 인상하지 않으면 한전 적자가 커져 금융시장에 한전채가 나오고, 에너지 소비가 확대돼 무역적자가 커짐으로써 환율에도 영향을 준다." 시장경제는 윤석열 정부가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테제 아닌가. 전기료도 시장 논리에 맡겨라. 왜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나.#3.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도 요상하다. 7월 중 이전 기준과 원칙, 대상 공공기관을 밝히겠다던 국토교통부의 변심이 수상쩍다. 7월 발표는 어렵겠단다.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멘트에 '불편한 진실'이 녹아있다. "총선 같은 정치 이벤트는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표심과 직결된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 공개를 부담스러워하는 정부여당의 속내가 읽힌다.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우 위원장은 "연내 공공기관 2차 이전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긴 총선과 엮이면 선거 공약에 따른 지역 갈등이 분출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렇다고 공공기관 2차 이전 일정을 총선 후로 연기한다? 혼란을 확산할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500여 개로 거론되던 이전 대상 공공기관 수가 급작스레 줄어든 서사도 의뭉스럽다. 왜 정치가 공공기관 이전에 관여하나.정치가 혁신에 제동을 걸고 시장 흐름의 물꼬를 막고 균형발전을 훼방 놓는 꼴이다. 정치가 정책을 덮치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정치 블랙홀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분권' 장착해야 지방시대 열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찬과 혹평이 공존한다. 찬양하는 쪽은 경제적 성과, 비난하는 쪽은 정치 퇴행을 들먹인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박 전 대통령을 후하게 평가한 인물이다. "민주화는 산업화를 이룬 후에야 가능하다.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개발독재는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이라고 상찬했다. 이랬던 토플러가 2001년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란 보고서에선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한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체제가 지식정보사회에선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제안했다. 시대의 행간을 정확히 읽은 토플러의 이유 있는 변신이다. 미국·독일·스위스는 지방세 비중이 40% 넘는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다. 특히 국가경쟁력 세계 1위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스위스는 분권국가의 표상이다. 연방정부와 26개 주, 2천636개의 시·군으로 구성되며 지방정부는 주민투표를 통해 세율을 자체 결정할 수 있다. 스위스 경제학자 르네 프라이 교수는 "스위스는 지방정부끼리 끊임없이 경쟁하니 잘 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분권체제가 경제혁신의 엔진이라는 의미다.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21년 기준 9만3천달러다.국가뿐이랴. 기업도 다르지 않다. 일찌감치 분권과 수평적 네트워크의 효율성에 주목한 기업은 승승장구했다.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 애플과 구글이 대표적이다. 애플은 CEO 팀 쿡이 독단으로 정책 결정을 하지 않는다. 디자인 총괄, SW 개발, 마케팅 등 부문별로 의사결정권자가 나뉘어 있는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다. 개방적·수평적 조직문화는 구글의 특장(特長)이다.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한 이유는 권한 이양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였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 또는 공공 거래장부로 불리는 블록체인의 키워드도 정보공유와 분권 아닌가. 디지털 총아 NFT(대체불가토큰) 역시 소유권의 분점이다.한때 한강 이남의 최고 명문이었던 경북대가 서울 중위권 대학에도 뒤처진 현실은 지방 황폐화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1960년 20.8%에 불과했던 수도권 거주 인구는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다. 경기도 인구는 2002년 12월 1천만명을 넘어선 후 20년 만인 지난달 1천400만명을 돌파했다. 반면, 대구경북 인구는 500만명 아래로 내려앉았다. 중앙집권과 수도권 일극정책의 후과(後果)다. 서울·인천 뺀 경기도에만 26.6%의 국민이 살고 있다니. 