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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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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대선 블루', 배제해야 할 후보 1순위는?
'우울한 국민'이 확 늘었다. '평소 우울감을 느낀다'는 국민이 코로나 이전엔 4%였으나 코로나 확산세가 가팔랐던 지난달엔 20%나 됐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다. 또 하나의 블루가 있다. '대선 블루'다. '확 끌리는' 후보가 없어서다. 끌리기는커녕 뜨악한 후보 일색이다. 도덕성이 꽝인 데다 거짓말도 잘한다. 가족 리스크, 군 미필도 두 유력 후보의 공통점이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빗대 패러디하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후보들'이다. 그래도 뽑아야 한다. 차악의 선택? 그래서 '대선 블루'다.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란 경구를 남겼다. 삶의 철학과 위트를 함께 녹여낸 아포리즘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무릇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갈린다. 때론 그 선택이 개인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지 않았나. 차기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를 이끌 리더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라진다. 그런데 도덕성과 '심모원려(深謀遠慮)'를 장착한 후보가 없으니 우울할 수밖에.매력 후보가 없는 선거판에서 선택의 노하우는 뭘까. 흔히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 때 정답이 금방 눈에 띄지 않으면 정답이 아닌 것부터 지워나간다. 이를 대선에 원용하면 어떨까. 최악 후보부터 배척하는 방법이다. 도덕성이나 가족 문제 따위를 퉁친다면 무엇을 우선적으로 봐야 할까. 일단 국정농단의 소용돌이에 다시 휘말려선 안 된다. 부동산 폭등을 방치하는 무능 정권의 재림(再臨)은 더더욱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 5년만으로도 신물이 난다. 단연코 배제 1순위는 무능한 후보다.지도자의 능력이 왜 중요한가. 현대건설 여자 배구단을 보자. 현대의 올 시즌 성적은 경이롭다는 말로도 모자란다. 26일 현재 23승1패, 세트 득실 3.944로 압도적 1위다. 지난 시즌 꼴찌팀이 '마블 군단'으로 변신한 것이다. 스타 선수를 대거 영입했느냐고? 그렇지 않다. 외국인 용병 빼곤 선수 구성이 달라진 건 없다. 감독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이다. 강성형 감독이 펼친 리더십의 마법이다.무능의 푯대도 있다. 역량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낸 공수처다. 수사를 하는지 서류만 조몰락거리는지 도통 성과가 없다. 본업은 뒷전인 채 마찰과 갈등만 생산한다. 검찰·경찰이 다 하는 통신자료 조회도 유독 공수처만 사찰 논란에 휩싸였다. 처장과 차장부터 수사경력이 일천한 공수처라니. 애당초 기대가 무리였다. 백성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왜란과 호란도 선조와 인조의 무능에서 비롯되지 않았나.지난달 코로나 위중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원인 중 하나는 60~74세 고령층의 아스트라제네카(AZ) 접종이다. AZ는 3개월만 지나면 중화항체가 3%밖에 남지 않는 '물백신'이다. 대선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무능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다. 적어도 모더나·화이자 백신에 근접하는 후보여야 하지 않겠나.'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1980년대 금성사(현 LG전자) TV의 광고 카피다. 다소 진부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리드대학 입학 6개월 만에 자퇴한다. 그는 훗날 "당시엔 두려웠지만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5년 후 우린 스티브 잡스처럼 "나이스 초이스(Nice choice)"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희화화하는 대선
필자는 지독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땐 북한이 노동지옥이라고 확신했으니까. '천리마 운동' '새벽 별보기 운동' 따위가 북한의 연상(聯想) 단어였다. 하여 남한(대한민국)의 유복한 가정에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기며 나른한 행복감에 빠지곤 했다. 관제 용어 '멸공'이란 말도 자연스레 체화(體化)됐다. 당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남한보다 앞섰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어느 관종 재벌이 추억의 언어 '멸공'을 다시 소환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NS 계정에 '멸공'을 포스팅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덥석 물었다. 윤 후보는 이마트에서 장을 본 후 인스타그램에 '#달걀 #파 #멸치 #콩'을 올렸다. '달파멸콩'이라. 문재인 대통령을 깨부수고 공산당을 멸하자는 뜻이렷다. 반응은 엇갈렸다.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중 저자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렸다며 고무했다. 반대파는 군대도 안 갔다 온 자들이 철 지난 색깔론을 편다고 비아냥댔다. 윤석열 후보의 해명이 정치를 더 희화화(戱畵化)했다. '달파멸콩'이 정치적 메시지냐는 기자 질문에 집에서 자주 멸치 육수를 우려먹고 콩국을 해 먹는다고 말했다. 한데 윤 후보가 산 건 조림용 멸치와 검은 약콩이다. 조림용 멸치로 육수를 내고 검은 약콩으로 콩국을 만든다? 헷갈린다. 장계향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도 이런 건 안 나온다. 개취(개인취향)로 치부해야 하나. 윤 후보는 해시태그를 달지 않았다고도 했는데 그럼 인스타그램의 #멸치 #콩은? 해시태그가 뭔지 모른다는 말인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대선 희화화에 일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내가 비서실장 노릇 할 테니 당신은 선대위가 정한 대로 연기만 해 달라"고 윤석열에게 주문했다. 연기하는 대선 후보라니…. 레이건이면 몰라도. 기사에 달린 순공감 1위 댓글을 보고 빵 터졌다. 그 댓글을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제가 바봅니까? 제가 김종인 아바타입니꽈아 ~ ~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빼놓을 수 없다. 웹툰 제작업체를 방문한 이 후보가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는 웹툰을 보고 "제목이 확 끄는데"라고 말해 구설에 싸였다. 배우 김부선은 "옥수동 누나는 잊었어?"라는 글을 SNS에 올리며 이 후보를 겨냥했다. 실제 김부선이 이재명보다 나이가 많다. 홍준표 의원은 이재명 후보와 배우 김부선의 관계를 '무상연애'라고 냉소했다. "보수우익이 남녀 편 가르기로 나라를 찢으려 한다"는 이 후보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찢는다'는 말은 이 후보의 욕설 파일에 나온다.