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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아들의 이름으로' 안성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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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4   |  발행일 2021-05-14 제39면   |  수정 2021-05-14 09:04
"반성없는 세상 향한 일침…젊은 관객들이 많이 관람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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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의 연기는 늘 변화무쌍했다. 관록의 배우에서 느껴질 수 있는 여유로움과 강인함, 그리고 그 속의 부드러움을 베이스로 매 작품 소시민의 일상을 대변하고 역사의 무게에 고뇌하고 또 장르물의 주역으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게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럼에도 그의 연기에서 과잉은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역시 그의 점잖은 얼굴에 죄책감과 후회, 분노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배어나게 만들지만 감정의 분출보단 차분하고 절제있게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한다. 안성기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영화에서 과거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분명하게 마주한 오채근을 연기했다. 광주를 기억하고 과거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에게 '진정한 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그의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안성기는 매 장면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가는 심정으로 연기에 임했다. "그동안 광주를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있었지만 '아들의 이름으로'는 다른 각도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다. 어떻게 보면 영화가 사건의 정곡을 찔렀다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관객들이 꼭 관람하면 좋을 것 같다." 데뷔 64년차 배우의 의미있는 행보에 또 한 번 무게감이 실렸다.

5·18민주화운동 41주기, 속죄않는 가해자에 보내는 메시지 대사통해 전달
이젠 진심어린 반성과 용서할 때…기획의도에 보탬되고 싶어 투자도 참여
작년 건강문제로 걱정 끼쳐드려 운동으로 꾸준히 관리하며 컨디션 찾아
데뷔 64년차 동력은 항상 초심 잃지않고 노력하며 촬영현장 중요시하는 것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다음날 출연을 결정했다. 투자자로도 이름을 올렸는데 어떤 점에 마음이 동한 건가.

"시나리오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무겁고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오채근이라는 인물을 쭉 따라가다 보니 중간중간 감정의 폭발과 반전도 있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더라. 신선했다. 1980년 5월18일에 대한 아픔과 상처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지만 그런 영화적 구성과 설정이라면 관객들에게 충분히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반성과 용서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획의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투자에도 참여했다."

▶광주시와 <재>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아들의 이름으로'는 모든 면에서 광주 시민들과 함께 만든 영화라 할 수 있다.

"맞다. 그리고 이번 영화처럼 많은 일반인과 연기를 함께 한 건 처음이다. 분명한 건 영화 속 평범한 시민들로 출연한 그분들의 모습이 영화를 세련되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영화의 진실성을 부여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지나고 나니 그분들 한 명 한 명의 모습이 그립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오채근은 후반부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나온다. 어떤 점에 주목했나.

"채근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반성도 없이 잘살고 있는 1980년 5월 그 당시의 책임자들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왜 복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히 관객의 궁금증은 증폭될 것이다. 그러한 미스터리함을 일정 시점까지 잘 유지해가는 게 관건이었기 때문에 한신 한신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가는 데 신경을 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행위에 대한 설득력과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채근은 예전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과 아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으면서 광주 시민들에 대한 감정까지 혼재되어 있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어느 역할보다 절제가 필요했다."

▶극중 "죄를 짓고도 반성하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는 것 아니에요?"라는 직설적인 대사를 단호하게 내뱉기도 하고, 후반부에는 독백을 통해 '반성'이라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어떤 의미가 담겨져있다고 봤나.

"5·18이 발생한지 벌써 41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아픔을 간직하면서도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광주 시민들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함과 동시에 여전히 속죄하지 않는 가해자들에게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영화 속 독백과 대사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들의 제대로 된 반성 없이는 피해자들의 고통도 진정으로 치유될 수 없다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길 것이다."

