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창간 76주년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x
박규완 기자
전체기사
[박규완 칼럼] 혁신은 지난하다
일본은 장수기업의 나라다. 200년 넘게 존속하는 기업이 3천개, 100년 이상 된 기업은 5만개나 된다. 전 세계의 장수기업을 다 합쳐도 일본보다 적다. 노무라 증권이 일본기업의 장수 이유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고 경영한다.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둘째, 본업에 충실한다. 문어발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셋째는 윤리경영. 그야말로 'I am 신뢰'다. 그래도 장수기업의 핵심 키워드는 끊임없는 '혁신'이다. 미국은 혁신의 나라다. 1994년의 인터넷 혁신, 2008년 애플의 모바일 혁신, 오픈AI가 주도한 생성형 AI 혁신이 모두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스티브 잡스는 자주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서적 중 '혁신'을 담은 책이 300가지가 넘고, 교육목적에 '혁신'을 포함한 경영대학원 비율이 28%에 이른다. 대기업의 43%는 혁신담당 임원을 두고 있다.혁신은 이미 기업의 '생존 방정식'이다. 정작 혁신이 일어나야 할 곳은 우리 정치판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200개 가까운 특권에 포획돼 있다. 여의도가 혁신 무풍지대였다는 방증이다. 항공기 비즈니스석, KTX 공짜는 맛보기다. 국고 지원을 받고도 후원회,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금한다. 거짓말까지 방어해주는 면책특권도 누린다. 불체포특권은 형사사법 칼날을 막아주는 방탄조끼다.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등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의원 세비, 업무 추진비, 차량 유류비, 보좌진 급여를 포함하면 의원 1인당 연간 7억원 넘는 국민세금이 들어간다. 가성비 최악의 집단이란 비판이 나올 만하다. 의원들은 1년에 1억5천만원, 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게다가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환급받는다. 써도 또 생기는 '화수분'이다. '선거 재테크'가 가능한 구조다.혁신은 지난(至難)하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는 '대사면'을 1호 안건으로 던졌지만 김재원 전 최고위원만을 위한 얄궂은 사면이 되고 말았다. '중진·친윤 험지 출마' 혁신안은 붕 떠 있는 상태다. 주호영 의원이 대구 고수 의사를 밝혔고 장제원 의원도 거부했다. 김기현 대표는 "당 리더십을 흔드는 급발진"이라며 혁신위에 태클을 걸었다. 전권을 주겠다더니…. 기득권의 항력(抗力)이다. '희생' 콘셉트 혁신안은 최고위에서도 의결이 유보됐다. 혁신위가 제안한 △불체포특권 등 의원 특권 포기 △구속될 경우 세비 전면 박탈 등은 눈여겨볼 개혁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의도를 지배해온 '정치 문법'을 바꾸지 않고는 실현 불가능하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 하고,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뉴턴의 제1 법칙이라고도 하는 관성의 법칙이다. 지시식변(知時識變). 때를 알고 변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변하려면 관성을 깨야 한다. 그러려면 내부 추동력과 외부 충격이 함께 필요하다. 이준석 신당이 외부 충격이 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신당의 경쟁력이 국민의힘 공천 혁신의 단초가 될 수 있어서다. 내부 추력(推力)은 혁신위 몫이다. 인요한 혁신위의 성공 관건은 '용산 패권' 구도 혁파와 공천룰 개혁이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도 중요하다. '궁극의 파워'를 넘어설 동력과 강단이 있을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서울은 이미 '메가'다
여당이 '메가시티 서울' 추진에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태스크포스를 특위로 격상하고 국회의원을 포함한 위원 17명을 임명했다. 서울 편입의 외연도 넓힐 모양이다. 김포 편입을 신호탄으로 서울 통근·통학 비율이 높은 하남·과천·구리·광명·남양주까지 아우르겠다는 속내를 비쳤다. 과연 서울 확장이라는 '금단의 문'이 열릴까. 정부는 1973년 이후 50년간 서울의 영역을 동결해 왔다. 국민의힘은 "외국 주요 도시와 경쟁하려면 서울을 더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처럼 수도권 집중도가 높지 않다. 인구 8천만명 독일의 수도 베를린 인구는 370만명이고, 인구 6천800만명의 프랑스 파리는 인구 220만명, 파리 외곽을 다 포함해도 1천200만명이다. 한국은 인구 5천만명에 수도권 인구가 2천500만명이 넘는다. 이미 메가시티인 서울을 더 키운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의 비판이 현답이 될 듯하다. "서울을 더 '메가'하게 만드는 건 대한민국 경쟁력을 갉아먹는 짓이다." 선진외국은 여러 대도시가 균형 있게 발전하는 다극체제다. 우린 수도권 일극체제가 워낙 강고하다. 자원배분의 '수도권 독과점' 현상은 이제 임계점을 넘어섰다. '수도권 비중 OECD 국가 1위' '수도권 유입 인구 78%가 청년층' 등을 담은 한국은행 보고서가 곡진하다. 메가 도시 계획은 도시의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일본 간사이광역연합이 성공 사례다. 오사카·교토와 시가·나라·고베 등 2부 7현은 2010년 행정구역을 뛰어넘는 간사이광역연합을 구축했다. 이후 GRDP(지역내 총생산)가 증가하며 광역경제권의 진가를 증명했다. 선진국의 메가 도시 추진은 예외 없이 '숙성의 시간'을 가졌다. 간사이광역연합은 2003년 지역 경제계에서 제안하고 민관연대기구 발족 후 7년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서야 탄생했다. 영국의 광역맨체스터연합기구는 1980년대 논의를 시작했지만 2014년에야 출범했다. 수도권 판세를 흔들기 위해 불쑥 던진 총선용 '메가 서울' 복안(腹案)과는 태생적 의도가 다르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숙'. SNS에 나도는 'in 서울' 대학 서열이다. 한데 이게 곧 우리나라 전체 대학 서열이라니. '서울 공화국'의 명징한 단면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 4일 공개한 지역별 의사분포도 어메이징하다. 2020년 현재 서울에 근무하는 의사 비중이 38.1%라는 게 놀랍고 2016년에 비해 11.7%포인트 높아졌다는 게 더 놀랍다. '서울 블랙홀'의 가공(可恐)할 자력(磁力)이다. 미국은 아이비리그와 MIT가 동부에 있긴 하나 서부 스탠퍼드, UC버클리, 서북부 시카고대 등 명문이 국토에 고루 산재해 있다. 아마존 본사는 서북 끝단 도시 시애틀에 둥지를 틀었고,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네브래스카주 중소도시 오마하에 있다. 애플 본사 소재지도 캘리포니아주 인구 5만명의 쿠퍼티노다. 모범적 지방분권 국가 스위스의 경우 10대 기업 중 8개사의 본사 위치는 지방이다. 우리는 100대 기업 본사 86%(2022년 기준)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당은 '메가 서울' 추진에 속도를 낸다. 차라리 무속인 천공의 주장대로 서울과 경기도를 통째 합치는 건 어떤가. 어쩌면 '대한민국 어디서나 잘사는 지방시대'란 슬로건마저 바꿔야 할지 모른다. '서울만 더 살기 좋은 수도권 시대'로.논설위원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경제학은 신학이 아니다"
