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꽃이 지면 바람을 탓할까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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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0  |  수정 2023-08-10 06:54  |  발행일 2023-08-10 제22면
그늘 없는 갯벌매립지에서

한여름 대규모 야영이라니

부실 우려 지적받고도 안일

'전 정부 핑계' 무능의 발로

정략과 확증편향 경계해야

[박규완 칼럼] 꽃이 지면 바람을 탓할까
박규완 논설위원

투자회사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미국은 '양적완화(QE)'로 대응했다. 중앙은행 Fed(연방준비제도)가 달러를 마구 살포했다. 얼마나 뿌려댔으면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헬리콥터 벤'이란 별칭을 얻었을까.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담보대출) 부실과 ABS(자산유동화증권) 같은 파생금융상품의 방만 운영에서 시발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조야 일각에선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이라며 딴죽을 걸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 때문에 세계 제조업이 중국으로 몰리면서 고용시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상품가격이 왜곡됐다는 논리였다. 명백한 궤변이자 책임전가다.

남 탓 DNA가 또 도진 건가. 이번엔 망신살이 오지게 뻗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책임 비틀기다. 대통령실은 "새만금 잼버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준비해온 것"이라고 둘러댔다. 세계잼버리의 새만금 유치는 문 정부 때인 2017년 확정된 게 맞다. 하지만 잼버리는 경기장을 신축해야 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다르다.

최대 실책은 2015년 한국스카우트연맹의 세계잼버리 개최지 새만금 낙점이다. 한여름에 그늘도 없는 갯벌매립지에서 대규모 야영이라니. 투자유치가 절실했던 새만금을 널리 알리겠다는 복선(伏線)이 깔렸을 터다. 우려는 진즉 제기됐다. 2016년 타당성 조사를 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새만금처럼 간척지에서 열린 2015년 일본 세계잼버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쉼터용 텐트를 충분히 마련하고 물 제공량을 늘려 무더위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늘막 설치, 화장실 위생, 물·얼음 공급 따위를 5년 전부터 준비해야 하나.

국회 회의록에도 현 정부의 안일한 행태가 오롯이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 "폭염이나 폭우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점검하셔야 된다"(이원택 의원). 이 의원은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현장 영상까지 보여주며 잼버리 대회 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가부 장관에게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올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대비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8월1일을 맞이한다면 잼버리 대회가 공포와 트라우마로 남는 대회로 전락할 수 있다"(김윤덕 의원).

김 의원의 말대로 잼버리는 폭염 속의 '생존게임'으로 돌변했다. 물이 흥건한 땅에 텐트들이 설치된 장면은 대회의 총체적 부실을 웅변한다. 지난 6월16~18일의 리허설 '작은 잼버리'에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고도 '플랜 B'는 없었다. 기반시설 구축에 소홀했던 문 정부나 실무를 맡은 전북도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개 '남 탓'은 무능한 자들의 변명이거나 책임전가의 발로다. 문재인 정부는 용렬했다. 아파트값 폭등마저 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렸다. 윤석열 정부는 더 심하다. 체화(體化)된 듯 '전 정부 핑계'를 남발한다. 무량판 아파트 결함이 불거졌을 땐 윤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진 것임을 강조했다.

'전 정부 탓' 프레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여론의 질타가 두려운 걸까. 선거 악재를 미리 걷어내려는 자위 조치일까. 아니면 정략이거나 확증편향일까. 어쨌거나 '전 정부 타령'은 감흥이 없다. 생뚱맞고 식상하다. 조지훈의 시 '낙화'의 첫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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