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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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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국민의힘의 자폐증
중세 유럽 패권을 장악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은 왕가 중의 왕가로 꼽힌다. 600년 영화(榮華)의 시간과 유럽 전역을 지배한 공간적 배경이 빚어낸 신화가 있다. 그런 합스부르크 왕가도 치명적 결함이 있었으니 순혈주의, 근친혼의 폐쇄성이었다. 알다시피 근친혼은 열위 유전자를 낳는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후대로 내려올수록 자손들이 병약하고 트레이드마크였던 주걱턱 현상이 더 심해졌다. 가문 내에서만 배우자를 선택한 순혈주의의 후과다.국민의힘도 합스부르크 왕가 못잖다. '친윤' 순혈주의에 집착하며 쓴소리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폐쇄성이 은근히 닮은꼴이다. 지도부마저 친윤·영남 일색 아닌가. 행동대 격인 '윤위병(윤석열+홍위병)'까지 장착했으니 구심력은 차고 넘친다. 원심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도다. 확장성을 추동할 힘이 위축됐다. 지도부의 태생적·이념적 한계도 한몫했다. "제주 4·3 사태는 김일성 지시로 촉발된 것"(태영호 최고위원), "전광훈 목사가 우파 천하통일 했다"(김재원 최고위원). 가짜 뉴스에다 이승만 띄우기까지. 극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홍준표 대구시장을 당 상임고문에서 해촉한 것도 당의 폐쇄성을 노정한다. "욕쟁이 목회자 전광훈과 단절하라"는 홍 시장의 지적은 정곡을 찔렀다. 당의 외연 확대를 위해서도 전광훈 목사를 손절해야 마땅한데 김기현 대표는 생뚱맞게도 홍 시장을 타격했다. 영점 조준을 잘못했을 리도 없고. 하기야 전광훈을 이사야라고 치켜세웠던 김 대표 아닌가.충신과 충성파.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천양지차다. 충신은 주군에 쓴소리를 하지만 충성파에겐 금기다. 주군 의중에 주파수를 맞추는 데는 능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진 못한다. 충성파의 루틴이다. 김기현 대표는 충신일까 충성파일까. 그의 언동을 복기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대통령이 여당의 공천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두 번씩이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고개를 90도 꺾어 절했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 때도 그랬고 일본에 가는 대통령을 배웅하는 공항에서도 그랬다. 왕조시대의 군신 관계? 하여튼 얄궂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충성파가 국민의힘의 대세이고 주류니. 비판의 날을 세운 이들은 예외 없이 변방으로 밀려났다. 자폐증에서 비롯된 뺄셈정치다. 유승민 빼고 이준석 빼고 안철수 빼고. 이제 홍준표마저 뺄 참인가.김 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사 군단'의 낙하산 공천 소문은 유령처럼 정가를 맴돈다. 검사 군단이 입법부로 입성해야 비로소 '국민의힘=윤석열당' 등식이 완성된다. 하지만 검사 공천을 포용할 아량 있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총선 폭망의 공식이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정당의 바운더리와 정치적 오지랖은 넓을수록 선거에 유리하다. 한데 국민의힘은 당 대표 경선 때 이미 '당원 100% 룰'을 만들어 스스로 확장성을 차단했다. 총선이 다가와도 자폐 증상은 치유될 기미가 없다.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이라더니 '비윤'을 배척하고 쓴소리엔 발작적 반응을 보인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중도층과 무당층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국민의힘은 비대칭적으로 강해진 구심력이 자폐증을 촉발했다. 지금은 뻗어가려는 원심력이 절실하다.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대가 선거 필승 방정식이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이름이 뭐라고
"이름이란 뭘까.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똑같이 달콤한 향기가 날 것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2막 1장에 나오는 대사다. 셰익스피어의 판단이 맞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장미에 곱지 않은 이름이 붙는 장미에서 느끼는 향기는 반감된다. 우리가 장미 향기를 맡을 때는 장미라는 이름에 함축된 의미도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장미 대신 가시풀이란 이름을 붙인다면? 똑같은 향기를 발산하더라도 체감향기가 달라진다고 한다.중국 후난성 다융시는 1994년 4월 장자제시로 도시 이름을 바꿨다. 다융시는 명칭 변경 전까진 변변한 도로 하나 없는 낙후된 도시였으나 개명 후 공항이 생기고 철도가 깔렸다. 성도 창사와 연결되는 고속도로까지 건설됐다. 관광수입이 늘어나며 장자제시의 재정이 탄탄해진 덕분이다. 이름 변경이 신의 한 수였다.브랜드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다. 2012년 한 일간지에 '우리나라에는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브랜드'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Boggi'는 현지 발음을 그대로 옮길 경우 여성 신체의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원색적 용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3년 이 브랜드는 서울에 입성했다. 발음을 살짝 비틀어 '보기'라는 명칭을 사용했기에 별다른 파문은 없었다. '봇찌'와 '보기' 두 이름을 두고 고심했다고 한다. 나름 기지를 발휘한 셈이다. 우리나라 정당은 이름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다. 거대 양당 다 개명 이력이 현란하다. 주로 정권교체기나 위기 때 문패를 바꿨는데 정체성 세탁과 이미지 변신을 위한 노림수였다. 국민의힘은 모태라 할 수 있는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에서 시작해 3공화국 민주공화당, 5공화국엔 민주정의당으로 바뀌었고 노태우 정부 때 3당 합당과 함께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그 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차례로 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은 국민의힘보다 수명이 더 짧다. 한국민주당에서 민주국민당으로 개명했고 민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으로 계속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어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다시 민주당으로 문패를 갈았고, 그 뒤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미국은 다르다. 100년 넘게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 명칭에선 차라리 묵은 향기가 느껴진다. 진중함과 진득함이 묻어나서다. 경제계도 이름에 민감하다. 외환은행 먹튀 논란을 야기했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Lone Star)의 우리말은 일성(一星)이다. 이름을 빛내고 떨치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였을까. 우리 전통기업들은 별 성(星) 자나 빛 광(光) 자가 들어가는 명칭을 유난히 선호했다. 삼성상회, 오성기업, 일광상회, 삼광산업 같은 동명이사(同名異社)가 많다. 부산 일광횟집의 친일 시비는 황당하고 뜬금없다. 일광읍에서 영업하는 횟집의 '일광' 상호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이다. 외려 일광횟집에 대한 친일 좌표가 의뭉스럽다. 욱일기를 끌어들여 일광 상호에 친일 덧칠을 한다? 견강부회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광횟집 2차 만찬도 그리 책잡힐 일이 아니다. 횟집 앞의 조폭식 도열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건진법사의 소속 종단 일광조계종과 일광횟집을 한통속으로 엮는 것도 무리수로 비친다. 횟집 이름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으랴. '일광'은 흔한 상호일 뿐이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선조, 인조, 이승만
