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 아신(필명) 'NIRVANA'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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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2 08:21  |  수정 2023-01-02 08:29  |  발행일 2023-01-02 제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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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림 作

내가 죽었다. 나뒹구는 머리통에 붙어있는 머리칼이 짧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뚝 잘려 맥없이 늘어져 있는 팔이 영락없는 내 팔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 천벌 받은 거야. 씨발 퇴근하고 여자나 사 먹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교회에 나가봐야겠어. 만 원이면 충분하려나? 오토바이가 처음인가? 제주도 생각나네. 사고만 없었으면 진짜 좋은 추억으로 남았겠지. 조졌다. 인생 조졌어. 트럭 몰면 돈도 없을 텐데… 에이! 남 걱정할 때냐. 점심 뭐 먹지?

들려온다. 입 꾹 닫고 사고현장을 힐끔대며 한순간도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그들 음성이. 단언컨대, 그들 생각은 그들 목소리로 그들 아닌 나를, 망자가 정말 자신이 맞는지 잔뜩 골몰 중인 한 사내를, 죽일 듯 찾아 헤매고 있다. 찾아지고 싶지 않아도 그들은 결국 나를 찾아낼 것이다.

나는 찾는 것보단 찾아지는 것에 능하다. 찾는 건 오로지 내 친구(가상의 친구다(그러나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오랜 기간 유지 중이라, 이제는 마냥 가상으로 취급하긴 어려워졌다)) '부처'의 몫이다. 당신이 아는 부처는 죽었다. 그 대신 나와,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하는 내 친구 부처가 살아서 아등바등하고 있다.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초연히 자기 얘기를 늘어놓는 내가 이상해 보이는가? 잠시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트럭이 지나간다. 오토바이와 트럭이 충돌한다. 끝.

오토바이. 트럭. 충돌. 나는 세 가지 사실(당신 이해의 편의상 '사실'이란 표현을 사용했으나, 엄밀한 의미로 이들은 사실 아닌 '현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한 가지 우연에 애도, 연민, 사랑, 증오를 포함한 그 무엇도 표할 생각이 없다. 확실하다. 이런 말을 뇌까리면서도 나는 장대비 속 물웅덩이에 내려앉은 나뭇잎보다 몇 배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불안정하고 분노하고 혐오한다. 또 배가 아프다. 나는 종종 아니 자주 붉은 대변을 본다. 때때로 항문도 무척 아프다. 나이도 젊은데 항문이 아프단 사실은 나를 슬프게 한다. 대한민국 남성 평균 수명 87세. 내가 죽은 게 아니라면 앞으로 60년은 더 써야 하는데… 하루 한 번, 일 년이면 365번, 60년이면… 계산하기도 끔찍하다. 그 더러운 것이 수천 번 혹은 수만 번 내 항문을 왕복하는 상상을 하니… 더는 살고 싶지 않다. 아침에 계획한대로 나는 오늘 죽어야겠다.(이미 죽었다면 천만다행이다)

죽어야겠단 생각이 처음은 아니다. 옛날에,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 나는 처방전을 보며 죽어야겠다 다짐한 적 있다. 끝말잇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리튬! 처방전이 리튬이라 하니 더 이상 끝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튬프쿰! 튬바! 나만 아는 단어로 되받을 순 없잖나. 나랑 나랑 끝말잇기를 하는 중이었다면 충분히 용인 가능한 단어였겠지만 나는 엄연히 처방전과 끝말잇기를 하고 있었다.

리튬? ?튬 튬…

나는 그렇게 처방전에게 지고 말았다. 지고지순하게 죽자. 섯다를 칠 때도 쫄리면 죽어야 하니까. 더 이상 이어갈 자신 없어진 나는, 처방전 앞에서 잔뜩 쫄아 버린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죽지 못했다. 튬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던 것이다. 튬보다는 내가 더 무서웠던 것이다. 리튬을 일주일 치 모아 한 번에 먹었는데 내가 이겼다. 지려 했는데 이겼다. 어쩌면 그게 리튬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리튬이 맞았는데 그냥 내가 안 죽은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일 다 그렇잖아. 이유 없으니까. 더 이상 나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받아들였다.

병원 가야지. 사실 병원 가려 집 나온 건 아닌데 '속편한 내과' 간판에 시선이 꽂혀 도저히 거기 들어가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배 아파? 아니. 아깐 아프다며? 그땐 그랬지.

나는 고민 중이다. 그래, 당신한테 물어보자. 내가 친구와 대화 나눌 때 정녕 이런 식으로 편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건가? 꼭 "큰따옴표로써 대화의 지위를 확보해 주어야 할까?" 혹은

이렇게

대화는 대화로서, 서사는 서사로서, 구분하려는 예의 정도만 차리면 괜찮다 생각하는가. 이렇고 저런들 무슨 의미가 있을는지 그래그래 없고말고 그래도 나는(이때의 나는 평소의 나를 의미한다) 예의 바른 사람이니까 향후 부처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물론 모든 대화를 대화로 구분해야겠다. 아니 해줘야겠다. 아니 해드려야겠다. 고마우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이 무척이나 감사하니까.