이렇게 품격 없고 담박하지 않은 대선이 또 있었나 싶다. 윤석열 후보 측에선 무속인 비선 논란이 다시 도졌다. '王자 손바닥' 파동과 천공스승으로 떠들썩하더니만 이번엔 건진법사가 등장했다. 국민의힘 선대위 네트워크본부 실세였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김건희 7시간 녹취록 공개는 정치 관음증을 부추기고 대선의 격(格)만 떨어뜨렸다.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황색 선거' 분위기가 물씬하다. 쥴리 명칭에 대한 그럴싸한 주석(註釋)도 나돈다. 원래는 주얼리(jewelry)였는데 자꾸 부르다보니 쥴리가 됐다나. 3·9 대선은 작품성을 중시하는 오페라와 달리 오락성에만 치중하는 통속적 오페레타 냄새가 풍긴다. 원두를 갈아 만든 드립커피가 아니라 후진 다방의 믹스커피 느낌이 강하다. 하기야 품격이 밥 먹여 주나.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의 도도한 향에 끌리지만 소맥 폭탄주의 장쾌한 맛을 잊지 못하듯 어쩌면 유권자들도 희화화하는 선거에 은근히 빠질지 모른다. 개그가 돼가는 대선, 후보 선택도 미궁에 빠지려나.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무능은 숫자로 노정된다
불변의 법칙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정립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수 이론의 창시자'로 불린다. 피타고라스는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수학적 체계와 공식을 도출했다. 더 나아가 수를 통해 초월적 진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전설의 수학자답게 피타고라스는 "수는 만물의 근원"이란 철언(哲言)을 남겼다. 피타고라스의 말대로 과연 숫자는 우리 일상을 관통한다. 만물과 만사(萬事)가 숫자로 꿰어진다. 심지어 사유(思惟)까지. #숫자는 역사다 3·1 독립운동, 8·15 광복, 6·25 전쟁,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 10·26 대통령 시해,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은 한국 근대사의 궤적이다. 민족의 질곡과 정치 부침(浮沈)이 오롯이 숫자에 꽂혀 있다. 왕조시대도 다르지 않다. 계유정난, 무오사화, 갑자사화, 임진왜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 따위도 기실은 숫자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조합 육십갑자는 사변(事變)이 일어난 연도를 가리킨다. 무오사화는 1498년 무오년, 임오군란은 1882년 임오년에 발발했다. 숫자는 경제다. 경기·고용·물가·통화·내수·수출·금리·세수·재정·GDP(국내총생산)·GNI(국민총소득)…. 거시지표든 미시지표든 숫자로 노정(露呈)된다. 숫자는 경제의 총합이자 가늠자다. 숫자는 권력이다. 여당의 독선과 입법독재는 180석이란 숫자의 힘이다.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는 의회민주주의의 함정이기도 하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2017년 대선 득표율은 41.1%. 하지만 국정 전체를 장악했다. 권력을 무한 증폭시키는 득표 1위의 마법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 24.0%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21.4%는 단 1%의 권력도 얻지 못한 채 허공으로 날아갔다.#숫자는 국정의 가늠자다기업의 경영실적이 재무제표에 투영되듯 국정 성패도 숫자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SNS에 나도는 '부동산 악몽 정권'이란 비아냥은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감 없이 웅변한다. 일단 너무 올랐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문 정부 출범 때 6억708만원에서 지난해 12억1천639만원으로 급등했다. 서울의 주택 중간가격 또한 중간 가구소득의 10.9배에서 18.5배로 높아졌다. 근로자들의 내집 마련에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이다. 다주택자를 경원했던 문 정부에서 다주택자가 20만명 늘어난 것도 아이러니다. 국가부채 급증도 문재인 정부의 죄업이다. 올해 국가부채는 956조원에 이른다. 문 정부 5년간 400조원 폭증하는 셈이다. 역대 정부 중 200조원 이상 늘어난 정부는 없다. 신기록을 세우는 거다. 가계부채인들 온전할까.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GDP의 104.2%. 2020년보다 6%포인트 높아졌다. 세계 주요 37개국 중 규모와 증가속도 2관왕이다. 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 등 8대 사회보험 재정도 급격히 악화됐다. 이뿐이랴. 공무원 수는 11만명이나 늘었다. 11만명은 문 정부 이전 20년간 증가분에 해당한다. 업적은 보잘것없이 공공부문만 비대해진 것이다. 부동산 폭등시키고 재정 거덜내고 연금개혁은 애써 외면하고. 멀쩡한 정부에 괜히 '무능' 피박을 씌우자는 게 아니다. 통계는 팩트다. 숫자는 진실을 말할 뿐이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점차 드러나는 윤석열 후보의 밑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의 지지율 변곡의 단초가 '삼프로TV'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프로TV는 경제전문 유튜버 채널이다. 여기서 이재명과의 우열이 드러났다는 의미다. 삼프로TV에 출연한 윤 후보에게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해 패널이 물었다. 윤 후보의 답변. "실력 있는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도 문제가 없지만 실력 없는 정부는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다." 그러곤 경제를 강에 비유하며 핵심과 동떨어진 언설을 잔뜩 늘어놨다.필자가 정리한 보수후보의 모범답안은 이렇다. "사마천은 이미 2천년 전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편에서 시장의 자율기능을 설파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도 시장의 순기능을 강조한 거다.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는 시장이 가장 민주적이라고 했다. 시장의 자율기능을 과소평가하거나 시장 흐름의 물꼬를 막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도 시장에 맞서다 화를 부르지 않았나. 집권하면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규제를 확 풀겠다. 다만 대기업의 독과점 및 골목상권 침탈, 중소기업 약탈은 정부의 조정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국민의힘 경선 토론회도 리뷰 해보자. 유승민 "주택청약통장 있느냐?" 윤석열 "집이 없어 만들지 못했다" 유승민 "집 없으면 청약통장 만들어야죠". 서울대에 가선 "'삼국지' 등장인물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닥터 지바고'를 읽었다"고 답했다. 대선 후보가 꼭 박학다식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청약통장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부동산 정책을 말하면 감동이 없고 구인·구직 앱을 모르면서 일자리를 언급하면 공명이 없다. 군 미필자의 안보 얘기도 무게감이 떨어진다. 