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은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란 글귀를 늘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의심스러우면 채용하지 말고, 뽑았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으로, 세종의 용인술과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발판이 됐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정부든, 기업이든 어떤 인재를 채용하는가에 따라 흥망성쇠가 갈리기도 한다. '인사가 만사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전 과거 시험이 인재 등용문이라면, 오늘날엔 여러 방면의 시험이 있다. 대학 입시부터 공무원 시험, 교원 임용시험, 기업의 공채 시험, 각종 자격시험 등등. 시험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라도 원하는 자리에 갈 수가 없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던진 선거 출마 후보자 공천자격 시험을 두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이어진다. 우리 정당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에 논란은 당연하다.
자격시험은 당장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적용될 듯하다. 공천을 받으려면 기초적인 자료 해석이나 표현 능력, 컴퓨터 활용 및 독해 능력 등 기본적인 능력과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기성 정치인 또는 정치 지망생들은 당황스럽겠지만, 사실 국민들 사이엔 이전부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그동안 일부 선출직들의 자질 미달이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물론 공무원들부터 조롱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시간을 쪼개 열심히 공부하는 선출직들이 더 많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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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규 경북본사 총괄국장 |
공천 자격시험에 대해 일부에선 능력 지상주의를 우려한다. 정치인을 머리로 뽑느냐고도 항변한다. 이 같은 반발은 당연하다. 새 제도 도입땐 언제나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의 구상은 후보자 기초 소양 시험이다. 머리가 안 좋아 합격 못 할 시험이 아니다. 최소한의 자질 검증이다. 1등 한 사람을 공천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능력 안 되는 사람을 처음부터 제외시키겠다는 뜻이다. 국민 선택에 앞서 치르는 예비고사 정도라 인식하면 될 듯하다.
시험을 보지 않고 공직자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선출직이다. 영남이나 호남의 경우 특정 정당 공천장이 사실상 당선증이다. 선거홍보물에 실린 수십명의 후보자를 아무리 훑어봐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누가 시의원에 나왔고, 누가 구의원에 나왔는지 외우기도 어렵다. 결국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공천자를 택하게 된다.
그런데도 정당 공천은 언제나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미달한다. 능력과 자질보다는 혈연·지연·학연 등 인맥에 의한 공천, 줄 세우기 공천, 낙하산 공천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정당마다 공천 심사위가 있다곤 하지만 거의 형식적이다. 결국 줄을 잘 댄 사람이 공천권을 따낸다. 공천 자격시험은 선출직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시험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시험은 적어도 정의와 공정성은 대변한다.
우리나라는 정당정치의 색채가 강하다. 정당의 잘못된 공천의 폐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 처음엔 다소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공천 자격시험은 충분히 시행해 볼 가치가 있다.
박윤규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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