선배님!

어…그래요.

모르는 사람처럼 그러시면 저 정말 섭섭해서 저기 창문으로 뛰어내릴지도 모릅니다.

아! 미안미안, 선생님이 좀 이해해줘요. 점빵에 갇혀 살다 보면 다 이렇게 돼. 하루에도 저 문이 수십 번, 독감 시즌이면 수백 번도 열렸다 닫혔다… 정신이 없어요, 정신이.

의대생입니다. 학생회장.

맞아, 기억나요. 잘 생겨서 기억이 나네요. 홈커밍 때 봤잖아요, 맞죠?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이름은?

이름은요…

나는 돌연 눈싸움을 제안한다. 물론 정중하게. 아주 폴라이트하게. 그렇게 지그시 의사의 눈을 응시한다. 얼마 못 가 의사가 나가떨어진다.

저 새끼 모르는 것 같지?

모르는 게 약이래.

하여튼 척은 잘해요.

의사라잖아.

부처와 내가 살은 없어도 뼈 있는 농을 주고받는 사이 의사가 진료실 옆에 달린 조그만 방으로 내뺀다. 조금만 기다리라나. 커피도 타오겠다나. 환자 없는 시간이라 괜찮다나.

나는 원장 없는 원장실에서 옷걸이에 걸려있던 여분의 가운을 걸치고 원장이 앉아있던 거대한 의자에 앉아 음식점에서 종업원 부를 때 누르는 벨처럼 생긴 부저를 누른다. 이내 진료실 문이 열린다.

환자분 성함이요.

코짜 베짜 인짜요.

고기로 치면 부패 직전, 생선으로 치면 회는 무리고 탕거리로 푹 고아도 먹을까 말까한, 나와 동명이인의 노인 하나가 진료실로 들어온다. 나는 온몸에 급속도로 분노가 들어차는 것을 느낀다.

성함이…

코짜 베짜 인짜라니까.

이름!

코짜… 베짜…인짜…

똑바로 말해!

코베인…

네가 불렀어?

응.

왜?

똑같아서.

나랑?

응.

조종했어?

네?

또 조종했냐고.

뭐를…

미안하지만 혼란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산다. 이게 내 삶이다. 몽중몽. 액자식 소설. 그리고 대화 중 대화. 나는 대화 중에 화대를 받고 대화를 받고 화대를 받고 또 화대를 받는다. 나는 부처를 즐겁게 해 준 적 없는데 부처는 내게 화대로써 대화를 던져준다.

너 있잖아, 나는 코베인이 아닙니다. 따라해 봐.

나는 코베인이 아입니다.

한 번 더.

나는 코베인이 아입니다.

누가 이름 물어보면 앞으론 그렇게 대답해. 알았어?

나는 코베인입니다.

따귀를 한 대 올려붙일까 하다 나는 그냥 조용히 가운 벗고 병원을 나온다. 배가 고프다. 아니면 부른 것 같기도… 암! 암만 생각해도 그새 암이 자라난 것 같다.

구불창자에서 똥을 뒤집어쓰고 흉포해진 암이 콩팥, 간, 쓸개를 마구 들쑤시며 복강 내부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이 분명하다. 의사한테 물어보고 나올 걸 그랬다. 암이 왕이 될 수 있습니까?

김 기사! 먼저 들어가!

벼락같은 복통에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내 입에서 아무 소리가 튀어나온다.

걱정 마! 아빠한텐 끝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얘기할게.

길가에 세워져 있던 검은 세단이 잠시 머뭇대다 내 손짓과 동시에 기어를 바꿔 쏜살같이 신호등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제야 복통이 잦아든다.

…시죠?

우연과 인과를 혼동한 채 벙 찐 표정으로 가게 앞에서 담배 피고 있는 어리석은 중생에게 내가 미끼를 던진다.

예?

…시잖아요.

어떻게 아셨죠? 사실… 고민 중이었어요. 있던 애 자르고 새로 하나 뽑을까.

갈비탕 한 그릇 됩니까?

저녁 장산데요.

손님 아니고 알바. 일당은 갈비탕으로 퉁 칠 테니 하루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사람 구하세요.

방금 기사…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요. 아는데, 알바도 안 해본 놈한테 어떻게 가업을 물려주겠냐 하시잖아요.

들어오세요.

그 전에, 소리 한 번 질러도 됩니까?

남자가 귀 막자 내 입이 가능한 한 최대로 벌어진다. 하지만 나는 찢어지기 직전까지 잡아 늘인 입이 섭섭함을 토로할 정도로 적막해진다. 동시에 배를 부여잡고 잭 다니엘 병처럼 몸을 앞으로 40도가량 기울여 암 덩어리부터 시작해 심장까지, 내 더러운 원천이 모조리 목구멍으로 튀어나오길 간절히 염원하며 음 소거 상태로 힘껏 용쓴다.

됐습니다.

