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왜 공적 권위를 희화화하나

  • 박규완
  • |
  • 입력 2024-03-14 06:53  |  수정 2024-03-14 08:45  |  발행일 2024-03-14 제22면
채 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
'호주 대사' 직함 줘 해외로
신박하거나 오컬트한 장면
'여사' 뺀 '김건희 특검' 제재
한국 자유민주주의지수 47위

2024031301000419500017401
논설위원

장면1="꽃가마 태워서 해외도피 시켰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묘사는 대체로 팩트에 부합한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기어이 호주로 떠났다. 서슬 퍼렇던 출국금지 조치는 순식간에 무력화됐다. 수사 받는 피의자에 '호주 대사' 직함을 내려 해외로 내보낸다? 신박하다고 해야 하나, 오컬트하다고 해야 하나. 법치국가에선 보기 드문 기이한 장면이긴 하다. SNS엔 "수사외압 수사에 대한 또 다른 외압"이란 주석(註釋)이 달렸다. '법치'를 떠받들어온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그 시그니처를 뭉개는 형국이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의 추가 소환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총선 악재라는 걸 인식했을 텐데 왜 굳이 무리수를 뒀을까. 파장이 간단치 않다. 야당 반발은 예정된 수순. 민주당 의원들이 인천공항까지 가서 규탄 회견을 한 데 이어 당론으로 '이종섭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는 "국가권력을 이용한 범인 은닉"이라며 날을 세웠다. 대통령 신임장을 받지 않고 몰래 출국하는 모습도 저어했다. 망신살은 호주까지 뻗쳤다. 호주 공영언론 ABC는 '한국 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 제하의 기사에서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 출국금지 해제 과정, 야권 반발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입국 반대 집회를 연 호주 교민들의 플래카드 문구가 계면쩍다. "이종섭씨, 호주는 1868년 이후 죄수 수송을 안 받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채 상병 사건과 무관치 않은 인물의 총선 후보 간택(簡擇)도 상식적이진 않다.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이 각각 국민의힘 단수공천을 받았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고발 사주' 의혹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검사장 승진을 거론하며 "일종의 '입막음' 같다"고 해석했다.

장면2=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행정지도 제재의 나비효과인가. '김건희 특검'이라고 하던 방송사들이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앞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여사'를 빼고 '김건희 특검'으로 방송한 SBS에 대해 공정성 위반이라며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이 제공된 상황에서 패널, 앵커들이 '입조심 모드'로 돌입한 모양새다.

'김건희 특검'은 이미 우리 국민에게 관용어로 굳어졌다. '김건희 여사 특검'보다 '김건희 특검'이라 말하는 게 훨씬 편하다. '여사'로 수식하지 않아도 대통령 부인이라는 걸 누구나 안다. 그런데 반드시 '여사'를 붙이라고? 코미디가 따로 없다. '입틀막'의 김건희 여사 버전? 좀스러운 제재는 공적 권위를 희화화할 뿐이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의 2024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지수는 0.60점으로 179개국 중 47위였다. 자유민주주의지수는 법치, 견제와 균형, 시민의 자유 등이 주요 항목이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도 한국은 2022년 43위에서 지난해 47위로 내려앉았다.

공적 권위는 사회 각 영역의 자율·분별을 통한 독자성과 창발성에서 고양된다. 워싱턴, 링컨,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의 미국 정부권력은 지금보다 보잘것없었다. 그럼에도 공적 권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 편'에도 예외 없이 법치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제재보다 자율에 방점을 찍은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가 감계(鑑戒)로 삼을 만하다.

기자 이미지

박규완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