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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법학부 교수·대구시민센터 이사장 |
연말이면 올해의 10대 뉴스가 발표된다. 통상 국내 10대 뉴스와 세계 10대 뉴스로 구분한다. 하지만 2020년에는 코로나19를 능가할 국내적 그리고 세계적 키워드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없던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세계는 그야말로 대(大)혼돈이다.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현 상황이 빨리 끝나서 예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하루속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온다. 세상의 시작인 카오스 이후 등장한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아들 크로노스를 낳고 크로노스는 레아와 결혼한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의미하고 레아는 흐름을 뜻한다. 혼돈 속에서 새로운 땅이 등장하고 시간의 흐름, 즉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그 자체로는 역사가 되지 않는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인 제우스는 수많은 전쟁을 극복하고 승리하면서 신들의 역사에 새로운 질서를 잡는다. 질서를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는 코스모스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인류의 지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무질서한 혼돈으로서 카오스가 모험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우스와 같은 영웅이 만드는 역사로서 새로운 질서인 코스모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혼돈은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신호이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만 하는 조건인 것이다.
물론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오래된 것들은 새로운 것들과 치열하게 갈등한다. 새로운 제도와 체제에 대한 기성의 부정적 시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힘과 열정이 넘치는 시절에는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도 마음도 쇠퇴하면서 활동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바뀌는 세상에 대한 걱정이 삐뚤어지고 전폭적인 믿음이 부족하면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역동성과 갈등하게 된다. 어찌 보면 안주해 왔던 틀 안에서 딴생각하지 않고 순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왜 쉽고 편한 길을 두고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는지 답답해하며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늘 예상치 못했던 도전으로 혼란이 발생하고 어려운 길을 통한 새로운 질서와 역사를 요구한다. 마치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만 바람이 끊임없이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단지 오래된 편안함에 되돌아가 안주하고 머물러서는 안 된다. 도전과 모험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금 대구경북이 추구하는 행정통합은 기성의 행정과 제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질서를 목표로 한다. 대구경북은 1981년 행정분리 이후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가 바닥을 치는 위기의 혼돈 상태라고 이구동성으로 걱정해 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대구경북을 어떻게 새롭게 디자인할 것인지 많은 고민과 논의들이 있었다. 이제 분명해진 대구경북의 미래로서 행정통합은 대구경북을 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위대한 발걸음이다.
대구경북과 국가의 혁신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코스모스적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버니바 부시 보고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돈 속에서 미국이 승리하도록 크게 기여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버니바 부시의 목표는 명쾌하다. 바로 "미국은 혁신의 주도자가 돼야지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혁신을 향해 먼저 나서 모험하고 도전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뒤따라 하는 혁신은 2등이 아니라 패배를 의미한다. 변화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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