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철 KDI 원장 "주 52시간제 개혁…정경분리·은퇴 연령 연장해야"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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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12 15:46  |  수정 2022-12-12 15:47  |  발행일 2022-12-12
조동철 KDI 원장 주 52시간제 개혁…정경분리·은퇴 연령 연장해야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KDI 제공.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 원장이 주 52시간 등 노동 규제 개혁과 함께 은퇴 연령 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에 시행된 부동산 규제를 예로 들며 정치적 판단에 따른 비합리적 규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조동철 원장은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Reboot KOREA 2022'에서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한 주식시장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는 채권시장, 그리고 빙하기에 접어들고 있는 부동산 시장 등을 볼 때 경제위기라는 진단이 과장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기 부양책 한계
경기부양 정책의 한계도 지적했다. 조 원장은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추가적인 대규모 부양정책이 지속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21년 초에 집행된 1조9천억 달러 규모의 부양 패키지는 그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약 2백 조원 규모의 재정자금이 뿌려지면서 수요가 급격히 팽창했지만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공급 측면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조 원장은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깨어난 것"이라며 "미 연준은 엑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그 결과 세계 금융시장은 지극히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됐으며, 실물경제도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수출 둔화추세 지속
국내 경제도 좋지 않다고 봤다. 조 원장은 "세계경제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출수요는 올해 중반부터 둔화하기 시작했다"며 "향후에도 당분간은 이러한 둔화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추진되는 경기부양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조 원장은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는데 씀씀이를 늘리기 위한 경기부양만 지속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그 초기 단계가 인플레이션이고, 이게 극심해질 경우 나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즉 공급측면의 생산성을 개선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요측면만 자극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조 원장의 주장이다.

◆개인 창의력 발현 환경 조성
선진국을 따라잡는 성장 전략인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 시대는 끝났다고도 했다.

조 원장은 "이제는 해당 업종의 전문성을 키워 온 민간의 창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민간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민 개개인의 창의력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제적·사회적 장애요인 때문에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여야 하고,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기득권의 벽에 가로막혀 개인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를 타파해야 한다.

조 원장은 "그렇게 우리 사회의 막힌 곳들을 뚫고 경직된 부분들을 부드럽게 만들어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열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해야 우리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비합리적 규제 타파해야
규제 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 원장은 "최근 규제의 경제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평가하지 않고, 정치 진영논리를 앞세운 규제들이 강화·확산되기도 했다"며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해 이른바 '투기세력'을 척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비현실적 발상 하에 시행되었던 수십 차례의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상기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조 원장은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비합리적 규제들은 노동시장에서 특히 강화됐다"며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하나의 예"라고 말했다.

그는 "근무시간에 대한 경직적 규제는 고용주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기회도 제약한다"며 "4차 산업혁명이 화두고, 실로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가 생기고 있는 요즘 이런 획일적인 규제를 강화하면서 어떻게 창의적 혁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호봉제, 청년·고령 노동자 모두에 불리
경직적 임금체계 개선도 화두로 던졌다.

조 원장은 "우리 노동시장은 추가 규제들이 도입·강화되기 이전에도 이미 상당히 경직적이었다"며 "일례로 생산성과 관계없이 근무연한에 연동돼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호봉제는 생산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젊은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한다"고 지적했다.

호봉제가 고령 노동자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조 원장은 "호봉제는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고령 근로자에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고령 근로자의 은퇴 연령을 연장하는 데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고령노동자에게 유리해 보이는 호봉제가 본인들의 일할 기회를 앗아가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노인빈곤 문제의 가장 효과적인 대응방안이 은퇴연령 연장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따라서 은퇴 연령 연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호봉제는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게 조 원장의 설명이다.

조 원장은 "고령 근로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며 " 그러나 호봉제와 같이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체계가 지속되는 한, 은퇴 연령의 연장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개혁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경직적 고용, 젊은이에게 재앙
고용 유연성 제고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조 원장은 "본인의 능력에 비해 '좋은 직장'에 안착해 뒷문을 걸어 잠근 근로자에게는 경직적 노동시장이 축복일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좋은 직장'을 찾지 못한 근로자에게는 '제2의 기회'라는 문이 닫혀버린 재앙적 환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한두 번의 실패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기약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젊은이들을 훈계하기엔 너무나 폐쇄적인 노동시장을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사회 전반의 생산성 제고에는 물론 '공정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경직적 고용환경이 학벌 중심 사회의 원인이라고도 했다.

조 원장은 "노동시장이 경직적일수록 첫 직장이 평생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대학 졸업 직후 첫 직장이 중요해질수록 일류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높아지며, 그럴수록 대학 입시가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부모들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전혀 납득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을 학원으로 내몰게 된다"며 "이런 환경은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켜 가계의 윤택한 소비생활을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조 원장은 "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능력이 자녀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력이 대물림된다"며 "이 때문에 사회 역동성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체제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확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한 경쟁 시스템 구축
따라서 공정한 경쟁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조 원장은 "노동시장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이 보다 유연해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며 "특히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기회가 축소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신생기업에 대한 지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 원장은 "새 아이디어가 충만함에도 이를 구현할 재원이 없어 사업 기회가 사라지는 것은 큰 손실"이라며 "경쟁력을 상실한 기존 기업의 시장 잔류를 지원 정책을 신생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보다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조 원장은 "기존 대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도 필요하지만 경쟁력 있는 새로운 기업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이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장과 복지는 양립 가능한 목표
성장이 뒷받침된 사회복지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조 원장은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복지확대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은 논리적·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라며 "역으로 복지를 확대하면 성장이 촉진될 것이라는 명제는 일반적으로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배가 지나치게 악화돼서도 안 된다.

조 원장은 "효율과 분배를 동시에 막고 있는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찾아 개선해야 한다"며 "결과의 사후적 평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복지정책은 개인의 경제의지를 약화시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스스로 노력할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 제2, 제3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은 현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며 "동시에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은 지속적인 성장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성장과 복지는 절대 양립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도 했다.

조 원장은 "성장이냐 복지냐 하는 해묵은 이념논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민하면, 어느 한 목표를 크게 희생하지 않으면서 다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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