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기자의 愛魚歌 .10] 민물고기계의 포식자 가물치

  • 입력 2009-09-04   |  발행일 2009-09-04 제40면   |  수정 2009-09-04
동거중인 물고기까지 '간식'삼아 꿀꺽
[임호기자의 愛魚歌 .10] 민물고기계의 포식자 가물치

아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친분이 있던 경찰관이 직접 잡은 가물치를 주었다. 산모에게 좋다는 말에 푹 고아 먹였더니, 아내가 기력을 회복하는데 정말 도움이 됐다. 실제, 가물치는 한자로 '려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어머니나 산모에게 좋은 물고기란 뜻으로 가모치(加母致)로 불리다 가물치로 변했다고 한다. 가물치의 살코기는 부드럽고 담백해 맛이 좋은데 산후에 몸이 부어있고 기력이 탈진했을때 먹으면 영양을 보충하는 데도 좋다.

하지만 가물치를 직접 잡아보았거나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 포악성과 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기자가 초등학교 3학년때 겪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웃집 아저씨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해 무작정 따라 나선 적이 있다. 지금의 칠곡 3지구 근처의 한 저수지에서 쪽대로 물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물속에 서 있는 기자(당시 초등 3년) 다리를 무언가 힘차게 때렸다. 순간 넘어지며, 커다란 뱀인가 싶어 비명을 질렀다. 이웃집 아저씨가 족대질을 해 잡아 올린 것은 50㎝는 넘는 가물치. 흙탕물을 뒤짚어쓰고 숨을 헐떡거리는 가물치는 초등학생이던 기자의 눈에 괴물로 보였다.

그리고 2004년 6월. 토종물고기 연구가 김호곤씨와 함께 대구시 북구 관음동의 한 저수지에서 20여마리의 가물치를 채집해 5마리정도를 집에 '모셔왔다'. 5㎝ 전후의 가물치 치어는 떼로 몰려다녀, 나름 귀여운데가 있었다. 먹이도 주는대로 다 잘먹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먹튀(돌고기와 버들치)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아서인지, 가물치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가물치의 성장속도는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 있다. 먹는대로 성장하고, 자고나면 또 자란다는 것. 1개월도 되지 않아, 치어는 10㎝이상 자라 있었다. 이때부터 대량 학살이 시작됐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주는 사료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바닥에서 잘 숨어지내던 살미꾸리 7마리와 수십마리의 생이새우, 밀어를 간식거리로 간단히 처리해 버렸다. 늘 사료로만 살던 녀석(가물치)이 생먹이 맛을 보자, 움직이는 것은 무조건 먹어치우는 행동을 보였다. 이런 대량 학살속에서도 한동안 가물치를 치웠던 것은 다른 토종어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가물치는 아무일 없다는 듯 조용히 물 위를 떠 다닌다. 먹이가 나타나도 다른 고기들처럼 촐싹대며 달려들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까이 접근한 후 한순간에 공격해 입속으로 넣어버린다. 이빨 사이로 살미꾸리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지만 가물치는 '왜 무슨 일 있냐∼∼'는 표정으로 조용히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육식 어종의 특징이다. 그리고 보름 후 20㎝가까이 자란 가물치를 위해 전통시장에서 양식 미꾸라지를 사서 먹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생먹이를 주며 키우던 가물치에 대해 "너무 잔인하다"는 반대에 결국 풀어주어야 했다.

지금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대형 가물치가 잡혔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5년전 키우던 가물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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