국정을 짊어질 대선 후보라면 세계 최대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드인, 메타버스의 대세 로블록스 정도는 알아야 한다.잦은 실언도 그렇다. 원로 언론학자 최정호는 "말은 생각의 외출"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사람의 언어엔 그 사람의 철학과 사유, 지혜와 지식, 사관(史觀)과 인문학적 소양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윤 후보의 반복되는 실언, 단순 실수일까. 극빈하고 못 배운 자는 자유를 모른다고? 그럼 가난한 시대에 자유를 갈구했던 4·19 혁명은 왜 일어났나. 거친 언어는 품격을 훼손한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달 29일 경북 선대위 발대식에서 "이런 후보와 토론을 해야 하나. 어이가 없다. 정말 같잖다"고 격앙했다. 한데 '같잖다'는 저잣거리 언어 아닌가. "무식한 삼류 바보"라고도 했는데 이 대목에선 누가 삼류 바보인지 좀 헷갈린다. 토론 회피도 납득하기 어렵다. 박근혜도 2012 대선 때 토론을 기피했지만 윤 후보처럼 노골적으로 토를 달진 않았다. "수시로 말을 바꾸는 후보와는 토론할 수 없다" "대장동 특검을 받으면 토론하겠다" "확정적 중범죄자와는 토론 못 하겠다". 토론은 후보의 정책 비전과 국정철학, 도덕성을 국민에게 검증받는 자리다. 검증대에 서지 않을 요량이라면 대선엔 왜 출마했나. 확정적 중범죄자? 정작 피의자로 입건된 건 윤석열 후보 아닌가. 부인 김건희 허위 이력에 대한 윤 후보의 사과 장면도 생경했다. 준비해온 원고를 그대로 읽고는 질문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달랑 A4 용지 반 장 분량을 굳이 원고 보고 읽어야 하나. 필자는 대학에서 '외환론' '관세법' '신문편집실무'를 강의할 때 책이나 노트 한 번 보지 않고 3시간 연강했다. 국민의힘 지지자 중 70%가 후보 교체에 동의한다는 여론이다. 윤 후보는 반전의 동력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려면 밑천이 두둑해야 하는데….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궤변이 진실 윤색한다
'광우병 소가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 하겠다.' 2008년 5월8일자 주요 일간지에 등장한 광고 문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는데도 소고기 수입을 계속했다. 정부 관계자의 해명이 압권이었다. "광고 카피의 축약성을 감안할 때 '국민건강이 위협받을 때'라는 문구가 생략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강변했다. 지록위마급 궤변이라 할 만하다. 맥주 애호가 마르틴 루터는 종교라는 화두에 맥주예찬론을 그럴싸하게 버무렸다.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 잠을 잘 자고 잠자는 동안은 죄를 짓지 않으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호언했다. 종교개혁가의 맥주 예찬, 왠지 그럴 듯하지 않은가. 궤변일 뿐이다. 하지만 유쾌한 궤변이다. 궤변의 어원은 소피스트(sophist)에서 유래한다. 원래 소피스트는 기원전 5~4세기에 그리스에서 변론술과 지식을 가르친 인물을 지칭했다. 프로타고라스·고르기아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후일 소크라테스·플라톤 등이 "소피스트는 말하는 기술자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면서 평가가 달라졌다. 소피스트들은 '궤변을 일삼는 무리'를 의미하게 됐고 궤변학파라 불리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유(思惟)의 규칙을 벗어나는 논리의 조립에 의해 자기 주장에 맞는 결론을 끄집어내는 게 궤변의 본질이다. 말은 정치의 수단이자 강력한 무기다. 하여 유독 정치판에 궤변이 난무한다.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을 둘러싼 인식도 야릇하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허위가 아닌 부정확한 기재"라며 살짝 비틀었다. 20여 차례에 걸친 반복적이고 고의적인 허위 기재가 '부정확'이라고? 궤변이다. 부정확한 기재는 오기(誤記)와 동의어다. 김건희의 재직증명서와 이력서 등엔 성명(姓名)을 성명(姓明)으로, 주소(住所)를 주소(主所)로, portrait(인물화)를 portrate로 오기한 대목이 나온다. 이런 게 부정확한 기재다. 미술강사 이력을 미술교사로,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사를 서울대 경영학 석사로 부풀리는 식이면 허위가 맞다.교수 출신 국민의힘 의원 8명은 "민주당은 '김건희씨 허위 이력' 악의적 정치공작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버다. '없는 사실을 꾸며 만드는' 주작(做作)이 공작이다. 이미 드러난 허위 이력을 비판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게 어찌 정치공작인가. 민주당의 정치공작이라면 왜 김건희가 사과하나. MBC 3노조는 "뉴욕대 연수를 왜 연수라고 못하나"며 김건희 비난 보도에 딴죽을 걸었다. 한데 5일짜리 현장 견학을 학력란에 버젓이 기재하는 게 정상인가.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과거 호주 출장 때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성남시장 재임 당시엔 김 처장을 알지 못했다"는 이 후보의 말이 거짓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에 현근택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이 "악마의 편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사진을 보면 조작의 흔적은 없다. 물타기용 궤변이 아닌가 싶다. 진영논리나 확증편향에 집착할수록 더 많은 궤변이 쏟아진다. 진영 옹호 욕구는 논리의 조립을 통해 궤변으로 변질된다. 해괴한 신조어도 만들어 낸다. 세월호 사고 때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들먹인 '관저집무실'이란 말이 그렇다. 사적인 공간 관저를 집무실과 뭉뚱그릴 순 없다. 최순실을 '키친 캐비닛'에 비유한 것도 뚱딴지같은 궤변이다. 궤변이 횡행하면 진실이 가려지거나 흐려진다. 팩트가 통째 윤색되기도 한다. 궤변 발호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물색없는 윤석열표 '공정과 상식'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이 지난 6월 출사표를 던질 때 방점을 찍었던 화두가 있다. '공정과 상식'이다. 공정과 상식. 아무리 들어도 식상하지 않을 매력 언어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에 환멸을 느낀 국민에겐 치유제 같은 언어다. 지식재산권(IP)이 있다고 착각할 만큼 윤석열이 독점해온 언어다. '정치인 윤석열'의 값진 무형자산이다.한데 6개월 동안 '공정과 상식과 정의'를 도돌이표처럼 되뇌었지만 여태껏 방법론을 제시하진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겠다는 구체(具體)가 없다. 심지어 기자들은 1단짜리 짧은 기사 하나를 쓰더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란 육하원칙을 준수한다. 하물며 공정·정의 같은 거대 담론을 말할 때야 오죽하랴. 방법론이 수반되지 않은 '공정과 상식'에 공명(共鳴)과 감동이 있을 리 없다. 공정은 추상적 외침만으론 구현되지 않는다. 불합리한 법령을 개정하고 제도를 정비하고 권력기관을 개혁해야 가능하다. 