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무식하거나 사악하거나

  • 정재형 변호사
  • |
  • 입력 2023-03-08 06:42  |  수정 2023-03-08 08:43  |  발행일 2023-03-08 제26면

2023030701000215900008601
정재형 (변호사)

'건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더 올라가면 전두환 치하 삼청교육대가 연관검색어로 올라올 것 같다. 일전 대통령께서 기득권 강성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일갈하자 국토교통부 장관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고용노동부는 노조 회계장부를 다 내놓으라고 으름장이다. 경찰은 물론 국군 방첩대까지 동원되어 노조를 공구고 일부 언론도 건폭이 뭔지 깨알같이 보도해서 국민의 혈압을 올린다. 건설현장은 매우 거친 곳이다. 거대 자본이 대형건설사와 함께 수십 단계의 하도급을 벌이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인허가를 통해 엄청난 이권을 통제하는 판이 거기인데, 그 생태계 제일 밑바닥에는 흔히 '노가다'라고 부르는 건설노동자가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법외 수당 따위를 요구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모든 일은 맥락이 있기 마련인데, 그 현장 노가다 몇 명의 조직에 몇조 원을 주무르는 건설자본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은 도무지 못 믿겠다. 그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관리들 특히 검사님들은 이제껏 놀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 불법행위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면 무지한 것이며 노가다를 쳐서 지지율을 좀 올려보겠다는 속셈이라면 사악한 거다.

학폭 사건으로 철회하긴 했지만 경찰 수사본부장에 전직 검사를 임명하는 일이 있었다. 작년 경찰국 신설에 대한 경찰의 집단반발을 무난히 진압한 후 자신감이 붙었으리라. 임명의 이유는 경찰 수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함이라 하고 언론은 그 검사 출신과 대통령 사이의 인연을 강조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 한 모든 인사는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마련이지만 참으로 배우지 못한 짓이다. 경찰 수사의 전문성을 높여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방법이 수사본부장 자리를 검사 출신으로 채우는 것밖에 없진 않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쓰는 것도 조직 생리상 지당하겠지만, 그 자리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검사의 지휘를 받다가 겨우 수사권을 얻은 경찰조직이라면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맞는다. 갓 독립한 대한민국의 총리로 조선총독부 출신 일본인을 임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임명이 조직을 무시하고 수사권 독립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읽힐 것이라는 점을 몰랐다면 무식한 거고 알고 했다면 사악한 것이다.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같이 보여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는 경구에서 '하늘의 그물'은 국민의 심판이라는 점을 잠시라도 외면하면 끝이 좋지 않다. 노파심에서 사악하거나 무식한 무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