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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
미운 오리 새끼가 자신을 오리라고 생각하는 한 그는 백조이면서 백조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백조가 아니라고 생각하든 말든 이미 백조다. 내가 백조이면서 나를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 번도 백조의 삶을 경험한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생이 자신이 부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 번도 부처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백조가 오리가 되고 부처가 중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리와 중생은 모두 내가 만든 꿈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유식학에 따르면 나와 세계는 모두 심층의식인 아뢰야식이 만든 것이다. 이는 내가 꿈을 꾸면서 꿈의 세계와 그 꿈의 세계 속 나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한자경 교수는 '마음이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라는 책에서 이것은 화가가 그림 속에 자기를 그려놓고 자신을 그림 속 자아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런 장면이 있다. '최근에 마켓컬리에 흠뻑 빠진 친구가 선물로 이연복짜장을 보냈다. 집에 도착하니 아파트 입구에 스티로폼에 든 짜장이 놓여있다. 그 옆에 또 다른 택배 물품이 있었는데 아내가 인터넷으로 구매한 여름 바지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짜장면을 만든다. 면을 뜯어 2분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짜장은 비닐 째 뜨거운 물에 넣고 5분간 끓인다. 그리고 큰 대접에 면을 나누어 넣고 뜨거운 짜장 소스를 붓는다. 그런데 아내는 바지를 몇 번이나 입고 벗고 하다가 마침내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하기로 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새로운 바지를 구입한다. 나는 짜장면이 식을까 전전긍긍하며 식탁에서 아내를 기다린다.'
또 다른 장면이 있다.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오니 현관 앞에 두 가지 택배가 놓여있다. 스티로폼 속에 든 것은 남편 친구가 보내 준 이연복짜장이고 또 한 가지는 내가 인터넷으로 구매한 여름 바지다. 집에 들어가 얼른 택배 상자를 뜯어 바지를 입어본다. 그런데 바지는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르다. 남편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니 짜장을 끓이느라 건성으로 대답한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바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이 난다. 결국 바지를 반품하기로 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반품신청을 한다. 반품신청을 하면서 남편의 눈치를 보며 원래 바지보다 싼 바지를 구입한다. 남편은 짜장을 다 끓이고 굳은 표정으로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세계는 내가 만든다. 내 의식 밖에 별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칸트가 말했듯이 저 밖의 객관적 세계로서의 물자체(Ding an Sich)는 결코 알 수 없다. 내가 만든 이 세계 속에서 나는 극작가이고 감독이고 배우다. 나는 자기중심적인 아내가 있는 세계를 만들 수도 있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는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
아뢰야식은 개별적인 것이기도 하고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뢰야식은 나의 것이기도 하고 아내의 것이기도 하지만 심층에서 나와 아내는 같은 아뢰야식을 공유한다. 아뢰야식을 자각한다는 것은 나와 아내가 표층에서는 서로 다른 개체로 존재하지만, 심층에서는 하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심층 마음인 아뢰야식을 깨닫는 것은 인생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 인생이 내가 만드는 꿈과 같음을 자각하게 되면 더 이상 대상에 끌려다니지도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이는 '머무를 바 없이 마음을 내는' 대자유의 경지다.
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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