# 사마천, 시장의 자율기능 통찰'사기'는 사서(史書)의 성경으로 불린다. 그중 52명의 화식가(부자)를 다룬 화식열전(貨殖列傳)을 중국인들은 상경(商經)이라고 한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물자의 유통 및 수요·공급 조절이 인간의 이익 추구와 시장의 자연지험으로 이루어지니 통치자는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가 저서 '도덕감정론'(1759년)과 '국부론'(1776년)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의 데칼코마니다. 2천여 년 전에 시장의 자율기능을 꿰뚫어 본 사마천의 통찰력이 압권이다.세계인들은 18세기 말 시장경제의 효용성을 만끽한다. 세계 1인당 소득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확산이 티핑 포인트가 되면서다. 국가 간 교역은 국제분업을 촉진했고, 분업은 생산성과 기술 숙련도를 높였다. 글로벌 시장경제는 소득 증가와 풍요의 마법을 선사했다. # 삼성 야구의 이유 있는 추락삼성 프로야구의 연고지는 대구, 프로축구는 수원이다. 1위 기업답게 프로 스포츠 성적도 발군이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2011~2014년 내리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2014년 삼성 스포츠단의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 변곡점을 맞는다. 제일기획은 스포츠단의 효율성과 자율성에 방점을 찍었다. 말이 좋아 효율·자율이지 본령은 구단 씀씀이를 줄이는 거였다. 스포츠에 시장경제 잣대를 들이댄 셈이다. 스타와 월척이 빠져나간 자리를 준척이나 신인들이 메웠고 결과는 순위 추락으로 나타났다. 2016년부터 4년 성적표는 9-9-6-8위, 올해도 8위다. 프로축구 수원 역시 K리그 A그룹(1~6위)에 들지 못한 채 바닥권을 헤맨다.삼성 야구 추락은 한편으론 시장주의의 실패다. 평균자책점 4.60, KBO 리그 꼴찌. 이게 삼성의 현주소다. 불펜이 약하니 역전패가 많다. 제 몫을 하는 투수는 원태인, 뷰캐넌 정도다. '동네 야구'에서나 나올 법한 황당한 수비 실책도 곁들인다. 과감한 베팅으로 톱클래스 선수를 영입하고 체계적 훈련으로 유망주를 키웠더라도 이런 결과였을까. 드넓은 수비 범위, 준족에 3할 가까운 타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리그 최고의 중견수 박해민은 왜 놓쳤나. 신임 이종열 단장 말마따나 선수 뎁스를 두텁게 하는 게 최대 과제다. # 달빛고속철도 예타 면제 마땅기획재정부가 달빛고속철도 예타 면제에 딴죽을 걸었다는데 전형적인 시장경제 논리다. 비용 대비 편익(B/C)이 0.483인 달빛철도는 예타 면제를 받지 않으면 추진 자체가 어려워진다. 달빛철도 특별법에 예타 면제를 담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성만 강조할 경우 인구밀도와 산업집적도가 낮은 지방 SOC 사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달빛고속철도는 동서화합에 따른 국민통합, 양 지역 기업들의 시너지, 역세권 주민의 삶의 질 개선 등 계량화할 수 없는 파급효과가 심대하다. 달빛철도가 깔리면 대구~광주의 시공(時空)이 1시간 남짓으로 축약된다. 남부경제권 구축의 부스터 역할은 덤이다. 예타 제도의 실효성만 따질 계제가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이란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시장경제의 효용성은 달달하다. 그러나 만능열쇠는 아니다. 복지, 스포츠, 지역균형정책에까지 시장경제 셈법을 들이대려는 발상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미국 이론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말대로 "경제학은 신학이 아니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중앙당 해체' 만한 혁신카드가 또 있을까
# 중앙집권적 정치제도 "국회의원 68%가 수도권이어서 지방정책·예산 입법안이 가로막힐 때가 많다". 지난 6월 영남일보 CEO 아카데미 강연에서 나온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의 볼멘소리다. 정치권력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고스란히 응축했다. 수적 편향보다 더 심각한 게 중앙집권적 정치제도다. 그 중심에 중앙당이 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정당의 권력은 중앙당이 장악한다. 의원들의 명줄인 공천과 징계를 중앙당이 지배하는 구도다. 중앙당의 전횡이 정치 생태계를 황폐화하고 패권주의를 낳았다. 대통령이 여당 공천을 주도하며 낙하산 공천, 공천 학살이 횡행했다. '진박 감별사'란 우스꽝스러운 조어는 하향식 공천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공천 염려증'에 걸린 여야 의원들은 대통령과 당 대표만 바라보는 '꼭두각시 정치'에 매몰됐다. 이러고도 국회의원이 헌법기관? 삼권분립의 초석을 놓은 몽테스키외는 "정치권력이 커질수록 개인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말했다. 권력관계는 제로섬 게임이다. 중앙당의 권력이 비대할수록 시·도당 및 의원 개인의 권한과 소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 혁신은 혁명처럼 중앙당 권력 이완은 우리 정치의 신산한 과제다. 마침 인요한 연세대 교수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정치 문외한 인요한이 '고난도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까.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제한된 기간, 제한된 권한 때문이다. 김기현 대표가 "전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자주 '용산 전령사'로 비하되는 김 대표에게 전권이 있는지 의문이다. 혁신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공천 룰 같은 민감한 부분에도 손을 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혁신과 인재 영입, 공천을 구분해야 맞지 않느냐"며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 위원장이 '얼굴 마담'에서 벗어나려면 파격을 택해야 한다. 인적 쇄신, 중도 스펙트럼 확대, 반공·이념주의 청산을 넘어 중앙당 해체 같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은 판을 뒤집는 것이다. 혁신도 기존 관습과 제도를 엎어야 성공한다. 물론 인요한 혁신위가 그런 능력과 힘을 가질 개연성은 낮다. 더욱이 중앙당 해체는 정당법상 불가능하다. 정당법엔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5개 지역 이상의 시·도당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다. # 2011·2018년의 쇄신책 중앙당 해체가 전혀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2018년 6월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 후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이 쇄신책으로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로 금방 동력을 잃었다. 이보다 앞서 2011년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대위 시절 남경필·정두언·김용태 등 개혁파 의원들이 내놓은 혁신방안이 중앙당 해체였다. 그땐 정당법에 막혔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중앙당이 없다. 중앙당이 없으니 정실(情實) 공천은 상상하기 어렵다. 완전한 오픈프라이머리도 가능하다. 