선조와 인조,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통점은 뭘까. 외침을 막지 못해 백성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도탄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권력욕이 강하고 의심증이 많으며 도량이 좁다는 것도 닮은꼴이다. 전란이 발발했을 때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패륜도 데칼코마니다.#23전23승. 이순신 장군의 경이적인 전적이다. 불패신화의 비책은 선승구전(先勝求戰). 손자병법의 백미다.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싸운다는 뜻으로, 지는 전쟁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하지만 이순신은 세 번 파직 당하고 두 번 백의종군하는 고초를 겪는다. 선조의 용렬함과 무능의 파편이 튄 것이다. 이순신 사후에도 선조는 장군을 평가절하했다. 선조는 1601년 왜란 중 활약했던 공신들을 선정하면서 이순신을 원훈(元勳·으뜸 공신)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나라가 보전된 것은 명군(明軍) 덕분이라며 딴죽을 걸었다. 앞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해 오자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으며 여차하면 요동으로 망명할 심산이었다.#임진왜란이 끝난 지 30여 년 후 조선은 다시 외세의 노략질과 만행으로 피폐해진다. 역사는 병자호란을 가장 굴욕적인 전쟁으로 기록한다.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던 인조는 삼전도로 나와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 의식을 치른다. 소현세자, 척화파 관리와 많은 백성이 볼모로 청나라로 끌려갔다. 전쟁 통에 죽거나 다친 장정, 아사(餓死)한 아이, 오랑캐에 능욕당한 아낙네가 부지기수였다.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광해군의 균형외교를 팽개친 채 기울어가는 명의 썩은 동아줄만 잡은 인조의 아집과 무능이 부른 재화(災禍)였다. 인조에겐 선승구전의 지략이 없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러시아군 선발대에 내려진 1호 지령이 '젤렌스키 제거'였다. 객관적 전력은 러시아의 압도적 우위. 사흘이면 수도 키이우가 함락될 거란 섣부른 예측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 내각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안전이 경각에 달한 상황. 미국이 젤렌스키에게 망명을 제안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끝까지 조국을 사수하겠다며 국민을 독전했다. 미국엔 망명처 제공보다 무기를 달라고 했다. 이승만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썩소'를 날리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까.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공을 인정하더라도 과가 너무 많다. 3·15 부정선거와 독재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침탈했으며, 반민특위 와해 공작으로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적 소명을 배임했다. 장기집권을 위한 1954년의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은 희대의 블랙 코미디였다. 한 표 차로 부결된 개헌안을 반올림이란 신박한 아이디어로 불법 가결해 치욕의 헌정사를 남겼다. 정치깡패의 득세, 백주의 테러, 김구 암살 배후…. 이승만 정권의 폭력과 흑역사를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윤석열 정부가 이승만 기념관을 본격 추진할 모양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자유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공칠과삼'이 아니라 '공팔과이'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공팔과이? 정녕 공과(功過)의 뜻을 모르나. 아니면 반대로 해석한 건가. 정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한다는데 부정적 측면도 함께 톺아봐야 공평하지 않겠나. 이참에 선조와 인조가 묘호(廟號)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따져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반드시 국민동의를 얻는 게 좋겠다. 4·19 정신의 모욕일지 모르니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몰빵'의 몰락
SVB와 JMS는 뜬금없고 낯선 철자였다. 하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언론이 워낙 이 단어를 도배해서다. 미국의 16위 은행 SVB와 사이비 종교 JMS(기독교복음선교회)는 애당초 함께 엮을 수 없는 화두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긴 하다. 둘 다 이니셜이라는 거. SVB는 실리콘밸리은행의 머리글자이고 JMS는 교주 정명석의 이니셜이다. JMS는 패러디 소재가 되기도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사당화를 빗대 'JM'S 민주당'이라는 글을 SNS에 올리자 민주당이 발끈했다. '몰빵'도 닮은꼴이다. JMS는 돈과 조직과 교리가 오직 정명석 1인에게 집중된다. 이를테면 권력의 몰빵이다. JMS 파산 원인은 투자의 몰빵이다. SVB는 고객이 맡긴 예금을 미국 국채나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증권 투자에 쏟아 부었다. 안정적으로 예대 마진을 챙길 수 있는 대출엔 소홀했다. 그러다 금리인상 폭탄을 맞았다. 미 Fed(연방준비제도)가 공격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서자 돈줄이 마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IT기업의 예금 인출이 이어졌고 SVB는 보유 국채를 헐값에 팔아야 했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국채값이 폭락한 까닭이다. 투자 손실은 뱅크런을 촉발했고 급기야 SVB는 폐쇄됐다. 분산 투자를 외면한 대가다. 우리 정치권에도 '몰빵'이 어른거린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선출직 최고위원을 싹쓸이한 데 이어 주요 당직도 독식했다. 공천의 실무 권한과 여론을 담당할 사무총장(이철규), 전략기획부총장(박성민), 조직부총장(배현진), 여의도연구원장(박수영)의 면면이 윤핵관이거나 초선 의원 연판장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이러고도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아니 친윤 일색의 '용산탕'에 가깝다. 김기현 대표는 '당정일체'를 교조처럼 신봉하는 데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꺼이 90도 인사를 해댄다. 당정일체를 넘어 대통령 친위부대의 완성이다. 윤 대통령이 100% 그립을 쥘 수 있는 구도다. 이쯤 되면 내년 총선 공천의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검사 출신 50명으로 영남권 후보를 대거 물갈이한다는 소문이 낭설만은 아닐 것이다. 