▶1980년대 한국영화사는 배우 안성기를 빼고 논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의미였다. 당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촬영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바람불어 좋은 날'은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만들려는 한국영화의 뉴웨이브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1980년은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그렇다. 1980년대 고도성장 속에서 발생한 억압과 빈곤, 사회적 모순을 블랙코미디로 처리한 '바람불어 좋은 날'은 가난한 민초들의 모습을 담았다. 때문에 영화인들 사이에선 개봉되기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영화는 5·18 이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개봉됐다. 소위 말하는 '한국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끈 셈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한국영화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었고 영화 활동을 잠시 중단했던 나 역시 이 작품으로 복귀해 21년 만에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로 다시 인정받고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배우에게 육체도 중요한 도구인데 극중 고등학생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액션 장면이나 운동하는 장면에선 단단한 복근을 자랑한다. 평소 몸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난해 10월 갑자기 쓰러져 모든 분에게 걱정을 안겼지만 요새 컨디션은 아주 좋다. 먹는 것도 굉장히 잘 먹고 전 처럼 운동도 하는 등 잘 지내고 있다. 나이에 비해 회복이 빠른 것도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덕분이라 생각한다. 운동은 아주 젊었을 때부터 해와서 몸에 자국처럼 남아있다. 특별히 강하게 하는 건 없고 꾸준히 조금씩 하고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배우에겐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힘이 있으면 상대방에게도 그 느낌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 스스로 무력하면 누가 인정해 주겠나. 배우에게 운동은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중요한 습관이다. 그래야 현장의 노동량을 버틸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과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등 낭보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영화계 선배로서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쁘다. 그간 쌓아온 한국영화의 역량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국내 영화인들의 뛰어난 역량이 전 세계인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우리가 빛을 발할 기회는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잘해줬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이러한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아들의 이름으로'와 같은 저예산영화, 독립영화 등 작품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시나리오가 우선이지만 나를 필요로 할 때 뿌리치지 못하는 건 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아버지·할아버지 역할은 못한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계속 새로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힘이 있는, 그리고 의외성이 있는 역할을 하고 싶고, 늘 그런 역할들은 기다리게 된다."

▶나이로 인한 역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작품이 있다면 하나 꼽아달라.

"나이로 인해 캐릭터의 폭이 좁아지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있다. 원하는 배역은 주인공쪽에서 하고 이쪽에서는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니까. 가끔 '저 역할은 10년 만 젊었으면 내가 하는 건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다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내 나이 때에 맞는 역할을 잘 해나가는 것도 그래서 중요하다. 욕심이 났던 캐릭터는 영화 '명량'에서 최민식씨가 맡았던 이순신 역이다. 그 인물은 좀 해보고 싶더라. 물론 '명량' 후속작인 '한산'에서 장수로 나오긴 하지만 내가 이순신 역할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아 있다."

▶1957년 '황혼열차'로 데뷔한 64년차 경력에도 여전히 현재형 배우로서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고, 해본 적도 없다. 그냥 운명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매번 영화를 할 때마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가장 큰 매력이고 그래서 계속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연기생활을 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장이고 작품에 완성도가 있으면 결국 관객은 찾아 온다. 그런 면에서 뭔가 내가 조금씩 모자랐는지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거기에 플러스해서 무언가가 더 필요했었는지 매번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계속 나아가기 위한 선택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연기 외에 흐트러짐 없는 생활방식, 즉 바른생활 배우로 각인돼 있다. 이런 수식이 부담감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나.

"전혀 부담감을 느낀 적은 없다. 바른생활 배우라는 것이 혹여 내 생활을 얽매지 않을까 하는 시선도 있지만 나는 그게 배우로서의 나의 삶이구나 생각한다. 배우를 하면서 선택해야 할 것이 있는데, 나는 똑바른 길을 가면서 고지식하게 가는 것을 나의 길로 삼은 거다. 물론 배우가 반드시 바른생활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 속에 이미 그런 개념이 들어와 있고 이젠 습관이 되어선지 그렇게 사는 게 편하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페어 러브'(2009)를 같이한 신연식 감독의 신작인데, 치매 걸린 딸과 아버지, 두 사람의 이야기다. 최근 치매를 앓는 인물에 관한 역할이 몇편 요청이 왔는데, 전형적인 스토리라인 안에서 전형적인 연기를 답습하는 캐릭터라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주 독특하고 재미난 영화가 될 것 같아 출연을 결정했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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