국회는 비능률과 특권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고 계파가 지배하는 정당은 정치자금법과 정당법의 단물만 빨며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기소는 한때 불공정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공정과 상식'을 입에 달고도 윤석열 후보는 대선 출마 후 한 번도 정치개혁이나 검찰개혁을 언급한 적이 없다. 하기야 검사 출신 15명이 선대위 주요 보직을 과점하고 있는 윤석열 캠프 아닌가. 검찰개혁은커녕 검찰 공화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파문은 윤석열표 '공정과 상식'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윤석열 후보가 말했듯 김건희의 이력 전체가 허구이거나 완전 날조는 아니다. 엉성한 얼개에 '거짓의 살'을 붙인다. 이를테면 한국게임산업협회 비상근 자문을 기획이사 재직으로 포장하거나 한림성심대(2년제) 출강을 한림대(4년제) 출강으로 부풀리고 삼성플라자(현 AK플라자백화점 분당점) 건물 내 갤러리 전시를 삼성미술관 기획 전시로 분칠하는 식이다. 셀프 업그레이드다. 가공의 수상(受賞) 이력을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재직증명서 위조 의혹도 불거졌다. 사실이라면 업무방해 및 사문서 위조다.당사자나 국민의힘의 인식도 가관이다. 김건희는 진학에 쓴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강변했다. 진학용이 아니면 허위 이력도 무방하다? 어이가 없다. 윤석열 후보는 "시간강사 어떻게 뽑는지 잘 보시라"고 일갈했다. 시간강사 따위의 구직 이력서에 내용을 조금 부풀린 게 뭔 대수냐는 식이다. 대학강사에 대한 모독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대통령 부인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고 토를 달았다. 본인 아닌 가족의 하자(瑕疵)는 괜찮다? 그러면 조국 가족은 왜 그토록 가혹하게 탈탈 털었나. 이준석 대표는 결혼 전 일이라며 쉴드를 쳤다. 한데 모든 검증의 시제는 '과거'다. 2012년 총선에서 고령-성주-칠곡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받았던 석호익 전 정보통신원장은 "여자가 남자보다 구멍이 더 많다"고 한 오래전의 설화로 후보직을 사퇴해야 했다. 윤석열 후보가 '공정과 상식'을 곧추세우려면 주변부터 공정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member yuji'란 논문 제목 표기가 상식적인가. 가당찮은 핑계를 대며 논문 표절 심사를 뭉그적거린 국민대의 행태는 공정한가. 장모마저 부동산 개발 비리, 요양급여비 부정 수급 등 온갖 의혹에 휩싸여 있지 않나.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은 허울인가 '윤로남불'인가.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중원 장악해야 대권 거머쥔다
위나라 조조는 다재다능했다. 시부(詩賦)에 능했으며 병법에도 조예가 깊었다. 고대 병법가의 전술을 재해석하고 손자병법에 주석을 붙여 '위무주손자'란 병서를 편찬했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두호하는 듯 주무르며 차곡차곡 세력을 키운 현실주의 정치가였다.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해 관청의 재원(財源)과 군량미를 확충한 대목에선 행정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치세의 능신이자 난세의 간웅 조조는 "중원(中原)을 얻는 자 천하를 지배한다"는 어록을 남겼다. 실제 207년 대륙 북부를 통일한 조조는 여러 차례 남정(南征)에 나서며 중원 장악을 도모했다. 조조의 '중원 평정론'은 선거에도 유효하다. 역대 대선에서 중도층에 외면받고 등극(登極)한 전례가 없다. 2002년 대선, 이회창에 밀렸던 노무현은 단일화 승부수를 띄운다. 노무현이 겨냥한 곳이 바로 '중원'이다. 진보 후보와 기업인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는 중도를 흡인할 최적의 카드였다. 예상대로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정몽준이 선거일 하루 전 노무현 지지를 철회했지만 오히려 진보층 결집효과가 나타났다. 아마 단일화 시도가 없었다면 16대 대통령의 얼굴이 바뀌지 않았을까. 윤석열 후보가 기어이 김종인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끌어들인 것도 그의 중도확장력을 평가한 까닭이다. 선거 전략가들은 '중도확보=대선불패' 등식이 성립되는 이유로 중도층의 수적 우위와 유동성을 꼽는다. 중도층이 부동층(浮動層)과 딱히 부합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거의 포개지거나 겹쳐진다. 통상 진보·보수·중도의 비율은 3대 4대 3으로 나뉘고 부동층 비중은 35%에서 40%를 오르내린다.고령층이 특정 후보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데 비해 2030은 부동(浮動) 성향이 농후하다. 20대의 60% 이상이 이번 대선에서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진정한 스윙 보터다. 마치 부초(浮草) 같다고나 할까. 선거일에 임박할수록 진보와 보수층은 두꺼워지고 중도·부동층은 엷어진다. 3대 4대 3의 구도가 선거 막바지엔 4대 4대 2 분포로 변형된다. 중도와 2030 부동층이 어느 진영으로 더 수렴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의미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중원 쟁탈전도 흥미롭다. 청년 구애전략이 눈에 띈다. 이 후보는 19~29세 청년에게 연 100만원의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2030 세대를 대상으로 최대 1천만원을 연 3%의 저리로 융자하는 청년기본대출 공약도 내놨다. 윤석열 후보는 청년 재산형성에 초점을 맞췄다. 청년도약계좌를 도입해 연 250만원 한도 내에서 저축액을 보조한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MZ세대를 유혹하는 달달한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현금살포 전략이 표심을 견인할지는 미지수다. 뭐니 해도 청년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당면 현안은 집과 잡(job)이다. 실용과 합리주의로 채워진 2030이다. 일자리와 주거문제를 해결해낼 후보에게 끌리지 않을까.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윤석열 후보가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는 것도 중도 확장의 일환이다. 다만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일베 아류의 노재승 공동선대위원장 발탁은 명백한 패착이다. 극단적 이념성향이나 꼰대당·구태 이미지로는 중도·2030의 마음을 포획할 수 없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중도 확장 전략이 정치개혁과 인적 쇄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중도층과 MZ세대의 표심을 얻는다면 청와대 직행 티켓을 거머쥔 거나 진배없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惡貨(악화)의 良貨(양화) 驅逐(구축)을 경계한다
