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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범 사회부장 |
꽤 오래전의 일이다. 정치부 기자 시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정치부 기자가 정치인을 만나는 게 자연스럽지만, 정치판이 아니었다. 당시 그는 '야인(野人)'이었다. 2008년 총선에서 떨어지고 작가로 활동했다.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한 출판사로 출근해 책을 쓰던 시기였다. '지식소매상'이라는 명함도 들고 다녔다. 2008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을에 출마한 유 이사장을 취재한 인연이 파주출판단지로까지 이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쯤 유 이사장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를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라고 소개했다. 단박에 이해됐다. 당시 '친노'는 '폐족' 평가를 받았다.
새삼 유 이사장을 떠올린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장 때문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큰 기쁨에 교만하지 않고, 슬픔에 너무 낙담하지 말고 의연하게 행동하라'라는 의미다. 역경에 처했을 때 힘이 되고, 권력에 취했을 때 경고를 주는 메시지다. 현 집권세력이 딱 새겨들어야 할 문장이다. 당연히 유 이사장도 포함이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정부'를 표방하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절반의 국민이 다시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고 있다. 문 대통령 취임사에 나오는 '통합과 공존'이 아니라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서 서로를 죽일 듯이 몰아붙이는 세상을 만들었다. 편가르기의 대표적 사례는 '조국 사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갖가지 논란에도 조국씨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나라가 두 동강 났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도 이 정권을 상징하는 단어다. '조로남불' '추로남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니 급기야 '이로남불'까지 나왔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태도 논란이 '이로남불'이다. 2005년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부적절하다고 했던 이 대표는 지금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말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 행사가 불가피했다는 대통령 판단을 부정하고 국민의 대표가 행정부를 통제한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위험한 인식"이라고 비난했다.
편가르기는 '선택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선택적'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대검찰청 국감에서 윤석열 총장을 향해 여당 의원들이 '선택적 정의'라고 쏘아붙이자, 윤 총장이 '선택적 의심'이라고 맞받아쳤다. '선택적 망각'도 거론된다. '선택적 망각'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에 남기는 것을 뜻한다. 민주당이 당헌 개정을 통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 공천을 결정한 데 대한 비판에서 불거진 단어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인 2015년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해당 규정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말이 없다. 그래서 '선택적 침묵'이라는 비판(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나온다.
집권세력은 내심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부르짖을지 모른다. 교만에 대한 자성이 아니다. '조국 사태'나 '당헌 개정'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무리 잘못해도 국민들이 표를 줄 것이라는 오만함이 엿보인다. 그나저나 지금의 유 이사장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어떻게 해석할까. 궁금하다.
조진범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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