이러고도 지방시대? 자치와 분권? 올해는 온전한 지방자치, 실질적 지방분권 시대를 여는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지방분권 개헌이 절실하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동시 지방분권 개헌 국민투표가 무산된 이래 분권 개헌 논의는 침잠했다. 이제 다시 불을 지필 때가 됐다. 현행 헌법엔 지방자치 관련 대목이라곤 117조·118조 달랑 두 조항뿐이다. 지방자치가 시행되지 않았던 1987년에 개정된 헌법이니 자치와 분권을 제대로 다뤘을 리 없다. 새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지방분권 국가임을 명시하고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주재정권을 담아야 한다.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로 다음 달이면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한다. 균형발전을 견인할 기회발전특구도 시동이 걸렸다.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실현될 수 있을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민주당의 불감증
'정언적(定言的) 명령'은 철학자 칸트의 도덕법칙이다. 조건이 따르는 '가언적(假言的) 명령'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무상(無上)명령이라고도 한다. 칸트는 도덕적 행위는 결과와 관계없이 행위 그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에 무조건 수행해야 하는 정언적 명령이라고 주장했다. 도덕이야말로 인간의 보편타당한 가치라는 확언이다. '정언 명령'에 패러디를 살짝 입히면 '닥치고 도덕'쯤 되겠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는 정치인의 도덕률을 소환한다. 민주당은 돈 봉투 전당대회의 여진이 숙지기도 전에 다시 '윤리의 덫'에 걸렸다. '코인 타짜' 김 의원의 투기 행각과 위선적 '서민 코스프레'는 청년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20~30대의 민주당 지지율이 순식간에 10%포인트가량 빠졌다.시대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닥치고 도덕'을 요구하지 않는다. 상식적 규범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누가 시비를 걸까. 하지만 김 의원은 상식의 궤도를 이탈했다. 정치자금법, 조세포탈 따위의 법적 문제를 차치해도 그렇다. 김남국의 코인 재테크는 '자산 불평등 심화를 막고 공정사회를 실현한다'는 민주당 강령과도 거리가 멀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다단계 사기"로, 최강욱 의원이 "짤짤이"로 폄하한 코인 아닌가.도덕 불감증에 민심 오독(誤讀)이 겹친 형국이다. 황당한 자기 합리화도 가관이다. "이준석이 가상화폐로 돈 번 건 괜찮고 김남국은 비난받아야 하나." 하지만 이 전 국민의힘 대표는 에어드롭 방식의 코인을 받지 않았고, 가상자산 과세유예 법안을 공동 발의하지 않았으니 이해충돌의 소지가 없으며, 국회의원이 아니므로 상임위가 열린 시간에 코인을 거래할 일도 없었다.민주당의 대응은 온정적이고 굼떴다. 여론이 악화되고 나서야 김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했다. 민심 불감증의 발로다. 24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선 국민 44%가 의원직 제명에 찬성했다. 야권 일각의 김남국 방어 기제는 궤변에 가깝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양이원영 의원), "진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방송인 김어준). 민주당은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진보의 자산인 도덕성을 이미 탕진하지 않았나. '진보=무능·깨끗' '보수=유능·부패'의 등식이 깨진 지 오래다. 요즘엔 성추행 사건도 터졌다 하면 민주당이다.민주당의 고질이 또 있다. 입법 불감증이다. 정책적 효율성, 민심의 공감, 여당과의 공조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법안을 쏟아낸다. '닥치고 입법'이다. 선거 셈법만 따지는 정치공학이 작동했다면 더더욱 난감하다.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 46만명의 표심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맞서는 도돌이표 정치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민주당 단독 처리를 불사한 노란봉투법, 방송법 개정안도 폭발력을 잉태한 뇌관이다. 민주당은 축조심의 없이 밀어붙인 임대차 3법의 민폐와 부작용을 반추해야 한다. 민생 법안에만 화력을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많은 재산을 소유한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세상이 인정하는 진리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다. 이런저런 불감증으로 허우적대는 민주당에 필요한 건 '강력한 쇄신' 아닐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검증단 아닌 시찰단이라고?