남자가 귀 열자 나는 입 닫고 가게 안에 자리 잡는다.

힘들어 보이세요.

죽어서 그런가?

예? 그럼 얼른 주변에 연락을…

참, 주변 소개가 늦었다. 우리 아빠는 이재●이다. 우리 엄마는 삼★이다. 그런데 뭘 죽는 소리 하냐고? 사실 우리 아빠는 포주다. 우리 엄마는 오피스텔이다. 자, 여기서 질문 하나. 내 아버지가 누구고 내 어머니가 누군들 그게 당신한테 중요한가? 우리 아빠가 이재●에서 포주가 됐다고 당신한테 털끝만큼이라도 변화가 일어났냐 이 말이다. 아니. 사실의 탈을 쓴 일개 현상은 당신의 실존에 손가락 하나 갖다 댈 수 없다.

부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하나만 더 묻자. 당신 부모는 정말 당신 부모가 맞는지 확인해 본 일이 있는가? 없다면 이거큰일 났다. 지금 누군가 당신 부모 인두겁을 쓰고 당신 부모를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미친놈이라 나를 욕하기 전에 찬찬히 당신 부모가 당신 부모일 수 있는 근거를 생각해보라. 1.이목구비가 닮았다. 2.성격이 닮았다. 3.유전자검사로 친자 일치 판정 받았다. 좋다. 그나마 토대 있어 보이는 3번으로 계속 논박해보자. 당신은 유전자검사 결과를 믿는가? 정말 그 종이쪼가리 하나를 맹신할 수 있다고?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당신이 정말로 믿을 수 있다 확언할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갈비탕 시켜놓고 뜬금없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고? 세상일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니었던가? 나는 먹고살기 위해 계속 물어야한다. 당신은 왜 태어났지?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나? 존 코너를 죽이기 위해? 혹시 당신이 당신 부모를 사주했나? 나는 태어나야 하니 나를 낳으라고?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당신도 나도 그렇지 않다. 당신은 태어났다. 나도 태어났다. 그게 전부다. 우리는 현상에서 잉태되었지만 사실로 태어났다. 즉, 당신과 내가 맹신해도 괜찮은 유일한 사실이자 진리는, 당신과 내가 태어났다는 것, 그거 하나뿐이다.

지금 당신이 혼란스러운 것처럼 나도 몹시 혼란스럽다. 이집 갈비탕은 얼큰 갈비탕이었기 때문이다. 또 부처가 남자를 조종한 것이다. 부처는 얼큰한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나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 기호에 맞춰 중생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아 왜 얼큰이야.

그렇게 해 달라 하셔서…

아니, 친구한테 한 말인데…

일반으로 다시 해드릴까요?

다음에요.

정을 떼려는 건지, 요즘 들어 부처가 부쩍 제멋대로 행동한다. 말 걸어도 쉽게 대답 않는다. 그러다 내가 남들과 대화할 적이면 불쑥 말을 걸어와 내 정신을 흩트린다. 나와 말을 주고받던 사람들은 내가 부처의 농간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드러난 것만 보며 나를 광인 취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만큼은 꼭 집중해서 들어 달라.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나는 부처가 실존 않는다는 것을 안다. 왜냐면 나는 그를 실제로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들려질 뿐이다. 여기서 하나 더. 나는 내가 듣는 그의 음성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쉽게 말하면, 환청이 환청임을 알고 있단 뜻이다. 환청이 환청임을 안다면, 그것은 환청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훤히 환청임을 알고 환청을 듣는 나는 거짓 위에 서 있는 거짓이다.

'거짓'하니 생각나는데, 나는 가장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그렇다고 모든 걸 가장하진 않는다. 뼈대는 사실이다. 살만 거짓일 뿐. 고백건대, 나는 극심한 골다공증에 초고도비만이다.(물론 전생에서만. 그것의 업으로 현세에선 그 반대에 가까워졌다)

사실은 빈약하고 거짓은 창대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걱정한다. 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뼈가 무너져 내릴까봐. 그러면서도 나는 쉼 없이 몸집을 불린다. 모순 그 자체. 나도. 내 생각도. 내 존재도.

잘생겼네요. 못생겼어요. 미남이네요. 추남이에요. 사랑해요. 혐오해요. 그렇다면 당신은 혐오하면서 사랑하는군요. 추남이면서 미남이고요, 못생기면서 잘생겼습니다. 하나 하면서 둘이니까, 둘하면서는 하나고, 그렇다면… 1+1=1?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라고 주입식 교육하는 나라가 있다.(실제 이런 나라가 어디 있겠냐만, 나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아까부터 부득불 괴로운 생각들을 설파하고 있다) 그 나라 어린이들은 1+1상품을 1상품이라 이야기할까? 불가능하다. 양손으로 스며든 상품의 실존이 머릿속 알량한 사실의 가면을 찢어발긴 뒤, 1+1상품은 1+1상품으로 발음하라고 찍어 누르듯 혀에게 명령할 테니까.

☞[2023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 아신 'NIRVANA' (하)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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