검사들이 입법부까지 장악하는 '검사 왕국'의 화룡점정이 현실화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친윤 몰빵'이 팬덤을 결집하는 효과는 있겠으나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대엔 독이다. 포트폴리오 원칙에도 위배된다. 리스크 관리의 함정은 어떡할 건가. 민주당은 '이재명 몰빵'이 입길에 오른다. 민주당이 처한 한계다. 120만명의 권리당원 중 '개딸'로 집약되는 팬덤은 30만명 남짓이다. '개딸'로만 총선 승리는 불가능하다. 중원으로의 세력 확장이 필수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병목현상을 유발한다. 대선 후보 지지율 1위 이재명의 '브랜드 가치' 또한 급락 위험을 내재한다. 브랜드 가치와 사법 리스크 간의 데드크로스가 발생하면 이 대표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당내에서 제기되는 '질서 있는 퇴진론'도 데드크로스에 대비한 포석이 아닐까 싶다. 적절한 시점에 이 대표가 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른다? 나쁘지 않다. 다만 퇴진 시기가 관건이다. 강성 지지층의 비위만 맞추는 팬덤 정치는 극우와 극좌를 추동한다. 거대 양당의 푯대가 될 순 없다. 좌·우의 극지(極地)에 몰려 있는 광신자들은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낫다. 왜 밀란 쿤데라가 "광신자 집단이 범죄적 정치체제를 만든다"고 경고했을까. 공당(公黨)이라면 중원으로 우군의 영토를 넓혀야 한다. 바로 포트폴리오 정치다. 리스크를 분산하려면 '몰빵'은 금물이다. SVB의 몰락, 정치권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민본정치는 여론을 배척하지 않는다
대통령실이 KBS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 징수하는 방안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섰다. 현재는 한국전력이 업무를 위탁받아 월 2천500원의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한다. 지난해 KBS의 수신료 수입은 6천935억원. 통합 징수를 둘러싼 불만 민원이 폭주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만큼 여론은 분리 징수를 선호할 게 분명하다. 정부가 국민여론을 알뜰살뜰 챙기겠다니 상찬할 만하다. 다만 여론 따윈 아랑곳하지 않던 윤석열 정부의 변신이 새삼스럽긴 하다. 하기야 'KBS 수신료' 계륵을 건드리는 건 꽃놀이패 아닌가. 분리 징수를 관철하든 못하든 민심을 받들었다는 서사는 남을 테니까. 공영방송 압박 효과는 덤이다. 한데 다른 현안에선 걸핏하면 여론을 거스른다. 강제징용 배상안만 해도 그렇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국민 59%가 반대하고 35%만 찬성이다. 여론에 맞서려면 당위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 없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빠져서다. 첫째, 일본정부의 사죄가 없다. 사죄는커녕 기시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고 뭉뚱그렸다. 전체적으로 계승? 설마 아베 정권의 극우적 인식까지 아우르겠다는 건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럼에도 국내 보수언론은 친절하게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의미"란 부연을 달았다. 둘째, 전범기업의 배상이 없다. 국민 64%는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한 가해기업의 기부는 배상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상권까지 포기하면서 일본에 면죄부를 상납한 꼴이니 한국의 완패다. 야구나 외교나. 실력도 없고 전략도 달리고 인내도 없다는 게 빼닮았다.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하야시 외무상의 역사 왜곡에 숨어있는 행간의 함의는 뭘까. '물컵의 절반'을 채울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한 수 거들었다. "한일 셔틀외교를 복원한다는데 우리가 '빵셔틀'이고 일본은 일진"이라고 했다나. 한일 간 형세를 적확히 묘사한 촌철살인의 풍자다.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 특검도 국민 60% 이상이 찬성한다. 검찰 수사의 편향성이 결정적 동인(動因)이리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주변을 훑을 땐 저인망에다 전광석화의 압색 신공을 시전하면서도 '50억 클럽'이나 김 여사 수사엔 손이 오그라들었다. 이재명을 향한 여당의 공격 루틴은 "떳떳하다면 검찰에 출석하고 법원에서 영장 심사를 받으라"였다. 김 여사 또한 떳떳하다면 특검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재명 방탄'이란 여권의 방어 기제는 너무 남용해 이젠 진부하고 식상하다. '사기(史記)' 화식열전편엔 "제일 잘하는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따라가는 정치, 그다음이 국민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투는 정치"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마천의 민본 사상의 발로다. 현대시민은 고등교육으로 업그레이드하고 SNS로 정보를 공유하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다. 중우(衆愚)로 치부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기에 여론 나침반은 대체로 옳은 방향을 가리킨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민여론을 뭉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강제징용 배상안 등 휘발성 강한 국가 대사를 대통령 의지에 따라 밀어붙였다. '임기 5년' 대통령이 자주 여론을 배척하면 자칫 '민주'와 '공화'의 가치마저 훼손할 수 있다. 여론에 순응하는 게 곧 민본정치의 발현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낙하산'을 위한 정권은 있다
'검사 정권'의 닥공(닥치고 공격) 본능이 또 발동했나 보다. 이번엔 KT 이사회가 타깃이다. 사연인즉슨 KT 이사회가 33명의 차기 대표 후보 중 KT 전·현직 임원 4명을 심층 면접 대상자로 선정했다는 거다. 정치인이나 대선 캠프 출신 등 외부 인사는 전원 탈락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깃대를 들었다. '그들만의 리그' '이권 카르텔'이라며 KT 이사들을 몰아붙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KT는 국민의 기업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가 (CEO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데 KT CEO에 지원한 외부 인사는 대부분 IT 문외한이다. 유력 후보군에 꼽힌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중량감이 있을진 몰라도 다들 IT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6G·AI 시대를 견인할 KT 대표에 비전문가를 앉힌다? 정권의 아바타 아니면 안 된다? 윤 대통령이 말한 '국민 눈높이'가 비전문가나 아바타가 아니라면 'KT맨' 4명을 '숏 리스트'에 올린 이사회의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여당 의원들은 치졸하고도 폭압적 언사를 퍼부었다. '낙하산'이 내려갈 자리를 원천 봉쇄한 게 괘씸했던 걸까.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며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 시키는 건 안 할 거다"고 장담했다. 꽤나 신선했다. 정치권에 빚진 게 없으니 약속을 지킬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정권 초기부터 '낙하산 도미노 현상'이 펼쳐졌다. 문 정부에서 익히 봐왔던 익숙한 풍광이다. 대선 캠프 출신의 화려한 비상이 압권이다.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 일일이 열거해서 뭐하랴. 문제는 하나같이 전문성이 없다는 거다. 