과거 경제부 기자 시절 기업 CEO들과 함께 소련과 동유럽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이들 나라는 한국과는 미수교국. 당연히 관광 목적의 입국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산업시찰단이란 명분으로 거침없이 동유럽을 누볐다. 소련의 섬유업체 등 산업시설을 둘러보긴 했어도 대부분 일정은 관광으로 채워졌다. 이를테면 산업시찰은 구색 맞추기였다. 시찰단이란 게 대개 그런 거다.정부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오염수 시찰단이 오는 23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등을 방문한다는데 시찰단이란 명칭부터 마뜩잖다. 시찰은 글자 그대로 '두루 돌아다니며 실지(實地)의 사정을 살피는 것'이다. 깊이 있는 조사나 검증을 할 수 없다는 제약이 깔려있다. 니시무라 일본 경제산업상이 한국 시찰단의 성격을 명확히 정의했다. "안전성에 대한 평가나 확인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참관'에 한정하겠다는 선 긋기다. 철저한 안전성 검증을 바라는 국내 여론과는 괴리가 크다. 정부는 "현장의 안전성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확인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료 채취 없이 안전성 확인이 가능하겠나. 일본은 시료 채취는커녕 관련 정보도 주지 않을 태세다. 무엇보다 일본은 7월로 예정된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을 연기하거나 철회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한국에 이해를 구하거나 공동 조사할 의향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일본이 기어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투명한 정보 공개, 완전한 안전성 검증,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동의다. 하지만 일본의 행태는 이들 조건에 부합하는 게 하나도 없다. 이런 계제에 검증단도 아닌 시찰단을 파견하겠다고? 들러리 서줄 일 있나. 어쩌면 일본은 "한국 시찰단이 안전성을 확인하고 갔다"며 왜곡할지 모른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말마따나 '면죄부 시찰단'이 아니라 '국민 검증단'을 보내야 한다.일본은 오염수의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처리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안전을 확신한다면 왜 주변국의 공동조사 제안을 거부하나. 켕기는 구석이 있나. 심지어 일본 국민의 52%가 해양 방류를 반대한다.정부가 오염수의 공식 용어를 '처리수'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때맞춰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오염 처리수'라고 쓰는 게 맞는다"며 거들었다. 여당 '우리 바다 지키기 검증TF' 위원장의 일본 정부 코드 맞추기가 눈물겹다. 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부는 줄곧 처리수로 표현해 왔다. 삼중수소와 방사성 탄소는 알프스 처리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세슘과 스트론튬, 아메리슘은 극소량만으로도 인체 피폭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처리수라는 순화어를 쓰지 못해 안달한다. 중국과 북한의 공식 용어는 '핵 오염수'다.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과거사와는 또 다른 현실의 문제다. 정부는 철저한 검증과 공동조사를 일본에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오염수는 물론 후쿠시마 인근의 해수, 어패류, 해조류, 퇴적물을 채취해 방사선량을 정밀 측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로선 '미션 임파서블'이다. 일본 정부가 시료 채취를 막고 있어서다. 과학적 안전을 주장하며 공동검증은 거부하는 야누스 일본의 속내가 아리송하다. SNS에 올라온 돌직구 한 줄이 뇌리에 꽂힌다. '물컵의 나머지 반을 오염수로 채우겠다는 건가.'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공천이 선거 좌우했다
"최고위원 회의 때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 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공천 문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보좌진에게 말했다는 녹취록 속의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발언 내용이다. 대통령실이 내년 총선 공천을 주도한다? 여당이 대통령실에 복속하는 역학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한다. "공천을 걱정하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기 위한 과장 섞인 내용"(태영호), "자기들끼리 한 얘기고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이진복).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안철수 의원도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 일 안 하면 아무 일 안 생길 텐데." 이진복 수석은 지난 3월 치러진 국민의힘 대표 경선 때 '윤심' 논란이 불거지자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며 안 후보를 압박했다. 