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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학부 학생들 과제를 읽다가 신선했던 점 하나. 캐나다는 세계에서 둘째로 땅이 큰 나라지만 인구는 4천만 미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비슷하다. 경제도 미국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고, 엘리트들은 영국이나 미국의 명문대로 유학을 많이 간다. 그럼에도 미국을 부러워하기보다 'Canadian conceit(캐나다인의 자부심)'라고 부르는 독특한 태도가 있다. 비효율적임에도,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미국식 의료민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식의 무상의료라고 알려진 'universal public healthcare'를 캐나다적 핵심가치로 사수하려는 것 같은.
우리 대학이 있는 도시 사스카툰은 인구 30만명 미만에 캐나다 내에서도 추운 지역으로 토론토나 밴쿠버 토박이인 캐나다인에게는 '시골'스러운 곳이다. 학부 학생들 대다수는 농업을 주로 하는 인근 소도시의 대가족 공동체에서 대학 공부를 위해 도시로 나온 백인들. 그 학생들이 얼마나 캐나다인임을, 사스카툰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가에 대한 내러티브를 읽으며, 어떤 교육을 받기에 개인이 그런 '집단적' 자존감을 지닐 수 있나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K-브랜드로 도배하는 한국식 '국뽕' 애국주의와는 다른 느낌이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냄새를 묻는 질문에 할머니가 구워준 시나몬빵을 들고, 대학 졸업 후 서너 가구밖에 없는 고향마을로 돌아가 교사하고 싶다는 식이다.
요즘 한국의 '지방소멸론' '지방대 벚꽃 엔딩', 거대한 혐오가 느껴지는 '지잡대' 등의 담론을 접하며 내가 만난 많은 사스카툰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지역과 대학에 대한 '수치심'이 없었구나를 깨달았다. 우리 대학은 캐나다 톱15 연구대학 그룹에 속한다. 미국식 주립대학같이 들리겠지만, 캐나다엔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같은 개념의 사립대가 없고, 동부의 토론토대학과 맥길대학, 서부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이 톱3를 차지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1등, 2등 식으로 토론토대에 못 가서 맥길대에 가는 건 아니고, 한국식 '지방대'라는 개념도 없다. 무한경쟁을 앞세운 구조조정의 열풍이 거셌던 여러 해 전, 외부에서 선임되었던 총장이 물러난 일이 있었다. 여러 이유 중에 졸업식에서 총장이 개혁의 필요성을 어필하려다 대학을 무시하는 말을 했고 그런 언행이 지역민의 거부감과 반발을 불러일으킨 탓도 크다고 들었다. 여기 학부모들은 자식을 고향의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어 했고, 그걸 자랑스러워한다고.
한국의 학벌이 작용하는 방식은 교묘해서 '명문대' 진학은 계급재생산의 의미가 큼에도 '공부 잘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란 능력주의의 환상을 유지하게 한다. 서울대급 입학성적을 자랑하던 지역대학들이 쇠퇴하는 지금, 학벌 이데올로기는 '지방' 사람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확장되는 듯. 내 행위가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열등감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이 비인간적인 현실을 바꾸려면, 존재로 오롯이 설 수 있는 개인의식의 변화와 그 개인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개인도, 대학도, 도시도 '나다움'을 지키고 확장할 때 경쟁력이 생기니 '지방대'들은 '지방대다움'에 집중하길. '지방대'에 다니는 당신은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길. 서울 '명문대' 지인에게 그들 내부의 학벌 편차에 따라 진골·성골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진골·성골 같은 소리하고 있네, 화성에 가겠단 시대에.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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