당 대표가 없으니 원내대표가 당의 구심점이 되고 의회중심·정책중심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중앙당 해체를 전향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하면 정당법을 못 고칠 이유도 없다. 중앙당 해체는 정치분권의 트리거가 될 게 분명하다. 해체가 여의치 않다면 중앙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 중앙당을 전국위원회 체제로 바꾸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없애는 '제3의 방법'도 있다.논설위원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국민의힘이 총선서 이기는 완벽한 방법
국민의힘의 완벽한 패배.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얘기다. 진교훈 민주당 후보와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 간 득표율 차는 17.5%포인트. 미래통합당이 민주당에 참패한 2020년 총선 때 강서구 세 지역구 합산 득표율 차인 18.08%포인트와 흡사하다. 지난해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거치며 쌓은 탑을 고스란히 반납한 꼴이다.패인은 복합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시대착오적 이념전쟁, 여당의 대통령실 종속, 주 69시간 근로 따위의 설익은 정책 남발 등이 악재로 작용했을 터다. 게다가 보궐선거 귀책사유의 장본인을 대법원 확정 판결 3개월 만에 사면·복권해 다시 후보로 내세웠다. 국민의 눈엔 오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강서구청장 보선은 내년 총선 수도권 승부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내심 과반 의석을 노리는 여당으로선 충격적인 성적표다. 국민의힘이 과반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도권 지역구 121석 중 40%인 48석은 건져야 한다. 현재의 표심이라면 '미션 임파서블'이다. 더욱이 내년 총선은 집권 3년 차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고작 30%대. 여당이 불리한 구도다. 방법이 없을까. 그럴 리가. 있긴 한데 실천이 어렵다. 먼저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불통의 구각을 벗고 소통 행보를 보여야 한다. "취임 이후 정식 기자회견을 한 적이 없다"(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명분으로 내세운 도어스테핑마저 중단하지 않았나. 포용·통합의 리더십에 대한 갈증도 해소해야 한다.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군림의 리더십을 보였다"(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오바마는 대통령 재임 때 수시로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했다. 윤 대통령은 그럴 수 있을까. 당이 환골탈태해야 한다. 조타수 김기현 교체는 물론 인적·제도적 쇄신이 필요하다. 음식 맛과 위생불량을 그대로 둔 채 메뉴만 바꾼 식당이 손님을 끌 수 없는 이치다. 무엇보다 '용산 예속' 구도를 깨뜨려야 한다. 대통령에 90도 인사하는 김기현 대표의 자세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수직적 역학관계를 상징한다. '용산 해바라기' 여당에서 시스템 공천이 가능하겠나. 20대·21대 총선도 불량공천이 화를 부르지 않았나.중도층 흡인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조조가 말했던가. 중원을 얻는 자 천하를 지배한다고. 선거도 마찬가지다. 무당·중도층 표심을 얻는 정당이 선거를 지배할 것이다. 중도층 이탈은 수도권·충청권 같은 '스윙보터 지역'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 한데 윤 정부의 그간의 행보는 반(反)중도 성향이 강했다. 대통령이 불을 지핀 이념전쟁도 그렇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민주당? 극좌 유투버? 실체가 모호하다. 한 논객은 "공산전체주의란 허상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다"고 꼬집었다. 철 지난 '반공 프레임'이 중도·청년층에 먹힐 리 없다. 경선 룰의 국민여론 비중을 높이는 것도 중도층에 대한 소구력을 제고하는 방책이다.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위상을 공고히 하던 1980년대. 그러나 일본은 글로벌 트렌드를 좇지 못하며 오히려 종신고용을 자랑했다. 또 '플라자 합의'로 미국경제에 완벽하게 예속됐다.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점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민심의 흐름에 올라탈까. 이번에도 오불관언이면 총선은 보나마나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화양연화
화양연화 하면 2000년 개봉한 홍콩영화 '화양연화'가 먼저 떠오른다. 불륜적 사랑에 빠진 중년 남녀의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절제'란 키워드가 내내 영화의 저류에 흐른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미장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는 소박하고 담백하다. 진부한 스토리이면서도 진부하지 않다. '화양연화'만의 매력이다.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기'를 뜻한다. 요즘 말로 리즈 시절이다. 돌이켜보니 필자의 화양연화는 대학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한껏 자유를 누렸다. '사랑은 수많은 찬란한 무엇'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은 미국영화 '모정(慕情)'의 원제(原題)다.화양연화가 개인에 국한된 언어는 아니다. 국가도 전성기가 있는 법. 로마제국의 화양연화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 등 5현제(賢帝)가 다스리던 시기였다. 서기 96년에서 180년 사이, 이른바 '팍스 로마나' 시대다. 유럽의 화양연화는 '벨 에포크'로 묘사된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경제·문화가 급속히 발전하며 평화를 구가하던 유럽의 태평성대를 말한다.한국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 아닐까. 미 브루킹스 연구소 시니어 펠로인 앤드루 여(Andrew Yeo) 교수가 그 이유를 요약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군비 지출 세계 10위다. 삼성·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가지고 있고, BTS와 블랙핑크에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을 만들어낸 나라다". 서울대 미래전략연구원 보고서는 더 도발적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주변국에서 세계 중심국으로 도약했다. 세계 6위의 수출대국이며 2023년 기준 군사력 세계 6위다. 반도체·2차전지·바이오 등 차세대 3대 산업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다".하지만 우쭐해하기엔 '부끄러운 1위'가 너무 많다. 노인 빈곤율 4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의 세 배가 넘고, 자살률은 20년 연속 OECD 1위다. 산업재해 사망률, 공교육비 민간부담률 및 사교육비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결핵 발병률·유병률·사망률 1위의 불명예도 여전하다.