#장면1= IBK기업은행 배구단이 감독 경질 내홍에 휘말렸다. 외견상 세터 조송화 선수의 팀 무단이탈의 나비효과로 비쳐지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파벌과 알력과 나쁜 관행이 얽혀 있다. 상식적이라면 조송화는 물론 같이 팀을 이탈한 김사니 코치를 징계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구단은 서남원 감독을 경질하면서 김사니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겼다. 여론이 들끓자 김 대행이 자진 사퇴했지만 후폭풍이 여전하다. 일부 선수들이 감독을 쫓아내려 태업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식당에서 신참 선수가 선배에게 '국셔틀' 하는 영상까지 공개됐다. "은행 고위층 뒷배" 따위의 뒷말도 무성하다. 책임져야 할 기업은행 수뇌부는 숨어 있다. 윤종원 행장이 직접 사과하고 사태를 반듯이 정리하는 게 도리다.#장면2=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이름을 오미크론으로 정했다. 그동안 WHO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그리스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명명했다. 12번째 알파벳인 뮤 변이까지 이름이 붙여졌다. 원칙대로라면 13번째 글자인 뉴가 돼야 한다. 실제 오미크론 변이 발견 초기엔 뉴로 불려졌다. 하지만 WHO는 뉴와 14번째 알파벳 크시를 건너뛰고 오미크론으로 결정했다. 황당하고 작위적이다. 묘하게도 크시의 영어 표기 xi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Xi와 철자 및 발음이 동일하다. WHO는 질병 명명법을 따랐다는 허접한 변명을 늘어놨지만 시진핑을 배려한 꼼수라는 걸 누가 모를까. WHO의 대중(對中) 굴종은 낯설지도 않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시진핑 앞에서 조아리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역겹다.두 장면은 원칙과 상식을 뭉갠 정파적 행태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고 정실(情實)이 규범을 훼손했다. '그레샴의 법칙'은 금화와 은화처럼 귀금속으로서의 가치가 다른 화폐가 동일한 액면가로 유통될 때 가치가 높은 금화는 사라지고 은화만 유통되는 현상을 말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말로 표현된다. 구축은 몰아낸다는 뜻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불의가 정의로 둔갑하고 거짓이 진실을 덮고 무능이 능력으로 윤색되고 부정과 비리가 은폐되고 깜냥이 안 되는 인물이 득세하고 낡은 세력이 다시 준동한다. 정치판도 예외가 아니다. 대선을 기화로 구각(舊殼) 정치인이 발호하는 형국이다. 정치교체라는 시대정신은 침잠했다. 일부 '구태 기득권'은 대선 후보가 인증한 완장까지 찼다. 윤석열과 이준석의 갈등이 봉합되고 김종인이 합류했다. 하지만 미봉(彌縫)이다. 이를테면 '게젤샤프트 연합'이다. 주도권 다툼은 필연이다. 어떻게 귀결될까. 데이터·인공지능·블록체인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엔 거대 기회와 거대 위기가 공존한다. 미래 비전이 없는 '뒷북 정치'로 기회를 선점할 수 있을까. 100년 전 표준화된 거대 공장에서 대량으로 자동차를 찍어내던 '포드 자본주의'를 아직 고집한다면?과거회귀형 정치인은 독선과 권위의 정치문법에 향수를 느낀다. 그들이 테크니움(technium)의 개념인들 알까. 대선 승리 방정식도 달라져야 한다. 인적 콘텐츠가 바뀌지 않으면 정권교체를 해봐야 정치교체·정치개혁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나쁜 시나리오는 악화들의 작당정치로 양화를 몰아내는 것이다. 악화와 양화를 가려낼 유권자의 혜안이 필요하다. 음속(초당 340m)이 발버둥쳐봐야 광속(초당 30만㎞)을 따라잡지 못한다.<논설위원>박규완 칼럼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구도·인물·이슈로 짚어보는 대선 판세
내년 3·9 대선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갈리는 분수령이다. 정치지형의 변혁을 몰고 올 판도라 상자다. 여야의 명운을 좌우할 변곡점이다. 6월 지방선거의 풍향계이기도 하다. 석 달 남짓한 향후 대선가도엔 어떤 서사가 펼쳐질까. 양강 후보의 지지율 추이는 어떤 궤적을 그릴까.선거의 승패 요인은 구도·인물·이슈·조직·전략 등 대략 다섯 가지다. 당내 경선에선 조직이 승부를 가르는 절대무기였지만 대선은 4천만 유권자의 표심을 움직여야 하는 큰 선거다. 관제(官制)가 가능했던 '고무신·막걸리 선거'도 아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조직은 지역별로 강약이 뚜렷하면서도 전체적으론 호각지세다. 조직이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전략은 양 진영 모두 중도층·2030을 겨냥한 외연 확대로 방향을 잡을 듯싶다. 구도는 이념·세대·지역의 정치지형을 의미한다. 한국갤럽의 11월 유권자 성향 여론조사에서 "나는 보수"라고 응답한 국민은 30%였다. 진보 22%, 중도 33%, 15%는 유보한다고 답했다. 진보 비중은 박근혜 탄핵정국이던 2017년 1월 37%로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조국 사태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패에 따른 변심으로 분석된다.세대 지형 역시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하다. 40·50대만 이재명 후보 우세일 뿐 나머지 세대는 윤 후보 쪽으로 기운다. 우군이었던 20대가 보수로 돌아선 건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다만 20대는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부동(浮動) 성향이 60%다. 60대 이상은 보수색이 짙은 데다 거의 붙박이다. 윤석열은 지역별로도 광범위한 지지를 수렴한다. 호남만 확실한 이재명 우위다. 거기다 정권재창출보다 정권교체 여론이 훨씬 높다. 구도만큼은 윤 후보가 압도하는 형국이다.구도에서 불리하면 인물·이슈에서 만회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도 '구도의 불리'를 안다. 3박4일의 호남 행보를 보라. 민주당 텃밭에서 나온 이 후보의 발언들이 사뭇 공세적이다. "나는 실력·실천·실적 3실 후보, 윤석열은 무능·무지·무당 3무 후보다." 전국 시·도지사 평가 압도적 1위를 실력·실적의 징표로 내세우고, 실천에선 '이재명은 합니다'를 원용한다. TV조선이 주최한 국제포럼에서 이 후보는 프롬프터 없이 10분간 연설했다. 프롬프터가 뜨지 않아 2분 동안 침묵하며 두리번거렸던 윤석열 후보와 대조됐다. 지지율은 윤 후보가 앞서지만 '경제·부동산을 해결할 후보'로는 이재명 후보를 꼽은 국민이 많았다. 경제 능력에선 이 후보에 더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윤 후보의 리더십은 의문부호다. 김종인 영입에 실패했고 이와 맞물려 '문고리 3인방'의 전횡설이 나돈다. 딸 채용 비리 김성태 전 의원을 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으로 발탁한 건 청년 심기를 건드린 패착이다. 이 와중에 이준석 대표와의 불협화음이 폭발했다. '상극 케미'란 말까지 나왔다. 반목의 골이 깊었다는 방증이다.이슈는 주로 정책·공약·슬로건으로 만들어진다. 이슈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치고 나가는 루틴을 견지한다. 디지털 대전환으로 2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음식점 총량제나 주4일제는 너무 섣불렀다. 양 쪽 다 눈에 확 들어오는 슬로건은 없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같은 촌철살인의 구호를 제시하는 것도 이슈를 점화하는 방략이다. 선대위가 본격 가동되면 이재명표·윤석열표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거세질 것이다.구도는 윤석열이 절대 유리하고 인물은 이재명 다소 우위로 판단된다. 이슈는 아직 우열을 평가할 계제가 아니다.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다. 석 달의 전쟁, 승자는 누구일까.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종부세 폭탄이라고?
