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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 중앙집권적 정치제도
"국회의원 68%가 수도권이어서 지방정책·예산 입법안이 가로막힐 때가 많다". 지난 6월 영남일보 CEO 아카데미 강연에서 나온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의 볼멘소리다. 정치권력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고스란히 응축했다. 수적 편향보다 더 심각한 게 중앙집권적 정치제도다. 그 중심에 중앙당이 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정당의 권력은 중앙당이 장악한다. 의원들의 명줄인 공천과 징계를 중앙당이 지배하는 구도다.
중앙당의 전횡이 정치 생태계를 황폐화하고 패권주의를 낳았다. 대통령이 여당 공천을 주도하며 낙하산 공천, 공천 학살이 횡행했다. '진박 감별사'란 우스꽝스러운 조어는 하향식 공천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공천 염려증'에 걸린 여야 의원들은 대통령과 당 대표만 바라보는 '꼭두각시 정치'에 매몰됐다. 이러고도 국회의원이 헌법기관? 삼권분립의 초석을 놓은 몽테스키외는 "정치권력이 커질수록 개인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말했다. 권력관계는 제로섬 게임이다. 중앙당의 권력이 비대할수록 시·도당 및 의원 개인의 권한과 소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 혁신은 혁명처럼
중앙당 권력 이완은 우리 정치의 신산한 과제다. 마침 인요한 연세대 교수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정치 문외한 인요한이 '고난도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까.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제한된 기간, 제한된 권한 때문이다. 김기현 대표가 "전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자주 '용산 전령사'로 비하되는 김 대표에게 전권이 있는지 의문이다. 혁신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공천 룰 같은 민감한 부분에도 손을 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혁신과 인재 영입, 공천을 구분해야 맞지 않느냐"며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 위원장이 '얼굴 마담'에서 벗어나려면 파격을 택해야 한다. 인적 쇄신, 중도 스펙트럼 확대, 반공·이념주의 청산을 넘어 중앙당 해체 같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은 판을 뒤집는 것이다. 혁신도 기존 관습과 제도를 엎어야 성공한다. 물론 인요한 혁신위가 그런 능력과 힘을 가질 개연성은 낮다. 더욱이 중앙당 해체는 정당법상 불가능하다. 정당법엔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5개 지역 이상의 시·도당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다.
# 2011·2018년의 쇄신책
중앙당 해체가 전혀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2018년 6월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 후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이 쇄신책으로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로 금방 동력을 잃었다. 이보다 앞서 2011년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대위 시절 남경필·정두언·김용태 등 개혁파 의원들이 내놓은 혁신방안이 중앙당 해체였다. 그땐 정당법에 막혔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중앙당이 없다. 중앙당이 없으니 정실(情實) 공천은 상상하기 어렵다. 완전한 오픈프라이머리도 가능하다. 당 대표가 없으니 원내대표가 당의 구심점이 되고 의회중심·정책중심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중앙당 해체를 전향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하면 정당법을 못 고칠 이유도 없다. 중앙당 해체는 정치분권의 트리거가 될 게 분명하다. 해체가 여의치 않다면 중앙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 중앙당을 전국위원회 체제로 바꾸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없애는 '제3의 방법'도 있다.논설위원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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