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아파트 공화국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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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9 06:53  |  수정 2024-05-09 06:54  |  발행일 2024-05-09 제22면
효시는 고대 로마의 인술라
지난해 인허가 88% 아파트
편의·환금·투자 효율성 매력
브랜드·평수 현대인의 계급
부동산가격 정치에도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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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아파트의 효시는 고대 로마의 인술라(insula)다. 기원전 2~3세기 포에니 전쟁의 승리와 지중해 패권 장악으로 영토가 늘어나며 로마엔 많은 인구가 유입됐다. 로마는 심각한 주택난에 직면했다. 해법은 오늘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건립. 초기엔 주로 2~3층짜리가 지어졌으나 갈수록 높이가 치솟았다. 말하자면 용적률이 상향된 거다. 층고 상승은 인술라에 투자한 귀족들의 수익률 극대화로 귀결됐다.

카이사르·폼페이우스와 함께 삼두정치를 펼친 크라수스도 인술라 임대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서민 착취형 임대소득의 원조쯤 되는 인물이다. 지주계급 불로소득의 뿌리가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네로 황제 때의 로마 대화재 이후엔 인술라의 높이와 용적률 규제가 강화됐다. 다닥다닥 붙은 인술라가 화마를 키웠다는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간 거리를 3m 이상으로 띄우고 층고도 6층으로 제한했다. 당시 로마엔 5만 채가량의 인술라가 있었다.

2020년 우리나라 주택의 63%가 아파트이며 지난해 주택 인·허가 건수의 88%가 아파트라고 한다. 아파트는 어느새 현대 주거형태의 벤치마크가 된 것이다. 1970년엔 아파트 비중이 0.77%에 불과했다. 윤수일의 히트곡 '아파트'가 흘러나왔던 1982년에도 아파트촌이 지금처럼 빼곡하진 않았다. 노래가사에도 아파트 주변 풍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하지만 1995년 37.7%로 아파트 비중이 높아지면서 급격한 상승궤적을 그린다. 아파트가 선호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편의성·환금성·투자 효율성은 현대인이 떨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아파트는 14% 오른 데 비해 단독주택은 5% 상승에 그쳤다. 시세 차익의 비교우위가 확연히 드러난다.

주거만족도에서도 아파트는 4점 만점에 3.12점을 받아 주택 유형 중 유일하게 3점을 넘겼다. 다세대주택은 2.91점, 단독주택 2.87점이었다. 아파트 거주자 90%는 집을 옮기더라도 아파트로 이사하길 희망했다. (국토부 '2020년도 주거실태 조사')

우리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아파트는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는 도시의 바람길을 막고 미관을 해친다. 사위(四圍)에 아파트만 치솟아 있는 대도시 풍경은 삭막한 '콘크리트 문명'을 웅변한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1956년 건립된 서울 주교동의 중앙아파트이며 첫 아파트단지는 1964년 완공한 마포아파트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69년 지어진 동인아파트. 동인아파트 부지엔 다시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역사라고 해봐야 기껏 60여 년. 한데 어느새 아파트는 부(富)의 척도가 되고 아파트 신분사회는 더 강고해졌다. 아파트의 위치·브랜드·평수는 이미 현대인의 계급이다. '어느 지역' '몇 평'으로 경제력이 까발려진다. 가계의 재산목록 1호도 아파트다. 가히 '아파트 자본주의'라 할 만하다.

아파트는 정치에까지 파장을 일으킨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 재창출 실패도 아파트가격 급상승 탓이 컸다. 부동산이 시대의 화두이자 선거의 주요 변수라는 의미다. 아파트 시세 역시 급등이나 급락이 없는 '골디락스' 상황이 이상적이다. 경제가 그렇듯.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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