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포스텍...한전공대 설립 등 역차별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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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5 20:05  |  수정 2021-05-07 15:18  |  발행일 2021-05-06 제3면
자산투자부터 등록금에 이르기까지 종합사립대학을 기준으로 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야
보유 자산만으로는 첨단 연구에 필요한 재원 마련 쉽지 않고 발전기금 유치 역시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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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교기

수도권이 아닌 경북 포항에 세워진 신설대학이라는 불리함을 극복한 포스텍의 성공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설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하지만, 이로 인해 포스텍은 정부 지원을 받는 이들 국립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경쟁을 해야 하는 역차별 환경에 놓이게 됐다.

◆ 빛바랜 국내 최초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을 통한 산업 고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절박함으로 '국내 최초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1986년 개교했다.
대학-산업체-연구소가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선진국형 연구중심대학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당시 박태준 설립이사장의 교육보국 철학과 이에 따른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일 포스텍에 따르면 포스텍의 자산은 지난 3월 기준으로 약 1조 4천억 원대로 추정된다. 지난해 2월과 비교해 약 3천600억 원이 증가했다.


자산은 포스코와 계열사 주식 등이며, 매년 주식 배당금 등 투자 수익으로 500억~600억 원이 학교로 전입된다. 또한, 정부와 기업체 등 외부에서 받는 연구비가 약 2천억 원, 등록금과 대학발전기금 등 기타 수입이 약 800억 원이다. 포스텍은 지난해 예산 운용으로 약 3천800억 원을 써, 현 상태를 유지하는 건 문제가 없다.

◆ 투자 재원 부족
대학 경영에 있어서 가장 안정적인 수입은 등록금이다.
사립대학인 포스텍의 학생 1인당 연간 등록금은 558만 원이다. 서울대(공대 기준)와 카이스트에 비해 100만 원 가량 저렴하다.


사립대학으로 공대 분야 세계 최고 명성을 가진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를 비롯한 세계 유수 대학의 등록금 수입 비중은 25%이지만, 포스텍은 8%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포스텍 재정을 고려하면 학교경영 자체는 안정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데에 있다. 개교 35주년을 맞은 포스텍은 젊은 대학에서 중견 대학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는데 교수진의 세대교체와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포스텍 건학이념인 '인류 복지향상을 위해 산학협동의 폭을 세계의 전 산업체로 확대함으로써 세계 속의 대학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더 큰 지원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현실 여건은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다.


특히 첨단 연구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포스텍이 보유한 자산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등 향후 미래 신산업 연구를 위한 시설비 마련과 인재 확보가 벽에 부딪친 상황이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우리 대학과 같은 방향성을 가진 국립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은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며 "사립대학인 포스텍은 이러한 지원 없이 자산투자부터 등록금에 이르기까지 종합사립대학을 기준으로 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약점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국립대 이상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해왔음에도 대기업이 설립한 대학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나 사립대학이라는 이유로 발전기금 유치 역시 이들 대학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국립 전환 의견
국내 최고의 공과대학임에도 경쟁력 약화가 현실로 다가오자 최근 포스텍 이사회에서 대학 기부채납을 통한 국립 전환을 검토해 논란이 일었다.


파장이 커지자 대학 측은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사들의 의견을 개진한 정도라고 일축하며, 사태를 봉합했다.


하지만, 사립대학인 포스텍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1월 열린 포스텍 이사회에서 최정우 포스텍 이사장(포스코 회장)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대학의 국가 기부채납 방안에 대한 이사들의 생각을 물었다.


다수의 이사들은 "포스텍이 가진 사립대로서 발전하고자 하는 노력 등이 약화 될 수 있다" "국가에 소속된다면 현재의 독립성을 잃게 되고 정부 산하기관이 돼 바람직하지 않다" "사립대로서의 경영 마인드를 유지해야 앞으로도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등 반대의견을 냈다.


한 명의 이사는 "장기적 관점에서 재정 문제와 학교발전의 지속성을 고려하면 기부채납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는 찬성 의견도 제시했다.


이에 최정우 이사장은 "국립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전환 문제는 장기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며 이 안건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했다.


이사회는 이날 사립대학인 포스텍이 다른 국립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같이 국가로부터 인건비를 지원받는 방안의 하나로 '국립화' 의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포스텍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1년 예산은 약 1조 원 규모이며, 이 중 2천억 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나머지 국립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도 정부 지원을 받는다.

◆한국에너지공대 설립…역차별 논란
이런 가운데 전남 나주 혁신도시에 한국에너지공대가 내년 3월 개교한다.
한국에너지공대는 한국전력에서 특별법에 의한 특별법법인으로 설립하는 에너지특성화 공과대학이다.


이낙연 의원의 전남지사 출마 당시 공약이었고, 지난 대선 때 문재인후보의 공약으로 채택됐으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되었다. 설립 부적절 논란 속에서도 적합성 조사 등 많은 절차를 생략하고 2022년 3월 개교 방침이다. 본관과 학부생 기숙사 등 제대로된 건물도 없이 대통령 임기종료 전에 개교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한전과 자치단체 안팎에서는 한국에너지공대 설립 비용으로 5천억원을, 연간 운영비로 1천억원을 각각 전망하고 있다. 전남도와 나주시는 2022년부터 10년간 각각 100억 원씩 총 2천억 원을 운영비로 지원한다.


한전이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에너지공대 설립에 들어가는 비용은 결국 국민이 부담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나아가 공기업(한전)이 설립하는 사립대인 만큼 국가지원이 불투명해 학교재정 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특히 광주에 있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지스트(GIST)는 에너지융합대학원이 신설돼 있어 굳이 새로운 에너지공대를 설립하는 것보다 GIST에 추가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다 지방 거점지역에 현재 개설돼 있는 5개 과기원과 포스텍만해도 국내 연구대학 기능은 충분한 상황에서 새로운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설립은 불필요 하다는 비판도 많다.


이런 온갖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너지공대는 무리수를 둬가며 추진되고 있다. 결국 원만한 운영을 하려면 과학기술원들처럼 특별법을 통해 과기부 소속의 대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와, 벌써부터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국내 최고의 공과대학인 포스텍이 재정 문제로 '국립 전환'을 논의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호남 공약이라는 이유 말고는 설립 이유를 알 수 없는 한국에너지공대를 짓고 있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이는 분명 역차별이다. 정부가 한전공대에 투입될 돈으로 KAIST를 비롯한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포스텍을 우선 지원하는 것이 국가 과학·산업 발전에 더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포스텍이 오죽했으면 국립 전환을 검토했겠냐"고 덧붙였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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