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는 가운데 안동출신 쌍둥이 가족의 영화같은 사연이 알려져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 A·B씨와 누나 C씨는 평소 가족애가 각별했다. 어려서부터 늘 같이 붙어 다니던 쌍둥이 형제는 유치원과 초·중·고·대학, 심지어 군대도 같이 다녀왔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며 직장생활을 했다. 형은 간호사로, 동생은 의류분야에서 건실한 직장인으로 근무했다. 결혼한 누나는 이런 동생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보내고, 기념일을 챙겨주는 등 알뜰살뜰 보살폈다.
형제는 참사 당일에도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함께 외출했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동생은 목이 터져라 형을 불러 한시간만에 찾았다. 하지만 그토록 밝고 따뜻하던 형은 파리한 얼굴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희미한 맥박을 느낀 동생은 곧바로 심폐소생술(CPR)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병원에 가서도 CPR을 멈추지 않았지만 형을 되살려내진 못했다.
형을 떠나 보낸 후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특히 숨진 쌍둥이 형이 끔찍이 아꼈던 만삭의 누나는 큰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출산일이 한 달 이상 남았는데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병원에서는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한 응급상황이니 더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산모만이라도 살리자는 의료진에게 아이의 아빠는 "동생을 잃은 아내가 아이까지 잃으면 결코 살 수 없을 것"이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비장한 분위기 속 수술이 시작됐고 세상에 나온 아이는 울음을 울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까지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은 또 한번 지옥으로 떨어지는 악몽을 맛봤다. 심폐소생술 등 아이에 대한 응급조치가 이뤄진 후에야 아이는 희미한 울음을 터트렸다. 예정보다 40일 이상 일찍 세상과 조우한 아이는 이후 각종 검사에서 정상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가족과 지인들은 태어난 아이가 쌍둥이 형의 선물로 믿고 있다. 한 가족은 "간호사였던 고인은 평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환자에 대해 헌신적일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며 "가족에게도 늘 최선이었던 그가 자신을 빨리 잊으라고 아이를 보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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