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한창 기승을 부리는 22일 오후. 지난해 초대형 산불피해를 입은 청송과 영양, 의성, 안동, 영덕 5개 시군 이재민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임시주택 인근 마을회관에서 지낸다. 사실상 임시주택에서 잠만 잔다. 일부는 임시주택의 불편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친척이나 자녀들의 집으로 떠나버렸다.
◆ 청송·영양 - 인적 없이 적막감만 맴도는 임시주거단지
22일 청송군 달기 약수터 인근 산불피해 이주민 임시주거단지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정운홍 기자
체감온도 영하 20℃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낮 12시, 청송군 청송읍 달기 약수터 인근에 조성된 산불 이재민 주거단지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조립식 모듈주택 사이로 찬바람만 불고,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문이 굳게 닫힌 집들만 줄지어 서 있었다. 점심시간임에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은 드물었고, 단지 곳곳에는 사람 대신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이곳에는 19동 18세대 32명이 거주하고 있다.
청송군 산불 이재민 상당수는 한파가 본격화되면서 낮에는 인근 마을회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부는 자녀가 사는 집으로 옮겨 지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집이 너무 추워 하루 종일 머무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산불피해 이주민 임시주거단지에는 인적 대신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정운홍 기자
같은 날 오후에 찾은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와 답곡리 산불피해 이주단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낮인데도 불이 켜진 집은 손에 꼽혔고, 단지 전체가 비어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다들 추운 날에는 집보다 마을회관에서 머무른다"고 귀띔했다.
이주단지 주민들은 겨울나기가 힘겹다고 했다. 윤희철 청송달기 약수터 상가번영회 회장은 "전기요금은 아직 큰 부담이 아니다. 당초 9개월이던 지원 기간이 최근 18개월로 늘어 겨울철에는 최대 40만 원까지 지원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돈이 아니라 집 자체"라며 "임시주택 형태라 단열이 충분하지 않고, 창문이 많아 틈새로 바람이 들어온다. 바닥 전기패널만으로는 혹한을 견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생활 속 불편함도 많다. 세탁기 용량이 작아 이불빨래는 엄두를 내기 어렵고, 빨래를 널어도 해가 짧고 바람이 많이 불어 잘 마르지 않는다. 실내에서 빨래를 말리면 결로와 곰팡이가 걱정되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오래 열어두기도 쉽지 않다. 혹한 속에서 비어 있는 조립주택 단지는, 재난 이후의 삶이 얼마나 길고 고단한지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 의성·안동-임시 생활 불편함 속에 피어나는 기대감
의성군 안평면에 조성된 이재민 임시주택 전경. 의성군은 지난해 봄 발생한 산불로 주택 430동을 비롯해 농·축산시설 462곳이 피해를 입었다.
같은 날 의성군 점곡면 컨테이너형 임시조립주택단지. 이곳에서 생활하는 배영걸씨(64)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평생 살았던 집이 산불에 다 타버린 것을 보고 상심하셨는지, 고통스러워하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군청에서 생필품을 비롯해 전기세와 난방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어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 살 집을 짓는 공사가 한창인데 입주하기 전 산불로 겪은 트라우마를 정기적인 심리지원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안정을 되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같은 단지에 거주하는 강병학씨(64)는 "당장 필요한 생필품은 군의 지원을 받아 해결하고 있지만, 11평 남짓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면서 "특히 모든 것을 전기에 의존하는 임시주택 구조상 별다른 묘수는 없겠지만, 월 40만원이 넘어가는 전기세는 정말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강씨는 지난달 46만원이 적힌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았다. 그는 군에서 전기세를 지원(20만원)하고 있지만, 겨울철 전기요금은 엄청난 부담이라고 하소연했다.
강씨는 이어 "이르면 4월쯤 신축주택에 입주할 예정"이라며 "정상적인 일상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생필품을 비롯해 전기세와 난방비 등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성군은 지난해 봄 발생한 산불로 주택 430동을 비롯해 농·축산시설 462곳이 피해를 입었다.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안동은 지역 곳곳에 임시주거단지가 조성돼 있다. 같은 날 찾은 안동 임하면 금소1리 임시주거단지 모습도 다른 단지와 마찬가지였다. 찬바람만 매섭게 불고 인적은 드물었다.
어렵게 만난 한 주민은 임시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산불로 집을 잃고 이곳 임시주택에 들어온 뒤로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다"며 "불길 속에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을 때는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지만 이곳에서 여름부터 지금까지 지내다 보니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시주택을 빠르게 마련해줘 고마웠지만 겨울이 되니 단열이 부족해 집을 잃은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몸과 마음이 추운 계절"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적막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이재민 김모씨는 "경북도와 지자체에서 난방비를 지원해주고 있어 경제적 부담은 많이 없다"며 "전기요금의 절반 이상을 덜어주니, 최소한 난방을 아끼지 않고 틀 수 있다는 점은 큰 위안이 되고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이웃들과 서로 의지하면서 하루하루 견디다보면 곧 겨울이 가고, 하루빨리 복구가 이뤄져서 '임시'란 꼬리표를 뗀 진짜 집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미소를 보였다.
◆ 영덕-마을회관에 모여 외로움 달래
22일 영덕읍 석리 마을회관에서 막 점심식사를 마친 70~80대 어르신 10여명이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었다. 남두백 기자
같은 날 오전 영덕군의 기온도 영하 9℃까지 떨어졌다. 초속 9m의 바닷바람은 체감온도를 더 낮췄다. 지난해 3월 대형 산불로 집을 잃은 1천300여명의 이재민들은 영덕군 내 33곳에 조성된 임시주택 공동단지에서 첫 겨울을 나고 있다.
영덕읍 해안마을 석리로 향하는 해안도로 곳곳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불 피해 소나무 벌목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화재가 휩쓸고 간 흔적은 여전히 선명했다.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석리 마을회관 문을 열었다. 막 점심식사를 마친 70~80대 어르신 10여명이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산불로 집을 잃고 임시주택에서 지내는 이들의 표정에는 이번 겨울을 어떻게 버틸지에 대한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전점영 할머니는 "어젯밤엔 바람 소리가 너무 세서 집이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며 "겁이 나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조립식 임시주택의 얇은 벽은 강풍 앞에서 더욱 불안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김영기 노인회장은 "임시주택에 사는 주민 20명이 매일 이곳(석리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해 먹는다"며 "추운 날씨 탓에 감기 환자가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건조한 실내 공기와 외풍이 감기의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80대의 한 주민은 "전기로 데운 바닥은 뜨겁지만, 바닷바람 때문에 찬 기운이 계속 들어온다"며 "밤이 되면 더 춥고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병원에 가는 일도 쉽지 않다. 대부분 마을버스를 타고 평균 1시간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병원에 도착해도 대기 환자가 많아 점심때를 놓치는 날이 잦다고 한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마을회관을 나섰지만 산불 피해 주민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꼈다.
남두백
정운홍
피재윤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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