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발달장애인 작가의 첫 에세이집 '송현 생각'을 읽으며…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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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06  |  수정 2023-04-06 06:54  |  발행일 2023-04-06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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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송현 생각'. 최근 읽기 시작한 책이다. 올해 초 출간된 에세이집으로 저자 김송현은 발달장애인이다. 대구성보학교 전공과에 재학 중이면서 이번에 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책에는 저자 김송현이 고등학교 때부터 전공과에 진학한 후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음발달지원센터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출판사 '아라보다'의 힘이 컸다. 아라보다는 느린학습자(IQ 71~84의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를 위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지역 출판사다. 출판사 김혜진 대표는 송현씨를 만나면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자책하던 송현씨가 '스스로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일깨우게 했다. 내친김에 출판사에 '쉬운 말 작가'로 채용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책 출간 전에는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펀딩 당시 목표금액의 600% 이상을 달성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책이 나오면서 언론에도 비중 있게 소개됐다. 신문과 방송은 오로지 '발달장애인이 쓴 책'에 주목했다. 책 내용보다는 저자의 상황에 집중할 뿐이었다. 당시에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발달장애인의 글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것에 대해 크게 후회했다. 글은 맑고 진솔했다. 행간마다 '김송현 작가'의 순수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생각의 깊이가 더해져 '의미 있는 메시지'처럼 읽히면서, 때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학교와 일터에서의 생활, 자신의 일상과 관심사, 책을 읽고 쓴 리뷰까지 귀하지 않은 글이 없었다.

찬찬히 음미할수록 송현씨가 눈에 그려지기도 한다. 그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와 다르지 않다. 살을 빼고 예쁜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여고생'이면서, 몸이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을 속상해하는 '모범생'이다. 게이트볼 게임에서 친구에게 져 분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당돌한 친구'다. 명함을 받아들고 당찬 각오를 다지는 어엿한 '사회 초년생'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자식들을 위해 애쓰는 미용사 어머니에게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착한 딸'이다. '시험에 떨어져도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며 스스로 다독일 줄 아는 '다 큰 어른'이다. 편의점을 '아군과 적군'으로 표현한 글에서는 재치 있는 카피라이터의 모습이 보인다. 무엇보다 송현씨는 글쓰기를 하면서 독자와 소통하는 '진정한 작가'다.

그래서일까. 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발달장애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고통과 절망과 위태로움이 뚝뚝 묻어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시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이 보일 뿐이다. 불안감을 안도감으로, 자괴감을 자신감으로 바꾸는 '속 깊은 송현씨의 생각'이 책 속에 가득하다. 책을 읽어갈수록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 청년의 당참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다. 표지에 적힌 '발달장애인 송현'이라는 부제가 어색해 보인다. 혹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가 있다면 당부드린다. 세상의 시선이 '발달장애인'이라는 특별한 이력에 집중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로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청년 송현'에게 시선이 모이길 기대한다. 덧붙여, '김송현 작가'의 건승과 건필을 기원한다.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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