772조원. 이게 뭘까. 2020년 민간보유 토지 상승분이다. 한 해 동안 그들의 부동산이 무려 772조원이나 올랐다는 말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우리나라 내년 예산은 604조4천억원. 올해 본예산보다 8.3% 늘어난 규모이며 사상 첫 600조원 돌파다. 명실공히 슈퍼예산이라 할 만하다. 한데 그래봐야 772조원 발밑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총합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지난해 주택 소유자 중 상위 10%의 평균 집값은 하위 10% 평균 집값의 47배였다. 2016년 33.8배보다 더 심화됐다. 상위 10%의 집값이 1년간 2억600만원 상승할 때 하위 10%는 고작 10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부동산 불균형의 병폐이자 민낯이다.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종부세를 '폭탄'으로 규정하며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고 장기적으론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 말대로 '종부세 폭탄'은 팩트 일까. 종부세는 공시가격, 공정시장가액비율, 세율 세 가지로 산정한다. 올해는 이것들이 다 오르니 얼핏 세금 폭탄이 투하될 법하다. 하지만 서울 마포에 공시가격 11억6천만원 아파트(시가 15억~16억원)를 한 채 보유했다면 종부세는 20만원 정도다. 공시가 11억원 이하는 아예 종부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초고가 아파트라도 1주택이면 150% 상한선에 걸려 세금 인상이 제한적이다. 이걸 '폭탄'으로 치부한다면 언어 인플레라고 할 수밖에. 다만 조정지역 2주택자와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세 부담이 가중되는 건 사실이다.선진국은 어떨까. 미국은 주마다 세율이 다르다. 위스콘신주에선 6억원짜리 주택을 소유하면 1천만원가량의 재산세가 부과된다. 종부세는 따로 없다. 우리나라 6억원 아파트의 재산세는 100만원도 안된다. 보유세 실효세율은 영국·캐나다의 5분의 1 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치보다 훨씬 낮다.재정을 마구 풀어 국민의 환심을 사는 것도 포퓰리즘이지만 준거(準據) 없이 세금을 깎아주는 행태 역시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뭐라 해도 보유세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부동산 투기억제 수단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참패도 보유세 강화를 미적거리다 실기한 탓이다.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를 무력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해 투기 망령을 깨웠다. 부동산 폭등의 원죄가 있는 정당이 또 저지레를 할까 걱정이다. 부동산 안정화의 고삐를 죄지는 못할망정 덥석 잘라선 곤란하다.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지만 무주택자가 여전히 900만 가구를 웃돈다. 지난해 토지 소유주들이 772조원의 꿀물을 빨 때 무주택 서민의 부동산 소득은 제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들의 부동산이 오른 만큼 무주택자의 주머니가 털린 꼴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종부세를 폐지한다? "종부세 폭탄" 운운하며 부동산 상위 2%를 옹위할 게 아니라 무주택자의 경제손실 보전과 박탈감 해소에 정책의 핀트를 맞춰야 한다. 종부세 폭탄을 맞아 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서민들이 부지기수다.'불평등의 대가'를 저술한 조세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때로는 정치가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일갈했다. 윤석열 후보가 종부세를 폐지한다면 스티글리츠의 지적대로 정치에 의해 경제·사회 불평등이 심화하는 형국이 연출될 것이다. 상위 2%를 위한 세금 깎아주기 시전을 펼칠 계제는 아닌 듯싶다. 불로소득과 고질적 부동산 불균형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用賢(용현)과 知鑑(지감)
지난 9일 대구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8회초. 삼성의 셋업 우규민의 역투가 빛났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에 두산 타자들이 맥없이 물러났다. 한데 허삼영 감독이 투아웃 후 느닷없이 투수를 교체했다. 마무리 오승환은 홈런을 포함해 연속 4안타를 맞고 강판됐다. 우규민에게 8회를 온전히 맡겼으면 어땠을까. 반면, 두산 김태형 감독은 선발 최원준이 흔들리던 절체절명의 순간, 가장 강력한 불펜 홍건희를 올려 위기를 벗어났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미러클 두산'의 절대 동력은 김태형의 용인술이 아닌가 싶다.'군주의 조건'은 조선왕조를 이끌어온 군주의 행적과 결단을 통해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일목요연하게 추린 책이다.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왕들의 빛과 그림자를 통찰한 저자 김준태의 필치가 예리하고 묵직하다. 실록과 사료·고증을 바탕으로 조선 왕들이 펼친 리더십을 수신(修身), 의리(義理), 용현(用賢·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등용함), 공효(功效·공을 들인 보람이나 효과), 건저(建儲·왕세자를 정하는 일) 등 다섯 분야 33가지 덕목으로 정리했다.부득탐승(不得貪勝)이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으뜸이듯 군주의 첫째 덕목은 단연 용현이다. 용현의 필수조건이 지감(知鑑)이다. 지감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 부동산 폭등과 최저임금 폭주의 발화점도 용현 실패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빼다 박았다. 어설픈 수요억제책에만 매달린 것, 뒤늦게 공급대책을 마련한 것, 실패로 귀결된 것까지. 놀라운 건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부동산 얼개를 짰던 김수현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사회수석, 정책실장으로 또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다는 사실이다. 문 정부 출범 즈음 김수현은 "부동산 시대는 끝났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 문 정부 초기의 최저임금 무리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의 합작물이다. 장하성은 백면서생 교수 출신으로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김영주는 한국노총 간부 이력이 말해주듯 노조 편향이란 지적을 받았다. 두 사람이 등용될 때 이미 최저임금 참사가 예고된 거나 다름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용현 부실은 임기 내내 이어졌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부동산 헛발질을 반복해도 경질은커녕 계속 힘을 실어줬다. 문 정부의 반시장주의를 비판한 실용주의자 김광두 국가미래원장을 배척했고, 용렬한 김조원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했다. 김조원은 지난해 고위 공직자 1주택 소유 원칙에 반발하며 사표를 던진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다주택을 사수한 김 전 수석이 부동산 폭등의 단물을 빨긴 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기용도 문 대통령의 지감(知鑑) 결여와 무관치 않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배신당한 꼴이니까. 장제스의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망할 무렵 스튜어트 주중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도 '용인(用人)'이 나온다. '국민당은 용인에 문제가 많다. 임인유친(任人唯親·친한 사람만 요직에 기용함)이 지나치다. 전문성 없는 무능한 지휘관이 대세를 망치는 일이 빈번하다'. 장제스와 문재인의 코드 인사는 은근히 닮은꼴이다. 문 정부는 지도자의 용현(用賢) 실패가 국리민복에 끼치는 폐해를 적나라하게 노정했다. 또 무능한 정부가 들어서선 곤란하다. 대선 후보의 지감(知鑑)을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당심 후보'는 민심을 업을 수 있을까