선진국을 규정짓는 또 다른 척도는 국격이다. 국격은 그 나라의 정치수준, 공무원의 도덕성, 국가 부패지수, 국민의 품격과 질서의식 등이 고루 투영돼 나타난다. 국민의 삶의 질이나 사법부와 검찰의 중립성, 공영방송의 공정성도 선·후진국을 가늠할 잣대다. 우린 아직 정치가 천박하다. 여의도는 막말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문재인 모가지" "검찰 아가리"…. 검찰의 편향성도 심각하다. 살아 있는 권력엔 '관망 모드', 반정부 진영엔 추상(秋霜)이다. 무량판 '순살 아파트', 망신살 뻗친 세계스카우트잼버리도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인재(人災)다.선진국의 마지막 퍼즐은 '부끄러운 1위'를 해소하고 국격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기초연금을 포함한 복지제도 혁신이 필수다. 복지에 시장논리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4류 정치'를 업그레이드하고 국회의 생산성을 높일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검찰과 공영방송의 시스템 개혁도 더는 미룰 수 없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정치 '골디락스'는 오지 않는다
#1 '무권 유죄, 유권 석방'. 야당에서나 나올 법한 구호다. 한데 기실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든 피켓에 적힌 문구다. 법원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 영장 기각이 권력 때문이란다. 어느 쪽이 여당인지 헷갈린다. 집권(執權)은 '권세나 정권을 잡는다'는 뜻이다. 검찰·감사원 등 사정권력과 정보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집권여당이 '이재명 권력'을 주장하는 건 생뚱맞고 의뭉스럽다. 이재명이 권력의 주체라면 횟수 불문의 저인망식 압수수색이 가능했겠나. 김건희 여사의 '압색 성역'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편향된 사법부의 반국민적·반역사적·반헌법적 결정"이라고 격앙했다. 유창훈 영장전담판사의 판결이 반국민적? 대통령실 막무가내 용산 이전이 더 반국민적 아닌가. 대통령 취임 1주년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용산 이전 찬성은 29.8%, 반대 62.7%였다. 또 홍범도 흉상 이전이 더 반역사적이며, 대법원 확정 판결 석 달 만의 김태우 사면이 더 반헌법적 아닌가. 국힘은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고도 했다. 유 부장판사가 정치성향이 없는 원칙주의자라는 걸 여당이 모를 리 없건만.이재명 영장 기각에 대한 국민의힘의 논평과 대응은 홍심(紅心)을 벗어난다. 사법부를 겁박할 게 아니라 검찰의 수사 부실을 나무랐어야 했다. 여당의 아웃라이어 홍준표 대구시장의 고언이 차라리 공명을 울린다. "이재명에만 매달리는 검찰수사 정치를 버리고 여당다운 정책정당으로 거듭나라".#2 민주당도 면죄부를 받은 양 득의양양해할 처지가 아니다. 신경민 전 민주당 의원의 말대로 "영장 기각을 무죄라고 하는 건 오독"이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유창훈 판사는 "직접 증거가 부족하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서 "방어권 보장 필요성과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위증교사 등 상당 부분의 혐의를 인정했다. 기각의 결정적 이유는 '방어권 보장'으로 판단된다. 이재명 대표는 영장실질심사 최후진술에서 "좁은 방안에 갇히면 나를 향해 달려드는 수십 명의 검사들을 당해낼 수 없다"며 방어권을 호소했다."반드시 외상값을 계산해야 할 것"(정청래 최고위원). 가결 표를 던진 '수박' 의원을 색출한다고? 부결 인증 샷을 한다고? 반민주적 블랙 코미디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됐기 때문에 민주당이 '방탄'의 굴레에서 헤어난 것이다. 가결 의원 응징은 민주당의 내홍만 키울 하책(下策)이다. 친명·비명을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3 골디락스는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의 곰'에서 유래한 용어다. 인플레이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에 육박하는 성장이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경제 국면을 말한다. 정치도 골디락스 상황이 이상적이다. 여야의 대화정치, 연중 일하는 국회, 정당의 팬덤과의 거리두기, 중도층에 소구력 높은 정책 입안 등이 골디락스의 필요조건이다. 한데 우린 여야의 적대감이 너무 강하다. '정치 골디락스'는 언감생심이다. 총선 때까진 극한대치가 불가피하다. 거칠고 투박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금도 100여 건의 민생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논설위원박규완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엉뚱한 데서 샌다
부동산과 국가부채. 이게 뭘까. 문재인 정부의 2대 실정(失政)을 웅변하는 키워드다. 문 정부 5년간 아파트 가격이 두 배 올랐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 나랏빚도 엄청 늘었다. 2017년 660조원이었던 국가부채는 2021년 말 1천69조원으로 불어났다. 순증액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351조원보다 많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36%에서 49.7%로 높아졌다. 방만 재정운용의 후과다. 5년 새 공무원 인건비만 연간 9조원 늘었다니…. 윤석열 정부는 결이 다르다. 건전재정 전환에 방점을 찍었다. 2024년도 정부 예산안 총지출 증가율을 2005년 이후 최저인 2.8%로 결정했다. 재정준칙 도입도 서두른다. 관리재정수지 기준으로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한다. 이른바 '3% 룰'이다. 문 정부가 2020년 입안했던 재정준칙보다 단순하고 빡세다. OECD 38개국 중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윤 정부가 빛의 속도로 늘어나던 나랏빚에 제동을 건 셈이니 상찬할 만하다. 한데 엉뚱한 데서 샌다. 멀쩡한 민방위복 교체가 일례다. 왜 바꿨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록색이 더 세련돼 보여서? 민방위복은 재난상황에 입는 옷이다. 숲속이나 바다, 어두운 데서도 눈에 잘 띄는 노란색이 청록색보다 더 적합하다.행정안전부는 기존 민방위복이 방수 및 난연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댔는데 색깔을 바꾸지 않고도 새 제품의 기능을 개선해 나가면 될 일 아닌가. 민방위 복제 개편을 위한 회의가 14번이나 열렸는데도 회의록이 없다? 석연찮다. 괜히 교체 배경의 궁금증을 자극한다.돈이 새는 곳이 이뿐이랴. 대통령실 용산 이전비용은 기하급수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이전을 밀어붙일 때 "이전비용이 496억원"이라며 "다른 문제는 없다"고 흔쾌히 말했다. 그런데 웬걸. 496억원은 이제 왜소해 보인다. 대통령실과 국방부에 밀려난 합참 이전에 투입되는 예산만 수천억 원에 이른다. "합참 이전 비용을 2천억~3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합참이 국방부에 제시한 이전비용은 2천393억원이다. 합참은 2026년까지 과천 남태령으로 옮겨간다. 영빈관 같은 난제도 불거졌다. 뜨끔한 여론에 신축 계획을 철회했지만 청와대로 돌아가지 않을 요량이라면 영빈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신축비용 878억원은 언젠가 집행돼야 할 예산이다. 용산 대통령실 사이버안전관리시스템 구축과 통합검색센터 신설에 들어간 비용이 74억원이다. 