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태사' 군중과 시민의 연극으로

  • 김남석 부경대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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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6 08:16  |  수정 2023-05-16 08:38  |  발행일 2023-05-16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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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부경대 교수·연극평론가)

뮤지컬 왕의 나라 시즌Ⅱ '삼태사와 병산전투'(이하 왕의 나라)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무대였다. 안동댐 민속촌 성곽의 무대는 좌우에 산을 끼고 앞에 물을 둔 자연의 무대였다. 본래 KBS 드라마(왕건) 촬영을 위해 건설한 성곽 세트였지만 왕의 나라에서는 안동(고대 지역명 병산)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재설정했다.

이 무대는 자연 속에 축조된 만큼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주위의 산들은 적당한 높이로 무대를 감싸고 있어 광활한 개활지가 주는 시선 분산의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 인공 건물이 없고 소음도 차단돼 있어 전반적으로 연극 무대로의 안정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무대가 위치한 안동 민속촌은 안동에서도 제법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탓에 관객을 극장까지 수급하고 그들에게 공연장 편의를 제공하는 일이 난제로 남았다.

그 탓인지 실외 공연장이 지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작품 곳곳에서 나타났다. 실내 무대(옥내극장)가 지닌 집중력에는 도달할 수 없는 실외 무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각적 활력을 더할 수 있는 몹 신(Mob Scene)과 군무(群舞)의 비중을 높였다. 군중도 다양한 형태로 구성됐다. 마을 사람들, 병사들(양측 진영), 아이들 등이 그렇다. 그들은 오프닝부터 무대를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시각적인 관람 요인을 책임졌다.

야외무대에서 관객을 맞는 왕의 나라에는 특별한 장치가 곁들여졌다.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영사 매핑)을 선택한 무대 디자인(장치) 방식이다. 보편적으로 프로젝션 매핑이란 '프로젝터서 빛을 투사해 건물 혹은 스크린으로 사용되는 벽면을 비추고, 그 빛이 닿는 곳에 증강현실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빛을 비춰 평면에 3차원의 입체감을 입히고, 원하는 공간(추상적 공간을 포함)을 축조하는 기술이다.

공연 중 보월루(步月樓)와 성곽에 빛을 투사하는 매핑은 하나의 공간을 신라의 마을(읍성)로 만든다. 또 욱일승천하는 백제의 전장으로 만들고, 성곽은 왕으로 지칭된 왕건의 처소가 되거나 삼국이 쟁투하는 상상의 공간으로 변한다. 이처럼 3차원의 영상을 사용해 무대의 변화와 이미지에 새로움을 더하는 작업은 야외무대라는 특성과 더불어 뮤지컬로서의 관극감(觀劇感)을 자극하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번잡함을 피하면서도 야외무대의 특성을 살릴 수 있고 보는 이들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선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안동은 이 작품에 상당한 공을 쏟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동 시민 역시 이 작품에 대해 그러한 관점에서 다가간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부심과 정체성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고려와 백제의 싸움은 불행한 한 시대의 슬픔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그 전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선택의 기록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시절의 민중은 자신의 길과 안정 그리고 삶의 가치를 선택해야 했다. 그 선택의 결과나 성패의 유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길을 찾으려 했던 일은 주목돼야 할 것이다.

왕의 나라는 그 길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안동의 역사를 과거 자신의 역사로 인지하는 이들이 마련되었고, 그 안에서 함께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씩 인지하는 이들 역시 늘어난다고 가정한다면, 이제는 이러한 참여의 길을 더욱 확대하면서도 우리 앞에 놓인 길을 용감하게 걸어가야 하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부각할 때이기 때문이다.

김남석(부경대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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