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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
철학자 미셸 푸코는 유토피아에 대비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hetero)'과 '장소(topos)'를 합친 말로,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장소들의 외연에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일상의 장소들을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환기시키는 장소, '현실화된 유토피아'라고 정의합니다. 2차원의 공간에 3차원의 영상을 투사하는 영화관, 허구가 현실이 되는 연극 무대, 여러 시대의 시간과 가치를 누적시킨 미술관이나 박물관, 자연을 축소한 듯 잘 자꾸어진 정원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온라인에 존재하는 소셜미디어, 메타버스도 이런 맥락에서 헤테로토피아라 할 수 있지요.
유토피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공간들이 있다는 것은 많은 위로가 됩니다. 건축가이면서 음악가인 사카구치 교헤는 그의 책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를 통해 헤테로토피아의 실천 사례를 보여줍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그는 가족과 함께 구마모토로 이주해 후쿠시마에서 피난 온 사람들을 위한 '제로 센터'를 만듭니다. 작가는 태양열 에너지 판을 붙여 만든 종이 박스에서 자급자족하는 노숙자들의 생활을 본 후 깊은 인상을 받아 '0엔 하우스'라는 것을 구상합니다. 급기야 대형 재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에 큰 실망을 느낀 그는 마이크로네이션(Micronation)인 '신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총리가 됩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나 배경이 아닌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와 아이디어, 협업 능력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삶의 방식은 무한하고 어떤 틀에 맞추어 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을 옥죄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은소홀의 '5번 레인'은 중학교 진학을 앞둔 강나루라는 한 어린이의 성장 과정을 담은 동화입니다. 강나루는 수영 실력이 좋아서 대회에 나가면 자주 5번 레인에 서지요. 보통 4번 레인은 예선 1위가, 5번 레인은 예선 2위가 서는 자리입니다. 늘 4번 레인을 차지하는 푸른초등학교의 김초희는 강나루가 갖지 못한 긴 팔과 집중력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수영장의 좁은 레인 한 곳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것 같은 좌절감,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4번 레인 선수의 움직임, 마지막 터치패드는 자신이 제일 먼저 찍겠다는 강나루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은 이기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스포츠라는 경쟁 세계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강나루의 언니 강버들은 촉망받는 수영 유망주로 체육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경쟁에서 버티지 못하고 다이빙으로 전향합니다. 모두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강버들은 다이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방향이 아래를 향하더라도 너 스스로 뛴다면 그건 나는 거야." 1등만 성공할 수 있는 운동 분야에서 낙오한 듯 보여도 삶은 계속되고 어쩌면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작품의 주제 의식이 이 말에 다 녹아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그 삶을 낙오나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현재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만이 성장의 개념을 만들 수 있겠죠. 미래의 성장을 담보로 현재의 불행을 수용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난 언니 강버들은 경쟁의 수영장을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수영장으로 자기만의 헤테로토피아를 만들어갑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메달로 확인되는 성적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기뻐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큰 무대를 자신의 헤테로토피아로 만드는 선수들처럼, 우리도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를 발견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습니다. 당신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에 있나요?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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