윤 대통령이 5년 내내 한남동 관저에서 출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통통제와 경찰인력 동원 등 기회비용이 만만찮아서다. 용산 대통령 관저 신축이 불가피하단 의미다. 새 관저 건축엔 또 얼마를 써야 할까. 정부가 비영리재단법인 '청와대 재단'을 신설할 모양이다. 청와대 관리 및 운영, 공간 활용사업, 문화재 보존연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재단 설립 비용으로 330억원을 책정했다. 청와대 리모델링에도 2년간 176억원이 투입된다. 대통령실을 이전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절감할 수 있는 예산들이다. 굳이 어공(어쩌다 공무원), 늘공(늘 공무원)을 따진다면 대통령은 임시직 어공이다. 5년 기한의 임시직이 백년대계 국가 중대사를 독단으로 결정한다? 국민은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용산 대통령실과 관련한 추가 비용이 불어날수록 졸속 이전이란 비난이 커질 수밖에 없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전랑 정부'는 없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입이 부쩍 거칠어졌다. 지난 대선 때의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를 두곤 "이 사건은 국민주권 찬탈 시도이자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쿠데타 기도로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반역죄"라고 했다. 전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해선 "직원들이 속이는데 주인이 모르고 있었다면 바지 사장이고, 알았다면 주범"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강조하던 때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한덕수 국무총리도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대정부 질문이 열린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장. "최근 영국 과학지에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보도가 나왔다"(안호영 민주당 의원). "과학지에 났다고 다 확정된 사실인가. 미신적·주술적 몰지성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한 총리). "우리 수산업자를 보호하는 최선의 길은 일본이 방류하지 않도록 하는 것"(안 의원). "아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지 않는 것이다"(한 총리). 미신적? '손바닥 王자'가 더 미신 아닌가."1+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들과 싸울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투적 자세를 주문하자 여당 의원과 국무위원들이 '전투 모드'로 변환했다. 대야 전투력을 공천에 반영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어떤 국무위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유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야구장 왔느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전사(戰士) 기질이 개각에도 투영된 모양이다. "이번 개각을 보면 제일 잘 싸우는 사람만 그냥 골랐던 것 같다"(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이념전쟁의 돌격대원들"(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정제되지 않은 과거 발언도 소환됐다. "초대 악마 노무현" "문재인 모가지 따는 날" "전두환의 12·12는 나라 구하려던 것" "촛불은 반역". 어록(?)만 보면 영락없는 '아스팔트 우파'다. 군은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국방장관 신원식'은 문제가 없을까.전투적 여당과 내각이 자기진영의 환호는 이끌어낼 수 있겠다. 하지만 합리적 중도층은 등을 돌릴 개연성이 크다. 정국 냉각은 필연이다. 일련의 정치 현안들이 노정되면서 여야의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더 공고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과 병원 후송, 검찰의 이 대표 영장 청구, 민주당의 한덕수 총리 해임 결의안 제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21일엔 이 대표 체포 동의안과 한 총리 해임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여의도 사상 초유다.전랑외교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세적 외교를 지향하는 시진핑 체제 중국의 외교 방식을 일컫는다. 전랑(戰狼)은 늑대 전사라는 뜻이다. 전투력을 고양하는 윤석열 정부도 '전랑'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전랑외교를 펼친 중국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고, 전랑외교의 선봉장 친강 전 외교부장은 행방이 묘연하다. 전랑 내각, 전랑 여당으론 협치를 구현할 수 없다. 총선 전략으로도 유리할 게 없다. 현생 인류는 '호모 비오랑스(Homo Violence)'다. 폭력적 본능이 잠재해 있다는 의미다. 굳이 전투력을 부추길 이유가 있을까.초능력자 드라마 '무빙'의 인기가 일본과 동남아까지 휩쓸고 있다. 여느 명작처럼 '무빙'에도 명대사가 나온다.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이야". '전투 모드'의 윤 정부는 국민 공감을 얻어낼 능력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의 초능력은 아주 평범한 데 있는지 모른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0.70 솔루션
6.0→0.70. 이게 뭘까.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다. 1960년대 6.0명이던 출산율이 2023년 2분기 0.70명으로 꼬꾸라졌다. 급격한 추락 속도에 60년의 세월마저 왜소해진다. 고작 0.70명이라니. 암울한 숫자다. 지역소멸을 넘어 국가소멸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꼴찌에서 둘째인 이탈리아도 1.24명(2022년 기준)이다. 20.8→50.5. 이건 또 뭘까. 수도권 인구 비중이다. 1960년 20.8%에 불과하던 수도권 인구는 지난해 50.5%로 늘어났다. 수도권 인구는 2019년 우리나라 인구의 50%를 초과한 이래 매년 0.2%포인트 증가하는 추세다. 합계출산율과 전체 인구 감소세는 아랑곳없다는 듯.'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정립한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수는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만물과 만사(萬事)가 숫자로 꿰어진다. 진실과 현상도 숫자로 노정된다. 0.70과 50.5는 합계출산율과 수도권 집중의 함수관계를 은유한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할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반비례 현상을 투영한다. 의미 있는 수치는 또 있다. 올 2분기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59명으로 전국 최저다. 1위는 1.80명의 전남 영광군. 사회·문화 인프라가 더 열악한 영광군의 출산율이 전국 최고라니. 수도권 일극체제의 폐해가 오롯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거주지와 출산율의 상관관계는 일본의 정책 실험에서도 증명됐다. 