'당심이 민심을 누른 선거, 조직이 바람을 이긴 선거, 당심과 민심의 역대급 괴리'. 국민의힘 본경선 얘기다. "국민 48%의 지지를 받고도 진 희한한 선거"라고 한 홍준표 의원의 말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당심을 흡인한 힘은 조직. 현역의원·당협위원장을 무차별 영입한 윤석열 후보의 세 불리기 전략이 주효했다. '독고다이' 홍준표의 당원 공략은 한계를 노정했다. 경선 후폭풍이 만만찮다. 2030의 탈당 러시는 '당심의 민심 역주행'의 불만 표출로 읽힌다. 국민의힘이 아니라 '노인의 힘'이라고 비아냥댄다. 6070의 윤석열 몰표 현상에 대한 노골적 반감이다. 윤석열에겐 '당심 후보'란 꼬리표가 달렸다. '당심 후보'의 정체성을 극복하려면 개인기가 받쳐줘야 한다. 한데 윤 후보는 민심을 유인할 만한 자력(磁力)이 부족하다. 정책 소구력이 특출하지도 않다. 대선 필살기는 혁신 능력, 정책 비전, 통합 어젠다 등이다. 윤 후보는 이것들이 아직 숙성되지 않았고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정치 감수성이 뛰어나거나 언변이 매끈하지도 않다. 잦은 실언에서 드러났듯 정치적 언어 구사와 대중 소통에 미숙하다. '새 정치' 이미지를 각인하지 못했고 정치 신인의 풋풋함과 신박함이 없다. '쩍벌남' '꼰대 보수'로 수식되기도 한다. 확장성의 비교열위도 아픈 대목이다. 어차피 6070과 대구경북은 보수의 철옹성이다. 중도층·2040으로의 외연 확장이 대선 승리의 견인차란 의미다. 윤석열 후보는 '당심 후보'다. '민심 후보'보다 확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경선 때처럼 조직의 신공(神功)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조직이라면 지자체장·국회의원이 수적 우위인 민주당에 외려 열세다. 조직을 넘어설 바람, 바람을 일으킬 동력이 필요하다. 윤 후보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거대한 부패 카르텔을 뿌리 뽑고 기성 정치권의 개혁을 하라는 것, 내 편과 네 편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통합하라는 것이 저의 존재 가치이고 제가 나아갈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기득권 같은 '정치 신입'이랄까. 왠지 정치개혁의 조타수 역할이 낯설다. 국민의힘 경선 때도 구태·땟물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나. 그중엔 각종 비리나 부동산 투기에 연루된 인물이 적지 않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들 '구태'를 파리떼로, 이준석 대표는 하이에나로 묘사했다. 타협 역량도 미지수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거야의 벽을 넘어야 한다.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과의 협치가 필수다. 정치철학과 역사관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윤 후보가 통합의 리더십을 펼칠 수 있을까. 중도층·2040 표심 공략의 절대 무기는 개혁이다. 윤 후보는 덕지덕지 땟국이 흐르는 캠프부터 혁신세력으로 교체해야 한다. 정책에도 개혁담론을 담아내야 한다. 부동산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이 진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수 대통령이 검찰·언론 개혁에 나서면 국민의 호응은 더 클 것이다. 개혁 궁합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으랴. 제1야당 대선 후보로 낙점됐지만 '윤석열표 정치'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아니 구태의연하다. 혁신 DNA가 보이지 않는다. 윤 후보의 본경선 국민여론조사 득표율은 37.94%. '당심 후보'의 민심 잡기는 가능할까. 막바지 4개월의 대선 여정이 흥미롭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윤석열 리스크'와 정치 감수성
금기어는 시대 상황을 웅변한다. 박정희 유신정권, 전두환 독재정권의 금기어는 '자유'와 '민주'였다.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가 매장된 시기였다. 지금처럼 쌍욕 섞어 국가원수를 비난하며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언감생심이다. 남산(서울)이나 앞산(대구)에 끌려갈 각오를 했다면 몰라도. 지난 10여 년 다시 금기어가 쌓였다. 세월호, 위안부, 5·18, 광주, 천안함, 전두환….윤석열 대선 후보의 생뚱맞은 '전두환 찬양론'. 왜 후폭풍이 잦아들지 않을까. 금기어를 들먹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반(反)전두환 정서, 호남의 역린을 한꺼번에 건드렸다. 서투른 어법도 반복됐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실무자의 실수였다". 어느새 윤 후보 측의 '해명 공식'으로 굳어졌다.#'사과의 기술'에 정면 배치일본의 변호사 겸 작가 다카이 노부오의 저서를 비롯해 '사과의 기술'이란 제목을 단 책은 꽤 많다. '△진심을 담아라 △빠를수록 좋다 △장난성 사과는 금물'은 대체로 공통적 내용이다. 윤석열 후보의 사과는 이 세 가지 원칙에 다 배치된다. 타이밍이 늦었고 처음엔 '유감'이라고 했다가 다시 '송구하다'며 질질 끌었다. '개 사과' 사진을 SNS에 올린 건 자책골의 화룡점정이다. 윤 후보 측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억지 사과' '국민 조롱'이란 화살을 피하긴 어렵다. 촬영장소를 두고 윤 후보와 캠프 간의 아귀가 맞지 않는 해명도 의구심을 키운다. '손바닥 王자' 소동 때도 서로 말이 엇갈렸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했다는 뜻이다.#정치선배를 향한 무뢰국민의힘 경선 토론회 후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 후보의 어깨를 치는 동영상을 봤다. "그만해라, 아 진짜"라고 하는 듯한 입 모양이었다. 정치신인으로서의 겸억(謙抑)은 보이지 않았다. 검찰·정치 대선배에 대한 무뢰로 비쳤다. 토론회에서 자주 태클을 건 정치선배 유승민 후보를 향한 공박도 거칠었다. "이런 정신머리 바뀌지 않으면 당 없어지는 게 맞다." 당을 없앤다? 누구 마음대로? 붙박이도 아닌 입당 100일의 초보가 입에 담을 말은 아니다. 윤 후보에겐 '새 정치' 이미지가 아예 없다. 기존의 여의도 정치문법을 답습하기 급급하다. 매머드급 캠프에다 전·현직 국회의원이 대거 몰렸지만 참신성은 한참 떨어진다. 구태 정치인도 쉽게 눈에 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왜 "마치 기득권 같다"고 비아냥댔을까.#실언·망언 퍼레이드'1일 1실언' 말이 나올 만큼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주 120시간 노동, 대구 민란 발언, 저소득층 부정식품 선택권, 손발노동은 아프리카나 한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없다, 남녀 건전한 교제 막는 페미니즘, 청약통장 모르면 치매환자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정치초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비슷한 시기에 등판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망언으로 입길에 휘말린 적이 있나.예술인의 성공조건으로 흔히 예술적 감수성을 꼽는다. 끼, 감각, 재능 따위를 아우르는 말이다. 정치인에게도 감수성이 중요하다. 윤석열 후보의 잦은 실언과 구차한 해명, 몸에 밴 듯한 무뢰도 정치적 감성 결여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전두환은 광주시민 학살자이자 민주주의 파괴자다. 어떤 이유로도 전두환 찬양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는 잘했다? 독재자를 향한 낯 뜨거운 헌사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대선 점령한 레닌식 정치문법
