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18년 .4] 정동진감독

  • 입력 1999-03-05 00:00

프로야구 삼성이 '선수와 박영길 감독간의 불화'를 수습할 인물로 선택 한 카드가 정동진씨였다. 삼성은 5년간의 팀수석코치 경력과 선수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점을 고려해 그를 낙점했으나, 정 감독 본인은 경험이 부족 하다는 이유로 감독직을 고사했다. 정 감독은 대신 백인천씨를 적극 추천 했으나, 구단측의 반대로 결국 벼랑끝에 몰린 삼성의 지휘봉을 잡았다. 서영무 초대감독 이후 대구출신으로선 두번째로 사령탑에 오른 정 감독 은 '생각하는 야구'를 도입한 학구파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대형트레이드 를 단행했다. 팀의 간판선수인 김시진, 장효조와 롯데 최동원, 김용철을 맞바꾸었다. 선수단 분위기 쇄신과 큰 경기에 강한 선수를 보강해 해태 선 동열을 꺾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정석야구를 지향했던 정 감독은 코치진도 대폭 교체했다. 배대웅, 황규 봉 등 1세대 선수출신과 프로야구 최초로 외국인 코치를 전격 영입했다.당 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선이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들을 '정동진 사단'이 라고 불렀다. 감독 첫해인 89년 4위에 머물렀던 정 감독은 이듬해 예상을 깨고 한국시 리즈에 진출, '대구야구 자존심'을 살렸다. 정 감독은 특히 플레이오프에 서 선동열이 버틴 해태에 3연승, 그동안 팀내에 팽배했던 '해태컴플렉스' 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정 감독은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선 신생팀 LG에게 4패를 당해 첫 우승도전이 좌절, 자존심에 금이 가기도 했 다. 야구에 관한 한 자기주장이 강했던 정 감독은 위기국면을 원만히 수습 하며 팀성적도 상위권으로 끌어 올렸으나, 의외의 사건으로 좌초하게 됐다. 정 감독은 사생활문제로 물의를 일으켰던 황규봉 1군 투수코치의 2군행 을 요구한 편송언 사장과의 마찰로 한국시리즈 진출감독중 유일하게 연임 에 실패하는 선례를 남겼다. 정 감독 재임시절 선수단은 세대교체기였다. 삼성은 이 시기에 이만수를 제외한 스타급 프로 1세대가 대부분 팀을 옮기거나 은퇴하고, 김상엽, 강 기웅, 이태일 등 2세대들이 프로에 데뷔했다. 그동안 간판선수들에게 의존 했던 삼성은 이때부터 조직력에 비중을 두는 스타일로 바뀌어 갔다. 그래 서 걸출한 선수보다는 팀기여도가 높은 선수가 많았다. 90년도에 입단한 핵잠수함 이태일은 데뷔 첫해 프로야구 사상 6번째 노 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우며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고, 달구벌 특급 류명선은 89년 14승8패로 이태일과 더불어 마운드에서 쌍두마차를 형성했 다. 야구천재 강기웅은 3할2푼2리의 고타율로 프로신고식을 마쳐 삼성의 새로운 간판선수로 등장했다. 기대를 모았던 최동원은 89년 1승2패, 90년 6승5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최영호기자 cyong@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