도쿄에서 지방으로 이주한 직장인들의 출산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워라밸이 출산율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58분. OECD 국가의 두 배에 달한다. 수도권은 출퇴근 지옥이다. 출산율 제고엔 치명적 악재다.결론은 지역균형발전. 0.70 해법도 균형발전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정곡을 찔렀다.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와 좋은 교육환경이 만들어져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도 나름 지역균형 정책을 펼치긴 한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란 슬로건에도 균형발전의 의지가 녹아있다. 기회발전특구는 꽤나 창발적인 제도다.하지만 이 정도론 50.5%의 '수도권 캐슬'을 허물 수 없다. 미 타임지는 2020년 대선 하루 전인 11월2일자 표지에 'TIME' 로고를 빼고 'VOTE(투표하라)'를 배치했다. 창간 97년 만의 파격에 세계가 주목했다. 균형발전 정책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지역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로 통합한다든가 대법원의 대구 이전 같은 파격 말이다.좀 더 현실적인 대안도 즐비하다. 법인세의 공동세화는 어떤가. 지방을 발전 정도에 따라 4곳으로 분류해 재정자립도가 높고 자체 경쟁력이 있는 지역엔 법인세의 중앙정부 귀속분을 늘리고, 낙후지역은 지방정부 귀속분을 늘리는 방식이다.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에 다 유효하다. 이철우 도지사가 제안한 '국가균형발전 인지예산제'도 신박한 아이디어다. 자치입법권·자치조직권 강화와 지방분권 개헌, 지방시대위원회 행정권 부여는 해묵은 과제다.2006년부터 38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붓고도 합계출산율이 이 모양이다. 내년에도 '저출생 극복'에 17조원의 예산을 쓴다지만 기존 패턴과 정책을 반복·나열하는 수준이다. 양육·교육·주거·고용·워라밸을 아우르는 '그랜드 비전'을 다시 짜야 한다. 그 최선봉에 균형발전 정책을 놓아야 할 것이다. 0.70 솔루션은 수도권 일극체제 혁파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이념 도그마에 박제될 건가
공산주의 원조는 누굴까. 플라톤이란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그의 역저 '국가'엔 공산주의 사조가 꽤 명징하게 스며있다. 흔히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와 대칭하는 정치 언어로 이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경제적 개념이다. 코뮤니즘(communism)의 어원이 공유재산을 뜻하는 라틴어 코뮤네(commune)다. 한자 공산(共産)도 마찬가지다. 다만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창시된 마르크스주의를 레닌이 러시아에서 실행하면서 공산주의를 정치체제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그때 창립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공산당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유(私有) 욕구를 간과한 공산주의는 비효율로 좌절했다. 1990년 들어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규정했다. '역사의 종언(終焉)'이 탄생한 배경이다. 공산국가의 통제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완벽한 승리였다. 중국이 살아남은 건 덩샤오핑 덕분이다. 덩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시장경제 도입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다. 중국의 경제체제는 국가자본주의다. 한물간 공산주의가 다시 논란이다. 후쿠야마 교수가 '게임 오버'라고 선언했던 게 30여 년 전 아닌가.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이념 논쟁은 그래서 시대착오적이다. 디지털 음원 시대에 고색창연한 축음기를 트는 느낌이랄까. 홍범도 색깔론은 정합성이 결여된 데다 여러 모순을 잉태한다. 건국훈장 서훈은 1962년 박정희 대통령 때, 홍범도함 명명은 2016년 박근혜 정부 때다. 윤석열 정부만 공산당 전력에 시비를 건다? 보수 정부 정체성의 이율배반이다.국방부의 왜곡도 계면쩍다.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건 맞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 개입과 빨치산 주장은 팩트가 아니다. 1921년 일어난 자유시 참변 이전에 이미 홍범도 부대는 무장해제했다. 또 당시의 빨치산은 비정규군을 의미했다. 광복 후 남한에서 암약하던 공산 게릴라와는 전혀 다른 뜻이다. 빨치산으로 눙쳐 홍범도 장군을 폄훼하려는 '더듬수'가 눈에 읽힌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1920년의 거사였고 김일성은 1912년생이다. 홍범도와 김일성 공산 게릴라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일관성 없는 잣대도 문제다. 홍범도 식의 '사상몰이'라면 남로당 조직책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주홍글씨' 낙인을 비켜가기 어렵다. 백선엽 장군의 만주군 간도 특설대 이력은 왜 분칠하기에 급급한가. 회개했기 때문이라고? 낯간지러운 미첨(媚諂)이다.지금은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1950년대도, 냉전 시대도 아니다. 1990년대 동유럽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공산주의는 반쯤 소멸됐다. 민주당의 반시장 정책도 '공산'과는 거리가 멀다. 북유럽의 수정자본주의에 가깝다. 뜬금없는 공산주의 이념 타령보단 신자유주의 같은 자본주의 병폐 논쟁이 훨씬 유익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념이 곧 국정철학"이라고 했다. 동의하기 어렵다. 위정자의 국정철학은 이념이 아니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실사구시와 민본이어야 한다. 철 지난 공산당 이력을 들먹여 독립영웅을 모욕할 참이면 차라리 간토 학살을 모른 척하는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라. 그게 더 역사적 의미가 있을 듯싶다. 아니면 패륜군주 인조 재평가는 어떤가.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Serendipity'는 어느 당으로
