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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원장이 우리나라 위성·발사체의 개발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항우연 제공〉 |
대한민국은 올해 우주항공 분야서 눈부신 성과를 냈다. 국내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해 전 세계 7번째로 1t급 실용위성을 자체 기술로 쏘아 올린 나라가 됐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달궤도 탐사선 '다누리'의 성공적 발사 소식도 올 8월에 전해졌다. 현재도 총탄처럼 빠른 속도로 달을 향해 날고 있는 다누리는 다음 달쯤 달궤도에 진입해 화성 등 심우주 개발의 거점으로 활용된다. 이뿐 아니다. 스텔스 기능을 장착한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역시 올해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이 방산대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을 쌓았다.
항공우주기술 개척
국내 1호 엔지니어
1999년 아리랑 1호 시작으로
자체 개발 위성 9기 탄생시켜
"기술과 산업 수준 미미한만큼
성장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어
일론 머스크의 혁신적인 사고
평생 연구한 입장서도 놀라워"
◆항공우주 엔지니어 1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원장은 우리나라 항공우주 분야의 1호 엔지니어다. 경북 포항서 태어나 3살 무렵 대구로 옮겨온 그는 서울대 항공공학과로 진학하기 전까지 줄곧 대구서 성장했다. 특이하게도 어려서부터 날아다니는 것에 유난히 집착했는데, 녹음이 우거진 수성못과 고산골은 그의 '최애' 놀이터였다. 방학이 되면 매미·나비·잠자리 잡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으며 잡아 온 잠자리 유충을 집에서 직접 부화한 것도 여러 번이다.
서울로 거점을 옮긴 그는 1986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 들어갔다. 연구원 측의 지원으로 프랑스 폴사바티에 대학서 자동제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1999년 다목적 실용 위성인 아리랑 1호를 시작으로 우리나라가 개발한 인공위성 9기를 모두 탄생시켰다. 2019년에는 달탐사개발사업단을 맡아 내부에서도 포기하는 분위기였던 달궤도선에 새로운 비행경로를 제시해 힘을 실었다.
이 원장은 "되돌아보면 제 인생은 항공우주와 함께 흘러온 것 같아요.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이 열렸고, 그 길을 따라서 걷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내부서도 포기했던
달궤도 탐사선 쏘다
새 비행경로 제시 등 성공 견인
다누리호 내달쯤 달궤도 진입
"항공우주청 설립추진 시의적절
전국 산재 조직 소통노력 필요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우주
우주인 없다는 게 더 비현실적"
◆우주로 눈 돌리는 세계
일론 머스크·제프 베이조스 등 세계의 억만장자들이 최근 우주여행에 눈 돌리고 있다. 조만간 민간 우주여행의 시대가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국에서도 젊은 스타트업들이 우주여행에 도전장을 내미는 등 미지의 세계를 향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 원장은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는 둘 다 아폴로호를 보면서 우주의 꿈을 키운 아폴로 키즈다.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벌어 우주에 투자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론 머스크의 혁신적 사고에 대해서는 평생 항공 분야를 연구한 입장에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한국형 항공우주국(나사·NASA) 성격인 '항공우주청' 설립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후속 절차에 돌입했다. 우주 관련 범부처의 컨트롤타워가 될 우주항공청은 조만간 설립추진단 구성을 마친 후 연내에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항공우주 분야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이를 체계적으로 고민하고, 방향성을 제시할 항공우주청의 설립은 매우 시의적절한 논의"라고 환영했다. 다만 전국적으로 흩어진 우주 관련 조직들을 원활하게 소통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더불어 일련의 재편과정에서 항우연은 연구기관으로 지켜온 기존의 역할을 보다 충실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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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원장이 지난 6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발사 성공을 알리는 언론브리핑을 하고 있다. 〈항우연 제공〉 |
◆한국, 6등과 격차 큰 7등
국내에서는 '항공우주'와 '우주항공'의 단어가 혼용돼 쓰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정책적 통일감을 가지지 못하고 혼선을 부추긴다는 주장을 한다. 이 원장은 이를 두고 영어 'Aerospace'를 직역한 '항공우주'가 초반 대세였다면, 최근 들어 우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우주항공'이 보다 폭넓게 쓰이고 있다는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사실 그가 이 분야에 처음 발을 디딘 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우주'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고 존재감이 미미했다. 우주에 대해 가르치는 학과는 물론 이를 전공한 교수조차도 없었다. 따라서 항공이라는 단어가 관련 분야 전체를 아울러 사용됐다. 그러던 중 정부가 관심 갖고 투자하면서 우주 관련 분야가 조금씩 확산하더니 지금은 오히려 역전했다.
이 원장은 "처음엔 항공의 규모가 더 컸는데 나중에는 항공·우주가 반반인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근무 인원으로 보면 항공이 25%, 나머지 75%를 우주가 차지하는 듯한데, 여전히 직제상에는 항공이 우선이다"고 했다.
전 세계 항공우주 분야서 한국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6등과 격차가 큰 7등 정도다. 이 원장은 "최근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우주산업은 전 세계의 1%도 못 미친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이처럼 미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우주인은 존재할까
인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지만 여전히 우주는 너무나 멀리 있는 미지의 영역이다.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등 우주 관련 영화가 보여주는 모습도 현실보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평생 우주만 바라보고, 매일 우주로 나갈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이런 영화들을 어떻게 볼까. 이 원장은 "우주는 광활한 만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우주인의 존재도 확률적으로 없다고 하는 게 더 비현실적이지 않을까"라며 웃음 지었다.
우주로 향한 꿈을 품고 살아온 지 30년, 그동안 국내 우주생태계도 확연하게 바뀌었다. 주요 대학에 우주 관련 학과가 늘어난 것은 물론 관련 스타트업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처럼 바뀐 풍토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이 분야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이 원장은 "멀리 내다보고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꿈을 꾼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안 꾸면 아예 안 되는 거잖아요. 되든 안 되든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래요. 더불어 후배들이 큰 꿈을 펼치는 데 조금이나마 제가 보탬이나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족할 듯합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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