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극장가-만화적 상상력 코미디 - 묵직한 정치극 '빅매치'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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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4 07:43  |  수정 2020-01-24 10:08  |  발행일 2020-01-24 제16면
코미디 강세 속 장르 풍성
'미스터 주' '히트맨' 코믹 투톱
10·26다룬 '남산의 부장들' 각광
에릭 클랩튼 인생다룬 다큐 눈길
애니 '스파이 지니어스' 깨알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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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자년 설 연휴가 시작됐다. 덩달아 대목을 맞은 극장가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올 설 연휴 역시 명절 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한국영화의 강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22일 동시에 출격한 '남산의 부장들' '미스터 주: 사라진 VIP' '히트맨'의 삼파전이 예상된다. 2편이 코미디 장르다. 작년 설 초대박을 친 '극한직업' 학습효과 덕분이다. 대신 할리우드 대작들은 한 템포 쉬어가는 분위기. 그 틈새를 가족을 겨냥한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들이 노리고 있다.


◆코미디와 정치극 '삼파전'

통상 추석과 설 연휴에는 코미디와 사극이 강세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사극의 부재를 틈 타 코미디가 명절 극장가 주류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해는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설 연휴에 앞서 개봉한 '해치지않아'를 포함해, '미스터 주: 사라진 VIP' '히트맨' 등이 모두 코미디 장르다. 신선한 소재와 실험적인 시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느 날, 동물의 말이 들린다면?'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는 익숙한 소재지만 한국 영화로서는 새로운 시도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국가정보국 요원 주태주(이성민)의 고군분투를 다뤘다.

한국형 VFX 기술로 완성된 동물들의 모습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사람과 동물과의 우정, 가족애 등이 적절히 녹아있는 점도 가족 관객에게 적절히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모든 요소를 매끄럽게 융화시키는 서사의 힘은 부족하다. 스테레오 타입의 몇몇 캐릭터들도 몰입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장르의 포문을 연 건 미덕이다.

태주와 티격태격하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군견 알리 목소리를 연기한 신하균을 비롯해 유인나, 김수미, 이선균, 이정은 등 다양한 동물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진의 활약이 돋보인다. '재심' '또 하나의 약속'을 연출한 김태윤 감독 신작이다.

'히트맨' 역시 만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독특한 설정과 이야기에 방점이 찍힌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국정원을 탈출한 전직 암살요원 준(권상우)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름도 수혁으로 바꾸고 꿈에 그리던 웹툰 작가가 됐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연재하는 웹툰마다 조회 수는 만년 꼴찌에 악플에만 시달리던 준은 술김에 과거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국가 1급 기밀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만 국정원과 테러리스트의 더블 타깃이 된다. 실사와 웹툰, 애니메이션을 오가는 이색적인 배합이 눈길을 끈다. 꾸준히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온 최원섭 감독은 "제일 웃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액션도 현실적이지만 코믹하고 경쾌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문제는 산만한 접근 방식이다. 참신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한다.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려는 강박 탓인지 불필요한 상황과 대사가 난무하며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 B급 감성에 충실한 영화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공감하기 어렵다.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건을 영화화했다.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영화는 대통령 암살사건 발생 40일 전을 따라가며 박 대통령과 2인자들의 관계와 심리를 면밀히 따라간다.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을 중심으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의 과열된 '충성 경쟁'을 말이다.

1970년대 공포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탐구한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마치 마피아와 다를 바 없었던 박정희 정권 18년간의 어둡고 시린 감정과 욕망의 뒤엉킴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김규평이 왜 18년간 충성해온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냥했는지, 그의 심리와 시선을 좇는다. 더불어 여전히 비화와 비사로 남아있는 한국 중앙정보부(KCIA)가 벌인 정치공작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뭐니뭐니해도 러닝타임 내내 진검승부를 펼치는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 대결이다. 이병헌, 곽도원, 이희준, 그리고 이성민은 절제된 연출에 맞춰 화려함을 죽이고 일정한 톤으로 영화 내내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명불허전이다. '내부자들' '마약왕'의 우민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가족을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다큐멘터리

설 연휴는 가족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이 의외의 복병으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먼저 '아이스 에이지' '리오'로 유명한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신작 '스파이 지니어스'는 다채로운 액션과 기발한 설정의 코미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잘나가는 슈퍼 스파이에서 한순간에 비둘기가 된 스파이 랜스(윌 스미스)와 엉뚱한 천재 과학자 지니어스 월터(톰 홀랜드)가 의기투합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월터와 홀로 활동해왔던 특급 스파이 랜스가 서로 진심을 확인하고 콤비로 거듭나는 과정이 꽤 익살맞다. 설정은 익숙하고 전개는 단순하지만 화려한 액션과 쉴 틈없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시종 유쾌함과 깨알 같은 잔재미를 선사한다.

'하이큐!! 땅 VS 하늘'은 '슬램덩크' 시리즈를 잇는 웰메이드 스포츠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일본 현지와 국내에서 거대 팬덤을 보유하고 있어, 매 시리즈마다 '하이큐!!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도쿄 대표 결정전 에피소드를 다룬다. 원작 22권, 23권에 해당하는 두 가지 에피소드로, 원작 만화 팬 사이에서 하이라이트로 꼽는 에피소드인 네코마 고교와 후쿠로다니 고교, 노헤비 학원 간의 대결이 담겨있다.

다큐멘터리 두 편도 눈길을 끈다. '사마에게'는 저널리스트 와드 감독이 그동안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았던 자유를 빼앗긴 도시 알레포의 참상을 가장 깊숙한 곳에서 전하는 감동 다큐멘터리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쟁의 참상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지만 '사마에게'가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 건 전쟁 지역의 참혹한 피해 속에서 삶을 이어가던 평범한 개인이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는 점에서다.

죽음과 파괴에 집중하기 보다는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천착한 카메라는 자유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일반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시리아인들의 일상을 오롯이 담아냈다.

'에릭 클랩튼:기타의 신'은 신이라 불리는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에릭 클랩튼의 인생 블루스를 담은 영화다.

비극적인 가족사, 세기의 사랑, 알코올 중독,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 등 비극과 좌절 속에서 다시 기타를 통해 자신을 구원한 에릭 클랩튼의 힘들고 외로웠던 행적을 따라간다. 'Layla' 'Tears in Heaven' 등 시대를 풍미한 그의 명곡과 공연 클립도 만날 수 있어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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