#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출범 50일 만에 조기 종료했다. 능력도 없고 방향성과 정체성마저 상실한 혁신위의 당연한 귀결이다. 노인 폄하 발언 등 김은경 위원장의 섣부른 언행은 내내 구설에 올랐다. 흡사 '리스크위원회'였다. 종료 직전 불쑥 던진 혁신안은 불쏘시개에 가까웠다. 당내 갈등만 촉발했다. 권리당원과 대의원의 '표의 등가성' 제안은 사실상 대의원제 폐지다. 팬덤을 향한 소구력은 있겠으나, 중도 성향엔 부합하지 않는다. 비명계 의원들은 "호남당, 개딸당으로 만들려는 꼼수"라며 반발했다.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도 민주당은 전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한다. 왜일까. 일단 반성에 인색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및 노동정책, 검경 수사권 조정, 탈원전 등 실패에 대한 성찰이 없다. 정책 실패 백서도 내놓지 않았다. 이러니 대안정당의 이미지를 만들지 못한다. 유연하지도 스마트 하지도 않다. 이념에 경도된 반시장 정책을 마냥 고수한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면서 집단 퇴장을 들먹이는 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인가. "저질 방탄" 얘기를 들어도 싸다.#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용만 보면 6·25 기념사 같다. 팬덤 입맛에는 맞겠으나 외연 확대엔 마이너스다. 국민의힘은 이미 3월 전당대회에서 '당원 100% 룰'을 적용함으로써 스스로 원심력을 저하했다. 기실 전체주의는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정부는 잼버리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기업과 대학에 대원들 수용을 일방 통보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엔 단체급식업체에 수산물 소비를 종용했다. 이런 게 전체주의적 발상이다.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찬성하거나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암묵적 동의? 암묵적 동의는 '사실상 찬성'과 동의어다. 찬성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실이 자체 예산을 들여 '오염수 안전' 홍보 영상을 제작한다? 안전 우려 주장을 괴담 취급한다?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은근히 닮은꼴이다. 개혁은 시늉만 하고 팬덤 지향적이다. 혁신을 제대로 했다면 국회의원들이 여전히 200여 가지 특권을 누리고 있을 턱이 없다. 팬덤 직거래는 위험하다. 상식과 합리보다 이념 우선의 정치가 펼쳐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실사구시 정책의 추동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논평은 천박하다. 촌철살인의 풍자와 정연한 논리는 없고 상대 당을 공박하기 위한 견강부회와 거친 언설만 난무한다. 국민을 우선하는 척하며 실제론 정략에 몰입하는 위선도 양당이 판박이다. 정율성과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이념 논쟁은 뜬금없고 생뚱맞다. '못난이들 경연' 같다. 답은 무위(無爲)다. 정율성 역사공원도, 홍범도 흉상 이전도 백지화하는 게 옳다.남 탓하기보단 징비록 쓰고 시스템 공천하고 강도 높은 혁신하고 중도층으로 외연 넓히는 정당이 승리한다는 게 불변의 선거 방정식이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를 떠받치는 거대 양당이 저 모양이니 내년 총선은 비호감 '마이너리그'나 하수들의 '운칠기삼'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찐윤 감별사' '수박 감별사'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력 없는 팀끼리 붙으면 흔히 실책이 결정적 변수가 되곤 한다. 상대의 자살골이 나의 'Serendipity'라는 뜻이다. 어느 당이 '뜻밖의 행운'을 누릴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대구경제 부활 - 그 전조 현상들
부활이란 말을 접하면 우린 어떤 것을 연상할까. 아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부활'을 떠올릴 것 같다. 가수 김태원이 리더로 있는 그룹 부활 또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1894년 완성된 교향곡 '부활'은 말러가 존경했던 뵐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영원불멸한 우주와 인간의 허무, 부활에의 동경을 음악으로 녹여냈다. 부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일까.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만년 꼴찌'란 멍에의 보상심리 때문일까. 대구시민의 경제부활 염원은 유난하다. 체화(體化)되다시피 했다. 그런 시민들의 소망에 화답이라도 하듯 대구경제가 꿈틀거린다. 부활의 전조(前兆)가 일렁인다. # 산업지형이 바뀌었다 대구 '1천억원 클럽' 기업 98개 중 섬유업종은 티케이케미칼 단 한 곳. 섬유가 득세하던 자리를 2차전지·반도체·전기차부품·의료기기가 메꿨다. 엘앤에프, 에스앤에스텍, 성림첨단산업, 카펙발레오, 에스엘, 대성하이텍, 이수페타시스, 메가젠임플란트 등이 눈에 띈다. 신성장업종의 약진이 눈부시다. 산업 경쟁력이 제고되고 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엘앤에프는 대기업보다 더 주목받는 신스틸러다. 양극재란 성장업종에 올라탔으니 매출 신장세가 거침이 없다. 산업 부침(浮沈)의 조류를 제대로 읽은 결과다. 지난해 5월엔 1천50개사가 포진한 코스닥에서 시가총액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엘앤에프는 '더 큰 물'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을 준비 중이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에스엘은 중견기업의 포스를 넘어섰다. 탄탄한 기술력으로 생산거점을 글로벌화 했다. # 발군의 경제지표 대구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3.8%로 역대 최고치다. 전국 평균 0.9%를 크게 웃돈다. 5.3%의 제조업 생산증가율 역시 전국 평균 -9.8%를 압도한다. 국가경제든 지역경제든 성장의 일등 공신은 수출. 대구의 수출 증가세가 폭발적이다. 올 상반기 대구 수출실적은 59억9천300만달러.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8% 늘어나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경제지표에 탄력이 붙으면서 대구시도 자신감이 생겼다. "내년 말 통계에선 1인당 GRDP 꼴찌를 벗어날 수 있다"고 확언한다. '중국 리스크'가 변수다. # 앵커기업·첨단기업이 온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대구 투자는 상징적이다. 두산그룹의 계열사여서가 아니다. 기술이 축적된 기업인 데다 2차전지 리사이클링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다. 두산의 미래 먹거리와 대구 신성장산업의 교집합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도 있다. 엘앤에프 등과의 윈-윈 구도가 가능하다. 대구테크노폴리스에 투자를 확정한 베어로보틱스도 돋보인다. 세계 최초로 AI 기반 자율서빙 로봇을 개발한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이다. 국내 최대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 HD현대로보틱스는 이미 달성군에 둥지를 틀었다. 대구경제 부활의 날갯짓이 시작된 건가. 수변 신도시로 탄생할 K2 이전지와 대구경북신공항이 부스터 역할을 해주면 금상첨화다. 신성장산업과 앵커기업·토종기업들이 촉발할 나비효과, 그 자장이 어디까지 증폭될지 궁금하다.논설위원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무능'을 징비하라
