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라디오방송 최장수 진행자 2人 ‘라디오 전성시대’를 추억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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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17   |  발행일 2014-10-17 제34면   |  수정 2014-10-17
“새 기관장 부임하면 목소리부터 공부…그들에게 매일 ‘두려운 아침’ 되었다”
●촌철살인 ‘달구벌 만평’ 30년째 진행 홍문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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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째 200여편의 각종 연극에 출연한 지역 연극계의 산증인인 홍문종씨. 그는 연극인일 뿐만 아니라 1984년부터 30년간 대구 MBC 96.5㎒ ‘달구벌만평’의 인기 진행자로, 지역의 각급 기관장의 잘못을 다양한 성대모사로 질타해 출근길 시민들의 속을 후련하게 긁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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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고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다.

청취자는 시청자의 위세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오감만족의 세상이 현대인의 의식을 뒤흔들어 버렸다. 라디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상매체의 그 현란한 스펙트럼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비록 얼굴은 알 수 없지만, 자신만을 위해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은 프로그램 진행자의 목소리는 소비적인 TV 메시지보다 더욱 문화적이고 정서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라디오 시대가 올까?

AM과 FM은 라디오의 양대 축. 숱한 프로그램이 명멸했다. 30년 이상 지역 애청자를 사로잡은 최장수 진행자는 누굴까? 대구MBC FM ‘달구벌만평’(96.5㎒·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2분30초간 진행) 진행자인 홍문종씨와 매일 오전 11시에 방송되는 대구MBC FM ‘골든디스크(95.3㎒)’ 진행자인 DJ 이대희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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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만평의 대본. 매일 기자들이 보도국을 통해 넘겨준 가십성 기사는 방송용으로 편집된다.

홍문종式 ‘달구벌만평’
김경호씨 이어 3대 진행자
비판에 풍자·해학 곁들여
10가지 톤의 목소리 구사
‘기관장 이름 직접 거론’
프로그램 인기 큰 비결

◆ 홍문종은

1969년 극단 ‘공간’ 연구단원으로 연극계에 발을 내디뎠다.

그동안 200여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99년 달구벌 만평으로 한국방송대상 성우상을 받는다. 2010년 대구시문화상을 비롯해 홍해성 연극상, 대구예술상 등을 받았다.

◆ 달구벌 만평의 어제와 오늘

달구벌 만평은 1967년 4월10일부터 방송된다.

국내 라디오 시사만평 프로의 효시는 61년부터 10여년간 오성룡이 진행했던 MBC의 ‘오발탄’. 뒤를 이어 부산 MBC가 64년 6월7일부터 ‘자갈치 아지매’(95.9㎒)를 론칭한다. 하지만 자갈치 아지매는 정부에 밉보여 78년 1월1일 폐지된다. 이후 80년 4월1일 부활한 자갈치 아지매는 올해 방송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6명의 진행자가 바뀌고, 99년 10월 공채를 통해 발탁된 7대 진행자 박성언씨가 월~금요일 오전 8시45분부터 5분간 진행한다.

63년 8월 개국한 대구MBC는 대구KBS에 중독된 청취자를 혹하게 할 프로그램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63~65년 대구KBS 낮 12시30분 ‘스포트라이트’, 오후 7시10분에 시작된 ‘사랑방 김 영감’ 코너가 지나치게 비판적이란 낙인으로 도중하차 한다. 진행자였던 김경호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구KBS 최고 인기 성우는 61년 2기 전속성우로 들어온 김경호였다. 대구MBC 측은 박제생 방송국장 등을 축으로 김경호 스카우트에 혈안이 된다. 달구벌 만평은 맞불작전 차원에서 초창기 대구KBS 낮12시20분 로컬뉴스 시간에 전격적으로 포진된다. 김경호는 결국 MBC로 이적한다.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취재 기자가 건네준 원고를 앵무새처럼 그대로 읽지 않고 자기 스타일로 고치는 것은 물론, 비위를 저지른 기관장 이름까지 밝히겠다’고 고집했다.

초대 진행자는 KBS 성우출신이었던 탁원제인데 1년 정도 하다가 68년 김경호에게 바통을 넘긴다.

70년대 서울에는 ‘중앙정보부’, 대구에는 ‘달구벌 만평’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김경호는 지역 기관장에게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평소 비판적이고 다혈적이었던 김경호에겐 생애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난 것이다.

달구벌 만평의 이름은 당시 이재인 기자의 아이디어였다. 원래 제목은 ‘뉴스레이다’였다. 오전 7시50분부터 음악 프로그램 중간에 방송됐다. 특히 진행자 목소리도 현재 홍문종씨와 달리 극적요소가 배제된 뉴스보도 톤이라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담당 PD는 전략 시간대 찾기에 골머리를 앓는다. 초창기엔 낮 12시20분, 71년부터는 오전 7시55분, 다시 오전 8시10분, 지금은 오전 8시30분에 시작된다.



◆ 만평 때문에 줄초상이 난 기관장들

달구벌 만평은 ‘자객’ 같았다.

타협도 협상도 안 되었다. 오로지 지적·비판·적발·고발·폭로 일색이었다. 그러니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경주 지역의 모 총무과장이 시간만 나면 기원에서 산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김경호는 다음날 이렇게 채찍질했다.

“연말연시 공무원 여러분, 업무결산에 얼마나 노고가 많습니까요. 그런데 ○○○ 경주시 총무과장님, 기원에서 번거롭게 결재를 받느니 이 참에 경주시청을 기원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요?”

