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왼쪽) 동신대 교수가 독일 성인교육연구소 라이프니츠 평생 학습 센터(DIE) 관계자와 독일 평생교육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인공지능(AI)을 위시로 한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혁명을 추동하는 실재의 힘은 인재양성에 있다. 특히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은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서 핵심 교육 분야이다." 김춘식(58) 동신대 에너지경영학과 교수는 인문학자로서 대한민국 최초의 엔지니어 공과대학 교수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공과대학에서는 인문학 전공자가 융복합 연구와 교육을 하는 것이 일상적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낯설다. 현재 그는 동신대 에너지융합대학에서 창의융합교육을 하고 있으며, 독일의 역사와 문화, 독일의 평생교육, 독일의 이원화 직업교육과 고등직업교육에 관한 다수의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2014년에는 한-독 정부 간 '직업교육 및 고등교육 교류와 협력프로그램 추진'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초대 한·독 통일역사교육포럼위원장(2014 베를린) 역임을 포함해 지금까지 교사 교류, 전문대학 장기현장실습프로그램, 독일취업프로그램, 직업교육 및 평생교육 교류 등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고등)직업교육 분야에서의 양국 간의 교류에 기여해 오고 있다. 지난 8월 독일 취재 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역사학)한 후 바로 독일로가 북부 함부르크대학교(Universitat Hamburg)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모두 마쳤다.
김춘식(오른쪽) 동신대 교수가 독일 사립응용과학대학인 중소기업대학(FHM) 총장 안네 드라이어(Anne Dreier) 교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독일의 직업교육훈련 체계에 대해 느낀 점은.
"기독교적 전통과 문화에 따라 중세시대부터 직업(Beruf)에 대한 각별한 소명의식(Berufung)을 가진 독일의 직업교육훈련체계는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성공적인 직업교육 모델이라 확신한다. 독일의 직업교육훈련 체계는 무엇보다도 업체에서의 현장실무교육과 직업교육기관에서의 이론교육이 함께 이루어지기에 현장과 교육의 괴리가 적다는 점이 장점이다. 직업학교(Berufsschule)의 커리큘럼 형성이나 대학 주도의 이원화 고등직업교육의 학사과정(Duales Studium)에 각기 지역의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산학일체형 직업교육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또 직업학교의 운영 및 커리큘럼의 설정 과정에까지도 수공업회와 상공업회(상공회의소) 등 경제와 산업의 주체들이 참여해 산업(체)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직업교육에 산업계가 적극 참여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렇다. 독일의 직업교육제도에는 산업체가 주도하는 직업인력 개발에 대한 사회적 기여정신이 강하게 녹아있다. 산업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교육기관과 기업, 사회경제단체, 노조들이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다. 정부는 직업교육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와 체계를 지원하며, 국가인력 개발에 필요한 정책연구 및 직업(교육)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늘 새로운 기술변화에 민활하게 대응하는 유연성도 독일 직업교육훈련체계의 큰 특징이다. 최근 독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직업교육훈련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의 등장으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업인력의 디지털기술 역량은 직업교육의 변화와 직업훈련체계의 고급화·고도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직업교육훈련체계의 국제화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갈수록 성장하는 독일의 수출경제 수요에 걸맞게 독일제품(Made in Germany)의 질(Quality)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외 현지에서 독일의 제품생산구조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직업교육훈련체계가 독일의 자동차 등 몇 개의 독일 제조회사와 연계해서 인력양성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獨 직업훈련, 현장과 교육 괴리 적어
전문인력 양성 위해 산업계 참여
새 기술변화 대응 본보기 삼아야
최근 獨 대학 이원화교육제 '인기'
졸업생 80% 이상 취업 보장 받아
일반대학 비해 교육기간은 짧지만
두 개의 자격 취득 통해 경쟁력 UP
韓 고등단계 직업교육구조 변화 필요
전문대 집중 직업교육, 4년제 확대를
전문대엔 석사과정 단계적 도입해야
獨처럼 다양성 담보된 정책 추진을