한국철도공사 사장 출신 최연혜 사장은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하고도 재공모를 거쳐 기어이 자리를 꿰찼다. '용산의 힘'이 작동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용기·함진규 사장도 국회의원 때 관련 상임위 활동을 한 것 말고는 전문성을 내세울 게 없다. 박주선 회장은 스스로 전문지식이 없다고 밝혔다. "겐세이" 발언으로 유명세를 탔던 이은재 전 의원은 캠프 출신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 지지 선언으로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직을 득템했다. 이 이사장 역시 건설이나 금융 쪽 이력이 없긴 마찬가지다. 관치(官治)의 서곡인가. 금융권도 낙하산이 대세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엔 관료 출신이 안착했다. 능력보다 낙하산? 재임 때 최대 실적을 견인한 손병환 전임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탈락은 낙하산의 병폐를 가감 없이 노정한다. 윤석열 정부는 문 정부의 나쁜 관행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권력기관을 동원해 공공기관장을 쫓아내는 진부한 클리셰도 여전하다. KT 차기 CEO 후보에서 자진 사퇴한 구현모 전 대표에 업무상 배임 혐의가 씌워진 배경이 그래서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은 지난 1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유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산하기관장에게 사퇴를 강요한 혐의다. 낙하산을 위한 정권의 참담한 귀결이다. 낙하산 잔혹사, 이제 끝낼 때도 되지 않았나.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이재명에 박제된 민주당
'139 vs 138'.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찬성표와 반대표 숫자다. 출석의원의 절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지만 가결이나 다름없다. 사실상 '이재명 방탄'의 실패다. 정치인 이재명은 치명적 내상을 입었고 민주당은 내홍에 휩싸였다. 잘못된 선택의 필연적 귀결이다.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리드대학 입학 6개월 만에 자퇴한다. 그는 훗날 "당시엔 두려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잡스가 그랬듯 결단엔 두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이재명은 169석 거야(巨野)의 방호벽에 기댔다. 잡스처럼 모험을 택하지 않았다. 사형수 출신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의 고언이 뼈를 때린다. "모험을 않고 (대권을) 거저먹으려 하느냐".'275 vs 0'. 이재명과 '50억 클럽' 및 김건희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 건수다. "검사 60여 명을 동원해 1년간 탈탈 털었다"는 이재명 대표의 탄식엔 공감한다. 검찰은 이 대표가 돈을 받았다는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검사 독재정권의 사법사냥"이란 이재명의 하소연엔 민심이 반향하지 않았다. 여론은 "구속수사" 우세였다. 불체포 특권이란 관성(慣性)에 안주한 까닭이다. 정공법을 기피한 대가다.차라리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을 내려놨어야 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면 어때요"라며 영장심사에 당당히 임했으면 오히려 여론을 포획하지 않았을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 대표 말대로 전부 조작이고 증거가 하나도 없다면 대한민국 판사 누구라도 100%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념 편향적 판사가 영장을 발부한다면? 제1야당 대표의 석연찮은 구속이라면 윤석열 정권의 정치 탄압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정치공학 측면에선 나쁜 그림이 아니다.체포동의안 부결은 끝이 아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의 시작이다. 어느 정치 전략가는 검찰이 계속 잽을 날릴 것으로 예측했다. 결정적 물증 없이도 계속 의혹을 제기하고 언론플레이 하고 소환 통보하고 기소한다는 거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도 "검찰이 살라미 전술을 쓸 것"이라고 했다. 하기야 일부러 잘게 쪼개지 않아도 될 만큼 이재명을 옥죌 혐의는 많다. 검찰이 조만간 기소할 대장동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사건 말고도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백현동 개발과 정자동 호텔 특혜 의혹에 대한 수사가 줄줄이 진행 중이다. 1~2년간은 법정에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할 처지다. 이재명 대표는 여전히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해 당내 역학구도를 유리하게 정립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은 이미 민주당의 늪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지속은 민주당의 총선 폭망을 예고한다. 이재명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단기필마는 '삼국지'가 낳은 사자성어다. 유비의 호위장수 조자룡이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해내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지금 이재명이 가야 할 길이 단기필마다. 민주당과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대선은 아직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살아서 돌아오면 강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한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전국 시·도지사 평가에서 압도적 1위를 유지했다. SNS에 올린 글을 보면 조리정연하고 경제 식견도 깊다. '능력'에 대한 높은 평점은 이재명의 자산이다. 그 개인기로 난국을 돌파하라. 애먼 민주당은 이제 놓아주라. 총선 폭망이면 대선 교두보도 무너진다. 박영선 전 의원의 말대로 "당 대표 사퇴가 신의 한 수"일 수 있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경제의 봄은 오지 않는다
자연은 절기(節氣)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잠시 삭풍이 몰아쳤지만 이미 봄은 저만치 와 있다. 경제는 어떨까. 해빙기가 오려나. 그렇지 않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외려 다들 빙하기를 점친다. 경제 빙하기 예측을 이입할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서사(敍事)고 하나는 진단이다. #'메모리 왕국'의 겨울 서사는 'K-반도체의 겨울'이다. 가격 급락이 '메모리 왕국'을 흔드는 모양새다. D램 범용제품인 DDR4(8GB)의 지난달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1.81달러. 2021년 7월 4.10달러로 정점을 찍었을 때의 반 토막을 하회한다. 우리나라의 세계시장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D램 40.6%, 낸드플래시 31.6%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7% 급감한 이유다. SK하이닉스는 10년 만에 1조7천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메모리 간판기업들의 생경한 풍광이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18%를 떠받친다. 반도체 '고난의 행군'이 전체 수출을 잠식하는 구조다. 지난달 수출액은 462억8천달러로 1년 전보다 16.6% 감소했다. #루비니의 진단 '초거대 위협'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의 진단도 으스스하다. 