안 의원이 똑같은 말로 되갚은 격이다. 역시 돌고 도는 게 정치다.비윤계 김웅 의원이 홍심(紅心)을 찔렀다.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면 당무 개입, 공천 개입이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니 이 수석을 즉각 경질하고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태 의원이 전혀 없는 일을 꾸며내 거짓말한 것이라면 대통령실을 음해한 책임을 져야 한다."녹취록 유출 경위도 미스터리다. 태 의원과 보좌진만의 내밀한 대화였다는데. "물의를 일으킨 그간의 발언이 대통령실과 코드를 맞추다가 벌어진 일"임을 강조하기 위해 태 의원 측이 벌인 자작극이란 소문도 나돈다.사태가 간단치 않은 건 '용산의 공천권 장악'과 '친윤 패권주의'가 불시에 노정됐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선 의정활동보다 대통령 옹위 전력(前歷)이나 충성도가 공천 잣대가 될 공산이 크다. 용산 심기만 헤아리는 '꼭두각시 정치'를 추동하는 구도다. 이러니 민심을 등에 업지 못한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자정·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걸까. 총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37%인 반면 '견제해야 한다'는 응답은 49%였다.(한국갤럽)늘 공천이 선거 결과를 좌우했다. '진박 감별사' '옥쇄 들고 나르샤' 소동으로 리더십이 붕괴됐던 2016년 새누리당의 예상 밖 패배, 당 대표와 공천관리위원회의 갈등이 폭발했던 2020년 자유한국당의 수도권 참패가 그러하다. 낙하산 공천과 찍어 누르기식 후보 낙점의 부메랑이었다. 이번엔 공천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 난 '어렵다'에 한 표다. 오히려 '찐윤 감별사'가 등장할 소지가 농후하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정치 혁신 방안으로 제시한 '100% 국민경선'은 딴 행성 얘기처럼 들린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초선 의원들은 거의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 예단한 것도 여당 공천에 얽힌 복잡한 속사정을 투영한다. 공천 불협화음이 신당 창당의 단초가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국민에게 행복 추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 설파했다. 대통령실과 중앙당이 좌지우지하는 하향식 공천은 권력 추구 정치의 또 다른 형태다. 공천 혁신 없이 국민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를 구현하긴 어렵다. 1인 권력에 집중되는 공천 패권구도를 혁파하려면 정당정치의 토양부터 정화해야 한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粉飾(분식)의 덫
2012년 대선 직전, 미국 타임스지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표지 모델로 싣고 'The strongman's daughter'란 제목을 달았다. 독재자의 딸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실력자의 딸, 강력한 지도자의 딸로 윤색했다. 'strongman'은 독재자, 실력자, 차력사 등 복수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자 타임스지는 온라인판에서 'The dictator's daughter'로 수정했다. 본의를 왜곡할 빌미를 아예 없앤 것이다. 'dictator'는 독재자 말고는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없다. 2023년, 이번엔 주어 생략 논란이다. 대통령실은 '일본 무릎' 발언의 파장을 예견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기사를 소개하면서 주어(저는)를 슬쩍 뺐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주어는 일본"이라며 바통을 받았다.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사전에 조율했다면 기막힌 공조체제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원문 녹취록 공개로 여권의 분식(粉飾)은 금방 들통났다. 대통령을 두호하려다 망신살이 뻗친 꼴이다.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도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의 '생얼'을 보여주면 될 텐데 분칠하고 싶어 안달한다. 그리 생색내고 싶을까. '핵공유' 파문도 성과 집착이 빚은 해프닝이다. '워싱턴 선언'은 미국의 핵우산을 더 강고히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핵공유는 아닐지라도 진전된 확장억제 조치라는 데 누구나 동의한다. 굳이 핵공유로 분칠할 이유가 없다.하지만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 신원식 의원은 "사실상 핵공유"라고 윤색했다. 기실 '사실상'은 온전하지 않을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미국은 '사실상 핵공유'란 말도 인정하지 않았다. "핵공유는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과 여당만 머쓱해졌다.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정리했다. '핵억제 동맹'이라고. 진솔하고 명쾌한 정의(定義)다.