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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공산주의 원조는 누굴까. 플라톤이란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그의 역저 '국가'엔 공산주의 사조가 꽤 명징하게 스며있다. 흔히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와 대칭하는 정치 언어로 이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경제적 개념이다. 코뮤니즘(communism)의 어원이 공유재산을 뜻하는 라틴어 코뮤네(commune)다. 한자 공산(共産)도 마찬가지다. 다만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창시된 마르크스주의를 레닌이 러시아에서 실행하면서 공산주의를 정치체제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그때 창립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공산당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유(私有) 욕구를 간과한 공산주의는 비효율로 좌절했다. 1990년 들어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규정했다. '역사의 종언(終焉)'이 탄생한 배경이다. 공산국가의 통제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완벽한 승리였다. 중국이 살아남은 건 덩샤오핑 덕분이다. 덩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시장경제 도입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다. 중국의 경제체제는 국가자본주의다.
한물간 공산주의가 다시 논란이다. 후쿠야마 교수가 '게임 오버'라고 선언했던 게 30여 년 전 아닌가.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이념 논쟁은 그래서 시대착오적이다. 디지털 음원 시대에 고색창연한 축음기를 트는 느낌이랄까. 홍범도 색깔론은 정합성이 결여된 데다 여러 모순을 잉태한다. 건국훈장 서훈은 1962년 박정희 대통령 때, 홍범도함 명명은 2016년 박근혜 정부 때다. 윤석열 정부만 공산당 전력에 시비를 건다? 보수 정부 정체성의 이율배반이다.
국방부의 왜곡도 계면쩍다.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건 맞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 개입과 빨치산 주장은 팩트가 아니다. 1921년 일어난 자유시 참변 이전에 이미 홍범도 부대는 무장해제했다. 또 당시의 빨치산은 비정규군을 의미했다. 광복 후 남한에서 암약하던 공산 게릴라와는 전혀 다른 뜻이다. 빨치산으로 눙쳐 홍범도 장군을 폄훼하려는 '더듬수'가 눈에 읽힌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1920년의 거사였고 김일성은 1912년생이다. 홍범도와 김일성 공산 게릴라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일관성 없는 잣대도 문제다. 홍범도 식의 '사상몰이'라면 남로당 조직책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주홍글씨' 낙인을 비켜가기 어렵다. 백선엽 장군의 만주군 간도 특설대 이력은 왜 분칠하기에 급급한가. 회개했기 때문이라고? 낯간지러운 미첨(媚諂)이다.
지금은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1950년대도, 냉전 시대도 아니다. 1990년대 동유럽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공산주의는 반쯤 소멸됐다. 민주당의 반시장 정책도 '공산'과는 거리가 멀다. 북유럽의 수정자본주의에 가깝다. 뜬금없는 공산주의 이념 타령보단 신자유주의 같은 자본주의 병폐 논쟁이 훨씬 유익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념이 곧 국정철학"이라고 했다. 동의하기 어렵다. 위정자의 국정철학은 이념이 아니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실사구시와 민본이어야 한다.
철 지난 공산당 이력을 들먹여 독립영웅을 모욕할 참이면 차라리 간토 학살을 모른 척하는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라. 그게 더 역사적 의미가 있을 듯싶다. 아니면 패륜군주 인조 재평가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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