루비니는 경제 현실을 중시하는 '닥터 리얼리스트'를 자처하지만 우울한 전망을 많이 해 '닥터 둠'으로 불린다. 그는 신간 '초거대 위협'에서 향후 10년 내지 20년 안에 세계가 직면할 초거대 위협 열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부채 위기다. 각국의 민간부채와 공공부채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게 루비니의 진단이다. 세계 부채규모는 1999년 GDP의 220%에서 2019년 320%, 코로나 이후엔 350%까지 늘었다. 인구 고령화도 열 가지 위협 중 하나다. 고령화에 따른 연금과 의료비 등을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비용과 더불어 '암묵적 부채' 또는 '미적립 채무'로 표현한 대목이 이채롭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 루비니 교수의 예측대로 세계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점점 함몰되는 형국이다. 그의 잿빛 전망을 뒷받침하듯 낯선 수치, 우울한 지표들이 속속 등장한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전망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은 1.2%. 2021년 성장률 6%의 5분의 1토막이다. 미연방준비제도(Fed)는 2023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2%에서 0.5%로 하향조정했다. 세계 '빅3' 경제권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은 통화긴축으로, 유럽은 에너지 위기로, 중국은 부동산가격 조정으로. 비수처럼 꽂히는 경구도 있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고린차스 IMF(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작성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의 백미다. #교토삼굴의 복안 필요 이런저런 예측과 진단을 종합하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지난해보다 더 나쁘고 고물가·경기침체 국면이 꽤 오래 이어진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경제 보릿고개를 넘을 솔루션은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생 변수와 구조적 한계가 뒤섞인 복합위기인 만큼 신묘한 해법이 있을 리 없다. 더욱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극의 정책을 동시에 펼쳐야 하니 고난도 방정식이 필요하다. 토끼해를 맞아 '영민한 토끼는 위기에 대비해 굴을 세 개 파둔다'는 교토삼굴(狡三窟)이 인구에 회자된다. 정부는 교토삼굴의 복안이 있기나 한가. 논설위원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이다. 한데 이 조문을 무력화하는 역대급 판결이 나왔다. '곽상도 50억원 무죄' 선고가 그것이다. '사회적 신분'에 따라 법리 적용과 양형(量刑)의 편차가 크다는 불편한 진실도 확인했다. 곽상도 전 의원이 검사 출신·전직 국회의원·여권 인사가 아니었더라도 동일한 판결이 내려졌을까.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의 방관 또는 선택적 예우 역시 '사회적 신분'의 파워 아닌가 싶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 여사는 지난해 1월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 3·9 대선 후 출석하겠다면서. 하지만 대선 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검찰은 뭉개기로 일관했다. 하기야 영부인에게 감히 소환장을 날릴 간 큰 검사가 있었겠나. '50억원 무죄'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부정 일색이다. "어이없는 수사이고 판결"(홍준표 대구시장), "상속세까지 면탈해 준 꼴"(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 "사회정의에 반하는 판결"(조선일보), "뇌물로 보는 게 일반 국민의 눈높이"(법조계), "합법적 뇌물 받는 법 창조"(소셜 미디어). 생뚱맞은 판결은 검찰의 나사 빠진 수사와 부실한 공소장, 법원의 편향된 판단이 어우러진 결과다. '곽 전 의원이 직접 돈을 받았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도 없다.'(판결문) 문장은 왜 이래 배배 꼬였는지. 정영학 녹취록은 사뭇 다르다. "병채 아버지가 돈을 달라고 그래. 병채를 통해서."(김만배) 병채씨는 곽 전 의원의 아들이다. 재판부는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법리를 적용했고 부자 관계를 너무 좁게 해석했다. 검찰의 징역 15년, 벌금 50억원 구형에 비추더라도 이례적 양형이다. 고작 800원 착복한 버스 기사의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던 법원 아니었나. 딸 조민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받은 600만원의 장학금을 뇌물로 판단해 조국에게 유죄를 선고한 그 잣대는 걷어치웠나.'800원 횡령·600만원 장학금 유죄, 50억원 퇴직금 무죄.' 이게 공정과 상식에 맞나. 2019년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감 장면을 소환한다. 곽상도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전호환 부산대 총장을 추궁하는 대목이다. "이건 부모를 보고 부모 때문에 장학금이 나간 거다. 총장님 동의하시느냐?"검찰이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다. 조국 가족 수사 때 한 달 반 동안 70여 곳, 백현동 의혹 수사에선 일거에 40곳을 털었으면서. 현란한 '압색 신공'도 '사회적 신분'이나 진영 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시전하나. 공소장에서 왜 알선의 대가성을 증명하지 못했나. 왜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나. 성남FC 광고까지 제3자 뇌물죄로 엮으려 했던 오지랖은 어디 갔나. '법의 정신' 저자 몽테스키외는 "쓸모없는 법은 필요한 법을 무력하게 만든다"고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비상식적 판결의 득세는 상식적 판결을 왜곡한다. 당연히 법치주의는 형해화된다.최상위법 헌법 앞쪽에 '법 앞의 평등'을 담은 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상위 가치라는 의미다. 그런데 어쩌나. 현실은 영 딴판으로 전개되고 있으니. MBC가 만든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제작진의 첫 마디는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였다. 한데 '법은 차별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11조가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누가 '일사불란'을 원하나
안철수 의원을 향한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공격은 나경원 사태의 데자뷔이자 데칼코마니다. 각본이 판박이인 데다 연출자와 주연, 조연이 동일 인물이다. 수법도 '빼박'았다. 융단폭격은 8일까지 이어졌다. "선을 넘었다"(장제원 의원), "대통령과 당 대표 후보는 동격 아니다"(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이철규 의원), "안 의원이 당 대표 되면 윤 대통령 탈당할 것"(신평 변호사). 뜬금없는 탈당 시나리오에 유치찬란한 색깔론까지 등장했다. 한데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파상공세는 논리가 빈약하고 정치철학이 없으며 전략적 부재를 노정한다. 대통령이 중립적 입장에서 당 대표 경선을 지켜보고 있다고? 그렇다면 폭압적으로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힌 건 누구 뜻이었나. "대통령이 당비를 월 300만원씩 내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대목에선 실소가 나온다. 당무 개입을 시인하는 고해성사 같아서다. '간신배'란 단어는 왜 못 쓰게 하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말마따나 '간신배'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다. 