▶최근 독일에서는 중등직업교육훈련을 넘어 종합대학 및 응용과학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서도 직업교육을 시행하는 대학 이원화교육제도(Duales Studium)가 매우 인기가 높은데 이 고등직업교육제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1970년대 초반 이래 독일은 '대학 이원화 교육제도'를 통해 직업교육과 대학교육 사이의 교차점에서 성공적인 직업교육모델을 개발했다. 기존 중등단계의 직업교육과 달리 보다 전문성이 높은 직업에 적합한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이 새로운 대학교육시스템은 대학에서의 이론과 기업체에서의 실무적인 직업교육훈련을 연계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0년대 초반 이래 지금까지 대학의 학문교육과 직업교육이 연동된 대학 이원화 교육과정에 대한 공급과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학업성취도가 높은 독일의 청소년들은 전통적인 이원화 직업교육훈련제도가 제공하는 직업교육보다는 대학 이원화 교육의 기회를 더 선호하며, 기업 또한 이원화 교육을 통한 고급인력 양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의 대학 이원화 교육이 높은 취업률을 견인하고 있으며, 이원화 교육과정 졸업생의 80% 이상이 실무교육을 수행한 기업에 바로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학 이원화 교육의 졸업생은 직장에서 높은 승진 가능성과 급여를 보장받으며, 일반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교육 기간(3~5년), 졸업 시에 두 개의 자격(학사학위와 공인 이원화직업자격) 취득을 통해 노동시장에서의 상대적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가로 대학 이원화 교육은 직업역량만을 보유하고 있는 직업 경력자들에게 대학의 문을 개방함으로써 직장인들의 직무능력을 포함한 역량강화교육도 지원하고 있다."
▶독일 평생교육체계는 어떤가.
"독일은 1950년대부터 평생교육체계를 구축해왔으며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과 더불어 평생교육을 정규교육의 한 부분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독일 정부의 평생교육정책은 시대에 맞게 항상 변화하면서 국민이 적절한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평생교육 기관이나 시설들을 직접 통제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평생교육기관들로 하여금 자율성을 가지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용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독일의 직업교육훈련체계는 계속교육이나 직업교육 등을 통해 평생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성인대학(Volkshochschule·VHS)'과 같은 평생교육을 위한 기반시설을 잘 마련하고 있으며, 대학을 포함해 일반 학교교육기관들도 평생교육을 위해 과감하게 학교를 개방하고 있다."
▶직업교육 못지않게 평생교육체계도 잘 구축된 인상을 받았다.
"아마 특별히 독일이 평생교육시스템을 강화하고 평생교육을 권장하기 위해 정부가 제도적, 정책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독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직업 계속교육을 통한 실업자구제 프로그램(AQUA)' '교육상여금' '교육휴가 청구권' 등과 같은 사례가 그것이다. 결국 독일 국민은 평생교육을 자신의 자아실현의 통로이자 국가경쟁력의 근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에서도 국민이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평생교육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대학진학률은 한국보다 낮지만 재교육률은 높은 편이다. 독일 학생들은 일학습병행 직업교육훈련(Ausbilung) 같은 제도를 통해 먼저 직업을 경험하고, 나중에 대학에 진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독일의 평균 대학 입학 연령은 23세로 한국보다 무려 3살이 높다. 또 장년층이 평생교육이나 직업전환을 위해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40~64세 대학 신입생 수는 7만8천명으로, 한국의 1만6천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아 독일의 평생교육은 이제 공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의 축이 되고 있다. 참고로 저도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경험했지만 독일의 평생교육기관인 성인대학(Volkshochschule)은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독일어 기초강좌를 포함해 다양한 성인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평생교육체계, 전문대 교육체계 등에 대한 연구 등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신다. 현재 전문대가 매우 어려운 환경인데 우리나라 전체 교육의 틀 안에서 전문대 위상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같은 고민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국내 노동시장의 여건은 고등단계 직업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전환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청년층 일자리 문제와 고용률의 확대에 고등단계 직업교육구조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도 적지 않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 독일의 이원화고등직업교육 제도의 도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직업교육에 관한 한 세계적 모델국가인 독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평생교육을 직업교육과 연계해 고용안전 및 경제발전의 시금석으로 삼고 있다. 