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겨울~봄에 이르는 소외의 단상들

  •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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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5   |  발행일 2022-03-15 제22면   |  수정 2022-03-15 07:25
코로나 속 격리·지인 죽음 통해
겸허히 자신 돌아보는 계기 돼
자본의 힘에 의한 맹목적 개발
대선이란 거대 이벤트 치르며
개인 삶 진정성·과정 고려 않은
결과 중심주의 소외의 삶 판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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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유폐記

확진 통보를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설마 걸릴까?" 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2월 초 경주 남산 답사 후 돌아오는 승용차의 운전을 했던 K가 그날 확진됐음을 알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항원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의심이 들어 그 다음날 다시 항원검사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확진판정이었다. 바로 보건소로 가서 PCR 검사를 했다. 길게 이어진 줄이 좀체 줄어들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이튿날 확진 통보가 왔다.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서재에 갇힌 채 일주일을 지내야 했다. 아내는 내가 쓸 물건들을 따로 챙겨서 넣어주었다. 밥도 따로 먹게 갖다주었다. 담당 의료진이 보내준 체온계와 산소포화도 측정기로 하루 두 번 측정을 해서 보고를 했다. 몸에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었지만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체온과 산소포화도 상태 역시 정상을 유지했다. 불안해진 아내가 덩달아 항원검사와 PCR 검사를 받았는데 다 음성으로 나왔다. 다행이었다.

일주일 동안 서재에 갇힌 채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북쪽으로 난 창으로 가창 댐 너머 울멍줄멍한 산들을 내다보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 방 밖의 거실을 통과하여 베란다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햇볕을 쬐곤 했다.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바깥세상이 아득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싶어서 며칠 더 집안에 박혀 있다가 출근을 하고 시내 나들이를 했다. 아무 증상도 없이 끝난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불안은 늘 나를 조바심 나게 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일까. 다만 유폐기간 중 희한하게도 내가 내게 잘 보였다. 세상 속에 홀로 선 나의 적나라한 모습. 이미지나 기표로서의 내가 아닌 실제 단독자로서의 나를 본 것이다. 그렇게 나는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겨울을 났다.

#죽음

이어령 교수가 타계했다. 우리 시대 지성의 정점에 섰던 사람. 이따금 문학상 심사 등을 함께하기도 해서 서울 등지서 만났을 뿐이지만, 그의 책들을 통해 그를 늘 아득히 바라보았던 터라 애도의 정이 더했다.

그는 암 선고를 받고도 병원에서의 항암 치료를 거부했다. "절대로 병원에선 안 죽겠다. 아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안녕'을 고하는 게 내 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병과 고투하면서도 '평소처럼 해온 그대로' 연구와 집필 작업에 몰두했다. 지인들에게 자신의 병고를 숨기지 않은 채 생의 마지막을 향한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평생 해온 인문학의 탐구 자세로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주체적으로 맞이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말 '메멘토 모리'를 펴냈다. 마지막 저서다. 이 책에서 그는 "암 선고를 받는 순간 지금까지 숨 쉬던 세상의 공기 맛이 달라졌다"며 "죽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죽음의 발견이 생명의 발견임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함께해온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별의 말들을 이 책에 담은 듯하다고 누가 말했다.

무신론자로 일관하다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에게 귀의했다. 그는 '믿음'을 강조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는 말한다. "믿음이 있다면 존재 자체가 긍정된다. 보이지 않는 신앙의 대상은 과학이 아닌 믿음으로 증명된다."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큰 소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앞에서는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듯하다. '메멘토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걸 기억하라'라는 의미란다. 겨울의 끝에서 죽음 앞에 의연했던 그를 보내면서 삶과 죽음이 자연의 순환처럼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한 과정과 같음을 깨닫는다. 사후에 한 사진가가 남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한 인문학자의, 이성을 넘어서 영성(靈性)을 지향하는 성실한 모습을 본다.

#소외

그리고 겨울~봄에 이르기까지 쉬엄쉬엄 기 드보르를 읽는다. '스펙타클 사회'(유재홍 옮김, 울력). 그러면서 우리를, 나를 자주 돌아본다. 드보르의 말마따나 그런 내가 어떤 이미지로 들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올겨울은 우리 동네 강의 얼음도 제대로 얼리지 못한 채 봄으로 떠밀리는 듯하다. 그 이상기후처럼 정치도 사회도 맺고 끊음이 분명치 않은 채 지나간다. 코로나 팬데믹의 혼란 가운데서도 전국의 도시는 개발 바람으로 온통 먼지를 일으킨다. 내가 사는 대도시만 해도 200곳이 훨씬 넘게 고층 건물들이 세워지느라 부산하다. 자연에 대한 반성 없이 자본의 힘에 의해 맹목적으로 팽창을 거듭하는 듯하다. 미디어들은 끊임없이 자본과 권력이 원하는 대로 언어들을 쏟아낸다. 드보르는 현대인의 삶은 스펙터클의 거대한 축적물로 채워져 있다면서 우리 삶의 실제 모습은 그 속에서 이미지 정도로만 취급된다고 했다. 우리의 삶은 실제로 행하는 행동들의 단면적인 이미지로 압축되어 통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게다. SNS 속의 소통을 들여다보면 그 사실이 맞는 듯 여겨진다. 모든 개체들은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드러날 뿐 실재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과 개발붐, 그리고 대통령 선거라는 거대 이벤트들이 그런 스펙터클의 압축된 이미지 체계 속에서 교묘하게 수용되고 기획되며 통용되고 있다고 느낀다. 개개인의 삶들은 그러한 체계 속에서 가차 없이 부대낄 뿐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더욱더 삶의 진정성과 입체성, 특수성 및 그 과정들이 고려되지 않은 채 오직 그 결과로만 판단되는, 소외의 삶만이 가득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 자각으로 오는 봄이 뒤숭숭하다. 무엇보다 거대한 산불의 연무로 국토가 뒤덮인다. 한국의 봄이 그런 자욱한 혼돈의 기운으로 열리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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