제 발이 저리지 않고서야 특정 언어를 통제할 이유가 없다. 결정적 장면은 안 의원의 '윤-안 연대' 발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격앙된 반응이다. 윤 대통령이 "도를 넘은 무례의 극치"라고 말했다는데 우선 이 문구는 비문(非文)이다. "도를 넘은 무례"라고 하든지 그냥 "무례의 극치"로 표현해야 한다. '극치'도 모자라 '도 넘었다'는 수식(修飾)까지 붙였으니. 대통령 심중(心中)에 이미 '안철수'란 이름이 지워졌다는 방증이다. 이준석 쫓아내고 유승민 왕따시키고 나경원 제거하더니 이젠 안철수까지 빼낼 요량이다. 전형적 뺄셈정치다. 대통령과 정체성이 부합하지 않으면 같이 갈 수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일사불란(一絲不亂)'을 원한다는 의미다. 안철수 의원은 이태원 참사 나흘 뒤인 지난해 11월2일 윤희근 경찰청장을 즉각 경질하고 이상민 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말 한 게 괘씸죄? '일사불란'은 독재시대의 언어다. 민주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과거회귀형 언어다. 누구든 대통령의 견해에 토를 달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반대하는 참모들이 있기나 했나. 맹목적 추종은 간신배의 루틴 아닌가. 나경원 전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접으며 왜 "질서정연한 무기력보다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토로했을까.춘추전국시대엔 유가(儒家·공자 맹자), 도가(道家·노자 장자), 묵가(墨家·묵자), 법가(法家·한비자), 병가(兵家·손자 오자) 등 수많은 학파가 서로 논쟁하며 학문과 사상이 부흥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이 검사 출신인 데다 소위 '성골 검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법가에 비유할 만하다. 하지만 법가만으론 정치 르네상스는 열리지 않는다.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판이 깔려야 한다. 다양한 정책과 의견이 분출되고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쏟아져야 자유정부, 민주정당이다. 그러려면 통치자의 품이 넓어야 한다.집권층의 '일사불란' 사조는 선거에도 독이다. 윤핵관이 일방적으로 옹립한 여당의 리더십에 끌릴 국민은 없다. 대통령의 협량(狹量)에 공감할 민심은 없다. 이질적이고 다채로운 구성원을 가진 조직일수록 경쟁력이 높은 법이다. 정부와 정당도 마찬가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철언이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공천이 뭐길래
과거 정치부장 시절 가깝게 지낸 국회의원이 있었다. 취향이 필자와 판박이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술을 식도락으로 즐기는 스타일인 데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까지. 한 마디로 죽이 잘 맞았다.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첫째도 공천, 둘째도 공천, 셋째도 공천이다."'공천=당선' 등식이 확고한 국민의힘 대구경북의 의원들에겐 공천이 정치 생명줄이나 진배없다. 50명의 초선 의원이 나경원 비판 성명에 참여한 소치도 '공천의 힘'이다. 대세는 '묻지 마 윤심' 아닌가. "집단린치이자 뺄셈정치"(윤상현 의원), "깡패도 아니고 참 철없다"(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따위의 비난은 한쪽 귀로 흘려들으면 될 터.총기 난사는 미국의 사회적 이슈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 정치판에도 이 말이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권 주자에게 총기를 난사했다"(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박 전 원장은 "공천 칼질당한 사람들이 모여 신당을 창당하고 그 당이 보수 1당이 될 것"이라며 보수 분열을 예언했다.총기 난사? 그렇다면 내부 총질은? 따지고 보니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한 총기 난사도 내부 총질이다. 다만 총기를 휘두른 주체가 권력자냐 아니냐에 따라서 결말이 엇갈렸다. 비주류의 내부 총질은 당 밖으로 내쳐지거나 왕따 당하는 처지로 전락했고, 주류 세력의 내부 총질은 상대의 항복을 받아냈다.보수 분열? 민주당 소속 노회한 정치인의 희망 사항일 수도 있겠으나 '공천'을 거론했다는 점이 꺼림칙하다. 보수 폭망의 경험칙도 공천 불협화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진박 감별사' '옥새 들고 나르샤' 소동으로 리더십이 붕괴됐던 2016년 총선의 예상 밖 패배, 대표와 공천관리위원회의 갈등이 폭발했던 2020년의 참패를 반추해본다. 국민의힘 내부 여건과 지도부의 행태가 평행이론에 부합한다면 내년 총선도 '진윤 감별사' 파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윤심 세력이 확장할수록 '친윤 호소인'이 늘어날 테고 '찐윤'을 찾아내는 '진윤 감별사'의 위력도 드세질 게 자명하다.장제원 의원은 "개인의 욕망이 전체에 해가 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해 나경원 전 의원을 직격했다. 한데 당과 공천권을 장악하려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욕망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당선 가능성 1위 김기현 후보는 윤 대통령과 100% 싱크로당을 강조했다. 김 대표 체제는 곧 '윤석열 당'이란 의미다. 초선 의원들이 대거 친윤 대오(隊伍)에 합류한 이유다. '묻지 마 윤심' 현상은 역설적으로 시스템 공천, 상향식 공천이 착근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두 번씩이나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걸 기억한다. 그때 부당한 조치에 저항하지 않고 청와대와 당 지도부 눈치만 보던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의 무기력도 기억한다. 역시 공천이 원죄였다. 지금도 TK 의원에겐 정치적 역동성을 느끼기 어렵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일갈했다. "중앙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구경북 의원들을 물갈이해야 한다."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흐름은 반복된다"고 말했다. 마치 평행이론에 주석(註釋)을 단 경구 같다. 내년 총선에선 평행이론이 작동할까. 공천권의 향배를 가늠할 전당대회의 귀결이 더 궁금해진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타이밍의 정치학
타이밍(timing)은 외국어이지만 우리말처럼 많이 쓴다. 국어처럼 사용하는 단어니까 정확히 말하면 타이밍은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다. 국어사전에는 타이밍을 적기(適期), 때, 기회로 순화하고 있지만, 타이밍이란 말에 녹아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오롯이 담아내진 못한다. 타이밍은 성공의 키워드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명운이 결단의 타이밍에 따라 엇갈린다. 인명 구조에만 골든타임이 있는 게 아니다. 부동산·주식 투자도 매수와 매도 시점이 성패를 가른다. 배구의 블로킹, 야구에서의 타격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 '큐피드의 화살'도 적시(適時)에 날려야 사랑을 얻는다. 한때 '휴대폰 거인'이었던 노키아를 관통하는 화두도 타이밍이다. 노키아가 1996년에 내놓은 시제품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는 e메일과 검색 기능을 갖춘 휴대폰으로 스마트폰 원조 격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와이파이 같은 무선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실용화할 수 없었다. 정작 2000년대 초반 애플과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대를 열 때 노키아는 꾸물거렸다. 