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갈 길 먼 차별없는 세상

  • 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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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9   |  발행일 2021-06-29 제22면   |  수정 2021-06-29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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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며칠 전 휴가차 전주를 방문해 호텔 로비에서 발을 심하게 헛디뎌 금이 갔다. 곧장 병원에 가 깁스를 했고, 관광지 방문 목적으로 온 터라 웬만한 관광 안내소에 휠체어가 대여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휠체어보다 비교적 더 저렴한 목발을 미리 구입했다. 이렇게 나의 험난한 전주 여행은 시작되었다.

토요일 오후 6시 전주 한옥 마을에 도착했다. 조명을 멋지게 설치해 낮보다 해 질 무렵이 아름다운 한옥 마을은 오후 7~8시 사이가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피크 타임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방문한 것이지만 관광안내소는 굳게 문이 닫혀 있었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한다는 야속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동이 불편한 신체장애인 및 교통약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시간은 그들 운영시간에만 맞춰져 있는 것이다. 오전 9시에 관광객이 많을지, 오후 6시에 관광객이 많을지조차 전혀 고려되지 않은 운영시간에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외 시간에는 대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공유 킥보드는 기계에 신분증 인증만 하면 24시간 언제든 대여할 수 있는 무인 시스템이다. 자전거를 세워 두는 자전거 주차장(보관소)처럼 휠체어도 관광안내소 앞에 세워두고 무인 대여 시스템이 가능하게 충분히 만들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방법을 몰라서, 혹은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방법 자체를 고안할 노력조차도 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졌다.

지인을 통해 겨우 휠체어를 구해와 다시 한옥 마을로 이동했지만 역시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미관상 목적으로 만든 고르지 못한 돌길은 휠체어 바퀴가 부드럽게 구르지 못하게 하였고, 지나갈 때마다 덜컹덜컹거리며 엉덩방아를 찧게 했다. 어디 그뿐일까. 가게의 낮은 문턱마저도 넘어서지 못해 턱이 없는 1층이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만을 찾아야 했고 갈 수 있는 음식점도, 상점들도 모두 제한되었다.

당연하게 누려오던 나의 일상에서, 순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무엇을 하든 한 번 더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삶의 질을 매우 떨어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낮은 문턱이 누군가에겐 큰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비장애인인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심하고 이기적이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이는 전주 한옥마을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사회 곳곳에 이제서야 시선과 눈길이 닿아 쓰는 글이다. 물론 비장애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소수의 장애인만을 위한 세상으로 바꾸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모두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 것들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해당되지 않는, 절실히 필요한 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기에 내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서로 배려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 어려움이 줄어드는 세상으로 변화되길 바란다.

최소한의 생활 반경인 편의점에 가는 것마저 그들에겐 미션인 현실에 여행은 더욱 사치일 것이다. '장애인이기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되지 않아서'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동등한 일상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비장애시설에 대해 목소리를 내본다. 부디 공공시설만이라도 누구에게도 차별되지 않는, 불편하지 않게 제도적으로 개선되기를 소망한다.
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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