양택식 경북도지사 시절 노름에 빠진 영양군의 모 공보실장도 만평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양택식 도지사는 ‘약진 경북’ ‘들에서 만나자’고 외치는데, 영양군 공보실장을 만나려면 노름판으로 가야 되겠네요.”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각급 기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구벌 만평 죽이기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워낙 만평이 위세당당해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만평에 대해 가장 거부감을 가질 법한 박정희 대통령이 오히려 그 프로그램을 가장 두둔했다. 69년말 박 대통령이 수성관광호텔에서 투숙할 때 우연히 달구벌 만평을 청취하게 된다. 비서관보다 더 정확하게 기관장 비위 사실을 알려주니 이보다 더 좋은 신문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10월유신 직후 체제 비판적 방송 프로그램을 숙청할 때도 달구벌 만평만은 무사했다. 당시 구자춘 경북도지사는 만평 시간과 아침 화장실 가는 시간이 겹치자 아예 화장실에서 들을 수 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급히 구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청와대까지 전담 모니터 요원을 두고 만평 내용을 체크했다. 대구교육청도 녹취를 했다. 그러니 모두 김경호의 ‘사정권’에 들지 않기 위에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었다.

김경호의 위세는 날로 대단해져갔다.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김경호 사칭 사건’이 터진다. 문경의 한 농기구 판매상 아들이 구미 금오산 나이트클럽에서 김경호의 이름으로 외상 술을 먹다가 경찰에 잡힌다. 한 성폭행범은 김경호의 이름을 팔고 MBC드라마 출연을 미끼로 10~20대 여성만 집중적으로 연쇄성폭행을 저질렀다. 김경호는 무려 3년간 악몽의 시간을 보낸다.

83년 김경호는 사업가로 변신하며 15년간 꾸려온 만평을 떠난다.



◆ 대타로 등장한 홍문종의 새로운 만평 시대

사람들은 ‘달구벌 만평’ 하면 홍문종부터 떠올린다.

김경호의 색깔도 강하지만 84년 10월부터 그가 30여년 끌어오면서 달구벌 만평의 패턴은 비로소 완성된다. 물론 김경호의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척 노력을 했다.

그는 성우 출신이 아니고 연극배우 출신이다. 달구벌 만평을 맡기 전에 78년 대구 MBC TV ‘범어동 할아버지’ 코너에도 출연했다. 극중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지역 위인전을 중심으로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실제 ‘독도 의용 수비대장 홍순칠’ 편에선 독도에서 촬영을 하다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기도 했다. 극중 할아버지 역은 김경호가 맡았다.

김경호의 일본 출장이 있으면 대타로 만평을 진행한 인연으로 3대 진행자로 발탁된다. 그 사이에 안민재, DJ 이대희, 김준연 아나운서 등이 진행을 맡았지만 모두 적격자가 아니었다. 만평만의 독특한 색깔을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홍문종은 김경호의 어투부터 분석하기 시작한다.

“김경호 선배가 늘 멘트 끝을 ‘~까요’로 몰고간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갈치 아지매의 경우 어미를 ‘단디해주이소’로 가잖아요. 다들 고유의 톤이 있죠. 저는 일단 어미를 ‘~데요’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엔딩 멘트 직전에 ‘헤헤~’ ‘허허~’ 같은 비아냥 투의 감탄사를 섞으면서 극적 요소를 더하죠. 비로소 해학과 풍자가 있고 익살맞은 홍문종 스타일이 조금 묻어나기 시작하더군요.”

그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최소 1년이 걸렸다. 처음 몇 달간은 진행자가 바뀐 사실을 모르는 청취자도 있었다.

김경호 시절에는 그렇게 디테일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연극배우의 자질을 십분 활용해 특정 기관장 목소리를 거의 비슷하게 흉내냈다. 이게 ‘승부처’였다. 현재 열 가지 정도의 각기 다른 톤을 구사한다. 새로운 기관장이 부임하면 즉시 그의 목소리부터 공부한다. 시장과 도지사, 교육감과 시의회 의장, 경찰청장 같은 고위기관장의 목소리는 대충 꿰차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관장을 일일이 다 확인하지 못해 이런저런 촌극이 벌어진다. 남자 기관장을 여자 목소리로 내보내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역시 달구벌 만평은 기관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한다는 게 가장 스릴 있는 대목이죠. 그래서 청취자로부터 더 구체적인 반응을 얻었던 것 같아요.”

김경호 시절에는 직접 진행자가 대본을 작성했지만 홍문종 때부터는 기자가 작성한 가십 기사를 매일 밤에 4층 AM 부조종실에서 사전 녹음을 한다. 심야에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녹음하러 와야 한다. 요즘 주말에는 방송이 없다.

난감한 대본도 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연극계의 문제를 제가 직접 언급하는 건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이럴 땐 제가 직접 시정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문제의 꼭지를 묵히기도 하죠.”

그래서 그는 처신에 각별히 조심한다. 무단횡단 등은 물론 하지 않고 음주가무 시에도 항상 조심한다. 워낙 오래 만평을 진행하다 보니 연극에 출연해서도 만평 투가 나와 곤란을 겪을 때도 있단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스마트폰 세상, 다매체 세상이라서 그런지 달구벌 만평의 열기도 예전만은 못합니다. 기관장들의 처신이 예전보다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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