한 번은 너무 앞서가 좌절했고 또 한 번은 트렌드에 뒤져 몰락했다. 2004년 세계 최초로 LED TV를 출시한 소니도 소비자의 기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게 실패 원인이다. 삼성전자는 달랐다. 소니 제품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시장의 변화추이를 정확하게 포착하며 타이밍을 맞췄다. LED TV는 금방 삼성의 히트상품 목록에 올랐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출마할 결심'도 타이밍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좌고우면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이 홍심을 짚었다. "쓸데없이 시간을 많이 끌었다. 안 맞아도 될 걸 두들겨 맞았다." 대통령실의 거친 대응, 초선 의원 50명의 비판 성명은 나 전 의원 불출마를 종용한 압박이다. 적기에 출마를 결행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터다. 드넓은 '친윤 은하계'의 일원이 되길 바라며 자칭 친윤임을 호소했지만 그조차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압도적 당심 1위를 달릴 때 출마를 선언하며 친윤의 길을 가겠다고 약속했으면 어땠을까. 간만 보다 지지율 1위도 뺏기고 윤심(尹心)마저 멀어진 꼴이다. 괜히 '친윤 호소인' 이미지만 씌워졌다. 당내에선 '멀윤(멀리 있는 친윤)'이 아닌 '따윤(윤심으로부터 왕따 당한 비윤)'이란 말까지 나왔다. 당 대표 불출마의 결정적 이유다. 나 전 의원과는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타이밍의 달인으로 꼽힌다. 검찰총장 사퇴부터 정계 입문, 국민의힘 입당까지의 정치 여정은 잘 짜인 시나리오 같았다.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시점이 4·7 보궐선거를 한 달 앞둔 2021년 3월. 사퇴 효과를 극대화하고 여론을 응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6월29일 정치활동 시작을 공식화하며 노태우의 '6·29 선언'을 이입했다. 7월30일의 국민의힘 입당도 극적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당 밖에서 정치 내공을 더 다져야 한다고 조언했고, 일부 언론이 프랑스 마크롱 같은 제3의 길을 제시할 때였다. 국민의힘 입당을 지체했더라면 제1야당의 대선 후보를 꿰차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다. 나 전 의원이 노키아의 궤적을 밟았다면 윤 대통령은 삼성의 길을 간 셈이다. '타이밍이 예술'이란 경구는 타이밍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함의를 내재한다. 기업의 성패 사례에서 보듯 너무 빨라도 지나치게 굼떠도 안 된다. 두 현자의 말에 답이 있는 듯하다. "반보(半步)만 앞서가라"(쭝칭허우 중국 와하하그룹 회장), "천천히 서둘러라"(아우구스투스 로마 초대 황제).<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시장통제의 슬픈 패러독스
자본주의의 근간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다. 인간의 사유(私有) 욕구를 은근히 자극해 능률을 고양하는 게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의해 정교히 작동되는 시장기능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는 은유 같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물자의 유통 및 수요·공급 조절이 인간의 이익 추구와 시장의 자연지험(自然之驗)으로 이루어진다"고 설파했다. 반론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스티클리츠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통제받지 않는 시장이 경제 양극화를 심화한다"며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했다. 하지만 반시장 정책은 예외 없이 실패했다. 송나라 왕안석이 설계한 경제진흥책 희녕변법이 대표적이다. 희녕변법은 청묘법·시역법·균수법 등 농민과 중소상인을 지원하는 내용을 고루 담았다. 명실공히 친서민 정책이다. 한데 희녕변법 시행 후 민생은 더 피폐해졌고 새 제도 도입에 따른 혼란만 가중됐다. 시장의 자율기능과 경제현장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을 도외시한 까닭이다. 희녕변법의 실패로 6대 황제 신종의 부국강병 야심도 이울었다. 쇠락해진 송나라는 60년 후 멸망한다. 전세 가격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을 골자로 하는 임대차 3법은 어떻게 됐나. 2020년 시행 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107주 연속 상승하며 전세난민을 양산했지만 지금은 역전세난을 걱정해야 할 처지 아닌가. 그냥 시장기능에 맡겼으면 될 일을 괜히 서민에게 화(禍)만 안긴 꼴이다. 임대주택 천국 독일과 스웨덴의 월세 상한제는 왜 실패로 끝났을까. 주택 공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가격통제의 슬픈 패러독스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과 양곡관리법,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전세가율 70% 제한 법안도 다분히 반시장적이다.반시장적 행태는 경제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는 반시장·통제 정책의 전형이다. 대도시를 봉쇄하고 감염자를 이 잡듯 뒤졌지만 코로나가 종식됐나. 외려 뒤늦은 코로나 창궐로 다른 나라에 민폐를 끼치고 있지 않나. 애당초 '제로 코로나'는 '미션 임파서블' 무리수였다. 백신과 탄력적 방역을 통해 집단면역력을 제고하는 게 시장친화적 코로나 대응책이다. 국민 98%가 항체를 갖게 된 우리나라처럼. 정치 쪽에도 반시장 기류가 불거진다.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한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의 공박은 자못 폭압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밝힌 나 전 의원을 해임했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해임한다? 국민의힘 당 대표에 출마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다. 정작 해임할 사람은 따로 있건만. '윤위병(윤석열+홍위병)' 그룹의 선봉대 박수영 의원은 "나(羅) 홀로 집에"란 패러디로 나 전 의원을 조롱했다. 특정인을 조리돌림하며 불출마를 압박하는 건 시장 흐름의 물꼬를 막는 거나 다름없다. 여론과 당심, 즉 시장기능에 맡기는 게 옳다.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공격하면 제재하겠다"고 경고했다. '대통령 신성불가침'의 방탄을 두르겠다는 건가. 당내 언로를 통제하겠다는 반시장적 발상이다. 윤 정부 성패의 분수령은 3·8 전당대회가 아니다. 내년 4·10 총선이다. 윤심(尹心)과 정파적 이익에 매몰될수록 총선을 그르칠 확률은 높아진다. 시장통제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민심, 당심, 윤심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意中)'이란 뜻의 '윤심(尹心)'은 어느새 관용어로 뿌리내렸다. 언론에서의 사용 빈도만큼이나 윤심의 위력도 메가톤급이다. 반도체 설비자에 대한 세액공제 8%를 고집했던 기획재정부가 나흘 만에 15%로 상향 조정한 사례는 윤심의 파워를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세액공제율을 높이라는 대통령의 지엄한 분부에 누가 감히 딴죽을 걸까. 기재부의 정책적 판단을 윤 대통령이 일거에 허문 꼴이다. 15% 룰을 적용할 경우 내년에만 3조6천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이미 세간엔 "모든 길은 윤심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이목은 온통 윤심에 쏠린다. 당 대표 출마자들의 '윤심팔이'도 점입가경이다. 김기현 후보는 "윤 대통령과 눈빛만 봐도 통하는 '싱크로'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싱크로율 100% 당을 만들어 헌납할 테니 윤심을 흠뻑 실어달라는 읍소나 진배없다. 