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1천100년 전통 대구 '하향주'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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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5 16:04  |  수정 2022-07-05 16:56  |  발행일 2022-07-05
경영난 못 이겨 제조장 및 생산시설 매각
대구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자격도 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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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주'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밀양박씨 종가에서 전승된 술로, 대대로 며느리에게 그 비법이 전수됐다. 영남일보 DB

"명맥을 정말 잇고 싶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1천100년 전통의 대구 '하향주(荷香酒)'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영난(영남일보 2021년 4월27일자·7월21일자 보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탓이다.

5일 하향주가 영농조합법인(대표 박환희·영농법인)에 따르면 최근 대구 달성군 유가읍의 하향주 제조장 및 생산시설(4천300㎥) 30억 원에 매각됐다.

제조장과 생산시설이 매각됨에 따라 하향주는 앞으로 시중에서 구매할 수 없다. 또 다른 생산 시설이 없고, 재고도 없기 때문이다. 박환희 하향주가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모친이 1980년부터 판매했던 하향주는 안타깝지만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됐다"며 "지금도 하향주를 구입하고 싶다는 전화가 전국 곳곳에서 걸려 오지만, 남은 물량이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대신, 박 대표는 새로운 고급 술 개발 및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급술이 모두 사라졌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비슬산 일원에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또 다른 고급술을 만들어 보겠다"며 향후 계획을 전했다. 그러면서 "하향주 명맥이 끊긴 만큼, 대구시 무형문화재 11호 기능보유자도 반납하겠다"고 덧붙였다.

기능보유자 자격을 반납하게 되면 박 대표는 전통기법 전수 계획 이행 여부에 따라 수령 가능한 지원금 월 110만 원과 공개행사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박 대표는 전통기법 전수 계획 이행 지원금의 경우 지난 2013년부터 받지 못했지만, 공개행사 지원금으로 매년 수 백만 원 정도 받았다.

박 대표는 4대째 하향주 전통을 계승하고자 가족과 함께 이민 갔던 미국에서 삶을 뒤로하고 1994년 달성 유가읍에 정착해 술을 빚어 왔다. 그러던 중 2013년 대출금 15억 원을 포함해 18억여 원을 투자해 990㎡ 규모의 제조공장과 창고 등을 신규로 건립했다. 하지만 판매 부진 등으로 인해 경영난을 겪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기사회생을 시도했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면서 2020년 봄부터 불가피하게 생산을 전면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에는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재기 발판을 모색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매각된 하향주 제조장 부지는 대형 커피 전문점으로 재탄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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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유행했던 고급 술인 '하향주'는 술향이 연꽃 향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영남일보 DB
하향주는 유가면에 거주했던 밀양 박씨 종가에서 전승된 술이다. 연꽃 향기가 난다고 해서 하향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화, 찹쌀, 누룩, 비슬산의 맑은 물 등을 사용해 빚는다. 청주와 비슷한 맛이 나며, 입에 머금으면 연꽃향이 감돈다. 기원은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성국사가 수도한 비슬산 유가사 도성암이 불에 탄 후 보수하면서 인부들을 위해 빚은 술이 토주였다.


이 술이 비슬산 일대 민가에 전승되면서 하향주가 됐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때는 비슬산에 군사가 주둔하고 있을 때 주둔 대장이 왕에게 이 술을 진상했더니, 광해군이 "독특한 맛과 향이 천하 약주"라고 칭찬했다는 설이 있다. '동의보감'에도 하향주는 '독이 없으며 열과 풍을 제거하고 두통을 치료하고 눈에 핏줄을 없애고 눈물 나는 것을 멈추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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