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무능 리더십'의 장기집권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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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2 06:58  |  수정 2024-02-22 06:58  |  발행일 2024-02-22 제22면
축협회장 물러나는 게 순리
3연임 11년도 분에 넘쳐
고려 문종은 '조율 리더십'
잭 웰치 위기 극복의 표상
삼성 반도체 진출 미래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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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1 군왕의 리더십을 얘기할 때 으레 등장하는 인물이 세종과 정조다. 또 고려 하면 창업자인 왕건과 광종, 공민왕 정도만 인구에 회자되지만, 11대 왕 문종은 '고려의 세종대왕'이란 수식(修飾)이 아깝지 않은 현군이다. 양전보수법을 제정해 전답의 세율을 정하고 녹봉제를 시행하는 등 내치 기반을 다졌으며, 대외적으론 조정의 진면목을 발휘했다. 북변에 침입한 동여진을 토벌한 후엔 회유책으로 평정했다. 송나라와 친선을 도모하고 선진문화를 수입해 당나라 현종 시대에 버금가는 고려의 문화 황금기를 열었다. 이를테면 '조율의 리더십'이다. 고려사는 "문종 재위 땐 창고에 곡식이 쌓였고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하였으며 나라는 부유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했으니 문종(文宗)이란 묘호가 절묘하다. 대각국사 의천이 문종의 아들이다.

#2 '경영의 신'이란 타이틀이 어울리는 경영자, 리더십의 특장(特長)을 고루 갖춘 지도자라면 잭 웰치를 빼놓을 수 없다. 잭 웰치 리더십엔 속도, 혁신, 단순함, 자신감 등이 공식처럼 따라붙는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침몰 직전의 거함 GE(제너럴 일렉트릭)를 살려냈으며 4천% 성장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왜 글로벌 기업과 대학들이 잭 웰치의 '경영 코드'와 '혁신 기법'을 신봉하고 연구했을까.

잭 웰치가 '위기극복 리더십'의 표상이었다면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리더십 요체는 '미래 통찰'이다. 1983년 이병철의 반도체 사업 진출 선언은 한국 기업 100년사의 퀀텀 점프 순간이었다. 2020년 전경련이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6·25 전쟁 발발 후 70년간 우리 산업사의 최대 업적으로 삼성의 반도체사업 진출(64.2%)을 꼽았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지혜로운 지도자는 미래를 읽어 현재의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과대망상증이란 비아냥을 들어가며 반도체 투자를 결단한 이병철의 경영철학이 바로 '미래 읽기'다.

#3 경질된 클린스만의 리더십은 아예 '색깔'이 없다. '무전술 방임' 축구였으니 말이다. 무능, 불성실, 무책임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한데 클린스만 선임을 주도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계속 자리를 지킨다? 자가당착이며 꼬리 자르기 아닌가. 사퇴는커녕 내년 초 4연임에 도전할 거란 말이 나돈다. 불감청 고소원?

정몽규 회장의 리더십은 클린스만을 빼닮았다. 무능, 무책임에 독선과 불통을 더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하고, 쓴소리하는 김판곤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자리에서 밀어냈다. 김판곤 전 위원장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다. "대표팀 감독 선임보다 중요한 게 운영과 관리다. 훈련과 경기에 대한 리포트를 받아 피드백을 줘야 한다.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정 회장은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정몽규 체제 11년간 축구협회는 행정·경영·외교에서 뒷걸음쳤다.

무능한 지도자의 장기집권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우리가 대통령 5년 단임을 헌법으로 못 박은 이유이기도 하다. 세종이나 고려 문종 치세의 5년은 너무 짧겠지만 연산군 치하라면 5년이 길디길다. 3연임만으로도 정몽규 회장의 분에 넘친다. 영화 '친구'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른다.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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