특히 평생교육의 구체적인 구현행위로서의 계속교육은 성인 스스로 창조해 가는 삶이 가능하도록 직무능력의 향상 및 자기계발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럼에도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기술 교육 지원 및 직업재교육 지원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 평생교육은 자아실현이나 행복과 같은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노동과 직업과 같은 사회경제적 의미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생교육과 잘 연계된 독일의 중등 및 고등단계의 이원화 직업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의 운영시스템은 한국의 고등직업교육정책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국내 고등교육체계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특히 갈수록 가속화되는 기술변화의 추이를 반영해 미래에는 고등단계의 직업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기존 전문대에 집중된 고등단계 직업교육을 4년제 대학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등직업교육구조의 개편도 적극적인 논의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아울러 독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중등단계의 이원화직업훈련교육과 고등단계의 이원화고등직업교육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들이 현장에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여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도록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이론을 학습하고 현장에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 혹은 개선하도록 지원하는 산학 협동 모델을 우리 산업 현장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
"저는 이미 2015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고등교육의 구조개편을 주장해 왔다. 특히 독일의 응용과학대를 모델로 해 한국 전문대의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제기한 바가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전문대학이나 폴리텍과 같은 고등직업교육기관에 석사과정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비록 늦었지만 2021년부터 5개 전문대를 시범으로 하여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마이스터대 사업'이라는 새로운 고등직업교육모델을 실행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대표적인 독일의 이원화 고등직업교육기관인 응용과학대학은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의 구조개편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또 한국은 독일과 같이 다양성이 담보된 교육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현재의 4년제와 전문대학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특히 대학교육에는 긴 호흡으로 투자를 해야 하며, 취업률을 대학교육의 실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때문에 정부도 대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대학이 좀 더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물론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서 전문대 교수자들의 응용연구역량도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수자의 연구가 학생교육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김춘식 교수 약력
△독일 함부르크대(Universitat Hamburg) 역사철학부 철학박사(서양근현대사) △독일 함부르크대 역사철학부 학사/철학석사(역사학, 정치학, 교육학) △독일 트리어대(Universitat Trier) 역사학, 정치학 수학 △한양대 사학과 문학사(역사학, 고고인류학) △현 동신대 에너지경영학과 교수,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 소장 △전 포항공과대(POSTECH) 인문사회학부 교수(2007년 3월~2017년 2월)
△전 독일 함부르크대 역사철학부 강의교수(2004년 6월~2005년 5월)
△현 교육부(한국전문대학협의회) '전문대학평가인증위원회' 부위원장 △현 '포스텍/나노융합기술원-독일/프라운호퍼 IISB연구소' 운영위원 및 국제자문위원 △전 교육부 '고등교육 및 직업훈련교육' 국제협력 자문위원(2013~2019) △전 <재>포항문화재단 이사(2018~2019)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학생 해외인턴십' 사업관리위원 △전 교육부 '대학생 해외인턴십사업단 선정사업' 평가위원 △전 포항학 인문아카데미 원장 △현 나주학 진흥위원회 위원 △현 '경북정책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주요논저 : ‘독일 평생교육의 역사와 한국에의 시사점’(역사와교육 2017), ‘독일과 한국의 직업교육과 고등직업교육’(경상논총, 2019), ‘독일 ‘대학 이원화 교육의 역사와 최근 현황 및 한국에의 시사점’(경상논총, 2022), '한국의 교육, 독일의 평생직업교육을 만나다'(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 2023년 2월 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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