지난 9일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실패하면 내 정치적 생명도 끝"이라며 윤 대통령과의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했다.호사꾼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경원 전 의원의 출마 여부다. 뜻을 접자니 당심 1위란 지지율이 눈에 밟히고 호기롭게 출마하자니 대통령실에서 눈을 부라린다. 나 전 의원이 제안한 대출금 탕감 따위의 저출산 대책은 설익은 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실의 대응은 지나치게 거칠다. "당신은 아니야"라는 암묵적 교지(敎旨)로 비친다. 지난 연말만 해도 "대통령 말씀을 들어봐야 한다"며 몸을 낮춘 나 전 의원이다. 대통령의 '윤허' 없는 출마를 강행할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민심>당심>윤심'이 정상적이다. 민심이 당심보다 커야 하고 당심이 윤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100% 당원 투표로 전당대회 룰을 바꾼 국민의힘은 외려 '민심<당심<윤심'의 공식에 가깝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해임 여론이 높아도 윤심이 두호하는 한 그의 자리는 건재할 것이다. 음주 후 잠에 빠져 이태원 사고 긴급전화를 두 번씩이나 놓친 윤희근 경찰청장이 청문회에서 뻗대는 모습도 가관이었다. 159명의 청춘이 희생됐는데도 책임지는 고위층이 한 명도 없다? 이런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니.윤심이 강력할수록 여당이 대통령 사당(私黨)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커진다. 또 당심 우위는 민심을 왜곡한다. 국민의힘 80만 책임당원의 지역별 분포는 영남권 40%, 수도권 37%다. 당원 구성이 인구에 비례하지 않는다. 연령층 분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공무원·군인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당심이 곧 민심"이라는 국민의힘 지도부 주장을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다. '민심<당심<윤심' 구도가 고착화하면 '민주'와 '공화'는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김기현 후보는 곧잘 '윤비어천가'를 부른 인물이다. 지난해 9월엔 '자유'만 줄기차게 되뇐 윤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극찬했고, "원인을 따지지도 않고 덮어씌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상민 장관을 두둔했다. 자진해서 복속을 다짐한 만큼 김기현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종속정당이 될 게 분명하다. 윤심이 바라는 그림이다. 안철수 의원은 출마 선언 때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당원들에게 바치겠다"고 했다. '총선 승리'를 무기로 당심을 잡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3·8 전당대회는 당심과 윤심이 겹쳐지는 '크기'에 따라 친윤 또는 범윤·비윤 후보의 당락이 엇갈릴 것이다. '민심·당심·윤심'의 역학구도도 주목해야 한다. 총선 승패를 좌우할 변수인 까닭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정치판의 언어유희
언어는 진화한다. 유행어도 시대적 조류에 따라 진화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대세는 '축약'이다. '진짜'는 '찐'이 되고 '짝퉁'은 '짭'으로 압축됐다. 절친보다 더 친한 친구는 '찐친'이다. '진짜 상놈'이 '진상'으로 통용되며 '진상'은 신생아 작명 기피 1순위가 되고 말았다. SNS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읽씹' '빛삭' '최애' '열폭' '영끌'도 다 축약어다. 접두사 '개'의 통상적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개꿀'도 재미있는 신조어다. 택시기사들의 은어(隱語)였던 '꽐라'는 어엿이 드라마 대사로 나온다. 원래는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지칭했지만 이젠 만취 남녀를 통칭한다. 김건희 여사의 논문 '멤버 yuji'를 패러디한 뉴 콩글리시도 등장했다. 총재를 chong-jae라고 하는 식이다. 경제 쪽의 신조어도 이채롭다. '떡상' '떡락'은 가격 등락의 상·하한이 없는 가상화폐의 폭등과 폭락을 은유한 말이다. '떡'은 여성을 비하하는 은어이면서 접두사로 쓰일 땐 '몹시'란 뜻을 지닌다. '떡실신'이 그런 경우다. 주식시장에서 '사물놀이' 장세는 횡보 장세를 지칭한다. 사면 물리고 놀면 이긴다는 뜻이다. 부지런한 자는 망하고 게으른 자는 승리한다는 '부망게승'의 함의도 비슷하다.말이 곧 정치인 정치판에 어찌 언어유희가 없으랴.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과 장제원 의원의 '김장연대'에 대해 이준석 전 대표는 "비만 새우가 되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조무래기"라며 평가절하했다. 이 전 대표는 이전에도 '용피셜(용산+뇌피셜)', '윤핵관 호소인' 같은 풍자의 언어를 곧잘 구사했다. 권성동 의원은 대통령과 여당 비판을 주저 않는 유승민 전 의원에게 "민주당의 정치적 트로이 목마"라고 직격했다.김남국 의원은 민주당 출신의 양향자 의원이 자주 민주당을 비판하자 "전향자로 성을 바꿔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더불어 M번방' '더듬어 민주당'은 야권의 잇단 성 추문을 빗댄 여권의 조어다. 여권에서 무속 논란이 불거진 땐 민주당이 '굿힘당'이라고 조롱했다. 권은희 의원은 지난해 8월 본인을 징계하려는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를 "윤리참칭위원회"라고 저격했다. '주윤발 무야홍'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 홍준표 후보 캠프에서 띄운 문구다. 낮에는 윤석열을 지지하다 발을 빼고 무조건 밤에는 홍준표를 지지한다는 뜻이다.대통령은 자주 언어유희의 과녁이 된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민생·민심·민주주의를 포기한 대통령 '민포대'"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했다. SNS엔 '윤'을 뒤집은 'ㄱㅛㅇ정'이란 말이 나돈 지 오래다. 윤 대통령의 브랜드인 '공정'이 사실은 공정하지 않다는 의미다. 용산 대통령실을 '용궁', 윤 대통령을 '용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태극기 휘바이든'이란 패러디는 '바이든-날리면' 파동의 산물이다.정치인에겐 말이 무기다. 적절한 비유와 풍자는 정적을 압박하고 촌철살인의 패러디엔 지지자들이 열광한다. 하지만 풍자와 조롱의 경계는 애매하다. 민주당은 2018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뒤처리하는 비데위원장으로 희화화하며 조롱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해 2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를 겨냥해 SNS에 'ㄹㅇㅋㅋ'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여야 모두 "지나쳤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배현진 의원은 박병석 전 국회의장에게 "앙증맞은 몸"이라며 왜소한 체격을 비하했다. 참 앙증맞은 말장난이다. 여경의 어설픈 현장 대응을 빗댄 '오또케'도 혐오의 언어다. 정치판이든 어디든 유희적 언어는 필요하다. 다만 신박한 풍자와 맛깔스러운 해학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조롱과 막말은 나쁜 언어유희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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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탄력받는 정부의 의료 개혁…남은 숙제는 전공의 복귀와 의사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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