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힘’보다 ‘품’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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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27 06:00  |  발행일 2025-11-26
힘의 논리로 잇속 밝힌 미국
끈끈했던 동맹 결속력 상실
12·3 계엄 국가긴급권 남용
내란 가담 공무원 조사 과잉
권력 자제해야 권위 높아져
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논설위원

"산은 위대한 사랑의 수호자, 위대함은 '힘'이 아니라 '품'이다. 내 안에도 위대한 사랑의 품이 있으니. 아, 나는 무엇을 품어주는 생인가"(박노해 '산빛의 품' 중에서). "위대함은 품"이란 시인의 인식에 공감한다.


"산에는 한 그루 나무만 나지 않고, 들에는 한 송이 꽃만 피지 않는다"(백범 김구). 다양성과 포용력을 고무하는 은유의 아포리즘이다. 두 글의 서사(敍事)는 사뭇 다르지만 '품'이란 맥락을 관통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품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트럼프를 보라. 경제·군사 세계 1강의 힘을 바탕으로 각국에 일방적 관세 폭탄을 던지고 대미 투자를 강요했다. '돈 안 되는' 경찰국가 역할은 팽개쳤다. 미덥던 미국의 방패가 사라졌다. 동맹국은 국방력 강화로 각자도생의 길을 찾을 수밖에. 방위산업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잇속만 밝힌 미국은 끈끈했던 동맹 결속력을 잃었다. '품'을 저버린 대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 '스파이더맨' 대사는 정작 미국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트럼프뿐이랴. 12·3 비상계엄은 힘을 남용한 대표적 사례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문이 정곡을 찔렀다. "국가긴급권을 남용해 헌법이 설계한 민주주의 자정 장치 전반을 위협했다". 국가의 힘을 함부로 썼다는 질정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졸지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으로 전락했다. 민주당을 포함한 반대 세력을 품지 못한 후과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개전의 정'이 없다. 대척점에 섰던 자들을 여전히 반국가 세력으로 치부하는지 궁금하다. 법정에선 예사롭게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전직 대통령의 그 비겁함이 뜨악하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손에 쥔 이재명 정부 역시 엉뚱한 데 힘을 소모한다.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꾸려 49개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계엄 가담 여부를 조사하겠단다. '헌법존중'이란 윤색의 언어부터 거슬린다. 이미 핵심 가담 공직자에 대한 수사·기소는 특검이 진행 중이다. 행정부 TF가 전체 공무원을 '잠재적 용의자'로 지목해 조사하는 건 과잉이다. '내란 행위 제보 센터'에 벌써 투서가 난무한다니 공직사회의 고질적 음해와 애먼 갈등을 추스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사 대상을 최소한으로 좁히고 상급자 지시만 따른 공직자는 품어야 한다.


국민의힘도 힘을 허비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한다. 이를테면 일관된 '닥공'(닥치고 공격) 모드다. 한데 그 공격이 허접해 대부분 골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지난 추석 전후 일주일 내내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프로그램('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을 비판했다. 하지만 여론은 '냉부해' 출연을 고깝게만 보지 않았다. 긍정 48%, 부정 35%였다.(NBS 여론조사). 결과적으로 국힘이 헛발질한 것이다. "투쟁"을 외쳐대는 장외집회는 효능감에 의문부호를 남긴다.


대미 관세협상엔 인색했다. 외신들까지 "일본보다 더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고 보도했는데, 국민의힘은 "백지 시트"로 비하했다. "미국의 초안은 을사늑약 수준"(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었던 걸 감안하면 우리가 받은 팩트시트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적절하다. "품어라" 했대서 마구 품으란 뜻은 아니다. "우리가 황교안"이라고? 장동혁 대표의 패착의 언어다. 아무리 외연 확장이 급해도 부정선거론자, 계엄 옹호자는 걸러내야 한다.


권력은 자제할수록 권위가 높아지고, 힘은 절제할수록 품이 넓어진다. 그래서 박노해 시인이 "힘보다 품"이라 했나 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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