로마제국 17대 황제 코모두스는 폭군이면서 무능했다. 로마 쇠락의 시작점도 코모두스 재위 때였다. 코모두스는 자신을 신격화하고 기행을 일삼았다. 스스로 검투사가 돼 콜로세움 경기장에 서기도 했다. '어느 날 경기장에서 원로원 의원들이 맨 앞줄에 앉아 관람하고 있었다. 그날 코모두스의 상대는 타조였다. 코모두스는 돌진해오는 타조를 단칼에 베었다. 그런 다음 의원들을 돌아보며 칼을 한 번 휘둘렀다. 마음만 먹으면 너희들 목도 이렇게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듯이'(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종말의 시작'). 암군 코모두스는 현군 아우렐리우스의 친아들이다. 로마 '최고의 황제'가 낳은 로마 '최악의 황제'였다.무능한 임금 선조와 인조는 전란을 불렀고, 역시 무능한 패륜군주 수양제는 왕조의 단명을 자초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국민에겐 무능한 군주보다 차라리 사악한 군주가 낫다"고 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미인이 나라를 기울게 한다? 아니 군주의 무능이 나라를 기울게 한다. 공직자의 무능은 재앙을 빚는다.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조직위원회에서 '무능의 극치'를 봤다. 잼버리 조직위는 지난 8일 충남 홍성군 혜전대학 기숙사에 예맨 대원 175명을 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홍성군과 혜전대는 환영 현수막을 걸고 출장뷔페 음식도 준비했다. 하지만 이튿날 저녁때까지 이들은 오지 않았다. 조직위는 예맨 대원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날 밤늦게야 확인했다. 같은 날 경기도 고양시 NH인재원에 배정된 시리아 대원 80명도 입국하지 않았다. 조직위가 대원들 입국 여부조차 모른다? '개판 5분 전'의 상황이 이랬을까. 국민의힘이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직 감찰, 감사원 감사, 강제수사까지 주문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직위와 전북도 등 관련 기관 담당자를 다 포함해야 한다. 한데 강제수사까지 동원하겠다며 왜 국정조사는 언급하지 않는지 의아하다.반추해보니 윤석열 정부에선 '읍참마속'이 없었다. 대통령과 연이 닿는 '성골' 고위직에겐 책임을 묻지 않았다. 159명이 희생한 이태원 사고에도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건재했다. 오송 참사 때도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은 열외로 돌렸다. 선출직이어서 그랬다나. 선출직은 신성불가침인가. LH(한국주택토지공사) 무량판 아파트 사태도 임직원의 무능과 부패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한준 사장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복마전 LH의 혁신을 맡겼다.해병대 수사단장 파문도 요상하다. 수사 주체가 졸지에 '집단항명 수괴' 혐의를 받다니. 상식적이진 않다. 외압의 냄새가 물씬 난다. 항간엔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 같이 근무했던 소위 'MB 카르텔'의 파워가 작동했다는 소문이 나돈다.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해병대 수사단의 태생적 한계다. 이러고서야 고위직 문책이 가능하겠나.읍참마속을 '삼국지'의 서사로만 치부하면 무능을 징비하기 어렵다. 사연(私緣)과 진영 논리를 넘어 일벌백계로 무능과 무사안일을 응징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의 무능에 눈 감는 건 미래의 인재(人災)를 방치하는 거나 다름없다. 징비는 징계할 징(懲), 삼갈 비(毖)다. 직위 불문, 친소 불문 엄히 책임을 물어야 비로소 경계하고 삼갈 것이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꽃이 지면 바람을 탓할까
투자회사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미국은 '양적완화(QE)'로 대응했다. 중앙은행 Fed(연방준비제도)가 달러를 마구 살포했다. 얼마나 뿌려댔으면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헬리콥터 벤'이란 별칭을 얻었을까.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담보대출) 부실과 ABS(자산유동화증권) 같은 파생금융상품의 방만 운영에서 시발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조야 일각에선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이라며 딴죽을 걸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 때문에 세계 제조업이 중국으로 몰리면서 고용시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상품가격이 왜곡됐다는 논리였다. 명백한 궤변이자 책임전가다.남 탓 DNA가 또 도진 건가. 이번엔 망신살이 오지게 뻗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책임 비틀기다. 대통령실은 "새만금 잼버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준비해온 것"이라고 둘러댔다. 세계잼버리의 새만금 유치는 문 정부 때인 2017년 확정된 게 맞다. 하지만 잼버리는 경기장을 신축해야 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다르다.최대 실책은 2015년 한국스카우트연맹의 세계잼버리 개최지 새만금 낙점이다. 한여름에 그늘도 없는 갯벌매립지에서 대규모 야영이라니. 투자유치가 절실했던 새만금을 널리 알리겠다는 복선(伏線)이 깔렸을 터다. 우려는 진즉 제기됐다. 2016년 타당성 조사를 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새만금처럼 간척지에서 열린 2015년 일본 세계잼버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쉼터용 텐트를 충분히 마련하고 물 제공량을 늘려 무더위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늘막 설치, 화장실 위생, 물·얼음 공급 따위를 5년 전부터 준비해야 하나.국회 회의록에도 현 정부의 안일한 행태가 오롯이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 "폭염이나 폭우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점검하셔야 된다"(이원택 의원). 이 의원은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현장 영상까지 보여주며 잼버리 대회 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가부 장관에게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올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대비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8월1일을 맞이한다면 잼버리 대회가 공포와 트라우마로 남는 대회로 전락할 수 있다"(김윤덕 의원).김 의원의 말대로 잼버리는 폭염 속의 '생존게임'으로 돌변했다. 물이 흥건한 땅에 텐트들이 설치된 장면은 대회의 총체적 부실을 웅변한다. 지난 6월16~18일의 리허설 '작은 잼버리'에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고도 '플랜 B'는 없었다. 기반시설 구축에 소홀했던 문 정부나 실무를 맡은 전북도도 비난받아 마땅하다.대개 '남 탓'은 무능한 자들의 변명이거나 책임전가의 발로다. 문재인 정부는 용렬했다. 아파트값 폭등마저 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렸다. 윤석열 정부는 더 심하다. 체화(體化)된 듯 '전 정부 핑계'를 남발한다. 무량판 아파트 결함이 불거졌을 땐 윤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진 것임을 강조했다.'전 정부 탓' 프레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여론의 질타가 두려운 걸까. 선거 악재를 미리 걷어내려는 자위 조치일까. 아니면 정략이거나 확증편향일까. 어쨌거나 '전 정부 타령'은 감흥이 없다. 생뚱맞고 식상하다. 조지훈의 시 '낙화'의 첫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대협 "법원 행태는 모순…정부 의대생 복귀 호소는 오만" 주장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원숭이띠 5월 20일 ( 음 4월 13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