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이에 누가 총을 겨누겠나"

  • 입력 2008-11-28 07:24  |  수정 2008-11-28 07:24  |  발행일 2008-11-28 제26면
前비서관, 최규하 대통령 회고록
최규하 前 대통령(왼쪽)과 권영민 前 비서관

"모두들 각하를 '최 주사'라고 부릅니다." "뭐야. 최 주사?"

1980년 4월12일, 청와대 경내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청와대 부속실에 소속된 권영민 비서관이 주고받은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 갑작스레 대통령직에 오른 최 전 대통령은 전두환 신군부가 사실상 권력을 장악하던 그 시기, 국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권 비서관에게 '솔직한 국민들의 생각'을 주문했고, 어렵게 말문을 연 권비서관이 용기를 내 '최 주사'라는 듣기 거북한 말을 건넨 것이다.

당시 국민들은 최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신중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의미로 '최 주사'라고 불렀다. 그 별명에는 대통령직을 맡겨놓고 보니 6급 공무원인 주사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 아니냐는 뜻도 담겨 있었고, 또 너무 신중하게 생각하느라 '신군부'에 끌려다니지 말고, 용기 있게 대처하라는 국민들의 열망도 담겨 있었다. 평소 온화한 최 전 대통령은 그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의 당시 위상은 그의 독백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산책한다고 하자, 대통령 경호실장(현역 군인)이 놀라서 헐레벌떡 대통령에 다가갔다. 그런데 최 전 대통령은 "그만 가서 일보라"며 경호실장을 물렸다.

평소 최 전 대통령은 항상 "나 같은 사람에게 누가 총을 겨누겠는가"라며 경호를 귀찮게 생각했다.

노르웨이·덴마크·독일대사를 지내고 현재는 '한·독 미디어대학원대학교(KGIT)'의 부총장으로 일하는 권영민 대사(62)가 조만간 최규하 전 대통령과 부인 홍기 여사에 대한 일화를 묶은 책을 공식 출간한다. 책 제목은 '자네, 출세했네-내가 보아온 최규하 대통령과 홍기 여사'다.

권 대사는 27일 "1967년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돼 국무총리를 거쳐 1980년 8월16일 대통령직을 하야할 때까지 큰 족적을 남긴 분에 대해 국민들이 그 진면목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면서 "최규하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라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전 대통령이 외무장관으로 일할 때부터 모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무총리였던 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서독대사관에서 일하다, 대통령부속실 비서관으로 차출된 권 대사는 최 전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옆에서 모셨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하게 되자 관용차로 포니 승용차가 배치됐고 과거 박정희 대통령 가족을 모시던 운전사가 차를 몰게 되자 최 전 대통령이 그에게 축하의 말로 건네준 '자네, 출세했네'가 책 제목이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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