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국회의원 특권 없애자

  • 박규완
  • |
  • 입력 2024-04-11 07:21  |  수정 2024-04-11 07:28  |  발행일 2024-04-11 제22면
국민 여망이자 22대 국회 소명
특혜·특권 조항이 무려 186개
의원 1인당 연간 7억원 들어가
'신의 직장'서 '3D 업종'으로
여의도 바꿔야 '새 정치' 열려

2024041001000386200015791
논설위원

국회의원을 흔히 '신의 직장'이라 한다. 왜일까. 의원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라서? 지역 민의의 대표자라서? 아니다. 당론을 충실히 따르는 '정당 병정'일 뿐이며, 민의를 대변하기보단 정쟁과 명예 탐닉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국회의원이 '신의 직장'인 까닭은 오롯이 그 많은 특권과 특혜 때문이다. 의원 당선이 입신양명의 압축판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권·특혜 및 의전 관련 조항이 무려 186개다. 항공기 비즈니스석, KTX 특실을 공짜로 타고 공항과 역 귀빈실을 이용한다. 의원회관 내 이발소·헬스장·목욕탕과 약국·치과·내과·한의원이 무료다. 수입도 쏠쏠하다. 2023년 기준 국회의원 세비는 연 1억5천426만원이다. 국민소득 대비 OECD 국가 중 3위다. 여기에 1억원가량의 의원실 경비를 별도로 지원받는다. 의원 차량 유류비, 출장비 등이 포함된다. 9명의 보좌진을 거느리는 것도 대한민국 국회의원만의 시그니처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인턴 1명이다. 보좌진 총급여는 5억2천여만 원. 의원 1인당 연간 7억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꼴이다. 2000년 이전까진 보좌진이 5명이었다. 국회의 씀씀이가 더 방만해졌다는 증좌다.

이뿐이랴. 국회의원은 매년 1억5천만원,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도 공공연히 의원들의 주머니를 불려준다. 게다가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환급받는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출마하고 돈도 받고. '선거 재테크'가 가능한 구조다. 국민세금으로 의원 전용 '화수분'을 만들어주는 격이다. 특권의 백미는 또 있다. 불체포 특권이 방호해주니 웬만한 비리·불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짓말해도 면책특권 뒤에 숨으면 그만이다. 유감스럽게도 의회 효용성 평가는 OECD 국가 최하위다. "가성비가 낮다"는 말만으론 우리 국회의 '고비용 저효율' 체계를 온전히 웅변할 수 없을 듯싶다.

한데 '신의 직장'치곤 진입 문턱이 낮다. 사기 행각이 드러나거나 막말을 쏟아낸 인물, 성범죄 옹호자, 부동산 투기꾼이 걸러지지 않는다. 특권은 강고하고 구성원은 열화(劣化)하는 형국이다. 구태정치의 야누스다.

"국회부의장이 직접 커피를 뽑아 탁자 위에 놓았다. 3선 의원인데도 따로 보좌관이 없고 방은 작았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가 전한 스웨덴 국회의 단면이다. "온갖 특권을 누리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니 정치가 부패·타락하는 것"이라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의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이제 특권을 내려놓을 때가 왔다.

계몽주의의 초석을 놓은 영국 정치사상가 존 로크는 "정치인은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라고 했다. 일하는 대리인에 특혜와 특권, 과잉 의전이 왜 필요한가. 특권 폐지는 22대 국회에 부여된 소명이자 국민의 여망이다. 국회의원은 '신의 직장'이 아닌 '3D 업종'이어야 한다. 그래야 상시 '일하는 국회'가 구현된다. 지역패권주의와 양당 독과점 구도를 혁파할 수 있다. 여의도가 바뀌어야 공정과 지방의 가치가 존중되며 대화와 협상의 문화가 작동할 수 있는 '새 정치'가 열린다.

세계가치조사에 의하면 스웨덴 국회의 신뢰도는 63.3%인데 비해 한국 국회는 20.7%에 불과했다. 특권의 역설이다. 특권 폐지가 정치 업그레이드의 시작점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기자 이미지

박규완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