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화양연화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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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2  |  수정 2023-10-12 06:59  |  발행일 2023-10-12 제22면
국가도 전성기…한국은 지금

수출대국·군사력 세계 6위

차세대 산업 대량생산 가능

'부끄러운 1위' 해소는 과제

'4류 정치' 업그레이드 필수

[박규완 칼럼] 화양연화
논설위원

화양연화 하면 2000년 개봉한 홍콩영화 '화양연화'가 먼저 떠오른다. 불륜적 사랑에 빠진 중년 남녀의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절제'란 키워드가 내내 영화의 저류에 흐른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미장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는 소박하고 담백하다. 진부한 스토리이면서도 진부하지 않다. '화양연화'만의 매력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기'를 뜻한다. 요즘 말로 리즈 시절이다. 돌이켜보니 필자의 화양연화는 대학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한껏 자유를 누렸다. '사랑은 수많은 찬란한 무엇'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은 미국영화 '모정(慕情)'의 원제(原題)다.

화양연화가 개인에 국한된 언어는 아니다. 국가도 전성기가 있는 법. 로마제국의 화양연화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 등 5현제(賢帝)가 다스리던 시기였다. 서기 96년에서 180년 사이, 이른바 '팍스 로마나' 시대다. 유럽의 화양연화는 '벨 에포크'로 묘사된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경제·문화가 급속히 발전하며 평화를 구가하던 유럽의 태평성대를 말한다.

한국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 아닐까. 미 브루킹스 연구소 시니어 펠로인 앤드루 여(Andrew Yeo) 교수가 그 이유를 요약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군비 지출 세계 10위다. 삼성·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가지고 있고, BTS와 블랙핑크에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을 만들어낸 나라다".

서울대 미래전략연구원 보고서는 더 도발적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주변국에서 세계 중심국으로 도약했다. 세계 6위의 수출대국이며 2023년 기준 군사력 세계 6위다. 반도체·2차전지·바이오 등 차세대 3대 산업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다".

하지만 우쭐해하기엔 '부끄러운 1위'가 너무 많다. 노인 빈곤율 4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의 세 배가 넘고, 자살률은 20년 연속 OECD 1위다. 산업재해 사망률, 공교육비 민간부담률 및 사교육비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결핵 발병률·유병률·사망률 1위의 불명예도 여전하다.

선진국을 규정짓는 또 다른 척도는 국격이다. 국격은 그 나라의 정치수준, 공무원의 도덕성, 국가 부패지수, 국민의 품격과 질서의식 등이 고루 투영돼 나타난다. 국민의 삶의 질이나 사법부와 검찰의 중립성, 공영방송의 공정성도 선·후진국을 가늠할 잣대다.

우린 아직 정치가 천박하다. 여의도는 막말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문재인 모가지" "검찰 아가리"…. 검찰의 편향성도 심각하다. 살아 있는 권력엔 '관망 모드', 반정부 진영엔 추상(秋霜)이다. 무량판 '순살 아파트', 망신살 뻗친 세계스카우트잼버리도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인재(人災)다.

선진국의 마지막 퍼즐은 '부끄러운 1위'를 해소하고 국격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기초연금을 포함한 복지제도 혁신이 필수다. 복지에 시장논리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4류 정치'를 업그레이드하고 국회의 생산성을 높일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검찰과 공영방송의 시스템 개혁도 더는 미룰 수 없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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