분식보단 실익이다. '핵억제 동맹'은 분명한 성과이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 확인으로 핵무장 여지를 우리 스스로 차단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일본은 일찌감치 핵연료 재처리를 용인받았건만. 넷플릭스의 4년간 3조3천억원 투자에 대한 공치사도 계면쩍다. 넷플릭스의 K-콘텐츠 투자 규모는 2021년 8천400억원, 지난해 6천억원이었고 올해는 8천억원을 확정했다. 매년 8천억원 투자는 떼놓은 당상이다. 그런데도 마치 윤 대통령의 역량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았나. '오징어 게임' 같은 인기 콘텐츠의 자력(磁力)이 없었다면 넷플릭스가 한국 투자를 결정했을까. '윤비어천가'가 지나치면 자칫 '숟가락 얹기'로 비칠 수 있다.한미 정상이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신설 등에 합의했지만 당장 우리 손에 쥔 건 없다. 정작 중요한 인플레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을 두곤 "긴밀히 협의하겠다"고만 했다. 한국기업에 대한 예외조항 설정이나 적용기간 유예 같은 실효성 있는 조치가 아쉽다.분식과 윤색은 때론 본질을 훼손한다. 실없는 화장술에 헛심을 쓸 계제가 아니다. 실익 챙기는 게 급선무다. 포장만 화려하면 뭐하나. 내용물이 허접하면 말짱 도루묵인걸.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이제 '지방정부'라 부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한데 지방정부는 아직 조직과 위상에 걸맞은 명칭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라고? 가당치 않다.국어사전엔 단체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일정한 조직체'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으로 풀이한다. 이와 달리 정부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행정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적시돼 있다. 시·도와 시·군은 집행부, 의회, 지방법원(지원)이 있으니 외양으로도 정부의 얼개를 얼추 갖췄다.그런데도 광역단체, 기초단체라니. 지방정부가 친목단체나 시민단체·경제단체는 아니지 않나. 지방정부를 단체라 하는 건 어폐가 있을뿐더러 격에도 맞지 않는다. 지방자치제를 도입한 민주국가 중 지방자치기관을 단체로 칭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일본 헌법엔 지방공공단체로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117조·118조 달랑 2개뿐이다. 그것도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표현했다. 법률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중앙정부와 중앙언론에선 '지방정부'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지방자치제가 처음 도입된 김영삼 정부 시절 학계와 지방언론에서 지방정부란 말을 쓰기 시작하자 중앙정부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예 지방정부란 호칭을 자제해 달라고도 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지방정부'가 보편적 언어로 착근되진 않았다. 여전히 '정부'는 중앙정부를 뜻한다. 분권국가의 정석이 아니다. 연방정부·주(州)정부로 구분하는 미국과 스위스가 벤치마크다. 김관용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2017년 경북도지사 시절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개칭하는 게 지방분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2020년 경기도지사 재임 때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추동력이 따라주지 않으면서 유야무야 됐다. 미국 미시간주 웨인주립대 심리연구팀이 1875년에서 1930년 사이에 태어난 변호사, 운동선수 등 다양한 직업군 1만명을 대상으로 이름과 수명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A자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73.4세로, D자로 시작하는 이름의 평균 수명 69.2세보다 4.2세나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A자 이름이 학교 성적도 더 좋다는 분석도 나왔다. A하면 A학점, 에이스(Ace) 같은 비교우위의 단어가 연상되는 만큼 이에 따른 피그말리온 효과일 수도 있겠다.금오공대, 안동대 등 비수도권 13개 국립대의 교명에 '국립'이란 단어를 붙일 모양이다. 교육부는 이들 대학이 신청한 교명 변경을 일괄 허용하기로 하고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교명 변경을 신청한 목적은 하나같다. 이름효과다. 국립대임을 널리 알려 대학의 위상과 신인도를 제고하겠다는 포석이다. 지방정부란 명칭 역시 지방정부의 격을 높이는 복안 아닐까.지방자치단체 명칭이 D자라면 지방정부는 A자 이름에 비유할 만하다. 지방자치단체란 애꿎은 호칭으로 지방정부를 관변단체쯤으로 격하시키지 말자.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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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탄력받는 정부의 의료 개혁…남은 숙제는 전공의 복귀와 의사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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