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주호영 이후의 보수, 가짜 보수에 NO하라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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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9   |  발행일 2020-05-29 제23면   |  수정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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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주호영 의원을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정치인 한 명이 정치를 바꿀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판사 출신이다. 생각은 온건한 합리주의자, 말은 군더더기 없다. 행동은 겸손하고 모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범생'은 아니다. 붙임성 좋아 다방면에 인적 네트워크가 넓다. 전화 잘 받는 정치인으로 소문 나 있다. 서로 아는 사람 얘기 나오면 곧장 전화 걸어 바꿔준다. 법명 '자우(慈宇)'가 말하듯 내공 또한 만만찮다.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붙는 상반된 인물평이 있다. 사람 좋지만 화끈한 맛 떨어지고, 청탁(?) 잘 들어주지 않아 지인 사이 호불호가 나뉜다. 한결같다는 느낌은 있으나 '대장 깜'으로는 '글쎄요'다. 5선 중진에 머물 뿐 대권주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자력으로 원내대표 되고는 다르게 보인다. 장삼이사의 요즘 취중진담이 '주호영 괜찮네'다. 그를 주목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주호영의 캐릭터에 보수의 답이 있다. 그의 이미지로 인해 보수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중이다. 보수가 조금씩 달라지니 진보도 바뀌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상호감응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추도식에서는 환대 받았다. 광주에서의 장면은 더 감동적이다. 5·18 기념식의 클로징멘트가 나오자마자 문재인 대통령이 멀리 누군가를 향해 한달음에 걸어갔다. 반가운 이를 맞기 위해 버선발로 뛰어가는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 주호영이었다. 진실만한 웅변 없다. 그의 진심 어린 5·18 사과에 대통령이 극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유족들도 최고의 예를 표했다. 어제 청와대 회동에서는 "도와주고 싶다" "공감한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예전엔 보지 못한 풍경이다.

그래서 '주호영의 통합리더십이 보수혁신 바로미터'라는 평이 나온다. 드문 찬사다. 호기심반 기대반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시선이 모아진다. 때늦은 감 있지만 그의 정치적 검증은 이제 시작이다. 성공하길 바란다.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보수를 위해, 우리 정치를 위해 그의 성공은 가치 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면 그는 대단히 행복한 사람이다.

주호영이 길을 놨으니 김종인이 집 지을 차례다. 집을 짓되 집장수 날림집이 아니라 오랫동안 내가 살고 보수 후예들이 살 집을 지어야 한다. 김종인의 첫 수가 궁금하다. "놀라지 마라"고 으름장부터 놨다. 집부터 부술 것이다. 당 간판은 물론이다. 그리고 보수의 새 가치를 써내려갈 것이다. '보수'란 말까지 폐기할지 모른다. 그의 전매특허 '창조적 파괴'다. 이번이라고 아니할 까닭 없다. 이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주호영이 그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책상 위 풍경이다. 5권의 책이 김종인 정면에 나란히 쌓여있었다. 남 보란 듯한 의도적 데코레이션이다. '나의 메시지를 읽어라'는 신호다. 김종인, 다 계획이 있구나…. 그중 한 권의 책 '진짜 보수 가짜 보수'. 자멸한 한국 보수의 민낯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보수 매체 출신 전 언론인. 유력 보수주의자가 쓴 책의 내용이 충격적이다. 반공·친미·친재벌 성장 등 3대 노선을 지키느라 국민 정서와 멀어진 보수의 문제를 짚었다. 그 과정을 '가짜 보수들의 자기 파괴적 역사'라 칭했다. '가짜 보수 5적(敵)'도 등장했다. 보수에겐 판도라의 상자다. △정치 공작의 총본산:국정원 △권력의 사냥개:검찰 △친박 왕국의 꿈:친박 △권력 붕괴의 지뢰밭:재벌 △탄핵 불씨를 던진 악동:관료. 김종인은 왜 이 책을 보여줬을까. 주호영 이후의 보수는 이들 가짜 보수에 과연 'NO'할 수 있을까.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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