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여행] 고려무

  • 입력 2001-08-02 00:00

깃털모양 금장식 절풍모(조우관)를 쓰고

하얀신 신고 망설이며 머뭇거리다가

삽시에 넓은 소매 저으며 훨훨 춤을 추어

마치요동에서 날아온 매처럼 나래를 펼치누나

시인 이백(李白)이 고구려의 춤을 보고 쓴 '고구려'라는 시이다. 앞으로
비스듬하게 쓴 금빛 깃털의 조우관. 한걸음 한걸음 박자에 맞추어 수줍은
듯 내딛는 하얀 가죽신의 댄서.... 이 아름다운 춤은 고구려무용(고려무)
의 날렵한 동작을 묘사한 것이다. 이 시에서 보듯 고구려인의 춤동작은 화
려하고 경쾌하여 매우 강렬한 인상의 예술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당나라 궁중에서는 고려무라는 고구려춤이 궁중무의 하나로 행해졌다.

당나라 측천무후시대때 양재사(楊再思)라는 인물이 있었다. 높은 벼슬에
있던 그는 아부성이 강한 사람으로 즉석에서 고구려춤을 잘 추었다고 한다
. 어느날 동휴라는 사람이 양재사의 허가를 받아 잔치를 열어 공경대부(公
卿大夫)들을 초청하였다. 손님들이 술이 거나해질 때쯤 동휴가 "공(양재사
)의 얼굴이 마치 고구려사람 같습니다"하고 말하니, 양재사는 기뻐하며 주
름잡힌 고운 명주를 잘라 건(巾, 수건과 같은 형태의 천으로 머리를 싸고
뒤에서 묶는 방식의 초보적인 모자)위에 매어달고 자주색 두루마기를 뒤집
어 걸치고는 고구려춤을 너풀너풀 추었다.

이렇듯 고구려춤의 전형적인 동작은 박자에 맞추어 넓고 긴소매를 펄럭
펄럭 날리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되, 손바닥은 펴고 손목을 잘 활용하는 것
이다. 또 천이나 종이를 길게 잘라 건에 매달아 머리를 돌리며 공중에서
둥근원을 그리게 되는데 농악에서 볼 수 있는 상모를 돌리는 독창적인 동
작이 여기서 시작된 듯하다.

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인은 가무(歌舞)를 좋아하여 촌락마다 매일밤 남
녀가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추며 즐겼다고 한다. 위의 벽화는 무덤을 '무용
총'이라고 이름짓게 한 그림의 일부이다. 무용수들은 남자 한명과 여자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스듬이 선 왼편의 세사람이 한줄, 나란히 선 오
른편 두사람이 다른 한줄을 이루어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들 다섯명의 춤
꾼은 깃털장식의 절풍모를 쓴 맨앞사람의 춤동작 시범에 따라 동작을 맞추
어 긴팔소매를 뒤로한 포즈를 하고 있다. 합창대로 추정되는 아래의 일곱
사람이 있는데 이들 중에 세번째 사람은 고개를 돌려 딴전을 피고 있어 엄
숙히 거행되는 춤판의 긴장된 분위기를 다소 해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향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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