블라디미르 레닌을 수식하는 관형어는 많다. 마르크스주의 실천가, 러시아 공산당 창설자, 소비에트연방 창립자, 국제노동운동 지도자, 사회주의 실패의 원흉….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 후의 권력다툼에서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를 누르고 임시정부를 전복시킨 볼셰비키의 두령(頭領)이기도 하다. 계급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역 레닌이 교조처럼 섬긴 경구가 있다. "적에 이로운 건 내게 해롭고 적에 해로운 건 내게 이롭다."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한 레닌 율법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우리 대선 주자들도 레닌의 정치문법을 터득한 양 사뭇 적대적이다. 대통령이 되면 상대를 감옥 보내겠단다. 마타도어와 네거티브를 마다않는다. 거기다 안하무인에 오불관언까지. #후흑의 정치학후흑(厚黑)은 두꺼운 얼굴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의 합성어다. 1912년 이종오가 쓴 '후흑학'이 중국에서 출간되자 온 대륙이 들끓었다. 후흑학 열풍은 중국인의 국민성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래 제왕학에 기초한 '중국 통치학'이란 평가가 있지만, 기실 후흑학은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다. 일부 대선 후보의 궤변과 거짓, 무뢰(無賴)와 기이한 행태는 영락없는 후흑이다. 어쩌다 항문침 논쟁까지 벌어지나. TV토론에서 오리발을 내미는 언행도 다반사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거짓말은 엄연히 공직선거법 위반인데도 말이다. 범죄 연루 의혹을 받는 후보의 높은 지지율도 불가사의다. #정치 부족주의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는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인종이 미국의 빈민을 갈랐고 계급이 미국의 백인을 갈랐다"고 진단했다. 탈레반 세력인 파슈툰족을 비롯해 14개 부족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분열과 비극의 단초는 정치 부족주의였다. 우리 정치판도 부족주의 성향이 강고하다. 정당 색깔과 계파가 피아(彼我)를 구분 짓는 잣대다. "홍 선배님, 우린 깐부 아닌가요?" 윤석열 후보의 이 말, 부족주의에서 발로되지 않았을까. 민주당 이낙연 후보 측의 경선 불복 소동도 정치 부족주의가 빚은 촌극이다.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진영논리 역시 레닌식 정치문법과 부족주의의 산물이다. 유권자 파벌주의도 심각하다. '대깨문' 외에 이제 '대깨명' '대깨윤'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동질주의와 집단본능에 천착하는 부족주의는 정치 진화의 저해 요인일 뿐이다. 우두머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들쥐 레밍 무리의 말로를 보라. #역대급 비호감 대선내년 3·9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다. 호감도가 더 높은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윤석열·이재명 두 유력 후보의 비호감도가 특히 높다. 아예 유권자들이 '최선'을 선택할 수 없는 구도다. 어쩌면 비호감도는 선거 판세를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일지 모른다. 지난해 4·15 총선서 참패한 미래통합당도 선거 막판에 비호감도가 치솟았다. 마키아벨리는 "저열한 군중은 저열한 정치에 끌린다"고 말했다. 의역하면 면후심흑 정치인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거짓부렁 후보·뻔뻔한 후보를 솎아내라는 메시지다. 다행히 우린 사변적(思辨的)이며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깨시민'이 절대 다수다. 종국엔 국민 집단지성이 작동하리라 믿는 이유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이재용 역할론' 세 개의 미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한 국민여론은 우호적이었다. '70% 찬성'이란 여론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파격'과는 거리가 먼 문재인 대통령이 결코 가석방 결단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민단체와 정의당은 가석방마저 강력히 반대했다. 그때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게 반도체와 백신이다. 은근히 '이재용 역할론'을 압박했던 셈이다. 필자도 '이재용 사면의 효용성'(영남일보 4월29일자)이란 칼럼을 통해 이 부회장을 구치소에 계속 유폐하기엔 한국경제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슬슬 기지개를 켜는 걸까. 이재용 부회장이 대외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달 14일 김부겸 총리를 만나 삼성소프트웨어아카데미의 디지털 인력 양성 등을 통해 3년간 3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8월 발표한 삼성그룹의 직접 고용 4만개를 포함해 모두 7만개의 일자리를 책임진다는 의미다. 대미 투자도 탄력이 붙었다.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건립지가 조만간 확정된다. 텍사스주 오스틴 또는 테일러가 유력하다. 글로벌 맹주 TSMC의 점유율 확대에도 불구하고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 달성'도 계획대로 밀어붙인다. 메모리 분야에선 초격차를 더 벌린다는 복안이다. 확정된 투자액만 240조원. 웅비하는 삼성의 야심이 야무지다.가석방에 덧대 이재용에게 주어진 미션이 '반도체 초격차'와 '백신 백기사' 역할이다. 정부의 암묵적 요구였다. '보릿고개'를 넘겼지만 백신 수급 상황은 아직 빠듯하다. 이재용인들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으랴. 하지만 길이 없진 않다. 마침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 위탁생산에 돌입했다. 국내에서 생산하니 우리나라에 우선 배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모더나 동의 없이 빼돌리면 그게 탈취고 착복이고 횡령이다. 코로나19가 들불처럼 번질 때 다급해진 인도가 그 짓을 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면 대응방식이 달라야 한다. 고차 방정식으로 풀어야 한다. 경제 세상에서 불변의 원칙이 시장 논리다. 삼성이 생산 효율을 확 높이면 모더나와의 협상력이 높아진다. 증산분의 우선 공급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반도체·가전 제조로 연마하고 숙지한 삼성의 생산공정 노하우는 세계 최고봉이다. 지난해 마스크 대란을 겪을 때 삼성 생산관리팀이 마스크 공장의 제조공정을 개선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경험도 있다. 반도체와 백신 말고도 이 부회장이 해결해야 할 묵직한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이건희미술관 건이다. 대구로선 중요하고 민감한 현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미 이건희미술관 건립 부지를 서울 송현동 또는 용산으로 결정했다. 공모 방식이 아니었다. 전국 40여개 지자체의 여망을 뭉갠 문체부의 일방적 폭거였다.황희 문체부 장관은 "삼성가의 의중을 반영했다"며 슬쩍 책임을 떠넘겼다. 이건희 유족이 이건희미술관 부지를 서울로 요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유족이 미술관 건립 장소를 특정했다면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이란 취지는 흐려진다. 유족 의사와 관계없이 삼성가 핑계를 댔다면 황희 장관의 망발이자 횡포다. 이대로라면 이건희미술관 부지는 올 12월쯤 서울로 최종 확정된다. 여기에 제동을 걸 인물은 이재용뿐이다. "삼성가는 이건희미술관 건립 장소에 개의치 않는다. 공모 방식이면 더 좋겠다." 이 말이면 족하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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